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6 새벽기도회

본문: 룻기 3:14-4:6

제목: 신앙의 진위를 파악하는 기준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3. 본문읽기: 룻기 3:14-4:6

 

4. 본문의 내용

보아스는 늦은 밤 타작마당으로 찾아와 자신의 발치 이불을 덮고 누운 룻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룻의 현숙함을 신뢰했기 때문에 보아스는 룻의 행동을 오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의미로 전달될 때 자신이 기업을 무르겠다는 것도 오해를 받을 수 있고, 룻이 이상한 여인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새벽까지 있도록 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호의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룻은 보아스와 있었던 일을 나오미에게 모두 말합니다. 그리고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오미는 이를 통해 보아스가 최선을 다해 기업 무를 자의 역할을 다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보아스를 믿고 앉아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보아스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성문으로 가서 기다렸다가 먼저 기업무를 자(아무개)를 찾아 붙잡아 두었고 장로 10명을 청하여 한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공식적인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보아스는 앞선 기업 무를 자인 아무개에게 나오미가 소유를 팔려고 하니 그것을 살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가 거절하면 자신이 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무개라는 사람이 본인이 무르겠다고 답하는 것입니다. // 보아스는 당황했겠지만 물러서지 않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좀 더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나오미에게 그 밭을 사는 날에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잇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러자 아무개는 포기합니다. 자기는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있는 거라면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 책임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보아스에게 넘깁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1) 3장 14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보아스는 선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세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은 룻의 행동을 오해하지 않는 판단을 했지만 모든 사람이 이 상황을 동일하게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룻이 밤에 타작마다에서 보아스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전후 상황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먼저 기업 무를 자가 룻과 결혼하려고 할 때 자칫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밤에 보아스와 룻이 같이 있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그 일은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이른 아침, 아직 사람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는 시간을 이용해 성읍으로 들어가도록 조치를 취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한 일이기에 오히려 세심함을 기울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그런 선한 일이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주변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선한 일을 할 때도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을 도와 준 행위보다 그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인해 감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비참해 지기도 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우리 산울교회 성도님들이 주변에 선한 일을 하되 매우 그 방식에 있어서까지 지혜롭고 아름답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움을 준다는 것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시는 지혜를 얻으시길 축복합니다. 

 

 2) 4장 6절.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보아스보다 기업 무를 순위에 앞선 아무개라는 사람이 처음에는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다가 나중에 기업을 무르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기업을 무르지 못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는 아무개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시대의 평균치는 보아스가 아니라 아무개입니다. 아무개가 나쁜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보아스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무개는 당시에 평범한 사람의 기준이었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오르바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르바가 이기적이고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게 그 당시의 세상 평균인 것입니다. 오히려 보아스와 룻이 특별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우리의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믿음과 신앙이 기준이 됩니까? 어쩌면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없는 경우에 한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내가 손해 보는게 없고 내가 희생하는 것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종교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무개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찌인지는 언제 판단되겠습니까? 평상시가 아닙니다. 내가 손해보고 희생하면서까지 주님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의 진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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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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