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사시 1장]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과 사사기 1장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언약의 성취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사사기는 실재적인 현상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마치 열왕기와 역대기가 같은 역사를 다르게 기록하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두 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한 듯 합니다. 언약의 성취로서의 종말을 바라보는 안목도 필요하고 언약의 성취와는 괴리된 현실에 대한 안목도 필요합니다. 이 두가지 안목이 모두 필요하니까 성경은 역사적 사건을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유다와 시므온의 정복 활동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에 대해서

  2) 여호와께서 유다를 먼저 부르셨다. 그래서 유다는 시므온과 연대하여 전쟁을 치르게 됨.

   (1) 유다가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

   (2) 베섹에서 아도니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이기니 아도니 베섹의 엄지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자름

   (3) 아도니 베섹은 자신이 전에 70명의 왕들에게 그와 같은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아도니 베섹이 그렇게 죽었다. 

  3)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고, 성을 불살랐다.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다.

  4) 갈렙은 기럇세벨을 점령한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했는데,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했다. 갈렙은 그의 딸을 그에게 주었다. 그의 딸 악사는 출가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땅과 함께 샘물로 구했는데, 갈렙으로부터 윗샘과 아랫샘도 얻었다. 

  5) 모세의 장인은 겐사람인데,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거주했다.

  6)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을 진멸하였는데 그 성읍의 이름이 호르마라 하였다. 

  7) 유다가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다. 

  8)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셨으므로 그의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어서 쫓아내지 못했다. 

  9) 헤브론은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베냐민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여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


2.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벧엘을 치다. 

  1) 요셉의 가문도 벧엘(본 이름은 루스)을 치러 올라갔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2) 정탐꾼들은 벧엘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성읍의 입구를 알려달라고 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벧엘을 치고  그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놓아 보냈다. 이들이 헷사람의 땅에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고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있다. 


3.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

  1) 므낫세가 쫓아내지 못하자,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다.

  2)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게셀이 그들중에 거주함.

  3)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해서 그들에게 노역을 지켰다. 

  4) 아셀이 그 땅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면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5) 납달리도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다. 그 중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은 노역함.

  6) 아모리 족속은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었다. 골짜기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후에 요셉 가문의 힘이 강성해 지자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 노역을 하였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시 풀어서 쓰기]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라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시점으로 보면 여호수아서 다음의 이야기인데, 처음 얼마는 여호수아서와 중첩되는 내용이 있지 않은가 싶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정복을 마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사사기에서는 아직도 전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 중에는 아직 완전히 점령되지 못한 지파와 지역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서는 언약적 관점에서 예언적으로 본 것이고, 사사기는 실재적인 상황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가나안 정복과 관련되어 크게 두 지파가 부각된다. 유다와 요셉지파다. 유다는 시므온과 연합하고, 베냐민과 같이 언급된다. 주로 유다의 성공적인 정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아도니 베섹을 심판한 장면과 옷니엘을 통해 기럇세벨을 정복한 내용, 모세의 장인 겐사람들의 후손들이 유다와 함께 하게 된 것(모세와의 연결점을 의도한 듯) 등 유다의 정복을 성공적으로 그린듯 하다. 물론 유다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로 인해 정복하지 못했다고 언급한다. 

유다와 대조되는 지파는 요셉(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다. 이들은 벧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지파들의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므낫세와 에브라임, 스불론, 아셀, 납달리도 그 땅 주민들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단 지파의 경우는 오히려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서 산지로 몰려나갔다. 그들 가운데 거주한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각지파가 강해진 후에야 노역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다른 지파에 비해 두드러지게 보이는 지파는 요셉지파인데 이들이 단 지파를 쫓아낸 아모리 족속을 제압하여 노역을 시킨 것으로 언급된다. 


1. 사사기의 시작에서 유다와 요셉 자파에 대한 기록이 강조되고 있다. 

2. 완전한 정복을 이루지 못하고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정복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오랜시간 가나안 족속과 함께 상존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리3.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사사기의 관점 포인트

  1)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읽으라.

  2) 가나안 땅에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역학관계를 살피면서 읽으라.

  3) 다른 지파에 비해서 상당히 위축된 <단지파>의 운명에 대해서 살피면서 읽으라. 


사사기 1장은 사사기서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디에 주목해서 읽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 초점을 잃지 않으려면 위의 세 가지 항목(추가적으로 더 있을 수도 있겠지만)을 기본적으로 주의하면서 읽어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완전한 정복이면서 충분하지 못한 정복이었다.


사사기 1장에서의 이스라엘 정복에 대한 이야기는 여호수아서에서 본 이스라엘 정복이야기하고 분위기가 다르다. 사사기는 아직도 정복해야 할 곳이 많고 쉽게 정복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간적으로 앞선 이야기를 다룬 여호수아서는 모든 정복이 잘 마무리 된 것처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혼동이 온다. 


이는 여호수아서의 정복이야기 관점은 예언적인 성취에 초점을 둔 것이고, 사사기의 정복이야기는 실재적인 현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기간의 역사 기록에 있어서 열왕기서와 역대기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두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언약의 성취시점인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지금 현실에서 보는 역사적 한계에 대해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여호수아서는 완성을 지향하고 승리를 지향함으로 연약한 성도로 하여금 소망을 바라보게 한다. 반면 사사기는 현재의 불완전함을 설명함으로서 영적인 긴장을 유발시킨다. 성도는 이 두가지 내용을 공히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며, 상황과 시대에 따라 그 강조점을 다리하면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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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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