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개관3_야곱(창 28-36장)_ 정리하면서 파악하게 된 것들.


1. 족장이야기를 가만히 읽다보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자리가 너와 네 자손들의 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띕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금새 다시 오도록 인도하시고, 떠나려 하면 못 가게 막으시기도 합니다.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약속하게 하시고,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야곱의 경우) 약속의 땅에 대한 강한 집착이 드러납니다.



2. 또 하나는 가나안 민족과의 통혼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해 가나안이 아닌, 메소포타미아에서 데리고 오도록 신신당부합니다.( 결코 아들 이삭을 그리로 데리고 가도록 허락하지도 않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삼촌 라반이 있는 곳, 밧단 아람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어머니의 혈통과 결혼하게 됩니다. 결코 가나안 사람과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에서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고,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합니다. 성경은 에서의 이와 같은 행동을 매우 부정적으로 표현합니다.


창 34장에 디나의 강간 사건은 반대로 가나안 남자들이 이스라엘 여자와 결혼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의 사람들을 죽입니다. 통혼에 대한 반대 사상이 강조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이 땅을 떠나지 않으면, 복을 주어서 생육하고 번성할 것과 총회를 이루게 될 것 훗날 왕들이 나올 것을 약속하신다. 그에 따른 야곱의 약속은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과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다. 이것은 훗날 이스라엘로 여호와의 집(성전)을 지어야 하는 것에 대한 필연성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4. 누가 하나님의 땅에 남아 있느냐(누가 결국은 하나님의 땅을 떠나느냐)로 누가 하나니의 언약을 이어가는 언약의 씨인가가 판별되는 것 같다.


[본문 개관]


28장.하란으로 도망가는 과정에서 만난 하나님

29장.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라헬을 얻기까지

30장. 야곱의 자식이 풍성해진것과 재산이 풍성해 진것.

1. 이삭이 야곱에게 가나안 여자가 아닌 외 삼촌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으라고 함(가나안 여자를 거부함)

2. 야곱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전수(생육하고 번성하라, 여러민족을 이루리라. 이 땅을 네가 차지하리라)

 * 창 1:28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 생육하고 번성하라와 같은 맥락의 메시지를 주심(창조기사와 연관성)

3. 반면 에서는 부모가 만족하지 못하는 여인을 데리고 오게 된다.(가나안 여인, 이스아엘의 딸)

4.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는 도상에서

 1)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너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고,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심.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임을 약속하심.

 2) 야곱은 이 곳을 벧엘이라고 하고 서약함

  (1) 나의 가는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면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 되고,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2) 내게 주신 것의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다.

 * 성전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십일조에 대한 결단이 언급된다.  

1. 우물에서 삼촌 라헬을 먼저 만나고 그의 삼촌 라반을 만나게 되었다.

* 야곱이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났는 것과 요한복음 4장에서 우물가로 찾아온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께 야곱보다 큰 자라고 물었던 것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2. 삼촌 라반의 일을 봐주는 대신 라헬과 결혼하려고 했으나, 라반의 속임으로 레아와 결혼하게 된다. 다시 라헬을 얻기 위해서는 7년을 더 일해야 했다.

 * 야곱은 형을 속이는 자였으나, 이제는 속임을 당하는 자가 되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는 과정에서 속임을 당한다. 그런데 그것이 또한 12아들을 낳게 되는 과정이 된다.


3. 하나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의 태는 여셨으나 라헬의 태는 열지 않으셨다. 레아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낳았다.

1. 자매간의 질투로 자식 경쟁을 하게 된다.

  1) 라헬의 빌하를 통해: 단, 납달리

  2) 레아의 실바를 통해: 갓, 아셀

  3) 합환채를 주고 사는 과정을 통해: 잇사갈, 스불론,디나(딸)


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해서 주신 자녀: 요셉

 * 자매간의 질투 속에서 태어난 6명의 아들은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는듯. 그러나 레아를 생각해서 주신 4명의 아들과 라헬을 생각해서 주신 아들 요셉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


3. 야곱이 라반에게서 자신의 양을 확보하다.

 1) 야곱을 통해서 라반의 재산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라반은 야곱이 떠난다는 것을 잡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2) 야곱은 튼튼한 야들은 자신의 것이 되게 하고, 약한 양들은 라반의 것이 되게 했다.

 2) 야곱의 재산이 매우 번창했다.

* 결국 야곱은 재산을 늘려 부자가 되기는 했지만, 더이상 그곳에 머물수는 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31장. 라반에게서 도망치고 라반과 언약을 체결한 야곱

32장.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까지 얼마나 두려웠는가

33장. 에서와의 만남, 화해, 세겜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

1. 야곱은 라반의 자식들이 자신을 경계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 이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되었고, 옛 언약(벧엘)이 지켜질 때가 온 것이다.


2.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하셨고, 야곱은 아내를 설득하여 자신의 출신지로 돌아갈 것을 계획한다


3. 라반의 추격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라반으로 막아주셨으며, 라헬은 드라빔으로 위험에 쳐할 뻔했지만, 발각되지 않았다.

 *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4. 오히려 라반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5. 라반과 야곱 사이에 언약을 세운다. 라반은 자신의 딸을 받대하거나 다른 아내를 맞으면 안된다는... 그리고 서로 산에서 제사하고 떡을 먹고 축복하고 헤어졌다.

 * 다른 여인을 아내로 맞으면 안된다. 아내를 박대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

1. 야곱이 자신의 형에게 자신의 돌아옴을 알리자 형이 400명의 무리와 함께 자신을 마중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겁에 질림


2. 자신의 종들을 두 떼로 나누어 형에게 보내고,형 에서가 자신에 대한 감정을 풀어줄까에 대한 기대를 함.


3. 마지막 두 아내와 두 여종, 그리고 열한 아들를 강 건너로 보내고 야곱은 홀로 남아 있게 된다.


4. 그 밤에 한 사람이 야곱과 씨름하고 결국 야곱을 축복하고 이름을 이스라엘로 새롭게 하도록 했다.  

1. 야곱이 에서를 만나는 위기의 순간에 라헬과 요셉을 맨 나중에 두어 보호하려 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야곱은 에서에게 절하고, 에서는 야곱을 용서하고 받아들임. 두려움이 변하여 감사와 감격으로 이어짐.

 * 하나님께서 미리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에서는 자신이 있는 에돔(세일)로 초청하지만, 야곱은 천천히 그리로 갈테니 먼저 내려가라고 요청하고는 세겜이라는 곳에 정착을 한다.


4. 세겜 사람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밭을 백 크시타로 사고 거기에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불렀다.

 * 세겜에서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

34장. 디나의 강간당함과 이에 대한 복수

35장. 야곱은 어쩔 수 없이 벧엘까지 가게 됨.

36장. 야곱과 에서의 분리 / 에서의 후예들에 대한 기록

1.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아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에게 강간당하게 됨.

2. 야곱은 자식들이 모두 양을 치러갔기 때문에 참고 기다림.

3. 세겜은 아버지 하몰을 통해 결혼(통혼)에 대한 제안을 해옴.

4.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이유로  이 결혼을  용납하지 않음. 할례를 받으면 허락함.

5. 세겜은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받게 함. 그들이 아물지 않았을 때,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모두 죽임, 노략함.

5. 시므온과 레위는 이들에게 디나의 욕보임에 대한 보복을 행하고,  야곱은 이 일로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한다.

1.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지시하신다. 그리고 모든 우상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라고 지시하신다.

2. 야곱의 자식들이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가자, 주변 사람들의 추적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두렵게 하셨다.

 *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 가족을 보호하셨다는 것

3. 밧단 아람에서 벧엘로 돌아온 야곱에게 복을 주신다.

 1) 네 이름을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른다.

 2) 생육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3)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4) 벧엘에서 제사를 드렸다.


 * 야곱에게 또 다시 생육하고 번성할 것에 대한 약속을 말하씀하시는데, 이는 아담과하와에게 주신 것과 같다.


4. 야곱이 벧엘을 떠나 에브랏으로 가면서 생긴 일

 1) 레아가 베냐민을 낳고는 죽음(베들레헴 주변에 묻힘)

 2) 큰 아들 르우벤이 야곱의 첩 빌하와 동침함.

 * 벧엘을 떠나고 나서 슬프고 아픈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기록함으로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음을 말하는 것 같다.


5. 야곱의 12명의 아들의 이름

6. 이삭이 헤브론에서 죽고, 에서와 야곱이 장사지냈다.

1. 에서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고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도 역시 소유가 많고 풍부하여 야곱과 함께 거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세일로 갔다.


 * 아브라함과 롯도 재산이 많아 같은 곳에 머물 수 없었다. (롯이 선택한 곳은 죄가 많은 곳으로 결국 멸망했다.) 이삭도 그랄 땅에서 아비멜렉과 재산이 많은 것으로 인해 옮겨야 했다. 이삭은 그래서 브엘세바에 이르게 된다. 그의 아들 야곱과 에서도 결국은 풍요로운 재산으로 인해 헤어진다. 에서는 가나안을 떠나 에돔으로 간다.


2. 에서의 후예들은 맣은 후손과 왕조를 이룬다.


[본문의 이야기]


야곱은 형을 속이고 장자권과 그 축복을 얻어냈지만, 더 이상 부모님과 함께 고향에서는 살 수 없게 되었다. 형인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었다. 에서는 부모의 권유로 고향을 떠나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 도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과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한다. 야곱은 그 약속에 대해 신실하게 응답하시면 내가 돌아와 이곳에서 여호와의 집을 짓고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야곱은 밧단 아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삼촌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을 속여 큰 딸 레아도 함께 아내로 주었으며 그로 인해 7년이라는 시간을 더 일하도록 했다. 라헬과 레아 사이에는 야곱을 중심으로 서로 시기하여 자식을 낳는 경쟁을 했는데, 이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다.(레아가 불쌍하여 4아들, 라헬이 불쌍하여 요셉을 허락하심) 그러나 야곱도 계속해서 라반 밑에서 일할 수많은 없었기에 술수를 내서 자신의 재산을 증식시켜 갔다. 이로 인해 라반과 그 아들들에 의해서 경계를 받게 되자 야곱은 라반 몰래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도망친다. 라반이 이를 알고 뒤 쫓아 오지만, 하나님의 라반의 꿈에 나타나 보호해주신다.  간신히 삼촌 라반으로부터는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 형 에서로부터는 어떻게 될지 미지수다. 그로 인해 야곱은 두려웠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형의 마음은 누그러져있었다. 그럼에도 형이 있는 세일까지 가지 않았고, 오히려 세겜이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난다. 딸 디나가 그 지역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고, 이를 복수하는 과정에서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인은 위험한 일을 행했다. 결국 세겜에서도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던 야곱은 결국 벧엘로 내려왔다. 그곳까지 오는 길에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야곱의 가족을 지켜주셨다. 벧엘에 이르러서는 다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이들에게 풍요와 번성을 약속하고 총회가 나올 것이며, 왕이 나올 것이다.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다. 야곱은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자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고, 큰 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하는 잘못을 행하게 된다.


에서는 많은 재산으로 인해 야곱과 갈라져 세일로 가게 된다.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



[이야기의 핵심]


1. 야곱이 결국은 다시 벧엘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과정을 그려냄

2. 벧엘로 왔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에게 주신 약속들의 내용

 1) 복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다. (총회를 이루게 될 것이고 왕도 나올 것이다)

 2) 이 땅을 너와 네 자손들이 차지할 것이다.

 3) 이 곳에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십일조를 바칠 것이라는 약속을 함.

3. 그러나 벧엘에서 떠나면서는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4. 에서는 결국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 벗어나게 되었다. 나름의 큰 민족을 이루었다.

  (결국 롯도 아브라함과 떠나게 되었다. 이삭은 오히려 아비멜렉의 땅 그랄에서 떠나 브엘세바로 오게 되었다. 에서는 야곱을 떠나 세일 산에 거주하는 민족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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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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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5장] 하나님도 지쳤다. 아무도 하나님을 말릴 수 없다. 하나님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지치제 만든 우리들의 고집과 악의, 참 대단합니다.(묵상만 읽으세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할 수있으면 요약하면서]


1. 여호와 앞에 모세와 사무엘이 있더라도, 이 백성은 용서받을 수 없다. 

  1)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다. 쫓아 보내라.

  2) 유다 백성들이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란 말입니까?

  3) 죽을 자는 주음으로, 칼을 받을 자는 칼로,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가라.

  4)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네 가지로 벌하신다.(죽이는 칼, 찢는 개, 삼켜 멸하는 공주의 새, 땅의 짐승)

  5) 유다 왕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여러 민족에게 흩음.


2.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길 자가 없다.

  1)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2) 네가 날 버리고 가지 내가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리라. 내가 뜻을 돌이키는 것도 지쳤다.

  3) 너희 자식이 끊어지고, 과부는 모래보다 많아졌고, 갑작스러운 멸망에 놀라고 두려울 것.

  4) 그 남은 자들은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3. 예레미야의 고통(사역자로서의 고통)과 하나님의 약속

  1) 내가 잘 못한 것도 없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를 저주하는 구나.

  2)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강하게 할 것을 약속하신다. 원수로 간구하게 할 것이라 약속함.

  3) 그러나 유다는 북방의 공격으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4)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자신을 기억하고 돌봐주시도록 그래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간구한다. 

  5) 예레미야는 자신을 기뻐하는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위해 홀로 앉아있다.(고독한 자신의 사역을 말함) 이는 주의 분노를 내게 채우신 것이다. 나의 고통은 점점 중하여 낫지 않고,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습니다.(낙심)

  6) 여호와는 예레미야에게 다시 돌아오면 내 앞에 세울 것이고, 헛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다시 여호와의 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다. 예레미야를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여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는 못하게 하신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을 다시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펼치기]


여호와께서 유다를 판단하고 심판하시는데 어떤 중보자도 이를 막을 수 없다. 모세와 사무엘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분노를 막을 수 없다.(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막았으나) 그만큼 유다의 죄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 가지로 백성을 벌하신다는 것은 결국 완전한 심판을 말하고 작은 것 하나 남김없이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몰인정하셨던 분은 아니다. 하나님은 한없이 좋은 분이시고 인자와 자비로 자기 백성을 대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유다는 교만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했다. 하나님도 이제는 지쳤다. 내가 뜻을 돌이키는 것도 지쳤다고 말씀하신다. 오래 참으신 만큼 하나님의 진노 또한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식을 끊고, 수많은 과부가 일어나게 하며 갑작스러운 멸망에 놀라고 두렵게 할 것이다. 남은 자들은 대적의 칼에 모두 죽게 할 것이다. 


이런 완악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실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하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즐거워할 수 없었고, 늘 고통과 소외와 영적 부담에 눌려 고통가운데 지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영적 고난의 자리에서 피하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여호와께서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분노가 예레미야에게 쌓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암튼, 신음하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놋 성벽이 되게 하여 대적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는 못하게 하리라는 약속을 남기신다.


[정리3. 묵상 및 적용_인상깊었던 문구,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메시지 등]


1. 하나님의 진노, 중재자가 없은 유다 백성.


누가 좀 하나님을 말려보세요.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요.... 아니요, 아무도 하나님을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중재자가 없는 유다의 상태를 말한다. 모세와 사무엘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다. 모세와 사무엘의 중재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아니고, 하나님이 막무가내라는 말도 아니다. 그만큼 유다의 죄가 넘친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중재자를 잃어버린 관계. 풍랑 속에 표류하는 땟목같은 운명이 아니겠는가? 죄를 짓더라도 중재자가 언제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죄를 지어야 한다. 엄마가 내 편이 되든지, 아니면 아빠라도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을 때 그것도 아니라 형제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중재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최소한의 정의와 사랑)는 실현하면서 살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마지막 날 중재해 줄 사람이 없거나, 효력이 없어 그대로 망하게 되고 말 것이다. 


2. 이제 하나님도 지쳤다. 


성경에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충격적인 표현은 하나님도 이제는 지쳤다는 것이라 본다. 하나님도 더 이상 자기 백성인 유다를 위해서 뜻을 돌이키시는데 지쳤다고 말씀하신다.(6절) 하나님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자이신 하나님께서 관계속에서 이 백성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상황, 용서와 끊임없는 자비가 더이상 이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이 백성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유다 백성은 참 대단하다. 이 백성 앞에 하나님도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이 지친것이다. 여호와의 천사가 야곱과의 씨름에서도 지쳤다.(창 32:25) 야곱의 포기하지 않는 자기 고집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천사는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침으로 그 싸움에서 벗어나 그를 버리고 가려고 했다.(26절) 


하나님을 지치게 하는 사람들, 이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으로하여금 한계(?)에 이르도록 했으니 이는 하나님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하나님을 지치게 만드는 인간....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3. 사역자가 짊어져야 할 고통


사역자가 짊어지는 진짜 고통은 가난과 핍박과 같은 외부적 고통이 아니다. 내면적 영적 고통이다. 하나님의 고통이 자기 자신에게 전해지고 채워지는 고통이다. 그것이 사역자가 본질상 느껴야 할 고통인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표면적 고통 속에서, 이는 하나님의 고통을 자신에게 채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17절) 그래서 고통이 큰 것이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벗어 버릴 수 없는 것은 그 고통이 하나님의 고통이기 때문인 것이다. 


예레미야가 짊어진 고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짊어지신 고통... 예수님은 그 고통을 벗어 버리고 싶었지만, 벗어버리기를 원치 않았다. 짊어 지셨다. 그리고 죽음까지 간직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죄에 대한 것을 정하셨다. 예레미야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본다는 말이 진실로 그렇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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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벽예배 마치고 바로 제기동으로 출근했습니다. 회관도 세상도 조용합니다. 어디서 기타소리와 함께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이 아침부터 어디서 나는 걸까요??

 

[정리1. 내용의 정리_어떻게 보면 본문을 다시 쓰는 것 같은데.. 쓰다보면 내용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고, 문단을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에 대해서
  1)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17년간 다스림.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함. 여로보암의 죄를 따름.
  3) 여호와께서 노하사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심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니 이스라엘 왕이 여호와께 간구하니 하나님께서 들으셔서 구원자를 보내주심으로 아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게 하였다.
  5) 그러나 그들이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않고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다.
  6) 아람의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고 병력을 약화시켰다.
  7)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됨.

 

2.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 대해서
  1)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6년간 다스렸다.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의 모든 죄를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 행함.
  3) 요아스에 대한 이야기는 역대지략에 나오고, 그가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왕이 됨.

 

3. 이스라엘 왕 요아스 때에 있었던 한 사건(엘리사의 죽음)
  1)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찾아와 슬퍼하였다.
  2)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요청했다.
  3) 엘리사는 왕에게 활을 잡고 동쪽 창을 열도록 하고 그곳으로 쏘도록 했다. 왕이 활을 쏘자 엘리사는 이는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아람을 멸절하도록 칠 것이다.
  4) 엘리사는 왕에게 화살을 잡으라고 하고, 땅을 치라고 했다.
  5) 왕은 세 번만 치고 그쳤고, 엘리사는 왕에게 왜 세 번만 쳤냐고 화를 냈고, 대여섯번을 쳤다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6) 엘리사가 죽고 다음 해에 모압 도적 뗴들이 그 땅에 왔다. 그 땅에서 장사지내던 사람들이 도적 떼를 보고는 급한 나머지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졌는데, 그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난 일이 있었다.

 

  [여호아하스왕과 요아스 왕의 추가적인 이야기]
  1) 여호아하스 왕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했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불쌍히 여기셨다. 멸하기를 즐겨하시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다.
  2) 아람에 하사엘이 죽고 벤하닷이 왕이 되자, 요아스 왕이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았다. (부친 여호아하스가 빼앗긴 성읍을)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회복했다.

 

[정리2. 내용을 재구성해서 씁니다. 순서대로라기 보다는 일목요연하게, 내 표현으로 다시 쓴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요]

 

본 장은 이스라엘 왕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와 그의 아들 요아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호아하스는 17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고 죄악 중에 있었다. 그가 다스리던 때에 아람과의 전쟁이 계속 있었고, 그 때 여러 성읍을 빼앗기고 백성들은 고통을 받았다. 국력은 매우 약화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아하스는 범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운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고 풀쌍히 여기셨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여기서 명을 다했을 수 있을 만큼 나라는 위태로웠다.(23절)


여호아하스를 이어 그의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되었으나,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의 아버지의 평가보다 낫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대에는 아람과의 전쟁을 세 번을 이김으로 인해 여호아하스 때에 빼앗긴 성읍을 다시 회복하는 성과가 있었다. 이것은 요아스 때에 병으로 죽은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성취이다.


요아스 왕은 엘리사가 죽음에 임박하자 그를 찾아 애통해 했다. 엘리사는 요아스 왕에게 활과 화살을 잡게하고는 동쪽으로 구원의 활을 쏘개하고, 화살을 바닥에 치게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아스는 3번 밖에는 치지 않았다. 엘리사는 노하였고 안타까워했다. 왜냐하면 대여섯번을 쳤다면 아람을 완전히 이길 수 있었을 것인데 3번 밖에는 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아스 왕은 활을 땅에 친다는 것이 무엇을 의지하는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었겠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요아스 왕의 한계이기도 했던 것이다. 암튼, 엘리사와 관련된 그 사건은 하나의 예언이 되었고, 그 예언대로 요아스 때에 이스라엘은 아람과의 전쟁을 이기면서 잃었던 성읍을 되찾았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몰라도 가계의 흐르는 축복은 확실하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왕 중 두 왕,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왕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할만한 것은 여호아하스 왕은 악하고 무력한 왕이었다. 그는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여로보암의 집의 죄악에서 떠나지 못했다. 고통속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음에도 그는 다시 악을 행하는 자리로 나아갔다.(5,6절) 게다가 그는 무능했다. 아람의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하여 많은 성읍을 빼앗겼다.

 

그런데 열왕기 기자는 여호아하스를 서술하면서 특이한 기록을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시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23절) 한마디로 여호아하스는 철저하게 선조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보존되고 유지된 것이지,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여호아하스 때에 이미 아람에 의해서 완전히 멸절되었을 것이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악인의 저주와 의인의 축복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악인의 가계의 흐르는 저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을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악인의 자녀들이 더 악한 환경 속에 노출되어 있어서 쉽게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여로보암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그와 같은 죄악이 대를 거쳐 흘러갔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것이 기계적으로 흐른 것은 아니다. 그 뒤를 이은 왕들이 그것을 개혁하지 못했다는 것이요 그 흐름에 편승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선친들이 받은 저주가 계속해서 죄없는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나는 모르겠다.(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진심으로... 나도 궁금하니...) 그러나 선친들의 선행으로, 선친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복을 누리는 것을 나는 종종 보게 된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와 같은 구체적인 사례중에 하나라고 하겠다.(23절) 남 유다의 아비얌 때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선한 것이 없었지만, 다윗 왕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유다를 견고하셨다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다.(왕상 15:1-5)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말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가계에 흐르는 축복과 은혜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긍정적 사고>라는 말보다는 <적극적 태도>라는 말이 좋다.  

 

긍정적 사고를 통한 긍정의 힘이 교회 안에서도 강조되고 있는듯 하다. 일반 상식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 근거가 성경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늘 교회 안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고 한다면 구약에서 선지서는 모두 제거해야 할 책이 되고 말 것이다. 아니 선지자들의 활동을 모두 부정해야 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긍정적 사고와 말에 대해서 나는 긍정하지만, 그것이 성경적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싶다. 오히려 성경은 <적극적 태도>를 강조한다고 본다. 오늘 본문에서 요아스가 활을 세번 만 친것이 문제가 되었다. 대여섯번을 쳤다면 아람을 완전히 이겼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세번만 친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요아스의 입장에서도 활을 땅에 치는 숫자대로 아람을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요아스는 열번도 쳤을 것이고 백번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요아스는 자신의 행동과 아람과의 전쟁 승리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힌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앞에서 엘리사의 지시에 따라 활을 동쪽으로 쏘고는 구원의 화살이라는 힌트를 엘리사가 주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힌트를 가지고 요아스는 활을 땅에 여러번 치는 시도를 해 봤음직 할만도 한 것이다. 그러나 요아스는 적극적인 태도가 없었던 것이고 수동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여기서 <적극적인 태도>의 소중함을 본다. 성경은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말한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한다.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권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우면서 환경에 굴하지 말고 해야할 일을 행하라고 말한다. 사랑할 때도 적극적으로 5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10리까지 가주라고 한다. 종은 적극적으로 종의 역할을 하고, 주인은 적극적으로 주인의 역할을 하라고 한다. 부모와 자식, 남편와 아내 모두 마찬가지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라고 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으로 내 제자인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말을 성경적이라고 하면, 교회 안에서는 비판도 평가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교회는 건강해지는가? 아니다. 죄인들이 모인 교회는 적절한 비판과 평가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성경은 많은 비평과 평가와 고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긍정적이란 말보다 적극적이란 말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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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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