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1)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2) 하나님께서 처녀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실 것이고, 너는 즐거워하면 춤추며 나오리라. 

  3)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파수꾼들이 이야기 하는 날이 올 것이다. 


  *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을 앞두고 있지만, 돌아올 희망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알려주신다. 이것이 절망중에 소망이다. 지금은 절망이지만, 그 절망을 거치고 나면 희망의 결과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2.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1)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2) 하나님께서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와 잉태한 자와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큰 무리를 이루어 올 것이다. 

  3) 그들은 나의 인도함을 받고 올 것인데, 물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라. 


  * 돌아오게 될 때,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회복될 하나님의 나라는 이전과 달리 장애를 가진 자들에게도 열려있는 곳이다. 이전보다 더 풍성해졌고 완전해졌다. 고난을 거치면서, 환난을 거치면서 더 넓어지고 더 포용적이되는 것이 바로 참된 예루살렘이다. 천국은 온전한 사람만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천국에도 맹인과 다리 저는 자들도 존재할 것이다. 천국이 이 세상과 다른 것은 그들이 차별과 불편함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받아들여짐과 배려를 받으며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 천국이다. 


3. 이방인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라.

  1)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다. 

  3) 하나님께서 회복하시어, 그들의 심령은 물댄 동단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1)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2) 네 울음 소리를 멈추어라. 그의 대적들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3) 너희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희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4) 에브라임이 징벌을 당하고 내가 매를 맞고 징벌을 받았다. 돌이키고 뉘우치리라. 

  5) 하나님은 자식같은 에브라임을 책망하실때, 마음이 복잡하시다. 창자가 들끓으므로 그를 불쌍히 여긴다. 


  6) 처녀 이스라엘아, 이정표를 세우고 푯말을 만들어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으로 돌아오라.


  *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갈 때에 길을 잘 익혀둘 것이고, 지나가는 길에 이정표와 푯말을 세워놓으라고 말씀하시다. 그와 같은 행위는 머지않아 돌아올 것을 확신하기에 행하는 것들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구원이 신속할 것임을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자식들을 책망하시어 바벨론의 포로로 넘기실 때, 창자가 들끓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도 부모된 입장에서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온전한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은 책망함으로 그들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5.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2)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3)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4) 여호와께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여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5)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 바벨론 포로 사건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신학적 개념을 명확하게 하셨다.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다하는 것과 같은 것이 없이 하겠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의 잘못은 아버지에게 묻지, 그 아들에게까지 잘못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즉시 회복시켜 주겠다는 말씀이다. 


  * 죄를 짓기 전 과정에서는, 가능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인해 고통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래야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니까요. 그러나 막상 죄를 지은 자식에게는 가장 최소한의 책임만을 묻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정적인 멸망에 이르기 전까지는 죄가 자손에게 이어진다는 것을 그토록 강조한다. 그러나 막상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예레미야서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 당대의 죄는 당대로 끝낸다는 식으로 룰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를 생각해 보면 금새 이해하게 된다. 


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심

  1) 애굽에서 인도하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이다. 

  2) (왜냐하면, 그 때에 맺은 언약은 깨질 수 있는 언약이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다.

  3) 그러나 내가 후에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않을 것이다.(다 나를 알기 때문이다.)

  5)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34절)

  6) 하나님이 정하신 만물의 운행과 섭리가 폐하여 진다면,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한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7) 날이 이르면, 여호와가 예루살렘 성을 다시 건축할 것이며 그곳은 거룩한 곳이니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40절) 


  * 새언약이란, 내용이 새로운 언약이 아니라 전에는 그 내용을 지키지 못할 수 있는 언약이었는데, 이제는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법이 내 안에 주어지는 형식인 것이다. 마음에 새겨지는 것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 우리가 법을 이루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방식이며, 그분이 법을 이루시는 방식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내주하시는 방식을 통해서 법을 이루시는 방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언약을 맺은 자가 실패할 수 있단 말인다. 신약시대에 말이다. 



[묵상 한 모금]


오늘 본문 속에는 여러가지 새롭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들이 적지 않다. 특히 중요한 새언약에 대한 내용도 언급되는 중요한 장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내게 남은 가장 큰 내용은 새로운 신학이 새로운 신학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예레미야 이전까지 아버지의 죄가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입장으로 말씀이 주어졌다. 그런데 예레미야에 와서는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다고 아들의 이가 시다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아버지의 죄에 대한 결과가 아들에게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법이 시대를 따라서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자식을 바르게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바르게 자식을 키우는 방식에는 계속 변화가 있다. 자식이 어떤 큰 죄를 저지르기 전까지는 그 죄에 대한 결과를 좀 과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녀에게 더 크게 각인되고, 그 죄 근처로 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법정적 교육이라기 보다는 목양적, 교육적 지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자식이 그 죄를 지었을 때, 부모는 달라진다. 그 죄에 대한 과도한 벌까지 지지 않도록 한다. 그 자녀가 지은 죄에 대해서만 책임 질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법정적 의미에서만 죄의 책임을 따지게 된다.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에게 부모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시는 것이다. 기준이 오락가락하는 부모가 아니시다. 자녀가 죄를 짓기 전과 죄를 지은 후에 대한 부모의 입장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가 공감하는 논리다. 


예레미야 31장에서 하나님의 진심을 발견하게 된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오늘은 히브리서 9장에 대한 내용 정리를 해봅니다. 복잡할 것 같은 내용도 논리적 전개를 따라 저자의 맥락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좀 더 단순화될 수 있고, 강조점이 무엇인지 알 수도 있게 됩니다.

우리가 익히 익숙한 구절이 오히려 초점을 흐리게 되는 것도 발견합니다.

22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와 같은 구절들은 본 장에서 말하고자하는 내용의 주인공은 아닌 구절인듯 합니다. 물론 조연으로서 필요한 구절임은 당연하구요. ^^

-----------

옛 언약(첫 언약)에도 제사장이 성막에서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법과 성소는 비유지 실제로 온전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개혁할 때까지 임시적으로 맡겨 둔 것이다.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하늘)장막으로 들어가셨다.

따라서 옛 언약 아래에서 제사장이 동물의 피로 그 백성들의 부정을 정결하게 했다면,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완전한 제물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지 않겠는가? 또한 너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지 못하겠는가? 충분히 넉넉히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과거 동물의 피(죽음을 통해)가 있을 때 죄사함의 효력이 인정되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피)이 있어야만, 유언한 자의 죽음이 유언의 효력시점이 되듯이 그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의 죄 사함의 효력시점이 되는 것이다.(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역사적 시점이 성도가 죄를 사함받는 역사적인 시점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것을 번거롭게 여러번 하신 것이 아니라(구약의 제사장은 여러번 할 수 밖에 없었다. 제물 효과의 불완전함 때문에) 마지막에 단 한번으로 모든 죄사함을 완성시키신 것이다.

이제 두 번째 다시 나타나시겠지만 이것은 또 다른 죄사함을 위함이 아니다. 죄와 상관없이 성도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히브리서 8장은 완전한 대제사장에서 새언약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이와 같은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불완전한 (대)제사장의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새언약과 대치되는 옛 언약은 어떤 것이며 어떤 차이와 공통점이 있는지 살펴봐야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 진다.

그와 같은 개략적인 내용은 히브리서 8장을 읽어봐도 대략 알 수 있다. ^^

 

히브리서 8장 내용의 골자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으리라 생각한다.

전에도 언약이 있었지만, 그 언약을 이루어 낼 능력이 사람 안에는 없었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이 가지는 한계였다. 율법 그 자체, 옛 언약 그 자체는 옳고 맞는 것이나, 그 언약을 지키겠다고 받은 그 백성의 연약함과 죄(성)가 그 언약에 신실하게 응답하지 못하게 함으로 언약을 깨뜨려 버리는 것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언약의 신실성을 통해 회복을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은 요원해지는 것 같았다.(구약의 역사)

그러나 하나님은 새 언약을 준비하셨다. 새 언약은 내용의 새로움이 아니다. 그 언약을 체결한 자와 그 언약을 성취해 가는 방식이 새로운 새 언약이다. 율법과 언약을 문서(돌판)에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 두고, 마음에 새기는 방식으로 언약 성취의 방식을 바꾸신 것이다. 전에는 내 힘과 능력에 의존해서만 언약의 성취여부가 결정되었지만, 새 언약은 그 방식이 달랐다. 언약을 내 생각 내 마음에 새기심으로 내 안에서부터 일어나는 능력(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한 도우심, 성자 하나님의 중보하심으로 성취가 보장되는)으로 언약을 성취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새 언약(성취되도록 하는)을 전해주신 분이요, 이 분이 바로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