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엘가나 #한나 #제사 #예배 #기도'에 해당되는 글 1건

본문: 삼상 1:1-8

제목: 나는 너무 화가나는데...

 

I. 도입

 

 1. 이렇게 한가족예배 때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뵐 수 있게 되니 참으로 반갑고 감사합니다. 아직은 코로나19의 위험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직접 대면하여 보지 못하는 분들도 계신데, 속히 안전한 환경이 되어 편한 마음으로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악수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2. 오늘부터는 사무엘상의 말씀을 조금씩 살펴볼까 합니다. 사무엘서는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주셨던 말씀이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주시는 메시지도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가운데 주시는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II. 본론

 1. 본문 이야기

오늘 본문은 사무엘서의 첫 부분으로 한 가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설명드릴 수 있는데 첫 부분은 1-3절까지의 이야기입니다. 

  1) 1-3절: 엘가나 가정의 소개

   (1) 먼저 엘가나의 출신을 소개함: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사람

   (2) 엘가나의 아내를 소개: 두 명의 아내가 있는데 한나와 브닌나다.(아내가 둘? 긴장 예고)

   (3) 아내에 대한 간략한 소개: 브닌나는 자식이 있지만 한나는 자식이 없다.(갈등의 원인)

   (4) 엘가나의 신앙을 소개: 매년 제사하기 위해서 실로로 올라감(법궤가 있음)

- 사사 시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엘가나의 신앙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실로라는 곳에서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그 곳에서 제사장 업무를 보는 두 명의 제사장을 언급한다. 홉니와 비느하스다. 이 두은 형제인데 다시에 유명한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다. 뒤에 나오겠지만 엘리는 당시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제사장 임무는 두 아들이 주관해서 보고 있던 상황인듯 하다.(여기까지가 삼상 1:1-3까지의 이야기입니다.)

 

  2) 4-8절: 엘가나 가정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다룬다. 

   (1) 한나와 브닌나 사이에 갈등이 있다.(한 집에 두 여자가 있으면 평안할 수 없다)

   (2) 브닌나가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브난나는 자식이 있었으나 한나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

- 하갈이 사래의 종이었지만 아브람의 자식이 있다는 것만으로 유세를 부리지 않나?

   (3) 다행히 가장인 엘가나가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한나를 특별히 사랑함. 자식대신 남편)

   (4) 그러나 그와 같은 엘가나의 노력이 가정에 평안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 큰 갈등을 유발.

- 브닌나 입장: 자기는 자식까지 낳아 주었는데 더 대접받지 못함(소홀이 여김받음)

- 한나 입장: 엘가나의 사랑과 지원을 두 배나 받았지만 정작 필요한 것 ‘자식’임.

   (5) 이런 가정의 갈등이 매년 실로에 제사하러 올라갈 때마다 증폭된다. 

- 엘가나가 브닌나와 그 자식들에게는 한 분깃씩 공평하게, 한나에게 두 분깃 형평성

- 시기와 질투를 만들었고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케하고 한나는 울고 먹지 않고.

- 그럼 엘가나는 누구에게 갑니까? 브닌나가 아니라 한나에게 가서 위로하면 브닌나는 기가 막히고, 한나는 엘가나의 특별한 사랑에도 위로를 받지 못해 상심해 있는 상황이다. 

-> 여러분은 누가 더 안된것 같은가? 브닌나인가 한나인가? -> 난 엘가나같다. 

 

   (6) 엘가나의 답답함, 억울함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마음이 슬픈가?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8절) -> 엘가나의 답답함이 묻어 나오는 고백이 아닐 수 없다. 한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 위로받지 못하는 모습에 엘가나는 절망하기 쉽다. 

 

[정리] 엘가나는 한 집 안의 가장으로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또한 한나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남편 엘가나의 특별한 사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얻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픔이 줄어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가 엘가나의 입장이라면 저는 무척 화가 날 것 같다. 왜? 내가 할만큼 다 했는데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화가난다.(날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제가 한나의 입장이라면 저는 화가 날 것 같다. 왜? 나에게만 자식을 주시지 않아 이렇게 수치와 고통을 당하게 하실까? 왜 나에게만 이렇게 하시는가? 

 

 2. 독자들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이 있을까? 

  1) 가장(엘가나)의 신앙이 아무리 좋아도 가족 안에서 가족 간의 갈등은 별개 문제일 수 있다.

   (1) 가장(엘가나)의 신앙이 좋다고 가족 모두가 행복하고 평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족 모두가 평안하고 좋은 신앙을 갖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과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 여러분 엘가나가 얼마나 좋은 가장이고 신앙인이었습니까? 

(1) 매년 가족들을 데리고 실로까지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게 합니다. 

(2) 가족 모두가 하나님께서 드리는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분깃을 개별적으로 지급

(3) 자식이 없는 한나를 위해서는 두 배의 분깃을 준비해 준다. 

- 그러나 한나와 브닌나와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매년 제사를 꾸준히 열심히 드렸음에도 한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는 자신이 대우를 잘 받지 못하고 오히려 한나가 대접받는 것을 시기했습니다. 그렇다고 자식도 없는 한나를 모른척 할 수도 없었습니다. 엘가나는 가정의 평안을 위해서 정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집 안의 가장이고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자인 것 같은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아무리 잘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예배를 잘 드리고 헌금을 부족함없이 해도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문제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최선을 다해 잘 해도 가족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나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이 엘가나의 책임은 아닙니다. 엘가나의 잘못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가나는 이 모든 불행한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가나는 화가 나있는 것입니다.

 

예) 얼마 전 한 드라마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아이를 유산한 한 여성을 진료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습니다. 여인은 유산이 의심되었기에 긴장과 불안 속에서 의사의 표정을 살피고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의사는 초음파 검사결과를 모니터로 보면서 너무 덤덤하게 아이가 유산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이가 임신 몇 주 만에 유산되었고, 왜 유산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그 원인이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처방을 취해보자는 이야기를 별 감정없이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있는 여인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이번이 세 번째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그 의사는 휴지를 몇 장 꺼내서 울고 있는 여인에게 대충 건네줍니다. 의사도 이 환자가 아이의 유산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다음 검진과 치료를 위해서 몇 주 후에 예약을 잡자고 하지만 이 말이 여인의 귀에 들릴 리가 없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남편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아내를 위로하는 액션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당신이 어떻게 했길래, 당신의 몸에 어떤 문제가 있으니까... 아이가 반복적으로 유산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태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지 않는 의사를 향해서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상황을 너무 많이 접하시니까 저의 이런 상황이 별일 아닌 것 같으시지요?“ 그러자 의사가 그 여인을 응시하면서 말합니다. “아니요. 이건 정말 별일 아니에요. 환자분이 무슨 잘못을 해서 아이가 유산된 게 아니에요. 환자분은 잘못이 없어요.“ “전에는 원인을 몰라서 반복적으로 유산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 잘 치료받으시면 임신하실 수 있으실 거에요. 당신 잘못이 없어요. 정말 별일 아니에요.“  

 

 이 여인은 얼마나 오랜 시간 아이의 유산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살아왔을까요? 한 번은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치더라도 두 번 세 번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유산 앞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느꼈겠습니까? 그 모든 유산의 책임을 자신이 다 짊어져야 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채 그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만 했었는데 그 의사의 말로 인해 이 여인은 그 무거운 책임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엘가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풀어주시지 않으면 풀릴 수 없는 문제를 그의 가정이 갖고 있었던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풀어주실 때까지는 그저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엘가나의 잘못이 아니었고 엘가나의 책임도 아니었습니다. 엘가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했던 것입니다 

 

  (2) 엘가나의 놀라운 점은 엘가나가 이와 같이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년 가족들을 데리고 실로로 예배하기 위해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매년 제사를 드리러 올라 갈 때마다 매번 큰 갈등과 고통이 증폭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엘가나는 매년 드리는 제사와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면 분깃을 나눠주는데 그 때마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케하니 문제가 더 촉발되는 것 아닙니까?(안가면 문제가 덜 발생할 텐데...) 그럼에도 엘가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 자녀들이 어릴 적에(중고등학교) 늦잠 자는 자녀들을 깨워 예배 데리고 오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제가 교회 사역을 하여 1부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일찍 나왔을 때는 잘 몰랐는데 제가 사역을 하지 않아서 종종 3부 예배를 참석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깨워서 중고등부 예배에 늦지 않게 보내야 하는데, 아이들이 깨지 않습니다. 힘들게 깨웠는데 일어나지 않습니다. 눈은 뜨고 핸드폰은 들여다 보는데 침대에서 일어나질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게 되고 그러던중 십중팔구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감정이 상해 버립니다. 그 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이 있습니다. ‘너, 이럴거면 예배 가지마!’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근데 차마 이 말을 못합니다. 왜요? 예배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심호흡 몇 번 하고 성질을 죽입니다. 간신히 달래서 어떻게든 교회에 데리고 갑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부모의 마음은 다 상했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기분은 상해서 죽상을 합니다. 예배시간은 늦어서 성도님들 보기에 민망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예배당에 앉아있으면 내가 왜 교회를 와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싸움을 매주 합니다. 왜요? 포기를 못하는 겁니다. 이 싸움을 포기하면 내 마음이 편하고 좋을 거 같은데, 우리 가족, 우리 자녀들의 신앙이 어떻게 될까봐 걱정되어서 그 싸움을 포기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 안가고, 내 자녀들을 교회 안 데리고 교회 오면 해결될 문제인제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나 내 가족 내 자녀의 신앙은 포기를 못하니 싸우면서도 교회로, 예배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만나주시겠지. 언젠가는 우리 아무개도 나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임하겠지. 그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 화나고 자존심 상하고 때론 부끄럽지만 포기하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는것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만 그런게 아닙니다. 신실한 엘가나의 집안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무엘서는 엘리 제사장의 가정도 마찬가지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엘리 제사장 가정은 더 심각했다고 지적합니다. 사무엘서를 조금만 더 읽어가다 보면 엘리 제사장이 자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로 인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가나가 살던 시대가 그런 시대였습니다. 제사장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서슴지 않게 행했던 시대입니다. 엘리 제사장조차도 그 신앙을 자신의 자녀에게 전달하지 못했던 시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인 암흑기요 영적인 불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음 세대로 신앙을 전수할 능력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조금만 더 넓게 생각해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신부라면 하나님은 <신랑>입니다. 지금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상황이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신랑으로서 신부되는 이스라엘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하나님도 이스라엘 마음대로 하지 못하셨을 때가 있었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엘가나와 한나의 이야기는 단순히 지금 이 시대에 불임으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에게만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을 잘하고 가정을 믿음으로 잘 이끌어가기를 원하는데 나의 능력 밖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일도 잘 안 풀리고 그렇다고 신앙의 성장도 뚜렷하지 않아서 고통당하는 영적 가장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살다보면 그런 때를 만나기도 한다고. 네가 잘못해서 그런게 아니라고. 과거에도 늘 그와 같은 일이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하실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어서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니 너무 화내지 말라고... 별일 아니라고. 포기하지 말고 지금처럼 애쓰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고, 때가 되면 이루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풀어주셔야만 풀리는 문제가 있다.

한나가 자식을 갖지 못하는 문제는 한나가 뭔가를 열심히 한다고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를 한나 혼자서 가질 수 도 없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엘가나가 풀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엘가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는 신앙이 좋았고 한나에 대한 사랑도 충분했다. 그리고 브난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생물학적으로 엘가나에게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한나는 더욱 괴로운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을 감히 탓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대상이 아니다. 만약 이유를 알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내 잘못이지 하나님의 잘못일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나는 자신의 잘못을 찾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한나는 하나님 앞에 억울했고 원망스러웠다. 

 

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나는 억울했습니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자식이 없다는 책임과 고통을 혼자 다 짊어져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의 위대함은 자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매년 브닌나의 격동 때문에 고통당하면서도 제사드리기 위해 실로로 올라갔고 거기서 울며 금식했으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식을 주지 않아서 당하는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년 드리는 기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응답받지 못했지만 한나는 다시 매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겠습니까? 매년 거절되는 것 같은 기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의 우리를 향해서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너희 기도를 이렇게 외면할 수 있는 것이냐?‘ 조롱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를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살 정도 되었으면 더 부자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걸어 다니시는데 문제없고 약 좀 먹고 음식 조절하고 운동하면 어느 정도 관리되는 정도의 건강을 가지고 계시다면 더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 믿음, 내 신앙입니다. 내 자녀의 신앙이고 내 가족의 신앙입니다. 더 나아가 이 나라와 이 민족의 평안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하니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충만하게 임하도록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와 같은 기도는 포기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III. 결론

 

  우리는 살다보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단순히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해서 나는 화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못나 보여서 화가 나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주변 환경이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까지 나의 마음을 몰라주시는 것 같아 하나님께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고통스럽겠지만 ‘실로‘로 올라가는 일을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일을 멈추지 마시길 바랍니다. 한나처럼 ‘하나님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고백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소망을 성취해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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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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