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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7일 이만열 교수님의 페북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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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부메랑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 [이 글은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인사청문회 논란을 보면서 좀 길지만 페이스북 친구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늘 부담이 되는 것은 내 의견을 개진한 후 친구들의 질문과 의견에 답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런 사정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필자] 
총리 후보로 지명된 분(김용준)이 낙마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 인수위 윤 대변인은 6일 기자회견에서 국무총리 지명과 관련,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했다. 지명받은 후 다시는 낙마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사전 검증 자체를 그만큼 꼼꼼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대통령 취임식과 새 정부 출범이 이달 25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빡빡한 일정에 불안한 마음마저 든다. 
우리 나라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2000년 김대중 정권 때에 도입되었다. 그 때에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그리고 대법관이 대상이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비선출직 최고위층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은 선거과정을 통해 그 신상이 어느 정도 밝히 드러나지만, 비선출직은 선거라는 국민적 검증을 거치지 않고 국가의 고위직에 취임하고 있다. 그 때문에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는 국민을 대신하여 그들의 인품과 능력에 대한 됨됨이를 평가하여, 그들이 그런 고위직에 앉아도 될 것인지를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 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거듭 인사청문 대상의 확대를 요구하여, 2003년에는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까지 확대했다. 이어서 한나라당은 2005년에는 행정부의 장관까지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다. 바로 그 때 이 제도의 확대를 주장했던 한나라당의 대표는 박근혜 당선인이었다. 당시 인사청문회 제도의 확대 시행을 요구했던 한나라당은 그 청문회를 통해 공세도 취하여 어느 정도 정치적 성과도 거두었다. 
최근 새누리당에서는 까다로와진 청문회 제도를 두고 ‘신상 털기’라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그 청문회를 까다로운 ‘신상털기’식으로 운용한 것은 바로 한나라당이었다. 그 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몇 사람을 낙마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정부’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는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를 낙마시킨(2003) 데 이어, 2006년에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자에게는‘자기표절’을 근거로 낙마시켰다. 되돌아보면, 지난 MB정권 때에도 낙마한 경우가 없진 않지만, 그러나 ‘국민의정부’ 때나 ‘참여정부’때에 적용했던 그 엄격한 기준으로 한나라당이 자기검열에 충실했더라면 몇 사람이나 그 관문을 통과했을 지 의문이다. 그 정도로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야당 때에 가졌던 청문회 검열 잣대를 느슨하게 풀어버렸다. 
새 정부의 출범에 앞서 당선인과 집권당은 청문회 제도를 불편해 하고 있는 것이 역력하다. 그렇게 곤경을 겪는 것은 따지고 보면 현재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자기들이 야당 시절 확대했고 그 시행을 엄격히 요구했던 그 ‘신상털기식’ 선례(先例)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집권여당(현 야당)에 대해서 감행했던 ‘만용’이 지금 에누리없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줄이야,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없는 단견(短見)에 머문 우리의 정치풍토 때문일 것이다. 정치에서 필수불가결인 관용(寬容)은 남의 약점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잘 드러나야 하며, 반대로 상대방의 장점을 대할 때에는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로 나타나야 한다. 이런 자세가 경쟁 위주의 살벌한 정치판에서도 상생의 공동체를 세우는 길일 터이다. 이런 때에 자주 쓰이는 말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이런 과거를 갖고 있는 당선인과 새누리당이 최근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청문회 무력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여당의 국회 총무 이한구는 헌법재판소장 후보 이동흡에 대한 청문회를 두고‘인격살인 도살장’같다고 비난하면서, 과거 한나라당이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반성은 없이 청문회의 폐해를 부각시키기에 앞장 섰다. 그런 용기있는 총무의 자가당착적 만용에 힘입어 청문회 무력화를 열창하는 새누리당 의원과 당료는 한 두사람이 아니다. 한자리 노리는 아첨꾼이 아닐까. 거기에다 총리 후보가 낙마한 후, 당선인의 발언에는 청문회를 통해 검증된 인물이 발탁되기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는 내용들이 묻어있다. 그는 “죄인처럼 혼내는 인사청문회 때문에 나라의 인재를 데려다 쓰기가 어렵다”고 언급하는가 하면, 청문회를 ‘신상털기’로 ‘피해를 주는’과정이라고 말하면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그가 생각하는 청문회는 그의 ‘밀봉인사’를 무탈하게 통과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그가 야당 시절에 보여주었던 태도와는 상반된 것이며 이중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문인지, 여당 의원들을 향해서 새정부 출범에 협조해 달라고 당부하면서도 그가 정작 내 놓아야 할 후보 명단은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설마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꺼번에 총리와 장관 후보들을 여러 명 내 놓고 그걸 어느 시점까지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그 다급한 기간을 내세워 주마간산격으로 청문회를 치러주기를 은근히 요구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은 나 혼자뿐일까. 

고위공직자를 발탁하여 쓰되 국민 대표기관의 엄격한 청문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이제 10여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신상털기’식 혹은 ‘인격살인’으로 간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미 중요한 정치적 제도로 자리잡은 현 청문제도를 집권 여당의 의도대로 대체입법과정을 통해 당장 무력화시키고 편의위주로 운용하겠다면 그것은 더구나 온당치 않고 유권자의 저항마저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금의 청문제도는 새 정부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여러 시스템의 하나다. 불편하니까 이것만 갈아끼우고 가자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유권자를 설득시키지도 못한다. 지난 번 대선 때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투표시간 연장이 상당한 호응을 얻어 대두되었지만, 선거시스템이 이미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롭게 룰을 변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당선인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흐지부지 되었던 적이 있다. 이 경우에도 청문회 제도를 손보겠다면 그 시기는 새 정부 출범 이후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새누리당이 청문회제도를 손보자면서, 가장 방점을 두는 것은 국민들의 공분과 여론 악화에 가장 민감하게 작동하는 대목이다. 즉 재산과 병역, 세금 등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낙마한 대부분의 경우가 바로 이런 도덕성 검증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는 새누리당이 이 점에서 좀처럼 자신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셈인데, 그렇다면 더구나 도덕성 검증의 비공개화를 통해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그들 자신이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과거 재산과 병역, 세금 등에서 부정이 있으면 그걸 도덕적 하자로 보지 않고 처세에 능한, 그래서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정의와 도덕을 내세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의와 부정을 어쩔 수 없이 용납해 왔던 사회적 관행 때문이다. 이런 관행을 극소수의 고위공직자 선발에서 바로 잡아보자는 것이 청문회 제도라고 이해한다. 다시 말하면, 고위공직자부터 정의와 도덕의 잣대로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적용대상은 얼마 되진 않지만 앞으로 고위공직자를 선망하는 이들에게는 큰 경종을 울려주고 있으며 젊은 시절부터 자기 관리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사회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과거 불의 불법한 토대 위에서는 재산과 병역, 세금 등을 적당히 피하는 요령이 있으면, 그것이 마치 능력이 발휘되고 입증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와 도덕의 사회에서는 발휘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따라서 인사청문제도 하에서는 고위공직자로 그 능력이 입증되자면, 개인의 능력과 사회의 정의․도덕이 불일치되어서는 곤란하고 일치되는 데서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이것이 정의사회를 이룩해 가는 과정이고 정치가 추구하는 중요한 목적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사청문제도에서 추구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의 능력이 엄격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동양적 가치관을 정치 시스템화하는 장치라고 할 수는 없을까. 도덕적으로 자기 자신과 집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어야만 공직을 맡을 수도 있고 공직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청문회 제도는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과도 부합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의 엄격한 이 인사청문제도를 앞으로 10년 정도만이라도 성실하게 시행, 안착시킬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도덕․정의 관념과 개인적 능력을 일치시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MB 정권 하에서 운용된 청문제도에서나, 보수를 자처하면서도 도덕적 행위를 청문의 공개대상으로 하자는 것을 꺼리는 이런 풍토하의 청문제도로서는 더 많은 시간을 요할는지 모른다. 
도덕적 행위를 인사청문의 공개대상에서 제외시키려면 그만한 여과 장치를 엄격히 마련해야 한다. 공개적인 청문회에 나오기 전에 거쳐야 하는 사전검증 단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후보자들은 먼저 그들이 적어내는 200개 이상의 항목의 질문서에 성실히 답해야 한다. 가족 범위도 본인 외 배우자·자녀뿐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부모, 배우자의 부모, 형제, 후견인까지 포함”되며 특히 최근 7년간 후보자의 거주지를 확인해줄 수 있는 이웃 지인(知人)까지 써내게 한단다. 200여개의 문항에는 “불법적인 마약소지나 사용 경험 등 전과 기록과 세금 체납이나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은 경험 등 납세 정보도 중요 항목”이다. 이런 사전 검증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백악관 인사처,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검증에 나선다고 한다. 이렇게 철저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상원의 인준이 거부되는 경우가, “1960년부터 2000년 사이에 6명밖에”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우리와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청문제도의 개선 논의는 새 정부의 출범을 위한 임시 방탄막이로 활용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그것이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사청문제도의 약화를 주장하는 것이어서는 더더구나 옳지 않다. 새누리당의 구상대로 된다면, 그러지 않아도 MB정권 하에서 연속 추락해서 이제는 세계투명성기구의 2012년 ‘한국 반부패지수 45위(100점 만점에 56점, OECD 34개국 중 27위)를 더 추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까 두렵다. 공개 검증이 가져오는 한계를 인식한다면 지금의 여야의 대치관계를 떠나 무엇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자기가 청문회대상이 되었을 때를 상정하면서 중용의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자칫 순간적인 이해관계를 극복하지 못해 편파적으로 개정을 논의하다 보면 그것이 언제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올는지 알 수 없다. 최근 시민단체와 일부 야당 의원들도 진지하게 논의에 접근하고 있는 만큼 정치권은 여야를 초월하여 현재의 청문제도를 개정하되, 시스템화된 지속적이고 더 광범위한 사전검증을 통하여 공개검증이 갖는 약점을 합리적으로 지양․보완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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