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6장] 하나님의 양면성. 구원자로서의 강렬한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 아니면 심판자로서의 강렬한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측면으로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렬한 구원자가 되든, 아니면 심판자가 될 것이다.

 

 

[정리1. 본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 말 것과 아이를 낳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1) 이곳에서 낳은 자녀와 해산한 어머니와 그들을 낳은 아버지는 이런 고통을 받을 것이다.
  2) 독한 병으로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거나 묻어주지 않아 시체는 공중의 새와 짐승의 밥.
  3) 초상집에 들어가서도 슬퍼하거나 통곡하지 말라. 이 백성에게서 여호와의 평강을 빼앗고, 인자와 사랑을 제함이다.
  4) 큰 자나 작은 자가 이 땅에서 죽는데 이를 슬퍼하는 자도 없고 매장해 주는 자도 없다.
  5) 이 땅에서 기뻐하는 소리를 네 시대에 이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2. 이 땅 백성들의 항변
  1)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한 것이 무엇이냐? 왜 재앙을 선포하느냐?
  2) 너희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3) 너희들은 너희 조상들보다 더욱 악하다. 각기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행하고 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을 이 땅에서 쫓아내어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을 섬기게 하겠다.

 

3.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위해 하실 일(장차 하실 일, 그러나 지금 하실 일)
  1) 보라 날이 이를 것이다. 더 이상 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백성이라는 말로 알려지게 할 것이다. 
  2) 그러나 지금은 우선 이들의 악에 대해서 반드시 사냥하신다. 마치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고기를 낚듯,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사냥하듯 지금은 이 백성을 사냥할 것이다. 이는 이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하나님의 땅을 더럽혔고 가증한 것으로 하나님의 기업에 가득하게 했다.

 

4. 예레미야의 기도
  1) 예레미야: 우리 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뿐이라.
  2) 여호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 인줄을 알게 하리라.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을 다시 나의 말로 풀어서 쓰기]

 

본 장은 예루살렘이 당하게 될 멸망의 비참함을 보여준다. 이 땅에서는 자녀를 낳은 어미나 아비 그리고 그 자식들까지 모두 비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죽게 될 상황도 비참하지만, 그 주검을 거두거나 매장해 줄 상황도 되지 못하는 비참함을 말한다. 서로가 슬퍼해주고 통곡해 주는 자도 없는 슬픔이 이 땅의 상황이 될 것을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런 예레미야의 예언에 이 백성들은 항변한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그리 했기에 하나님께서 이러시느냐는 것이다.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이 징계하시 명백한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들은 조상 때부터 다른 신을 섬기고 하나님의 율법을 어겨왔는데, 지금은 더욱 악하여 마음이 완악함을 따라 순종하지 않음에도 말이다.

 

훗날 하나님께서 이들을 북방 백성들로부터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으로 더 알려질 정도로(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라는 인식보다) 이들을 구원하시겠지만, 지금은 이들을 사냥꾼이 사냥하듯 이들을 사냥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하나님이 미워하는 물건으로 하나님의 땅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정리3. 묵상하고 적용하기]

 

1. 앞으로는 자기 민족을 출애굽시키신 하나님으로서 보다,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으로 인식되리라.

 

유다의 멸망 이전까지 여호와 하나님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이다. 애굽 땅 종되었던 곳에서 구원해 내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가장 강렬한 인식이었다. 그러나 북방 민족에 의해 이 땅에서 쫓겨난 이후로는 흩어진 백성들을 다시 이 땅으로 불러모으시는 하나님의 사건이 더욱 큰 사건이 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한 곳에 노예로 있던 백성들을 훌륭한 지도자 한 사람을 통해서 이끌어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디에 흩어져 있는지 알수도 없는 그의 백성들을 다시 불러서 한 자리로 불러 모은다는 것은 더 크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흩어지게 되지만, 때가 되면 다시 불러 모으실 하나님의 놀라운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바울의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는 바, 다시 부르기 위해서 지금은 버리는(롬 11장) 이스라엘의 역사 의식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싶다. 아니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바울로 하여금 그런 역사의식을 가지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2. 하나님이 자기를 인식시키는 새로운 방식

 

이전의 하나님의 방식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으로(기적과 승리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시고 나타내셨다. 그러나 유다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방식은 자기 백성을 철저하게 징계하시고 혼내시는 것으로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시는 것이다.(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통해 여호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일상적이 하나님의 방식은 아니지만, 패역하고 악한 백성들에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인자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양면적 측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하게 드러내신다.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가?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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