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7편]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신다.(11절)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자를 위해 칼을 가시고,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해 놓으신다.(12절) 성경에 이런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본모습을 감추고 숨기는지... 하나님은 끓어 오르는 분노를 매일 간신히 참고 계시는 것일 뿐이다. 그것을 모른채 우리는 얼마나 방종한지... 칼을 갈고 계시고, 활을 당기어 예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을 묵상합시다.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


1. 여호와여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원수들에게 위태롭습니다.(1,2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 시편 기자는 자신을 대적하는 자를 피할 유일한 곳이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없음을 고백하고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2. 자신은 이런 일을 당할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3-5절)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신은 누군가로부터 이런 일을 당할만한 악행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일에 합당한 심판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음을 고백한다. 


3.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시고 나를 위해 깨소서.(6-10절)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 나의 대적들에게 진노로 일어나 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니, 심판을 행하셔서 악을 끊고 의인을 세워달라고 요청한다.(자신의 떳떳함을 확신하고 있기에) 시편 기자는 자신의 유일한 방패는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의 삶의 태도도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무조건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도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의로우신 하나님의 분노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다.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태로운 일이다. 그는 회개하지 않는 자를 심판하기 위해 칼을 가시며, 활을 당기어 조준하고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심판관이시다. 죄를 두려워함이 없다면,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5. 이와 같은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찬양함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정리2. 메시지와 묵상]


1.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며, 악에 대해서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오해하는가?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이 복음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러나 시편 7편의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참으신다. 그러나 여유롭게 참으시는 것이 아니다.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시면 간신히 참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모르고 그냥 하나님께서 맘 편히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도덕적 영적 타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2. 따라서 죄인은 회개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칼과 활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악인들은 자신들이 행한 것에 대한 재앙을 자신이 받고, 자신이 해 놓은 올무에 스스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억울한 의인의 기도를 들으셔서 공의로 판결하심으로 의인들은 여호와를 찬양하게 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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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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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4장] 긍정적 메시지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들은 긍정적 메시지로 찾아오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메시지는 쓴 소리, 아픈 소리 가운데 있습니다. 고통을 참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소망은 열려있습니다.(묵상 내용만 참고하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탄식과 하나님의 응답

  1) 가뭄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2) 상황: 유다가 슬퍼한다. 사환을 보내 물을 얻으려 하나 얻지 못하고, 밭 가는 자가 물이 없으므로 부끄러워하고 근심한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린다. 

  3) 백성들의 탄식: 우리가 죄가 많을지라도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일하소서. 어찌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까? 왜 나그네처럼 무심하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리이까?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4) 여호와의 말씀: 이 백성은 어그러진 길을 가면서 그 길을 사랑하고 멈추지 않았다. 예레미야아,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금식이나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칼과 기근으로 전염병으로 멸하리라. 

  5) 예레미야의 탄식: 거짓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은 없을 것이라고 하고 평강을 예언하는 것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탄식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은 거짓 선지자라고 하면서, 그들을 보내지 아니했다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 선지자들과 처자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모든 백성이 칼과 기근으로 멸망하게 되고 알지 못하는 땅으로 다니게 된다고 하심. 


2. 백성들이 주 앞에 호소하다.

  1) 여호와여, 우리를 버리시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는 치료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치료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봅니다. 

  2)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3) 주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4) 우상 가운데 누가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만 앙망합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내글로 쓰기]


하나님께서 유다에 큰 기근으로 보내셨다. 그로인해 귀족들이나 백성들이나 농부들 모두가 물을 얻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풀이 없으므로 암사슴도 자기 자식을 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고 하고 호소하기도 한다. 어찌해서 우리를 이 지경에까지 내버려 두시는가!하고 묻는다. 자신들의 잘못이 있음도 알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무하시다고 말한다. 유다 백성과 관계가 전혀 없는 분처럼 냉정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에게 이 백성을 위해서 복을 빌지 말라고 하신다. 이들이 금식하과 번제와 소제를 드려서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결국은 칼과 기근으로 멸망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들은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면서 가고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멈춰서지를 않았다. 여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자신을 제외한 많은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은 곧 해결되고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만 백성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가 아니라고, 그들과 그들의 처자식들이 먼저 칼과 기근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뒤 이어지는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가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떠났으니 공허하게만 들린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은혜라는 것은 본질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은 따진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너무 심하게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알고 뉘우치고 있으니, 이제 그만 화를 풀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은혜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은혜는 요청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신에게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했는데, 그것을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분을 품는 것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협박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은혜란 본질상 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주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은혜의 본질이다. 따라서 은혜는 구할 수는 있지만, 얻지 못했다고 해서 수여자에게 화를 내거나 탓을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다 백성들이 지금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있는 것인가? 글쎄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 생떼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든다. 이 정도로 간절한데, 왠만하면 들어달라는 식이다. 만약에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협박하는 것일수도 있고... 


암튼,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생떼를 부리면서 하나님을 협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2.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고통당하는 참 선지자 예레미야.


당시 대 다수의 선지자들은 현재 당하고 있는 칼과 기근의 고통은 잠깐이요. 곧 화평과 평강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영방송에서는 별 문제 없다고 현재 하던 일을 동요없이 그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다른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곧 해결될테니 별일 없는 것처럼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받은 예언은 달랐다. 지금의 칼과 기근은 앞으로 다가올 재앙의 시작에 불과하다. 더 큰 재앙과 심판이 임할 것이며, 이것은 중대 사태로 하나님이 이 민족으로 버리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민족이 총체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메시지는 예레미야 혼자의 메시지니, 다수의 언론에 밀려 사람들에게는 잘 전달되지도 않는다. 그로 인해 예레미야는 고통 당했고, 혹 자신만 너무 부정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도 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명확하게 해주신다. 예레미야의 손을 들어주신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참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적어도 무조건적인 낙관과 긍정만이 참된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은 오늘 본문 속에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쓴 소리를 들을 때 그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간파해야 한다. 


쓴 소리, 아픈 소리를 들을 수 있을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거기서부터 바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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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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