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7장] 예레미야를 읽다가 보면, 수십년 간의 결혼 생활 속에서 참고 살았던 남편이 아내와의 별거를 통보하기 전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그간의 사정에 대해서 토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듣고 있노라면, 정말 오래 참고 인내했구나, 할만큼 하셨구나... 하는 생각과 그 아내 해도 너무하네.. 하는 생각을 반복하게 됩니다.(내용이 기니 읽으시려면 <묵상과 적용>부분만 읽으세요.)
[정리1. 내용의 일목요연한 정리]
1.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에서 예배하러 오는 유다 사람들에게 선포함
1)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3절)
2)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말라.
3) 지금 하고 있는 죄악에서 돌이키면 너희는 이곳에 살게 되리라.
4) 너희들은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면서도 이 집에 들어와서는 <구원을 얻었나이다>하면서 가증한 일을 행하고 있다.(10절)
5) 너희는 이 집이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 계셨던 실로에 가서 이스라엘의 형편을 보라. 그들이 불러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실로에서 행한대로 이곳에서도 그와 같이 행하리라.
2. 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지 마라.(16절)
1)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 위하여 구하지 말라. 듣지 않으리라.
2) 이들의 하는 행위를 보라.
(1)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는 불을 피우고,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해 하늘의 여왕을 위해서 과자를 만들며,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하나님의 노를 일으킨다.
3) 하나님은 사실 애굽에 나올 때 번제와 희생제물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했는데, 그런데 너희들은 순종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완악하게 하여 등을 돌렸다.
(1) 너희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이 없이 보냈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목이 곧아 너희 조상보다 더 악을 행했다.
(2) 예레미야 네가 이 백성에게 이 말을 할지라도 그들은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27절)
3. 유다가 도벳 산당을 지은 것에 대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
1) 유다가 여호와의 눈 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이 가증한 것을 두었다.
2)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여 그곳에서 자녀들을 불살랐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명령한 것도 아니고, 마음에 생각하신 것도 아니다.
3) 이곳을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 하지 않고, 죽음의 골짜기라고 할 만큼 이곳을 죽음의 시체로 가득 채우겠다.
4)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라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정리2. 내용의 재구성, 서술적으로 표현하기]
유다의 죄악에 대한 메시지를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성전 문 앞에서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내용은 너희들이 지금의 죄악에서 돌아오면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인데, 지금 이곳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살고 있고 향락가도 아니고 성전에서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메시지가 전혀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예측된다. 역시 이들은 예레미야의 이 메시지를 미친 사람의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여호와의 성전이 여기에 있고, 나는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하는 신앙적 안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헛된 생각이다. 이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실로에서도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간구에도 응답하지 않으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들의 죄가 가증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중보와 간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들은 조상들의 악함보다 더 완악하기 때문이다. 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그들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예레미야가 그것을 지적한다고 한들, 이들은 이것조차도 듣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세운 도벳 사당은 하나님 앞에서 대놓고 악을 행한 것인데, 하나님께 이곳을 도벳이라 혹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고 하지 않고, 죽음의 골짜기라고 말하도록 그곳에 시체를 쌓을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참된 메시지는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들려지곤 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보냈고,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예레미야의 지적은 그들의 죄에 대한 것이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이 곳에서 평안이 살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의 죄와 유다의 죄악을 객관적으로 봐서 이 장면이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당시 유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이상한 장면처럼 보일 것이다.
1) 죄를 지적하려면 성전이 아니라, 향락가를 찾아 가는 것이 적절할텐데... 적어도 이들은 예배드리러 오는 정도의 신앙은 되는 사람들인데... 왜 이들을 향해서 죄를 회개하라고 하는 것인가?
2) 이들은 문제없이 유다 땅에서 잘 살고 있고,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사람들인데, 예레미야의 요청은 너희가 회개하면 여전히 이곳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별 효력이 없는 것 같다.
예배를 드리러 오는 유대인들.. 이들은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유다 백성들 중에서는 좀 나은 사람들일텐데 이들의 입장에서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자기 자신보다는 저 도심에 있는 죄인들에게나 적용된다고 생각하면서 예레미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예레미야를 통해서 회개의 말씀을 전할 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자기는 아닐 것이라고,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유일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들마저도 이 메시지를 무시한다면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전혀 없게 되는 것이다.
전혀 나와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음성을 자신을 향한 음성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겸손과 자기 성찰이 있다면 우리는 멸망의 위험 속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예레미야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결혼해서 살면서 맺힌 억울함을 쏟아내는 책이다.
예레미야를 읽다가 보니 마치 결혼하고 참고만 살았던, 남편이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와서는 아내와 별거를 선언하기 전에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그간의 억울함과 황당함을 사람들에게 털어 놓고 있는 모습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사람들마다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며 아내의 잘못을 또한 남편이 정말 힘에 넘치도록 인내하며 사랑하며 견디어 왔구나 하는 것을 공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억울함을 들는 마음으로 예레미야를 읽으시면 더욱 공감가시리라 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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