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3장] 거짓 선지자들은 서슴지 않고 말한다. 내가 하나님의 회의에 참석했다고, 내가 하나님과 무척 가깝다고 그리고 매우 신비로운 방식으로 나는 말씀을 들었다고... 그들은 너무나 확신하여 타인을 현혹한다. 너무 큰 확신을 가지고 있는 열정적인 종교인을 주의하라.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자]


1. 하나님의 양떼들을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말씀하신다.(화가 있도다.)

  1)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않았다. 그 악행에 너희를 보응하리라.

  2) 내가 그 몰려갔던 양 떼들을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번성하리라.

  3) 내가 그들을 위하여 목자들을 세우리니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지 않으리라. 

  4)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할 것.

  5)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않고,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다. 그들이 자기 땅에 살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대해서 말씀하시다.

  1)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하다. 여호와의 집에서도 그들의 악함이 발견된다. 그래서 그들은 우둔하게 되었고 어두운 가운데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었다. 그들은 엎드러진다. 

  2) 사마리아 선지자들의 우둔함: 바알을 의지하여 예언하고 이스라엘로 그릇되게 한다. 

  3) 예루살렘 선지자들의 가증함:

   (1)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사람으로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한즉, 그들은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쑥을 먹이고,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라. 

  4) 따라서 너희들은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믿지 말라. 

   (1) 그들은 헛된 것을 말하고,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길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2)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들었는가!

   (3) 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리니 너희가 끝 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4) 이 선지자는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 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다.(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선지자들)

  5) 하나님은 가까운데 계신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1) 누가 자신을 숨기려고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않느냐!

   (2) 그들이 내 이름으로 꿈을 꾸었다고 하나, 그것은 단지 그들의 꿈에 불과하다. 내 말을 받은 사람은 성실함으로 내 말을 전하라. 어찌 겨가 알곡과 같겠느냐?

   (3) 하나님은 거짓 꿈을 예언하고 거짓과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는 자들을 방망이로 치시리라고 말씀하신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엄중한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인가?

  1) 이 백성이나 선지자, 제사장이 네게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거든,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를 버리리라고 말하라. 

  2) 그들이 엄중한 여호와의 말씀을 묻는 대로 그들에게 엄중하게 행하시겠다고 말씀하는 듯.

  3) 여호와께서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려 내가 너희 조상과 너희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버려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하리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풀어보자]


여호와 하나님은 목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신다. 이들은 목동이 아니라 유다를 이끄는 지도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돌보지 않아 흩어지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자기 백성들은 흩어진 곳에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고, 다시 목자들을 세워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전 장에서는 다윗의 왕 위가 여호야긴 왕으로 마치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이제 여호와 하나님은 출애굽으로 유명한 하나님이 아니라, 출바벨론으로 더 유명한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향해서도 말씀하신다. 사마리아의 선지자들은 바알을 섬기며 이스라엘로 그릇되게 하였고,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은 거짓으로 사람들을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다. 결국 그들의 타락을 방조한 것으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게 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의 예언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꾸었다는 꿈도 믿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이 어찌 하나님의 회의에 참석했으며 마치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것처럼 잘 안다고 말할수 있느냐? 하나님은 보내지 않는 선지자들의 거짓을 책망하고 그들을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묻는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고? 그래서 하나님은 답하신다. 그들이 엄중한 메시지를 물었으니, 내가 엄중하게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조상들과 너희들에게 준 성읍을 하나님 앞에서 버려서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정리3. 정리하면서 깨닫게 되는 자연스러운 메시지와 묵상]


1. 출애굽의 하나님에서 출바벨론의 하나님


이전까지 이스라엘에 있어서 구원의 하나님의 출애굽의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흩어져 있던 자들을 북방에서 불러모으는 구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그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측면에서는 출애굽과 유사하다 하겠으나, 이번에는 전역으로 흩어져있는 백성들을 다시 한 곳으로 불러 모은다는 측면에서는 전과 다른 구원이라 하겠다.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보면 두 번의 구원이 있다. 하나는 출애굽, 다른 하나는 출바벨론... 이것은 구원 사건이지만, 그러나 구원의 완성은 아니다. 구원의 한 모형인 것이다. 참된 구원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통해서 일어나게 된다. 그가 왕이 되어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지혜로 다스릴 것이다. 그것이 참된 구원의 모습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의를 이루셨으며, 정의와 공의를 성취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 모든 기적같은 구원의 종착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 선지자라는 사람의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단은 오늘날에만 번성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유다의 역사 속에서도 이단과 같은 미혹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있어 왔다. 이 당시의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마치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자처럼, 그리고 하나님의 회의에도 참석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말했다. 때로 이들은 꿈이라는 신비로운 방식을 빌어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에게 정색하신다. 이들을 보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들의 꿈이라는 것은 단지 꿈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가 하나님의 회의에 들어왔으며, 하나님과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근거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신비한 방식으로 현혹하여 그릇된 평화를 전하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선지자라는 말에 속으면 안된다.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다는 말에도 속으면 안된다. 신학을 했다는 말에도 전도사나 목사라는 말에도 속으면 안된다. 그들의 직함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있는 말을 분별해야 한다. 그 분별력을 상실하면 결국 우리는 브랜드나 직함에 속게 된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절히 필요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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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0장] 여호와의 성전 총감독 제사장 바스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친구에게조차 조롱당하는 예레미야가 될 것인가? 그것은 내가 여호와의 입을 막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여호와의 입의 통로가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하나님의 입을 막고, 자기 이야기를 즐겨하는 자 바스훌의 운명과 같이 될지어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의 총감독 제사장 바스훌과의 갈등

  1) 임멜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다. 

  2)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풀어주매, 예레미야가 바스훌에게 예언을 한다. 

  3)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고, 마골밋사빕(사방으로 두려움)이라 하신다. 

  4) 너와 네 친구들이 두려움에 떨게 되고,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5) 유다가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지고, 이 성읍의 모든 부와 왕궁의 보물도 탈취되리라.

  6) 바스훌,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며 너도 거기서 죽게 되리라. 너와 너의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그와 같으리라.


2.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 감당해야 할 고통에 대한 호소

  1) 여호와께서 권유하심으로 권유를 받고, 당신께서 강하사 나를 이기셨다. 

  2)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3)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했지만,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답답하여 견딜 수 없어 다시 하게 됩니다. 

  4) 내 친한 벗들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립니다. 잠깐이라도 유혹을 받게 되면, 금새 일어나 나를 치려고 합니다. 주여, 이들이 큰 치욕을 당하게 하소서.

  5)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하나님, 나의 사정이 여호와께 아뢰어졌으니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아게 보게 하옵소서.


3. 자기 자신이 태어난 것에 대한 원망

  1)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라면

  2)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에 복이 없었더라면

  3)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4) 내가 어찌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나가 이해한 방식으로 풀어쓰기]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던 예레미야가 결국 성전의 총감독인 제사장 바스훌에 의해서 잡혀가게 된다. 그에 의해서 매를 맞고 목에 씌우는 나무고랑으로 채워지게 된다. 예레미야를 겁주어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다음날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목에서 나무고랑을 풀어준다. 그 때 예레미야는 바스훌을 향해서 멸망의 예언을 한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며, 또한 바스훌가 그 가족이 모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그곳에서 죽을 것을 예언한다. 또한 그를 따르던 모든 친구들의 운명도 그와 같이 될 것을 말한다. 예레미야의 입은 바스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상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선지자직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입을 열때마다 파멸과 멸망을 말하는 것으로 인해 많은 고통이 있었다. 우선 주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고, 심지어는 친구들조차도 그를 꺼렸으며, 혹 작은 실수 하나에도 벌떼처럼 몰려들어 예레미야를 넘어뜨리려고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주신 말씀과 열정 때문에 말하지 않고는 답답하여 그것도 견딜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오히러 자신의 태어남을 한탄한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인데, 태어남으로 인해 져야할 어쩔수 없는 고통을 지게 된 것이 예레미야의 운명이다. 



[정리3.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메시지와 진전시켜야 할 생각들]


1. 하나님의 메시지를 막을 수 없다.


성전의 총감독이었던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겁주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수가 없었다. 예레미야를 풀어주는 순간, 예레미야는 또 다시 유다의 파멸과 멸망을 말하고 더 나아가 바스훌과 그 가족의 멸망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말한다.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싫어했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싫었던 것이고, 그것은 진리가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막으려고 했고, 말하지 못하도록 겁을 주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럴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일 수는 없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그에게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는 우리의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을 막을 수 없다.


2. 참된 선지자란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다. 


바스훌과 그의 친구들은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거짓 예언을 들었고, 거짓 예언을 전한 사람들이다.(6절) 이들이 잘 못된 정보를 들었던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으나, 이들은 옳은 정보에 대해서는 귀를 닫았기에 그릇된 정보, 듣기 좋은 메시지에만 귀를 기울였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또한 다른 이들에게 전했던 것이다. 


반면, 예레미야는 참된 메시지로 인하여 고통 당하는 선지자였다. 그 스스로 그 메시지를 피하고 싶었다. 친한 벗들에게조차 조롱을 받아야 하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태어남에 대해서도 후회가 막심했을 정도로 이 일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 하나의 고통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때, 감추고 있을 때, 입을 닫고 있을 때의 고통이 더욱 컸던 것이다. 참을수 없는 답답함으로 자기도 모르게, 참을수 없어서 터져 나온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메시지였던 것이다. 


거짓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 사람들이다. 목사 중에도 얼마든지 거짓 선지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과 야합하는 사람들, 성도들에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아닌 할 수 조차 없을만큼 도덕적으로 타락한 목사들... 이들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릇된 메시지를 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는 바스훌인가? 예레미야야인가? 자신있게 예레미야라고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스훌은 아닌가 돌아보고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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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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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4장] 긍정적 메시지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들은 긍정적 메시지로 찾아오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메시지는 쓴 소리, 아픈 소리 가운데 있습니다. 고통을 참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소망은 열려있습니다.(묵상 내용만 참고하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탄식과 하나님의 응답

  1) 가뭄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2) 상황: 유다가 슬퍼한다. 사환을 보내 물을 얻으려 하나 얻지 못하고, 밭 가는 자가 물이 없으므로 부끄러워하고 근심한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린다. 

  3) 백성들의 탄식: 우리가 죄가 많을지라도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일하소서. 어찌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까? 왜 나그네처럼 무심하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리이까?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4) 여호와의 말씀: 이 백성은 어그러진 길을 가면서 그 길을 사랑하고 멈추지 않았다. 예레미야아,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금식이나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칼과 기근으로 전염병으로 멸하리라. 

  5) 예레미야의 탄식: 거짓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은 없을 것이라고 하고 평강을 예언하는 것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탄식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은 거짓 선지자라고 하면서, 그들을 보내지 아니했다고 말씀하신다. 오히려 그 선지자들과 처자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모든 백성이 칼과 기근으로 멸망하게 되고 알지 못하는 땅으로 다니게 된다고 하심. 


2. 백성들이 주 앞에 호소하다.

  1) 여호와여, 우리를 버리시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는 치료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치료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봅니다. 

  2)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3) 주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4) 우상 가운데 누가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만 앙망합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내글로 쓰기]


하나님께서 유다에 큰 기근으로 보내셨다. 그로인해 귀족들이나 백성들이나 농부들 모두가 물을 얻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풀이 없으므로 암사슴도 자기 자식을 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고 하고 호소하기도 한다. 어찌해서 우리를 이 지경에까지 내버려 두시는가!하고 묻는다. 자신들의 잘못이 있음도 알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무하시다고 말한다. 유다 백성과 관계가 전혀 없는 분처럼 냉정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에게 이 백성을 위해서 복을 빌지 말라고 하신다. 이들이 금식하과 번제와 소제를 드려서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결국은 칼과 기근으로 멸망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들은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면서 가고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멈춰서지를 않았다. 여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자신을 제외한 많은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은 곧 해결되고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만 백성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가 아니라고, 그들과 그들의 처자식들이 먼저 칼과 기근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뒤 이어지는 백성들의 간절한 호소가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떠났으니 공허하게만 들린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은혜라는 것은 본질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은 따진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너무 심하게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알고 뉘우치고 있으니, 이제 그만 화를 풀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은혜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은혜는 요청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신에게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했는데, 그것을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분을 품는 것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협박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은혜란 본질상 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주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시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은혜의 본질이다. 따라서 은혜는 구할 수는 있지만, 얻지 못했다고 해서 수여자에게 화를 내거나 탓을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다 백성들이 지금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있는 것인가? 글쎄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 생떼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든다. 이 정도로 간절한데, 왠만하면 들어달라는 식이다. 만약에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협박하는 것일수도 있고... 


암튼,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생떼를 부리면서 하나님을 협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2.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고통당하는 참 선지자 예레미야.


당시 대 다수의 선지자들은 현재 당하고 있는 칼과 기근의 고통은 잠깐이요. 곧 화평과 평강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영방송에서는 별 문제 없다고 현재 하던 일을 동요없이 그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다른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곧 해결될테니 별일 없는 것처럼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받은 예언은 달랐다. 지금의 칼과 기근은 앞으로 다가올 재앙의 시작에 불과하다. 더 큰 재앙과 심판이 임할 것이며, 이것은 중대 사태로 하나님이 이 민족으로 버리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민족이 총체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메시지는 예레미야 혼자의 메시지니, 다수의 언론에 밀려 사람들에게는 잘 전달되지도 않는다. 그로 인해 예레미야는 고통 당했고, 혹 자신만 너무 부정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도 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명확하게 해주신다. 예레미야의 손을 들어주신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참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적어도 무조건적인 낙관과 긍정만이 참된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은 오늘 본문 속에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쓴 소리를 들을 때 그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간파해야 한다. 


쓴 소리, 아픈 소리를 들을 수 있을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거기서부터 바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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