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9 새벽기도회

본문: 시 89:1-18

제목: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68장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3. 본문읽기: 시 89:1-18

4. 본문의 내용

 

시편 89편 1-18절은 다윗과 맺은 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함에 대한 내용(1-4절)과 피조 세계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통치에 드러난 인자와 성실을 찬양하고 있습니다.(5-18절)

 

먼저 시인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널리 알리고 대대에 알리고 싶어 합니다. 1절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을 맺고 맹세하길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3,4절) 하셨는데 실로 하나님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성실하게 이루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시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그 언약의 신실함은 어디에까지 이르게 됩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에게 이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마 1:1)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이 견고히 세워졌던 역사입니다. 

 

세상 가운데 여호와와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습니다. 오히려 비교하는 모든 대상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할 정도입니다. 여호와와 같은 능력을 가진자가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호와는 주의 성실함으로 주를 둘렀다고 표현할 만큼 그 언약에 성실하신 분이십니다.(8절) 혼돈의 대명사인 바다의 파도도 하나님 앞에 다스림을 받고 잔잔해 집니다. 괴물과 원수들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하늘과 땅, 남과 북 모든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고 그가 창조하셨으며 그의 손과 팔로 다스리신 것입니다.(9-13절)

 

통치의 기초가 되는 의와 공의도 다 주의 보좌의 기초이며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음을 시인은 선포합니다. 따라서 주의 백성들은 종일 주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고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집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했고 자신들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왕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은 그 언약에 대해 인자와 성실하시기에 견고하고 든든함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제가 오늘 본문에서 함께 묵상하고 나누기 원하는 구절은 두 개입니다. 

 

  1) 1절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놀라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노래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직접 자신의 입으로 대대에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단순히 지식적으로나 교리적으로 배워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경험하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어쩌면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평생에 깨닫고 발견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적인 관계에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늘 그 언약을 파기하는데 발 빠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여준 것이 그것이었고, 이스라엘 역대 왕들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배반, 언약의 파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럴 때마다 당신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용납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언약을 맺으심으로 당신의 신실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으로 옷을 입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변함없는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변질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인자하심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언약을 깨뜨리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성실하심으로 대해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며 구원을 확신하시고 그 구원의 기쁨을 대대에 찬양하고 선포하시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2) 9절.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바다의 파도라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통제되지 않은 혼동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바다의 파도를 컨트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람의 파도를 통과해서 원하는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 속에서 이와 같은 바람의 파도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혼동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 두려운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순간 그 파도를 잔잔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 제자들은 파도로 말미암아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 때 주님은 말씀으로 그 바다를 잠잠케 하셨듯이 하나님의 당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바다의 파도를 잠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바다의 파도를 만난 것 같은 상황이라면, 파도를 다스리시고 파도를 잔잔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무작정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상기하면서 하나님께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 아니시냐고?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이 아니시냐고? 당신의 백성이 지금 혼란 중에 빠져있는데 구원해 주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제까지 이렇게 두시겠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갑시다.(우리 자녀들의 형편을 생각하면서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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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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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8 새벽기도회

본문: 시 88:1-18

제목: 나는 갇혔으나 주를 바라봅니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3. 본문읽기: 시 88:1-18

4. 본문의 내용

 

시편 88편은 2절에 있는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라는 시인의 간구가 절실한 이유로 가득한 시편입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시인은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다’(3절)라고 말하고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깝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죽어 마땅한 자라고 인정받아 무력하게 죽음에 던져지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은 상태와 다를 바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이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3-5절) 하나님께 잊혀진 존재처럼 아무 희망이 없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와 같이 죽을 처지에 놓인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고(6절)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7절) 그래서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나의 친구들이 나를 모두 떠나게 했고 그들에게 가증하게 여겨져 더더욱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6-8절) // 그래서 시인은 쇠약해 졌다고 말하면서도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도움을 구할 곳이 없어서 주를 부르며 두 손을 들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합니다.(9절) 그리고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죽고 나면 어떻게 주를 찬송할 수 있고 주의 성실하심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이 살아있어야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10-11절) 그러니 일단 자신을 이 죽음의 고통과 재난에서 구원해 달라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14절) 호소합니다. 자신이 어려서부터 고난을 당했고, 주께서 두렵게 하여 당황하였으며, 주의 진노가 내게 넘쳐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일이 ‘종일’ 시인을 에웠고, 둘러쌓았다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까지 멀리 떠나게 함으로 고립 가운데 있게 하셨다는 것으로 시편의 내용이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찬양과 감사에 대한 언급보다는 자신이 처한 고난과 고통이 얼마나 크고 절박한지에 초점이 맞춰진 시편입니다. 어떤 부분은 그 원인을 하나님에게 돌리며 원망하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움을 구하기도 하는 내용입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함께 묵상하고 나누고 싶은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8절 ...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제가 볼 때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한 마디로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다’라고 탄식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시인의 고백은 과장된 묘사가 아닌 듯합니다. 환경적으로 ‘재난’이 가득했고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던 상태’(3절)였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그런 환경과 싸워보고 해결해 보려고 했으나 ‘힘없는 용사’처럼(4절) 너무나 무력하게 패배하여 다시 도전할 용기조차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재적 힘으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외부의 도움을 얻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8절) 지금 시인은 자신의 힘으로도, 친구들의 도움을 통해서도 이 재난의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게 된 것입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 재난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시인이 고백한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라는 표현이 단순히 상징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때를 경험하게 되곤 합니다. 내적으로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도움을 줄 것 같은 친구들이 나의 처지에 놀라 멀리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었을 텐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은 허락하셨는가에 대한 원망과 불평 그리고 무력감이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갇힌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소서’(2절)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달라’(합 3:2)는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이런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혼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도움(은혜와 자비)을 구할 수 있고 마침내 그 은혜와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셔서 마침내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이르게 됨을 확인하시는 복된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2) 13절.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우리의 소망과 믿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우리는 소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집니다. 모든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간구를 돕고 계십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한 것이 그것 아닙니까? 우리에는 완전하고 영원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구하고 찾는 성도되길 축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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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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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2 새벽기도회

본문: 히 11:32-40

제목: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

  1. 환영과 대표기도
  2.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3. 본문읽기: 히 11:32-40

4. 본문의 내용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가나안 정복 이후의 인물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믿음에 대해서도 다룰 이야기가 많지만 모두 다루려고 하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개별적인 인물과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이들이 믿음으로 이룬 일들을 나열합니다.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행한 역사를 죽 나열하고 있습니다.(33-34절) 

 

그 이후에는 믿음으로 고난과 박해를 극복한 일들을 나열합니다. 이들은 부활을 믿고 바랐기 때문에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을 받고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습니다. 돌로 치는 것과 심지어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아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기도 했습니다.(35-38절) 히브리서 기자는 이와같은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감탄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이런 각오와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세상이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굴복시킬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것이지요.    

 

이와 같은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을 뿐 약속된 것(예수 그리스도)을 아직 받지 못했다. 그래서 더 좋은 것을 누리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히 이루신 온전한 구속의 열매를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약속의 실체를 알고 있으니 우리는 누리고 있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5. 함께 나눌 구절과 말씀

오늘 본문에서 제가 함께 주목하여 보기를 원하는 말씀은 두 구절입니다. 

 

   1) 34절 (믿음으로) ...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기도 하며...   

 

성도들이 가지는 믿음이 주는 실제적인 능력을 표현하고 있는 중에 나온 하나의 표현입니다. 그 중 저는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기도 하며’ 라는 이 표현이 마음에 남게 됩니다. 우리가 연약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한 사사들(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이 모두 인간적으로는 결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의지해 나아갈 때 백성들의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약한 우리가 강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하심을 믿는 것이고 그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대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 앞에 나아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골리앗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골리앗 보다 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한 자를 이길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가 연약한 중에도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강해지는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강하고 위대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강하게 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 38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조롱하고 박해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하는데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부활을 바라고 소망하기에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을 세상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조롱하고 박해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데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부활을 기대한다고 찬송하는 사람을 무엇으로 돌이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부담스러워하는 이상한 사람이어서 감당할 수 없다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너무 확고하고 분명해서 세상의 어떤 유혹이나 박해가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빼앗아 갈 수 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죽일 수 있으나 우리의 영혼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게 저의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평상시에는 한 없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양보하는 삶을 살지만 믿음의 결단 앞에서는 한없이 엄격하고 경직되고 타협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타인이 볼 때 이 사람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 보여지기 보다는 오히려 이 사람의 믿음은 확고하구나. 적어도 이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구나. 절대로 이 영역에서는 타협이 불가능한 사람이구나! 놀라고 감탄하게 만드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우리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더 나은 본향에서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분이십니다. 다른 무엇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약속을 굳건하게 붙잡고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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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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