20220329 새벽기도회
본문: 레위기 16:11-22
제목: 우리는 누구의 아사셀이 될 것인가?
- 환영과 대표기도
-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 본문읽기: 레위기 16:11-22
4.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은 속죄일에 대한 상세한 규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론은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림으로서 자기와 집 안을 속죄하기 위한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향로를 가지고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도록 합니다. 그래야 그가 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림으로서 자신과 집안의 속죄제사를 드립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그 피를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립니다. 이렇게 행함으로서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합니다. 또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해서도 그 같이 합니다.
아론이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온 회중을 위해서 속죄하고 나오기까지 누구든지 회막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론은 여호와 앞 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속죄해야 하는데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그 이후에 살아있는 염소(아사셀 염소)를 드립니다.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냅니다. 염소는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면 그는 염소를 광야에 놓습니다.(그 염소가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 죽지 않기 위해서는 지성소에 들어갈 때 향연으로 속죄소를 가려야 한다.
속죄소 위를 향연으로 가려야 하는 이유는 그 속죄소 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레 16:2) 죄의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자가 하나님을 직접 보게 될 때 죽을 수 있습니다.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이라고 해도 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자는 아닙니다. 제사의 일을 하고 제사 업무를 위해서 따로 구분되었다고 하더라도 제사장도 여전히 죄의 문제가 있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구약시대의 제사는 불완전한 사람들에 의해서 드려진 불완전한 제사였던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완전성을 감안해서 용납하시고 받아주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향연으로 속죄소를 가리도록 한 것도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구름이나 향연으로 가려진채 우리를 보기 위함이 아닐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 없이 너무 선명하게 우리 자신이 노출될 경우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흠과 죄를 어느 정도 선에서 간과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묵상도 해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하여 적절한 적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도 모든 것을 너무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보고 알게 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을 때도 있고, 때로는 어느 정도 희미한 채로 아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서로가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불완전성이 상대를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불완전한 이해와 판단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오픈하지 말고 숨기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타인의 말과 행동을 좀 더 면밀히 살피고 판단을 할 때 참 신중을 기해서 하자는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의 불완전성도 상대의 불완전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극단적인 판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아사셀 염소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의 아사셀 염소일까?
보통 속죄의 제물로 가져온 것은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데 아사셀 염소는 다릅니다. 죽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론이 두 손으로 그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죄를 아룁니다. 이와 같은 의식을 통해서 그 죄를 염소에게 전가 시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돌아올 수 없는 광야로 데려가 놓아줍니다.
이 아사셀 염소가 우리에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대속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면서 동시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성문 밖으로 추방되셨기 때문입니다.(히 13:12)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도 주님을 따라 주님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3)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 주님의 고난과 수치를 우리의 몸에 짊어지고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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