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라는 몸통의 한 지체로 부름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과 신비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왔다. 하나님의 풍성한 계획은 성도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하나님의 거룩한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이고, 그 일원들이 세상의 방식과 다른 방식의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교회는 점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도들은 이것을 잘 이해 하지 못하고 구원을 개인의 구원, 개인의 거룩 정도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그런 것이 아니다. 성도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공동체로의 부르심이다. 그것은 이전에 속했던 세상(이라는 세속 공동체)으로부터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동체와 나라가 변경되었으니 삶의 가치도 질서도 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도께 속한 몸이 되었으니, 세상(더러움)에 속한 자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본장에서 바울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특히, 5:3-5의 말씀) 이런 세속적 가치를 가지고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살면, 우리가 세상에 속한 몸이라는 것을 밝혀 주려고 쓴 글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몸인데 어찌 우리가 세상에 속한 자처럼 살아가려 하는가? 그렇게 세상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없지 않은가?(5절) 그런데 왜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가 그와 같은 삶을 뒤따라 간단 말인가?

7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11절. 너희는 열매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4절.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비추이시리라

세상의 공동체를 떠나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이민가는 것이 성도로의 부르심이다. 당연히 법도 질서도 다라진다. 그런데 이전에 있던 것을 여전히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아직 어둠 속에 잠자는 것과 같은 것이고, 지혜가 부족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신차리고 깨어나고 술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적용의 영역이 바로 부부간의 관계다.

부부라는 관계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형성되는 관계로 가서는 안된다. 사랑과 복종이란 질서 속에서 성장하고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결혼이란 제도는 교회에도 있고, 세상에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두 공동체 모두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제도를 이루어가는 가치는 차이가 있다. 교회 에서의 결혼은 사랑과 복종이다. 이것이 선한 열매를 내며, 서로를 풍요롭게 하며,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게까지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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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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