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가을 하늘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아요.

 

[정리1. 내용을 잘 정리하면서 읽기]

 

1. 유다와 아하스에 대해서
  1) 유다 왕 요담의 아들로 20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6년간 다스렸다.
  2) 다윗과 같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했고 이스라엘 여러 왕의 길로 행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낸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아들을 불가운데 지나게 하고,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게 했다.

 

  [결정적인 사건 하나]
  3) 당시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고 하였다.
  4)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사자를 보내 예물을 주며, 아람과 이스라엘을 치도록 요청함.
  5) 앗수르 왕은 아하스의 요청에 따라 올라와서 다메섹을 점령하고 아람 왕 르신을 죽였다. 
  6) 아하스는 다메섹에 온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으로 가고, 거기서 큰 제단을 보고 그 양식을 그려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다.
  7) 제사장 우리야는 그 양식을 보고 아하스 왕이 오기 전에 신속하게 그 제단을 만들었다.
  8) 아하스 왕이 오자 그 제단에서 번제물과 소제물을 드리고, 원래 있던 놋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 옮겨다고 놓았다.
  9) 앞으로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 전제물, 소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제물의 피를 이 단 위에 뿌리고, 놋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10)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의 명대로 행하였다.
  11) 아하스는 그 이외에서 성전에서 쓰는 물건을 마음대로 옮겼는데,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 소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었다. 안식일에 쓰기 위해 성전에 건축한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움.
  12) 아하스와 관련된 다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을 보고, 그가 죽고 아들 히스기야가 왕 됨.

[정리2.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내것으로 쓰기]

 

본 장은 유다 왕 아하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아하스 왕은 다윗에 못미칠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북 이스라엘의 영향을 받은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예전에 쫓아냈던 이방인들의 가증한 일들을 다시 행하도록 했던 왕으로 평가된다.


아하스에 대한 자세한 일들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언급된 것을 참고하면 되겠지만, 열왕기 저자가 꼭 기록하고 싶은 사건 하나가 있다. 그것은 아하스 왕이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 공격을 받았을 때,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앗수르의 힘을 빌리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아하스는 앗수르의 직접적인 도움을 통해 아람을 제압하고 아람 왕 르신이 죽게 되어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는 업적을 이루기는 했으나, 오히려 앗수르를 유다 땅으로 불러들이는 명분을 만들어주게 되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다메섹에까지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본 큰 제단과 종교의식에 마음이 현혹되어, 유다에도 그 모양과 같은 제단을 만들도록 당시 제사장인 우리야에게 지시했고, 우리야는 그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돌아온 아하스 왕은 앞으로는 그 제단에서 제물을 드리도록 했고, 이전에 쓰던 성전의 기물들은 제단 뿐 아니라 물두멍과 놋바다 등 자기 임의대로 아무대나 놓는 무례함을 행하게 된다. 이것이 아하스의 행적에서 저자가 주목하여 보고자 한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이전에 버렸던 것을 다시 들고 나타난 아하스 왕

 

아하스 왕에 대한 평가 중에 주목하여 볼 것은 그는 유다 왕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3절)

 

당시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이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유다 왕이 이스라엘 왕의 길로 따라갔다는 것은 심각한 타락을 한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쫓아내신 이방 족속의 가증한 일을 따라 행했다는 것은 아하스의 죄악이 얼마나 컸는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무시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한 마디로 그래도 공부좀 하던 학생(남유다)이 반에 있던 노는 아이들(북이스라엘)과 어울려 그들처럼 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조폭들(가증한 일을 행하는 이방인들)과도 어울리며 그들처럼 행동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하스 왕은 자신 뿐 아니라, 유다 전체를 탈선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랜 시간을 걸쳐서 제거했던(오래 전에 제거하기도 했던) 그것을 다시 들고 나타남으로 그 동안의 수고와 노력을 모두 물거품처럼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역사란 늘 진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국가의 리더로 서느냐에 따라서 진보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경제는 좋아질 때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적 도덕성과 시민의식은 진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긍정적 진보를 위해서 좋은 리더를 세우는 일에 힘쓰는 것이야 말로 책임감있는 역사의식이 아닐 수 없겠다. 올 해 대통령 선거가 있고, 온 국민이 책임감있는 역사 의식으로 긍정적 진보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도들에게 이런 책임감있는 역사 의식을 가지도록 가르치는 것도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의 역할 중 하나라고 본다.)

 

2. 앗수르에 대한 사대주의로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한 왕

 

아하스 왕의 큰 죄 중에 하나는 앗수르를 이스라엘 땅으로 불러들인 일이다. 물론 유다의 생존을 위해서 앗수르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 이후 아하스의 행동을 보면 아하스 왕의 마음은 궁여지책으로 앗수르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기 보다는, 앗수르의 부와 힘을 부러워하고 배우고 따라야 겠다는 의식에까지 갔던 것을 보게 된다.

 

한 마디로 아하스는 앗수르를 추종하는 왕이 되었던 것이다. 앗수르의 제단을 들여왔고,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과 기물들을 임의로 변경했다. 앗수르 때문에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앗수르에 의해서 밀려나게 된 모습은 참으로 민망한 모습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힘을 의지해야 할 때가 있다. 이웃의 강대국을 의지해야 하기도 하고, 경제를 의지하고 자원을 의지하고 학문을 의지하기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밀어내는데까지 가게 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으며, 세상은 복잡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와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복잡한 이해 속에서도 어떤 것이든 여호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영적 사대주의며, 우상 숭배며 영적 간음인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손잡을 때, 언제든지 내 편에서 놓을 수 있는 정도 만큼만 의지해야 한다. 그 이상을 넘을 때, 그 손은 결국 하나님과 잡고 있는 그 손을 뿌리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