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한가족예배 2011.2.6.

본문: 호세아 10:12,13

제목: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 앞에 찬양과 율동,암송이 있고 설교는 5분 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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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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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8장 요약] 요즘 이런 저런 일로 바뻐서 몇 일간 성경을 요약해서 올리는 일을 못했는데, 오늘 제 블로그에 글이 하나 달렸네요. '오늘도 열왕기하 18장이 올라오지 않았다고.. 성경보다가 궁금한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아직 안 올라왔다고...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올려주심 좋겠다는...' 몇 몇 분이 페북과 연동해서 올리면 본다든지, rss로 연동해서 본다는 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찾아와서 '올리라고 요청하신 분'은 처음입니다.^^ 암튼, 감사하구요. 이번주 다음주 바쁠 예정이지만.. 가능하면 꾸준히 해보도록 힘쓰겠습니다. 소수라도 기다리는 분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반가우면서도 책임감을 느끼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

 

[정리1. 내용을 정리하면서]

 

1. 히스기야 왕의 대략에 대해서
  1)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25세에 왕이 되어 29년간 예루살렘에서 다스림
  2)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3)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든 놋뱀도 부숨.
  4) 히스기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함. 여호와와 연합하여 떠나지 않음.
  5)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으로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심.
  6)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않았고, 블레셋 사람들은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성을 세움.
  7) 히스기야 왕 초기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패방하여 포로로 잡혀감.
   (1)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언약과 모세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

 

2. 히스기야 때에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위협하다.
  1)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오자, 히스기야는 은 삼백 달란트와 금 30 달란트를 바치고 화친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성전과 왕궁 곳간의 은과 금을 주었다.
  2) 그럼에도 앗수르의 산헤립은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로 예루살렘으로 보내 항복을 받아내도록 했다. 랍사게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말한다.
   (1) 네가 무엇을 의지해서 나를 반역하였느냐? 애굽을 의지한 것이냐? 오히려 찔림이 될것이다.
   (2) 너희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했겠지만, 여호와의 의지한다고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3)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사실 네가 믿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아니었겠느냐?
  3)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아람 말로만 하고, 유대 말로는 하지 말것을 요청했다.
  4) 그러나 랍사게는 더 크게 모든 백성이 듣도록 유다 방언으로 말을 했다.
   (1)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들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2)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오면 먹고 마시는 것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3) 우리는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길 것이며 그곳에서 너희는 부족함이 없이 지낼 것이다. 너희는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4) 여호와께서 너희를 건지실 것이라는 말을 믿지 마라. 앗수르의 왕의 손에서 건짐을 받은 땅이 어디에 있느냐?
  5) 백성들이 여호와에 대한 모독의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6)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했다. 

 

[정리2. 내용을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재정리]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그 내용이 나누어 진다.


하나는 히스기야 왕의 전반적인 평가이다. 히스기야는 모세와 비교될 정도로 괜찮은 왕으로 평가된다. 산당과 주상을 깨뜨렸고, 심지어는 모세때부터 사람들이 분향하던 놋뱀을 부수기조차 했다. 히스기야는 철저하게 여호와와 연합되어 있었고, 여호와께서도 히스기야와 함께 해주심으로 어디에 있든지 형통케 해 주셨다. 대외적으로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은 것과 블레셋에 대해서 공격하여 성을 얻은 공과가 있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운명과도 비교되었는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지만,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의 언약을 따름으로 앗수르에게 패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위험에서부터 건짐을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에 올라왔다. 히스기야는 힘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들이 요구한 대로 은과 금을 주고는 화친을 맺으려고 했지만, 앗수르는 은과 금을 받고도 군대와 함께 랍사게 등의 신하를 보내 예루살렘의 항복을 받아 내려고 했다. 랍사게는 교만하고 무례한 말로 유대인들을 농락했고, 심리적으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였다.(그러나 당시 상황으로는 그이 표현이 사실에 가까운 것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앗수르는 강력했다.) 여호와의 대한 모독까지 들었던 왕의 사신들은 비참한 심정으로 가지고 히스기야에게 랍사게의 말을 전했다.(이 사건은 다음 장으로도 이어진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관전 포인트.

같은 앗수르를 만나면서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유다는 살아 남았다는 것.

 

히스기야 왕 때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순간입니다. 솔로몬 이후 두 나라로 분리된 이스라엘와 유다 중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호세아 왕 때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반면 같은 시기의 유다의 히스기야는 앗수르로부터의 위협(충분히 유다도 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 이유를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했고, 언약과 그의종 모세가 명령한 것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12절) 반면 같은 시대의 히스기야는 다윗과 같은 수준으로 영적이었다. 우상을 부수고, 모세의 계명을 지켰으며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에게 떠나지 않았다.(3-6절)

 

우리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와 유다의 운명이 갈리는 순간을 통해서 명확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와 하나님을 의지한 자의 운명은 명확히 갈리는 것이다. 같은 위험, 같은 고난, 같은 아픔이 닥치더라도 그 가운데에서 넘어지지 않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고꾸라 지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같은 위협 앞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될 수도 있고, 우리는 유다가 될 수도 있다.

 

2. 관전포인트.

 앗수르 산헤립의 욕심이 히스기야로 하여금 여호와를 찾게 만들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을 때, 약소국 유다의 왕은 비굴할 수 밖에 없었다. 은과 금은 얼마든지 줄테니 돌아가 달라는 것이다. 강도만난 자가 돈은 있는대로 다 줄테니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형편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러나 전쟁하면 진다는 것을 아는 히스기야는 나라에 있는 은과 금은 다 쓸어 모아(기둥에 입힌 금까지 벗겨서) 그들이 원하는  액수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를 살리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헤립은 더 큰 욕심을 부렸다.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군과 랍사게를 보내서는 반드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라는 명을 내렸다. 랍사게는 대군을 이끌고 와서는 예루살렘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심리전을 폈다. 유다와 히스기야와 사신들, 백성들이 낙심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산헤립의 욕심과 랍사게가 한 심리전이 너무 심해서, 히스기야가 결국은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가게 되었다.(19장의 내용이지만) 일반적으로 약소국의 왕으로서 할 수 있는 방식(예물을 주고 돌려보내는 방식)에서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자리로 나가게 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산헤립의 과욕과 산헤립의 심리전이 적중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덕분에 히스기야는 인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재밌는 경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마치 마귀가 성도를 잡으려고 겁을 주다가 오히려 성도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전사가 되어 버린 꼴이 된 것이다.

 

사단과 마귀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적당히 해야지 심하게 하면, 다 이겨놓은 경기를 완전히 패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욕심은 금물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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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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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요일 아침입니다. 우선 말씀 한 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정리1. 내용의 정리_ 내용 파악을 위한 정리]

 

1.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에 대해서
  1) 사마리아에서 9년간 통치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으나,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했다.
  3)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가 그의 종이 되었다. 
  4) 호세아가 애굽 왕 소에게 사자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고, 앗수르에게는 조공을 바치지 않음.
  5) 앗수르 왕이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가두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3년간 에워쌈.
  6) 결국 호세아 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고 가서는 고산 강 가에 있는 힐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다.

 

2.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1) 이 일은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2) 가나안 이방사람들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기 때문이다.
  3) 이스라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고 산당을 세웠다.
  4)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들의 산당에서 분향하여 여호와를 격노케 함.
  5) 행하지 말라고 한 우상을 섬김.
  6) 또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너희는 돌이켜 악한 길에서 떠나고 내 명령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했으나, 그들이 듣지 않고 목을 곧게 하여 여호와를 믿지 않았던 조상들과 같이 하나님이 조상들과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따랐다. 
   (1)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일월성신을 경배하고 바알을 섬겼다.
   (2) 자기 자녀를 불가운데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여 여호와 보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
  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었다.

 

3.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또 다른 이유(유다를 보호하기 위해서)
  1) 하나님은 유다도 이스라엘의 죄를 따라 행하므로 이스라엘 온 족속을 버리셨다.(19,20절)
   (1)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었는데,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세움
   (2)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여호와를 떠나고 큰 죄를 범함. 이스라엘이 거기서 떠나지 않음.
   (3)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그의 앞에서 쫓아내심

 

4. 사마리아에 앗수르 사람들이 거주하게 된 사연과 이들이 여호와 신앙에서 멀어진 이유
  1) 앗수르 왕은 앗수르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켜 살도록 하였다.
  2) 그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 그들중 몇 사람을 죽였다.
  3)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포로 중 제사장 한 명을 찾아서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이바인들에게 여호와를 섬기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치도록 했다. 그래서 그 제사장은 벧엘에 살면서 백성들에게 어떻게 여호와 경외할지를 가르쳤다. 
  4)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온 신을 믿으면서도, 여호와를 위하여도 산당들에서 자신을 위하여 제사를 드렸다. 
  5) 이와 같은 풍속이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어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고, 율례와 법도를 준행하지 않았다. 
  6)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하신
   (1)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 섬겨라
   (2)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고 예배하여 제사를 드릴 것이라.
   (3)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라.
   (4) 내가 너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라. 
  7)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않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다.
  8)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아로 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였다.

 

[정리2. 내용의 재구성. 자시의 말로 설명하기]

 

본 장에서는 이스라엘이 결국은 호세아 왕 때에 앗수르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는 역사적인 상황을 소개한다.

 

호세아는 다른 왕들에 비하면 괜찮은 왕이라고 할 수 있으나, 워낙 이전 왕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범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수는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애굽과 이스라엘 그리고 앗수르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영적으로는 범죄함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된 것이다. 호세아 9년의 일이다.

 

이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신학적인 평가가 그 뒤에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결국 여호와께 범죄하여 망하게 된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하여 쫓아버린 가나안 이방 민족의 죄까지 따라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배역하고 산당을 세우며 우상을 만들고 그들을 섬겼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율법의 말씀도 지키지 않았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이들을 돌이키게 하시려고 보낸 종, 선지자들의 경고와 음성에도 이들은 돌이키지 않았고 허무한 것들과 세상의 우상을 쫓아 행했다. 결국 하나님이 심히 노하사 이들을 하나님 앞에서 제거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스라엘 자체의 죄로 말미암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이스라엘로부터 떼어 내어 보존하시려고 했다고 보는 것이다. 유다가 이스라엘을 보면서 따라하며 죄를 범하자, 더 이상 안되겠다고 판단하신 하나님께서 유다를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그의 앞에서 쫓아 낸 것이다. 성경은 두 가지 이유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주제는 지금 사마리아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은 어떻게 살게 되었는가에 대한 소개이다. 앗수르 왕에 의해 앗수르 백성들 중에 일부가 사마리아 지역에 강제로 이주하게 되고, 이들은 자신이 믿던 신을 그대로 가져와 믿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이 땅의 신에 대한 이해가 없는 터라 하나님의 진노로 몇 사람이 죽게 된다. 이로 인해 다시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벧엘로 보내 이주한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우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의 신을 버릴리 없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도 섬기면서,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섬기는 사람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음을 역사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한 사람, 한 나라의 심판에는 중복적인 의미가 있다.

 

열왕기서는 줄곧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죄를 범하며 그 왕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도록 한다는 지적을 계속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호세아 때에 와서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에 이르게 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 혹은 한 나라의 심판에는 중복적인 의미가 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그들의 죄 때무에 심판하시면서도 동시에 유다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음을 언급하신다.(19,20절) 왜냐하면 유다조차도 자꾸 이스라엘을 따라서 행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오랫동안 두고 봤지만, 이스라엘의 회복은 요원할 뿐 아니라 한 형제인 유다까지 그를 쫓아가는 경향을 점점 심하게 가지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유다라도 살려야 겠다는 심정으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다.

 

그래서 심판에는 언제나 구원이 공존하나 보다. 그래서 구원은 단독적인 의미로서의 구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심판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고, 구원도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죄는 더 악화되어가는 경향이 있고, 전염성을 가지기에 그들로부터 떼어내는 것이 구원인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개념이란, 언제나 심판의 전제 속에서 생각되어져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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