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한 장]
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지 4년 다섯째 달.
*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가 주전 597년임으로, 이 때는 대략 592년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유다의 완전한 멸망이 주전 586년으로 보면 약 멸망 6년의 상황임을 알게 된다. 완전한 멸망을 6년 앞둔 상황에서 선지자 하나냐와 예레미야 간의 이야기이다.
2.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말했다.
1)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다.
2) 바벨론이 빼앗아간 성전 기구들을 2년 안에 이곳으로 다시 되돌려 오겠다.
3)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여호야긴)와 유다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겠다.
* 하나냐는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유다의 희망을 선언했다. 그것도 2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언급했다. 바벨론의 멍에를 꺾을 것이다.(현재 바벨론의 멍에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한다.) 빼앗긴 성전 기구들을 도로 가져오게 될 것이고, 포로로 잡혀간 왕과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메시지다. 듣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희망과 격려가 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공개적으로 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있는 선지자가 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큰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다음 날 조간 신문에는 하나냐의 말이 대서특필되었을 것이다.
3. 이를 듣고 있던 예레미야가 하나냐에게 그 자리에서 말했다.
1) 아멘, 여호와께서 정말 그렇게 해주시기를 원한다.
2) 그러나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와 재앙과 전염볍을 예언하였다.
3)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의 예언은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레미야가 일어나 딴지를 건다. 제일 크게 아멘을 외치고, 정말 하나냐 선지자의 말처럼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곧 그 다음이야기로 이어진다. 하나냐의 메시지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이 아니지만,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의 참됨과 거짓됨의 여부는 그 결과가 나타난 다음에야 확인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함으로 하나냐의 메시지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음을 말하였다.
* 예레미야는 27장에서 유다가 결국 바벨론의 종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와 다른 이야기를 하나냐가 했다. 누가 옳은가는 누가 목소리가 큰가로 결정할 수 없다. 다만, 역사가 그 사람의 옳음을 증명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사람들의 마음에 안심을 주는 평화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임을 지적한다 하겠다.
4. 하나냐의 반응과 예레미야의 행동
1)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모든 백성 앞에서 2년 안에 이처럼 우리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꺾으시리라
2) 예레미야는 자신의 길로 가버림.
* 서로 자신의 메시지를 바꿀 의향이 없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둘다 옳을 수는 없다. 하나가 옳으면 하나가 틀릴 수 밖에 없고 하나가 참이라면 다른 하나는 거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5. 그 자리를 떠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 임하였다.
1) 하나냐에게 가서,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다.
2)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을 섬기라. 내가 들짐승들도 그들에게 주었다.
3) 예레미야는 하나냐가 거짓 메시지를 전하는 거짓 선지라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4)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죄를 지적하고 금년에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5) 하나냐는 그 해 일곱달에 죽었다.
* 하나님은 돌아가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냐의 거짓됨을 말씀해 주셨고, 그의 거짓됨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겠다는 저주(금년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이루어짐으로서 누가 참 선지자이고 거짓 선지자임을 밝히셨다.
* 결국, 유다는 바벨론의 종이 될 운명임을 본문은 더욱 명확하게 하고 있다.
[묵상 한모금]
1.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평화를 예언하는 자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할 필요가 있다. 평화와 안락에 대한 예언은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것이고, 그것은 참으로 그렇게 되어질 때까지는 그 사람의 참됨을 보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낙관적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배격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성급하게 따르거나 그를 주목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2.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역으로 평화가 아니라 재앙과 심판을 예언하는 선지자에 대해서는 그의 참됨을 확인하는 것에 대해서 나와있지는 않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와 대조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일단 재앙과 심판을 말하는 선지자들에게 대해서는 긍정하는 것 같다. 재앙과 심판을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드는 것인데, 그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모두 참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3. 우리의 귀가 평화를 말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쉽게 열리고, 재앙과 심판 그리고 경고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매우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메시지를 좇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참된 신앙인이 되기도 하고, 거짓된 신앙인이 되기도 한다. 내게 칭찬하는 자들에게 너무 혹하지 말자. 내게 비판하는 자들을 너무 배격하지는 말자. 그래야 내가 참됨에 머물게 된다.
4. 예레미야 28장은 어떤 메시지가 들려지더라도, 유다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바벨론의 종이 되는 현실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가운데 가서 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