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과 그의 가정의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다. 보통 교회의 문제 때문에 바울이 편지를 쓰지만, 빌레몬서는 개인의 문제 때문에 쓴 편지다. 빌레몬의 옛 종이었던, 오네시모의 잘못을 용서하고 따듯하게 다시 맞아 줄 것에 대한 권면을 주고 있는 서신이다.

바울을 통해 감옥에서 변화된 오네시모의 놀라운 변화와 더불어, 그 변화된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따듯하게 맞아주라고 인격적으로 권면하는 바울의 모습이 돋보이는 서신이다.

바울은 사실 빌레몬에게 인격적인 부탁을 하기 위해서 많은 말을 쓰지 않아도 될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빌레몬도 복음에 있어서 바울의 도움을 입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19절.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바울은 빌레몬의 영적 스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8절)라고 말한다. 충분히 바울 자신은 빌레몬에게 명령(권면)을 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관계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 네게 간구하노라"(9,10절)

바울이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오네시모를 위해서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옥중에서 낳고(영적으로) 양육하여 변화된 존재가 되는데 힘을 썼다. 그러나 오네시모를 계속 바울의 곁에 두어서는 안되고, 오네시모가 지은 죄에 대한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반드시 주인이 빌레몬에게 보내야 했다. 그리고 빌레몬에게 용서를 받고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도록 하길 원했다. 바울은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권위보다는 정중한 부탁을 택한 것이다. 작은 것 하나에서라도 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힘쓰는 바울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18,19절 등)

2. 빌레몬을 위해서다.

바울은 빌레몬이 바울이 부탁했거나, 명령했기때문에 거절할 수 없어서 수용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와 같은 선한 일이 빌레몬에게 억지같이 되기를 원치 않았고, 자의로 되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빌레몬에게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준 것이다. 심리적으로도 불필요한 압력을 주지 않기 위해 바울은 애를 쓴다. 관계적인 용서라는 것이 억지로 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빌레몬을 제자가 아닌 동력자, 동등한 입장의 대상으로 생각하여 인격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요청을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스승이다.

빌레몬의 스승이면서, 동시에 오네시모의 스승이다. 바울은 이 둘의 스승이지만 스승처럼 권위적으로 행동하거나 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제자(빌레몬과 오네시모) 얽혀진 갈등을 풀고 회복시키기 위해 진지한 고민과 섬세한 표현을 하는 것을 본다.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수없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이 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목사와 시니어 간사로서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할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더욱 고민해야 할 날인듯 하다. 

1. 나는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유익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 스승인가?

2. 나는 어려움에 처한 제자의 문제를 풀기위해 고심하며 노력하는 스승인가?

3. 나는 나보다 어린 제자들을 동력자로 인정하고 사역에 있어서 인격적 동력을 하고 있는가?

바울 선생님을 통해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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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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