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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느헤미야로 들어왔습니다. 에스라에 이어지는 성경인데, 역사적인 시점으로 볼 때, 스룹바벨로부터는 93년 시간 차, 에스라의 귀환으로부터는 13년의 시간 차이를 가지는 이야기 입니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중심으로한 재 배열]

 

1. 느헤미야가 들은 유다 땅 예루살렘의 형편(1-3절)

1)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르월에 느헤미야가 수산 궁에 있을 때의 일이다.(B.C. 445년)

* 에스라의 귀환은 아닥사스다 왕 7년 다섯째 달에 있었던 일이다.(B.C 458년, 13년 전)

* 고레스의 명령으로 스룹바벨과 함께 1차 귀환한 때가 주전 538년.(93년 전)

2) 예루살렘을 다녀온 사람들 중 동생 하나니로 부터 그 형편을 듣게 됨.

(1) 그 지방 거기에서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2)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을 불탔다.

2. 예루살렘의 소식에 대한 느헤미야의 반응(4-11절)

1) 그 소식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함.

2) 느헤미야의 기도

(1)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2)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3)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모세의 명령한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 지금 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형편이 자기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인하고 고백함.

(4) 그러나 하나님이 흩으신 곳에서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하면,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서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기억하소서.

(5) 이 백성들은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님의 종들이요 백성입니다.

(6) 주여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소서.

3. 그 때 느헤미야는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다.(11절)

 

[정리2. 본문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어 재 배열]

 

느헤미야의 이야기다. 느헤미야는 에스라가 귀환한 시점보다 13년 후의 일을 다룬다. 스룹바벨의 귀환과는 93년, 성전 재건과는 73년 이후의 일이다.

예루살렘의 형편은 100여년 전에 1차 귀환한 백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나아진게 없다. 여전히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동포들은 환난과 능욕 가운데 살았고, 성은 허물어진 상태며 성문들도 불타 재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보수할 여력이 없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스룹바벨과 함께 1차 귀환을 했을 때(93년 전), 방해 속에서도 성전을 재건했을 때(73년 전), 에스라가 2차 귀환하여 개혁을 시행했을 때(13년 전) 경건한 유다인들은 뭔가 기대했을 것이고, 특히 멀리 타국에 있은 신실한 유다인들 중에는 자기 고향 예루살렘에서 뭔가 새로운 일과 옛 영광의 회복이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첫 귀환 후 100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성전의 재건도 에스라의 개혁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 땅의 자기 백성은 비탄 속에 방치되어 있는 듯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의뢰하며 고민하던 유다인이 있었으니 그가 당시 왕의 술관원이었던 느헤미야였던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시작된 돌아온 백성 공동체는 처음 기대하고 꿈꿨던 것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성전을 건축한 후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도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쉽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적인 어려움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막혔던 길도 열여졌다. 그러나 내부적인 것은 그렇지 않았다. 모세의 말씀을 따르겠다던 백성들은 금새 타락한 것이다. 성전은 다시 엉망이 되었고, 구별된 백성을 통해 세운 귀환 공동체는 다시 이방 여인과의 결혼으로 부정하게 되었다. 이것이 스룹바벨과 에스라의 1,2차 귀환 공동체를 통해서 보여준 모습이었다.

에스라를 통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편에 설것 같았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결단 촉구 이후 사사시대에 혼잡했던 모습처럼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단순한 땅의 귀환, 성전의 재건, 직분의 회복, 제사의 다시 드려짐 만으로는 예루살렘 언약의 성취가 필요충분의 조건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귀환 공동체를 통해서 보여준 것은 외부로부터의 하나님의 역사는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없이는 온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내면으로부터의 변화를 주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신약 시대에 와서 강조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그런 측면에서 신약시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더불어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 느헤미야가 다시 붙잡았던 것은 다시 하나님의 언약이었다.

  죄를 지어 온 땅에 흩어졌을지라도,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 지라도(9절) 돌아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느헤미야는 붙잡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은혜와 긍휼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다.

  회복은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귀환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도 수차례의 회개과 개혁이 진행되었다. 그러고도 형편이 나아진 것이 없었다. 절망하게 되고 회의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아니, 대부분은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결과를 미리 볼 수는 없었지만,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고, 그 약속을 가지고 은혜를 구하며 기도했다.

  다시 시작하는 믿음, 다시 도전하는 믿음, 다시 희생하는 믿음.

  느헤미야는 수많은 실패의 역사 속에서 안정된 자신의 상태를 버리고 다시 그 실패의 역사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약속을 끝까지 믿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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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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