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일을 지난 월요입니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한주의 업무가 시작되는 활기찬 날이기도 하지요. 죠이에서는 여름 수양회를 위한 선발대가 출발하고 본격적인 수양회모드로의 변경되는 날이지요.

저야, 올해부터는 참석해야 할 이유가 크게 없게 되었지만 말이죠. 하지만 응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이시대의 청년 대학생들의 생각과 삶을 만져주시기를 말이죠^^

느헤미야 2장으로 들어갑니다.

[1차. 본문의 내용을 정리하기. 국어 시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근심을 알아차리다.(1-4절)

1) 왕 앞에 포도주가 있어 잔을 드릴 때, 느헤미야에게 있는 근심을 왕이 먼저 알아차리고 무슨 일이 있는지 왕이 먼저 물어 봄

2) 느헤미야는 자기 조상들이 뭍혀 있는 성읍이 지금까지 황폐한 상태라 근심한다고 말함.

3) 느헤미야는 왕의 무엇을 도와주랴라는 질문에 하나님께 묵도하고, 요청한다.

2. 느헤미야의 요청과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 그리고 반대세력(5-10절)

1) 나의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 기한을 정해서 보내주기로 함

2)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가게 하소서. 그리고 왕의 삼림 감독에게 문과 성곽과 집을 위한 재목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해주소서.

: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였다.

3) 호른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의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근심함.

3.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보고, 성벽 재건을 독려하는 느헤미야(11-20절)

1) 예루살렘에 온지 3일 만에 느헤미야는 몇 몇 사람들과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보았다.

2) 성벽이 무너져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3)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이야기 한다.

(1)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곤경은 너희도 아는바라.(예루살렘은 황폐하고, 성문은 불탔다)

(2)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요청함

(3) 하나님의 선한 손이 어떻게 나를 도왔는지 간증하고, 왕이 허락해 준 일을 고하면서 성벽을 건축하자고 제안하자 모두가 힘을 내어 선한 일을 하려했다.

4)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느헤미야를 업신여기고 비웃으며 왕을 배반하느냐고 왜곡함.

: 느헤미야는 이들의 간섭을 무시하고, 예루살렘 재건에 합류하기를 원치 않음.

 

[2차. 본문의 내용을 나의 글로 재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요점과 강조점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느헤미야 2장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총독 자격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을 보여준다.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이 있었을 뿐 아니라, 왕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는 도움까지 미리 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모든 도움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셨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장면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느헤미야의 주도면밀함이다. 느헤미야갸 동생 하나니를 통해서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서 들었을 때가, 20년 기슬르월(히브리력으로 9월)이었다. 그리고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보고 물었을 때가 같은 해 니산월(히브리력으로 1월)이다. 대략 4개월간의 시간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느헤미야는 참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기도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유다의 총독으로 발령이 난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많은 자재가 필요한데 그런 물량을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려면 왕의 명확한 조서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는 것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근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못하고 있는 느헤미야로 하여금 입을 열게 한 오히려 사람은 아닥사스다 왕이다. 그리고 왕의 질문 앞에 묵도하고 답을 하는 느헤미야는 지난 4개월간 정리했던 요구사항들을 하나씩 하나씩 말한 것이다. 이런 요구는 하나라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은 것을 왕은 요구하는 것마다 다 허락해 주었다. 이것을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왔다고 표현한 것이다. 예루살렘에 온 느헤미야는 이런 상황과 의도를 섣불리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형편을 정확히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때가 되었을 때,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말했고.. 하나님의 도우심도 확인시켰다. 느헤미야의 주도면밀함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더불어 함께 봐야 할 것은 산발랏으로 대표되는 대적자의 등장이다.(10절) 이들은 처음에 긴장하고 있다가 가볍게 쨉을 날려본다.(19절.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이들이 느헤미야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할 요소들이다.

 

이런 자료있으면, 대략 느헤미야 1장과 2장 사이의 간격이 어느정도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

 

[3차. 묵상과 적용입니다]

1. 느헤미야의 고민과 기도는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이어졌습니다.

기도는 막연히 부르짖는 열심만이 아닙니다. 기도는 생각입니다. 아니, 기도하면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많은 가능성들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주시기도 합니다. 기도는 간절함만이 아닙니다. 느헤미야가 4개월간 기도할 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리되고 압축되었을 때가 4개월 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기도가 여물어 열매를 딸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결정적인 용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의 입을 통해서 말을 하게끔 합니다. 느헤미야의 말이 즉흥적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가 여물어야 합니다. 생각이 여물고 내용이 정리되고 불필요한 것들이 제거되고 마음 속에 단순해지고 단단해지는 것... 이런 것들이 기도가 우리 안에서 일으키는 것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역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이런 경험들을 많이 합니다. 기도할 때 길이 열리고, 열리는 길이 어떤 길이 보이게 되는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2. 대적자들은 기도의 응답과 함께 등장합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응답될 때,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대적자들은 그 때 그곳에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란 대적자를 견디고, 대적자를 넘고, 대적자에게서 승리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대적자가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도 없는지 모릅니다. 아니, 대적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역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로서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적자를 만나는 것은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음악에 있어서는 장단과 같고 리듬과 같고 클라이맥스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도들의 삶이 단조롭지 않고 흥미진진하다는 것은 끊임없는 대적자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대적자를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편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발견하세요.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에 대적자들만큼 유용한 사람들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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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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