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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저장소이긴 하지만, 괜찮은 자료가 있는듯 하여 링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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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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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5-6장에 내용 정리(마인드 맵 형식)


창세기1장과 과학에 대한 해석 견해.pdf




1. 서론


짐 브래들리가 창세기 1장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했던 순간의 경험..


그러니까 내가 만나 온 다신교도 친구들이 숭배하는 것들을 체계적으로 하나씩 짚어 가면서 "그건 신이 아니야, 그건 피조물일 뿐이야"라고 일부러 알려주는 것 같았단 말이지. 내겐 짜릿한 순간이었어. 그 짧은 창세기 1장이 그동안 나를 둘러싸던 모든 종교적 혼란을 말끔하게 해소시켜준 거야.


이전에 일치론적 해석의 공통점이 창조의 순서를 창1장의 순서로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일치론적 해석은 그 순서를 창조의 순서와 꼭 일치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세기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말씀이기는 하나 성경 본문 자체가 과학적 사실이나 세세한 역사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이나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창조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한 것이다. 따라서 각 사건의 시간과 순서는 일종의 문화적, 영적 의미를 전달할 뿐이다. 신학적 진실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지, 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견해다.


선언일 / 창조시 / 왕국-언약 / 성전 / 고대근동 우주론



2. 선언일


  하루의 개념을 천국의 법정에서 선언하신 기간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 하루가 꼭 24시간일 필요는 없다. 이 세상은 완전히 다른 개념을 기초로 창조되었을 수 있다.


3. 창조시


  성경기자가 글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지금과 같은 창세기 1장에서의 하루와 창조 순서를 선택했다고 보는 견해다. 산문임에도 아이디어와 구문을 반복하고 운율이 나타나도록 공들여 구성한 글이라는 것이다. 

  1) 처음 3일과 나중 3일간의 대조

  2) 처음 3일은 혼돈과 공허 속에서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고

  3) 나중 3일은 그 나누어진 공간을 채우는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창 1:2의 혼돈과 공허 상태의 땅을 완전히 새롭게 뒤바꾸는 일을 하신 것을 말한다. 


  7이라는 숫자 또한 상징적인데,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선함과 완전성 그리고 질서정연함을 확실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같은 본문 구성과 구조는 원저자가 가장 우선시 한 것이 역사적 순서가 아니었음을 보여줌으로 비일치론적 해석에 무게를 실어 준다.


4. 왕국-언약


  고대 근동 사람들이 익숙했던 것 중 하나가 땅을 주겠다는 언약과 가신들에게 그 지역에 대한 아주 제한적 권력을 부여함으로 강한 통치자가 존재하는 종주 제도이다. 그래서 창 1장의 주된 메시지를 시간이나 물리 구조의 형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연, 인간의 관계 설정에 관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5. 성전. 


  이 해석은 휘튼 대학의 구약학 교수인 존 윌튼이 최근에 발전시킨 것이다. 고대근동 지역에서는 성전을 전 우주의 축소판으로 이해했으므로, 우주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묘사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6일간의 준비 후 일곱째 날에 성전에 입주하게 되는 것(안식)이라고 본 것이다. 이 또한 상징으로 창 1장을 보는 관점임으로 과학이 자연사에서 내 놓은 결론과 크게 상충될 것이 없다고 본다. 


6. 고대근동 우주론





이 해석은 창세기 1장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엄청난 신학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고대근동 지역 사람들이 생각하던 우주의 물리적 그림에 담겨있다고 설명한다. 


성경이 표현하고 있는 우주관은 고대 근동의 우주관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하늘 위에 많은 양의 물이 있고, 수문이 있어서 물이 내려온다고 생각한다든지, 해가 하늘 이끝에서 나와 저 끝으로 운행한다든지... 이런 성경의 표현은 고대 근동의 우주관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1) 바벨로니아 사람들이 생각한 세계


바벨로니아 사람들의 문헌인 '에누마 엘리쉬'를 보면 거기서도 창조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보면 창세기 1장과 유사한 것이 있다. 물론 다른 내용도 있다. 


창세기를 읽는 히브리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시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살던 아브라함이었고, 그들의 조상은 애굽에 수백년간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바빌로니아와 애굽의 창조이야기는 매우 익숙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창세기 1장이 그렇게 새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권위와 인간의 진정한 신분을 보여 주는 강력한 선언을 보게 되는 것이다. 



7. 각 해석의 비교 분석


  1) 일치론적 해석과 비일치론적 해석의 약점

   (1) 일치론자들의 약점: 이들의 큰 유혹은 모든 성경 구절을 오늘날의 과학적 지식과 일치하도록 해석하고 싶은 것

   (2) 비일치론자들의 약점: 이들이 쉽게 빠지는 유혹은 과학적 설명과 상충하는 듯 보이는 성경 구절이 나타나면 충분한 연구없이 무조건 비유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든다...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부활까지도 영적 상징으로 풀이해 버릴 수 있다.


   (3) 모두가 빠질 수 있는 유혹: 필요 이상으로 과학을 기준 삼아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과학적인 결과가 한 가지 해석을 지지할 경우 그 의미를 찾아내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기는 하지만, 마치 과학이 전적인 기준인양 해서는 안된다. 


  2) 여기서 초점을 잃지 말아야 할 유의점

   (1) 먼저 최고의 성경학자들이 그 말씀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8. 문맥 속에서 읽는 창세기 1장. 


  1) 다양한 해석 중 최선의 해석을 택하는 방법: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 비추어 한 구절 한 구절을 해석해야 한다. 

  2) 처음 창세기 1장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해야 한다.(문자적-역사적 해석)



9. 현대 독자들은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창세기 1장의 목적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학적 사실을 가르치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런 정보들을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신학적 진실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창 1장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통치권

   (2) 창조의 선함

   (3)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의 영광스러운 지위 


  칼뱅도 '창세기 주석'에서 이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을 비일치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면, 복음서도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최초의 청중이 이해한 복음서는 분명히 제자들이 남긴 생생한 역사적 증언의 기록이었으며, 이 책들이 강조한 내용들과 문체 등으로 볼 때 예수님의 부활과 기적은 이 이야기의 본질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도 그와 같은 태도록 복음서를 읽어야 한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경우는 좀 다르다. 과학적 지식이 쌓이고 변화해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 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흑암에서 빛을 만드셨고,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셨으며 텅빈 세상을 선한 피조물로 채우신 주권자 하나님이 계시다는 창세기 1장의 신학적인 메시지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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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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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 1:9-12의 하나님이 땅을 창조하신 것과 실제로 우리가 듣고 아는 지질의 형성과정과 차이가 있다. 


2. 이 문제를 푸는 방식은 두 계시(성경,자연)의 모순이 아니라, 그 계시의 해석에 문제라는 것에서 부터 전제해야 한다. 


3.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견해가 있다. 

  1) 일치론적 해석: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순서대로 창조되었다고 보는 견해(5장)

- 젊은 지구론, 간격이론, 날-시대론, 성숙한 모습으로의 창조론


  2) 비일치론적 해석: 창세기 1장의 기록과 다른 시간과 순서대로 창조되었다고 보는 견해(6장)

- 선언일, 창조시, 왕국-언약, 고대근동 우주론, 성전


4. 자연 세계의 창조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1) 신약성경: 

   (1) 창조의 일반적인 설명을 하나님(하나님이 만드시고 다스리신다는 정도)

   (2) 창세기에 언급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여에 대한 언급 정도


  2) 구약성경:(시편 104편, 창 2:4-25, 1:1-2:3)

   (1) 창조자 한 분이 만물을 만드셨다. 

   (2) 이렇게 창조된 모든 것이 다 좋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3) 하지만 어조와 문체는 구절마다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 위의 세 구절은 창조 이야기의 각기 다른 부분을 강조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창조 사건을 설명한다.(복음서와 유사한 느낌)

-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순서가 서로 다르거나 생략되어 있다.


  3) 창 1장이 창조된 순서의 기록인가? 그렇게 보기에는 창 2장의 순서가 차이가 남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1장과 2장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이를 단순한 역사 자료로 읽지 않고 그 이상의 해석 작업을 거쳐 읽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많은 경우 창조 순서에 대한 논의는 없이 창조에 소요된 시간, 즉 나이 문제만 집중했다. 


5. 젊은 지구론.

  1) 아일랜드 대주교 제임스 어셔(1581-1656): 계보를 정교하게 연구하여 창조일을 주전 4004년 10월 23일 일요일이라고 발표.


  2) 1600년대까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수천 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그 외에 다른 증거는 없었다. 

: 그러나 초대 교부 중에는 창조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한 것은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 처음 3일은 문자적으로 하루(24시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직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잡고, 6일 창조를 믿었다. 


  3) 지질학의 시작

   (1) 제임스 어셔와 갈릴레오가 등장한 1600년대부터 지질학자들이 등장해 암석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2) 느린 퇴적으로 통해서 형성된 퇴적층이 있을 발견하면서, 지구의 역사가 긴 세월의 과정에서 된 것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3) 그러나 그 당시 사람은 이 퇴적으로 <노아홍수>의 성경 사건으로 이해하고 해석했다. 그리고 그 성경적 근거에 대한 것으로 과학적 모델을 세우고 자연 세계를 관찰했다. 



6. 젊은 지구론과 대홍수 이론에 반하는 지질학적 증거: 1840년대까지.


  1) 1700년대는 지구에 대한 지질학자들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새로운 증거들이 발표될 수록 초기 지질학자들이 제시한 젊은 지구론과 대홍수 모델은 방대한 과학적 증거들과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2) 한 번의 홍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퇴적층이 나오고, 퇴적층이 12킬로미터나 되는 곳도 발견되었다. 

  3) 산꼭대기에서 발견한 조개껍질은 대홍수 이론으로도 설명이 되고, 해저면이었던 곳이 융기하여 산이 되었다는 이론도 가능하다. 한 두가지 증거만으로 특정 과학 모델의 적합성을 따질 것이 아니라, 모든 데이터를 일관성있게 설명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4) 이렇게 되자, 1840년쯤 되자 기독교 지질학자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역사가 최소 수백만 년이라고 믿게 되었다. 

  5) 당시 지질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성경의 오류를 입증하려고 나선 무신론자들이 아니었다. 창세기를 중심으로 문자적으로 해석해하며 100년 정도를 이 관점을 고수했던 사람이다. 

  6) 이 지질학자들은 이런 결과에도 성경을 버리지 않고,(자연 연구와 그 연구 결과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창세기 1장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고민했다. 

  7) 이렇게 해서 새로운 해석 방법 중 대부분이 창 2장에 나온 순서와의 차이는 무시하고, 창 1장에 서술된 순서대로 지구가 창조되었다고 보는 '일치론적 해석'에 속한다. 이들은 창조의 순서에 있어서는 공통적으로 창 1장을 따랐다. 


7. 간격이론


  간격이론은 창 1:1절과 2절 사이에 수 백만년 혹은 수십억년의 간격이 있다고 본 이론이다. 창조 이후인 최근에 지구 표면에서 생명을 완전히 파괴하는 대재앙이 일어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해진 것이라고 봤다. 창 1:3부터 언급된 내용은 파괴된 지구의 생물을 복구(창조가 아닌 재창조)한 수천 년의 일을 기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창조의 순서를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지구가 긴 역사를 가졌다는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들을 설명할 수 있다.


  지질학적 긴 연대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생물들의 화석 증거들을 보면 생물이 1만년 이상 지구상에 존재해 왔다고 보는데,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할 수는 없는 이론이다. 


8. 날-시대론


  1700년대 후반에 소개된 '날-시대론'이다. 이 해석은 창세기에 나온 하루가 실제로 더 긴 시간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


  날(욤)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기에... 욤을 긴 시간으로 보면 긴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것이 또한 문제가 된다. 또한 긴 연대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창조 순서에 있어서의 모순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일치론적 해석의 한계] 

최신 과학 지식에 따른 생물들의 창조 순서가 창 1,2장 모두와 차이가 있다. 창조의 시간을 아무리 늘리다고 해도 최근 100년간 과학자들이 합의한 창조 순서와는 도무지 일치하지 않는다.


# 126쪽 표 참조: 창세기 1,2 장 창조순서와 현대 과학이 말하는 창조 순서의 차이.



9. 성숙한 모습으로의 창조론


  간격이론이나 날-시대론이 모든 과학적 테이터들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숙한 모습으로의 창조론'이라는 또 하나의 일치론적인 해석이 등장했다. 이 이론의 내용은, 1만여년전에 창조된 것은 사실이나 창조될 당시부터 아주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1800년 초반에 등장한 이론)


  그러나 이것도 문제가 있다. 이 말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들에 대한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우리가 과거에 실제했다고 믿을 수 있는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모두 부정해 버릴 수 있는 논리가 된다. 하나님이 지난 화요일에 창조하셨다! 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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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900년대 초의 근본주의와 지구의 나이.


  1) 1840년경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를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함. (보통 보수적인 사람들이 간격이론, 날-시대론을 좋아함)


  2) 그러던 중 중요한 사건 두가지가 벌어지게 된다. 

   (1)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자연 선택을 통한 생물학적 진화라는 개념을 소개

   (2) 1800년대 후반: 자유주의 신학이 생겨나 인기를 끌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


  3) 이에 따라 1915년 개신교도가 자유주의를 경계하면서, 각 자의 견해를 모아 <근본주의>라는 책을 출간.

   : 성경을 문학,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고등비평을 대대적으로 비난, 성경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성 주장.

  4) 1800년대 초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근본주의 운동가를 포함한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도 크게 지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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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랜 지구론을 뒤받침하는 새로운 증거들이 나타났다. 


  1) 대륙의 이동: 1900년대에 들어와 대륙이 이동하고 있음이 발견됨. 매년 1-5쎈티미터.

   (1) 최신의 장비들로 대륙의 이동을 정기적으로 기록한다. 

   (2) 대륙이동설로 특정 동식물 화석의 위치까지 설명가능함. 1억 8년 전의 판게아.

   (3) 대륙이동을 가설로 한 예측들이 맞아 떨어짐(지질학적 자료, 경계선, 암석류 .., 동식물의 화석 등)


  2) 빙하층

   (1) 빙하가 눈이 내리고 봄, 가을에 쌓이는 먼지... 이런 식으로 빙하층의 연대를 측정. 

   (2) 남극에서 추출한 가장 깊은 빙하코어의 경우 72만년 정도가 된다. 


  3) 방사성연대측정

   (1) 1800년대 후반과 1900년 초에 방사능이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은 가장 정확한 연대측정 방법인 방사성연대측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 잘못된 종류의 암석을 선택할 경우 잘못된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원리상으로는 거의 결함이 없고 지속적으로 일관된 결과를 가진다. 

   (3) 과학자들은 두 세개의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온 결과만을 가지고 성급하게 연대를 파악하지 않는다. 보통 40개 이상의 서로 다른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결론을 내린다. 

   (4) 지질학자들은 지구의나이가 1만 년 이상임을 증명하는 다양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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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현대의 젊은 지구 창조론


  1900년대 초반까지도 근본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을 포함한 많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오랜 지구론>을 뒷받침하는 지질학적 증거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까지도 성경을 젊은 지구론적으로 해석하면서 이것을 지질학적 테이터와 조화시키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있었다. 


  1) 젊은 지구 창조론의 현대적 발전

   (1) 1961년 신학자 존 휘트콤과 공학자 헨리 모리슨은 '창세기 홍수: 성경 기록과 그 과학적 함의'라는 책을 출간하고 이 책은 현대의 젊은 지구 창조론 운동을 부활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운동은 창조과학 운동, 과학적 창조론 운동이라고 불린다. 


   (2) 이들은 현대 과학이 자신들의 해석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적 모델을 내세웠다. 

- 생명은 무생물에서 진화할 수 없다.

- 지질학적 지층에서 그것이 최근에 형성되었고 대홍수가 이었다는 증거가 앞으로 나올 것이다. 

- 각 생명체는 하나님이 하나 하나 기적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한 생물에서 다른 생물 형태로 변화하는 중간 단계의 동식물 화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3) 이 운동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복음주의자들과 복음주의 교회들은 물론 북미의 여러 기독교 사회단체에까지 퍼졌다.


   (4) 이 주장은 근본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유사하지만, 차이가 있다. 근본주의 신학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지구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기독교 신앙에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반면, 현대의 젊은 지구 운동가들은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5) 그래서 현대적 젊은 지구 운동가들은 젊은 지구론을 뒷받침 해줄만한 과학적 데이터들을 수집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들은 그 증거가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2) 태양 수축론(젊은 지구론자들이 말하는 증거중에 하나)


   (1) 태양 수축론 주장에 대한 배경: 한 과학자가 태양이 일정한 속도로 수축하고 있는 것 처럼 측정된다는 데이터르르 내 놓았고, 과학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추가적인 논문을 내 놓으면서 그렇지 않다고 자체 수정을 해 가고 있었다. 태양은 8년 주기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그것을 '사이언스'나 '네이쳐'에 게재하기 얼마전, 창조 과학계에 처음에 태양 수축론을 제기한 내용이 소개되고, 그의 주장처럼 태양이 수축해 가고 있다면 2천 2백만 년전에는 태댱이 지구의 궤도를 꽉 채울 정도의 크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주의 진화에 대해 틀린 자료로서 사용했다. 

   (2) 그 이후 창조과학계에는 태양수축론을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일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인용하기 시작했다. 수정된 논문이 '사이언스'나 '네이쳐'에 실린 이후에도 말이다. 


  3) 창조과학과 과학적 관행


  이들의 열정은 뛰어나나 원하는 자료를 얻기 위한 노력은 크지만, 종종 과학적인 관행을 무시한다. 반대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외면한 채 젊은 지구론적 설명을 내세워 이를 고립된 과학적 관찰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정리]

창세기에 대한 젊은 지구론적 해석은 성경의 권위에 큰 의미를 둔다. 대부분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문자-역사적으로 해석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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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진화에 대한 영상1_ 무신론자(불가지론자)/과학적 방법/진화론의 헛점/지적설계 등등..





I. 도입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어김없이 가을이 온다.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우주만물의 움직임을 질서있게 정하셔서 운행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무더운 여름도 혹독한 겨울도 우리는 소망가운데 견디어 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을 하시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그것을 밝혀 보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를 주의 깊에 연구하여 어떤 내용들을 얻지만, 그것은 창조세계에 대한 전체 과학 지식의 일부일 뿐이다. 


 과학은 이런 지식의 총체가 아니라, 인간이 지식을 쌓아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과학 지식을 얻는 과정으로

  1. 실험

  2. 관찰

  3. 역사적 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도 역사 과학을 광범위하게 다루고자 한다. 



II. 도입


 1. 실험 과학

   1) 물리학, 화학,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과학

   2) 실험실에서 가능한 실험들을 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뛰어남(실험, 측정, 다시 실험, 변수 통제 등)

   3) 찬 흙과 따듯한 흙에서 발아 실험 -> 더 차가운 흙, 더 뜨거운 흙


 2. 관찰 과학

   1) 실험실에서 실험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을 확인해야 할 때

   2) 기상학, 생태학, 의학, 천문학, 지리학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

   3) 접근성이 떨어지는 일(식물의 성장을 1년간 관찰할 수는 없다. 행성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우주여행할 수는 없다. 한랭전선을 만들수도 없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찰이 가능하다. 예, 산불 후 산림 회복 과정을 위한 연구(양생화, 4,5년후 나무...)


 3. 역사 과학

   1) 생태학, 기후학, 천문학, 우주학, 진화생물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에 주로 사용되는 방법

   2) 실험과 관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증거를 가지고 간접적인 접근을 하는 방식.

   3)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것만을 연구함(마치 형사가 사건 발생 후 흔적만으로 당시 정황을 구성하듯)

   4) 산림연구, 131년 전 산불이 있었다는 흔적 발견 / 그 산림의 대부분의 오래된 나무들은 125년 이후의 것 구성)

        여러가지 측면에서 서로 지지해 주는 증거


예) 역사 과학의 예: 게성운 초신성 잔해

(1) 1054년 중국과 아랍의 천문학적 자료에는 <빛나는 객성>하나가 하늘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별은 조금씩 어두워져 2년 후에 완전히 사라졌다. 


(2) 1900년대 초, 현대식 천체 망원경으로 게운성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10년 간격으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비교하면서 성운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성운이 폭발한 한 별의 잔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폭발시기를 역으로 추적해 보니 900년 전에 폭발한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4. 과학의 세 가지 방법이 모두 필요하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연구 방법은 서로의 연구를 보강하거나 잘못된 점들을 고쳐주면서 자연 세계와 그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간다. 


 5. 인간의 죄와 역사 과학: 인간의 타락이후 자연의 법칙은 타락 전과 달라져 버린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


  1) 성경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창 3:14-19)

(1) 인간이 더 큰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며

(2)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땅을 힘들게 일구게 될 것이다. 


  2) 이런 저주의 결과로 자연은 얼마나 변하게 되었을까? 변했다면, 무엇이 변하고 얼마나 변했을까? 

[그리스도인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인듯 하다.]

(1) 자연법칙에 있어서까지의 변화가 생겼다.

(2) 자연법칙에 있어서까지의 변화는 아니다. (타락이후에도 하나님이 천지의 법칙을 지속함/렘 33:16-26, 시 19:1)

 - 둘 다 창 3:14-19을 해석하며, 양쪽 모두 나름대로의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3) 과학은 이 두 가지 해석 중에서 하나를 지지한다. 

(1) 천문학이나 지질학 같은 역사 과학이 자연 세계의 과거 행적에 관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리가 밤 하늘에서 보는 별 빛이란 오래전 과거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빛이다. 이 빛은 아주 오래 전 기본적인 자연 법칙이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연법칙은 한 시점에서 갑자기 변한적이 없다는 것이다. 

(3) 지질학자들도 비슷한 자료를 내놓는다. 가장 오래된 암석과 최근에 형성된 암석을 비교하여 봐도 자연법칙이 갑작스럽게 변한 흔적이 없다.

(4) 따라서 과학은 처음 우주가 생성된 이후로 자연법칙에 있어서 갑작스러운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III. 결론


 1. 과학은 자연 세계와 그 역사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얻으려 할 때, 큰 도움을 주는 강력하고 신뢰할 만한 도구다. 하지만 자연 세계와 상관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할 때는 별 쓸모가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2. 과학 지식은 우리가 역사와 성경, 개인적인 경험, 문화를 통해서 배운 중요한 진리를 보충할 뿐, 그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환원주의적 사고의 그릇됨) 과학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많은 선물 중 하나일 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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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입


1. 종교적 질문과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

   종교적 질문은 종교가 과학적인 질문은 과학이 답해 주면 될 문제.(간단한 해결방법 같지만...)


2. 그러나 종교와 과학을 항상 분리할 수는 없다. 

  예) 광대한 우주를 연구할 때, 미미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들을 연구할 때, 우리는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3. 또한 우리는 어느 한 분야에게 해당되는 답변에 만족하지 못한다. 


4. 게다가 우리는 하나님이 삶의 모든 영역을 주관하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종교와 과학을 별개의 것으로 간단하게 분리시킬 수 만은 없다. 



II. 본론


 1.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는 내용과 이견이 존재하는 주제들

    창조, 진화, 설계를 두고 이야기하다보면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되는데, 먼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1)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지키시며 다스리신다.


  2)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신다.(직접적인 드러내심을 믿음)


  3)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다. 


  4) 성경은 권위 있는 책이며, 구원의 길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 위의 문구가 축자 영감설을 지지하는 말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사실 관건이다. 

- 복음주의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정도의 명제다. 


  5)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며 인간에게 특별한 능력과 책임을 맡기셨다. 

      - 결혼, 가족, 예술, 언어, 상업.... 문화적 선물까지.

      - 이를 자연 과학에 적용해 보면, 하나님이 자연 세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때 필요한 능력과 책임도 인간에게 은혜로 주셨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2. 그리스도인들 간에 이견이 존재하는 주제들

만물을 누가 창조했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어떻게 창조했느냐에 대해서는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해 왔다. 그 다양한 질문들의 핵심은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핵심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설명하는 성경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최선인가?(성경 장체에 대한 해석문제)


     핵심2. 하나님의 세계(자연)를 연구할 때, 자연이 그 역사에 대해 말하는 바를 어떻게 결론짓는 것이 옳은가? (팩트에 대한 해석 문제)


  견해1. 젊은 지구 창조론자: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에 지나지 않음. 대홍수에 의해 지금의 모양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창세기에 대한 최선의 해석이라고 믿음.


  견해2. 오랜 지구 창조론자: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하루가 실제적으로는 과학역사에 존재하는 긴연대라고 해석함. 이들은 성경 본문을 통해 지구 나이를 유추하는 것은 성경이 의도하지 않은 가르침이라고 말함.


  견해3. 진화론적 창조론자들: 과학 데이터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면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주관하고 이용하여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고 본다. 또 다른 부류는 점진적 창조론자들은 성경과 과학 모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 역사를 이루실 때 자연적 과정뿐 아니라 기적도 함께 사용하셨음을 말한다고 주장함. 


  [소결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에 많은 교회와 기관에서 기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이 모든 관점이 진심으로 하나님과 성경에 충실하기 위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며 기독교 신앙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본인들은) 설명한다.



 3. 이 논란을 풀기 위한 사전 과정: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세게에 귀를 기울이라.


  1) 과학을 토대로 성경 읽기 방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성경을 토대로 과학을 연구할 것인가?


  2) 대답은? 모두 그렇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긍정적 결과도 혹은 부정적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3-1. 자연 해석에 대한 성경의 영향


1) 성경을 원래의 용도 밖으로 모든 영역에서 너무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활용해서는 안된다. 

2)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기적의 방법이라도)에 대해서 열린 태도로 과학을 할 수 있도록 제안해야 한다. 

3) 성경은 과학만으로 알 수 없는 자연 세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1) 과학은 식물과 암석, 먼지를 구성하는 원수들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와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성경은 그럼에도 인간이 모든 창조세계에서 특별한 존재임을 말한다. 

  (2) 과학자들은 봄, 여름, 가을,겨울의 계절 변화가 공전 궤도와 자전 각도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하지만, 성경은 신실하고 지속적인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 인해 사계절이 생긴다고 알려준다.(이 두 사실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3-2. 성경 해석에 대한 과학의 영향


1) 특정 성경 구절의 내용이 모호하거나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때도 과학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2)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고 법칙으로 운행하신다는 것을 성경이 말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그렇게 하시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과학을 통해서 배울 수 있게 된다. 

3) 과학을 성경해석에 우위에 둘 필요는 없지만, 성경을 해석함에 과학이 도움을 줄 수 있음도 간과해서도 안된다. 



III. 결론


 1. 성경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지, 어떻게 만드신 것에 대한 고백은 없다.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2.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호기심을 따라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버렸다.(저자 자신을 포함하여 과학자들)


 3. 이 연구를 함에 있어서의 원칙


  3-1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세계, 이 두 영역을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3-2 서로를 비방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견해와 입장에 대해서)

  3-3 복음 앞에서 불필요한 걸림돌을 놓지 말아야 한다.(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

예) 아우구스티누스의 말(41쪽 참고) 비상식적인 내용으로 증거하다보면, 오히려 기독교인들을 무지한 자로 인식하게 만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까지도 거부당하게 된다.

  3-4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이 과학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공부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3-5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일차적인 반응은 논쟁이 아니라, 찬양과 경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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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렸던 글에서 언급했던 '예전에 복클에서 썼던 글'입니다.
조금 다듬고 추가해서 다시 올려봅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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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진화 논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창조론의 영어 표현이 'Theory of Creation'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창조론'에 대응되는 영어 표현은 'Doctrine of Creation'입니다. (Doctrine : 교리) 즉, 창조론은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 등 기독교의 여러 '교리이론'의 한 영역인 것입니다.

네이버 사전만 찾아봐도 바로잡을 수 있는 이런 사소한 오해 때문에 쓸 데 없이 논의가 꼬이고 감정이 상하고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이 오해로 인해 발생되는 대표적인 문제들을 짚어 보자면...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오해와 갈등은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동일시하여 표현하는 습관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고, 다시 말해서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분리해서 이야기하면 아주 깔끔하게 해결됩니다.)

1. 많은 개신교인들이 이런 논리를 내세우곤 합니다.
"창조론도 이론(Theory)이고 진화론도 이론이다. (진화'법칙'이 아니고 진화'론'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우세하다고 할 수 없다." (응용 : "과학교과서에서 동등한 비중을 두고 가르쳐야 한다.")
(1) 이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창조론은 'Theory'(과학이론)가 아니고 'Doctrine'(교리이론)이거든요.
(2) 그리고 이건 과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과학적 권위가 '법칙>이론>가설' 순서로 부여되는 건 절대 아니거든요.
- 단적인 예로, 뉴튼이 제창한 만유인력의 '법칙'(혹은 중력법칙)은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창하고 이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되면서 완전하지 못하다는 게 입증되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만유인력의법칙에 비해서는 훨씬 정확하고 정교하다는 것이죠.)
- 드 브로이가 제창한 '물질파 가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물리 과정에서도 잠깐 나옵니다.) 사실상 현대 양자역학의 전제조건이 되는 이론이고, 당연히 실험적으로도 입증이 되었습니다. 
- 일반상대성'이론'에는 (양자역학과의 접점을 찾는 과정에서) 앞으로도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물질파 '가설'은 그런 거 없습니다.
- 이 사례들만 보면 오히려 '가설(물질파 가설)>이론(일반상대성이론)>법칙(만유인력의 법칙)' 순서로 진리에 가까운 것 같네요.(!!)
다시 말하지만, 과학에서 꼭 '법칙>이론>가설' 순서로 권위가 있고 진리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건 아닙니다.

2. 개신교 측의 이런 어리석은 주장들 때문에 많은 비기독교인들은 이런 반대 논리를 내세웁니다.
"창조론을 어떻게 이론(Theory)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과학이론으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요건도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창조'론'이라고 하면 안되고 창조'설'이라고 불러야 한다."
(1) 당연히 창조론을 Theory라고 할 수 없죠. 창조론은 Doctrine이니까요.
(2) 창조'설'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서 '설'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가설', 그리고 하나는 '설화'. 그런데 둘 다 이 논의에서 유의미한 접근이 못됩니다.
- '가설'의 경우 : 앞에서 말한 '법칙/이론/가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가설이라고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창조론은 '가설'이라고 부르기에도 적합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애초에 창조론은 Theory가 아니죠.)
- '설화'의 경우 : 차라리 이 쪽은 교리(Doctrine)로서의 창조론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창조론을 깎아 내려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감정적 만족 이외에 실제 논의에서의 실익은 없습니다. 애초에 창조론이 과학이론으로서 진화론과 대립하는 구조가 아니거든요. (어제 글에서도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과 대립관계에 있는 창조론'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창조과학'이라는 것입니다.)

3. 원래 이렇게 민감한 토론에서는 용어의 정의가 모호하면 으레 논의가 겉돌고 유의미한 결론에 다다르기 어려운 것이 보통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간단한 사실관계만 바로잡아도(네이버 영어사전만 한 번 찾아봐도...ㅠㅠ)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너도나도 '창조과학'을 '창조론'과 동일시하여 표현하는 습관 때문에 기독인이든 비기독인이든 이 사실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전혀 본질적이지 않은 이 문제로 박터지게 싸우느라 정작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4. 창조과학에 동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창조과학이 창조론의 동의어(혹은 전부)인 마냥 여겨지고 있는 현실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갈등들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4-1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 '어떤 방식으로'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 바로 '창조론'이라고 하는 영역일 것입니다. 성경관과 세계관에 따라 창조론의 접근법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떤 방식이든 간에'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부정해버리면 기독교 신앙이 성립될 여지가 없거나 심각하게 왜곡된 형태의 신앙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4-2. 바로 이것이 창조과학과 창조론을 동일시하는 것의 가장 큰 위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과학이 개신교 창조론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약 창조과학과 진화론과의 대립구조에서 창조과학이 진화론에 비해 훨씬 열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창조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 더 나아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 될 여지가 있습니다. 혹은 성경에 대한 신뢰가 창조과학에 대한 신뢰로 잘못 연결되어 다양한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실제로 굉장히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결론. 그렇기 때문에 쉽게 쉽게 '창조과학'과 '창조론'을 섞어서 부르는 기독인들의 습관은 고쳐져야 하며(예를 들어서, 어제 글에서 차성훈님께서 제안하신 것인데, 창조론 대신 창조신학이라고 바꿔서 부르는 것도 좋은 시도인 것 같습니다.) 창조론에 대한 바른 이해와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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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인가?]


1. 이와 같은 고대근동 문헌들이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제기한다.


  1) 성경, 그 중에서도 특히 창세기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것인가? 아니면 고대근동 문헌을 짜집기 한 것인가?

  2)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면 성경의 독특성이 무엇인가? 

  3) 고대근동 문헌이 발굴되기 이전의 교회 역사는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흘러온 것이 아닌가?


   : 성경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2. 지금까지 발굴된 문헌들을 정리해 보면


  1) 창조와 홍수: <에누마 엘리쉬>, <아트라하시스>, <길가메쉬>

  2) 관습, 율법, 잠언: 누지 문서, <함무라비 법전>, 히타이트 조약 문서, <아메네모페의 교훈>

  3) 이스라엘과 왕들: 텔 단 비문, 실로암 터널 비문, 메사 비문


3. 각 그룹별로 제기될 수 있는 질문들

 

  1) 그룹1_ 창조와 홍수: 창세기는 신화인가 역사인가? 

     (1)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대근동의 창조와 홍수 이야기를 신화라고 생각한다. 

     (2) 그렇다면 고대근동의 창조와 홍수 이야기와 유사한 성경 이야기도 신화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3) 저자의 제안

: 신화에 대한 정의에 따라 달라질 것인데, 편견없는 정의는 '신화는 인간과 우주의 기원, 그리고 그것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 고대인들의 대답 방식'이다.  당연히 고대인들의 세계관, 즉 근대적인 사유나 과학적인 사고가 생겨나기 이전의 세계 인식을 반영하게 된다. 


고대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으로 설명하는 방식(특히 이야기 형식으로)


  2) 그룹2_관습, 율법, 그리고 잠언: 계시인 성경은 독특한가?


    (1) 누지 문서를 통해서 보면 구약의 족장 이야기는 주전 1500년까지 올라간다.(물론 기록은 주전 1000년 이후라고 본다.)

    (2) 하나님이 족장들에게 따르라고 요구했던 도덕적인 기준은 독자적인 명령이 아니라 주변 문화의 관습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됨.(당시 사회적 규범이 고스란히 적용된 결과)

    (3) 당혹스러운 것은 적어도 전통적인 입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하나님이 직적계시한 것이기 때문에 고유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4) 이 문제는 <계시란 무엇인가>라는 더욱 핵심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5) 성경의 내용과 고대 근동의 문헌 사이에 유사성과 연관성을 부정할 수 없다. 


  3) 그룹3_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왕들: 좋은 역사서술은 받드시 객관적인가, 아니면 주관적일 수 있는가?


    (1) 텔 단 비문, 실로암 터널에 나타난 자료들은 오히려 성경의 역사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2) 그러나 이것이 고대 족장의 역사적 신빙성까지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는 상대적으로국가적으로 평온했던 시기였기에 자료들을 남길 수 있었다.(어찌보면 근대 역사 기록과 유사한 상황이라 볼 수도 있다.)


    (3) 열왕기를 보면 왕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을 이루는 것을 볼 때, 그래도 미화시킨 역사라기 보다는 정확한 역사서술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4)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역사서술이 가능한 것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5) 메사 비문에서 메사 왕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함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역사 기록은 사실 그대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메사 비문에 거짓말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사실적인 내용들이 들어가지만, 거기에는 왕이 위대함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들어가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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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33편]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그 동력이 불안 때문이라면, 그 기도는 건강한 기도는 아닐것입니다. 영적 전투와 전쟁에 대한 강조가 적에 대한 두려움에만 기인한다면(불안을 조장한다면) 그 또한 건강한 영적 긴장감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만물을 다스리시고, 민족과 나라 위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노래합니다. 기도도 그렇고 영적 싸움도 그렇고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한,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싸움을 강조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강조하는 곳이고 그로 인해 나와 주변이 평안을 얻는 종교입니다. 시편 33편으로 추천합니다. 샬롬~


[정리1]


1.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라면, 그 분을 즐거워하고 찬양해야 한다.


1절.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2. 온 우주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광대하심


6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7절)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8절)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9절)


3. 하나님은 모든 나라 위에 계시며, 모든 구원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10절.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11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12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13절)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14절)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16절)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17절)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19절)


4. 시편 기자가 여호와를 바라고 소망함.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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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쓴 책,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하는 종합적인 책.



1장. 그저 하나의 이론(?)

진화론을 그저 하나의 이론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법칙이 아닌 이론이라고 말하는데, 진화론은 법칙에 가까운 이론이다. 창조론자의 허무 맹랑함을 비판한다.


2장. 개, 소, 그리고 양배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쓸 때, 당시 사람들은 종의 진화까지 생각했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윈은 종의 기원 첫 장에 <개의 육종>(품종을 위한 다양한 방식이 이미 오래 동안 진행되어 왔다.늑대의 가축화)을 다룸으로서 인위적인 선택을 통해서 짧은 시간에 인간이 원하는 <개>를 조각해 왔다고 말한다. 이런 변형이 가능했다면, 수백만 년에 걸쳐서 같은 일을 해내지 못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개뿐 아니라, 양배추나 소에 대해서도 다양한 품종이 변형되었다.)

사람의 증언을 믿기 보다는 그 사건 현장의 증거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마치 탐정처럼)


3장. 대진화의 꽃길 

자연은 선택한다. 자신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자연은 선택의 길을 따른다. 꽃이 번식하기 위해서 벌과 새들에게 꿀을 적절히 주고, 그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화려함과 향기를 낸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공작같은 새의 수컷은 생존의 위협이 동시에 있지만,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욱 화려해진다. 이와 같은 자연의 선택이 있다. 

자연은 인간이 인위적인 선택으로 육종을 개발했듯이, 자연의 선택을 통해서 생존을 유리하게 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선택의 보편성(특수성은 인위적 선택을 통해 만든, 개나 해바라기 같은 것)을 발견한 것이 다윈이다. 자연 선택이라는 말을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쓰게 되기도 했다.(자연 선택도 인위적 선택과 같이 어떤 목적과 방향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자연 선택이 그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도킨스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크게 변한 사례(여우 길들이기) 등을 통해, 자연이 선택 행위자로서 하는 일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짧은 시간이 아닌, 긴 시간의 역사라면 현재의 모습을 충분히 진화라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도전한다.(물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겠다는 언급도 한다.)


4장. 침묵과 느린 시간

지구의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에 대한 장이다. 지질학적 비교를 통해서 서로 다른 층들을 구분할 수 있고, 이후에 방사선 동의 원소와 같은 다양한 년대 측정법을 통해서 확인해 보면 지구의 연대가 46억년 정도로 나온다고 한다.(물론 오차범위 안에서) 방사선 동의 원소 방법에는 탄소 14(질소 14로 변환)를 가지고 측정하는 방법과 칼륨-40과 아르곤-40의 비율로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반감기 12억6천만년)

 *지질학 시계

 * 영점화시점: 화강암이 굳기 시작한 시점(영점화, 칼륨-40 100%)에서 캴륨-40(불안정)이 아르곤-40(안정)으로 변화되는데, 화강암에 있는 캴륨-40과 아르곤-40의 상대적 비율로 연대를 측정한다. 


5장. 바로 우리 눈 앞에서

이 장에서는 특정한 관찰과 실험으로 30-40년 만에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을 관찰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프리카 코끼리의 엄니 크기가 작아졌다.(밀렵군에게 살아남기 위해), 도마뱀이 진화하게 된 이야기, 특히 대장균 실험을 통해서 짧은 세대를 통해서 수 만 세대의 변화 속에서 돌연변이와 진화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살아있는 화석'(오랫 시간 속에서도 거의 변화가 없는 현존 생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아프리카 코끼리의 엄니 크기 변화(작아짐. 30년동안)

도마뱀의 진화(30년, 매장 판막, 초식으로 식성의 변화)

대장균의 진화(한 세대가 몇 분, 몇 초이 때문에 30-40년의 관찰로도 진화를 관찰할 수 있다. 게다가 무수히 많아 돌연변이의 가능성이 높다.)


6장. 잃어버린 고리? 뭘 잃어버렸단 말인가.

창조론자들은 화석으로 많은 시비를 걸고 있는데, 나는 화석이 하나도 없어도 진화가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서 말하고 있는 진화의 과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잘못된 방식으로 전하는 창조론자들에 의해서 잘 못알고 있다. 초반에는 잃어버린 고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지적한다.(공통조상에 대한 이해 부족) 그 다음으로는 잃어버린 고리의 실재적인 예들을 제시한다. 주로 수중 생물(어류)이 어떻게 육지로 올라오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중간고리들에 대한 예들을 제시함으로, 창조론자들이 중간고리가 끊어졌다는 것에 대한 반증을 하고 있다. 


7장. 잃어버린 사람들? 다시 찾은 사람들.

다윈은 인간의 진화에 대한 증거가 앞으로 많이 나오게 될 것을 예견했다.(그러나 정작 그 시대에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화석이 아프리카에 있을 것으로 보았으나 다윈 이후 학자들은 아시아 쪽으로 향했다. 오래된 화석을 찾지는 못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침팬치에 가까운 직립보행 유인원)나 혹은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와 가까운 단계)와 같은 중간화석을 발견했다. 그러나 학명을 고정하여 그와 비슷한 전후 진화 생물을 모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호모로 불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마치 그 중간 화석은 없는 것인냥 생각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창조론자들은 그 중간 화석이 없음을 지적한다.(그러나 학명 체계가 그 중간에 다른 이름을 넣을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있다.)

어린 침팬지가 인간의 얼굴과 유사하다는 것을 통해서 볼 때, 발생학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살피는 것이필요하다고 인식하면 글을 마친다 


8장. 우리가 아홉 달 만에 스스로 해낸 일

발생학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그토록 복잡한 인간이 될 수 있는가? 드킨스는 홀데인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것은 당신도 알고 있으면, 아홉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태아의 발달을 말함)고 오히려 말했다. 이 장은 대충 보았는데, 세포의 분열을 통해서 한 세포 안에서 각각 계통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세포가 분열되어 각기 다른 역할을 하게 되는 방식으로 세포 분열이 일어나는데, 이는 전체적인 조정자가 기회자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선택으로 되어진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각 세포들이 국지적인 규칙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라고 했다.(마치 설계도면도 없이 인부들이 자기의 일을 했는데 멋진 건축물이 생겨나는 것처럼. 저자는 건물에서 그렇게 될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자연선택은 유전자를 직접 선택하는 것은 아니고 유전자의 대리인인 개체의 몸을 선택할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전자는 성체의 형태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배아 발생 과정을 통제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9장. 대륙의 방주

섬이 없는 하나의 대륙을 상상해 보자. 그 곳에 사는 동식물은 어느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화는 지리적인 격차를 통해서 발생하게 되는데, 다윈이 핀치 새를 봤던 갈라파고스 군도는 남아메리카로부터는 거의 천킬로미터, 그리고 그  군도 안의 섬 사이에서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기에 그와 같은 분화를 통한 차이를 관찰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였다고 본다. 드킨스는 지역에만 한 정된(갈라파고스, 마다가스카르, 호주, 남극 펜귄...) 동물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이 가는한가 묻는다.(노아 홍수를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판구조론을 통한 대륙이동을 통해서 화석과 현생 생물의 분포에 관한 수많은 사실을 설명해주고, 지구가 어머어마하게 늙었다는 것도 증언해 준다.(창조론자들은 판구조론을 노아홍수때에 고속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섬과 대륙의 동물 분포만으로도 진화의 증거를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화석이 없어도 증거는 충분하다고)


10장. 친척들의 계통수

포유류의 골격은 서로 비율이 다를 뿐, 서로 대치되는 뼈의 골격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두개골은 28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포유류가 똑같이 28개의 뼈를 가지고 있다. 파충류는 어류와 뼈의 움직임이 같고(좌우로) 포유류들은 뼈의 움직임이 상하로 움직인다.(고래와 돌고래도)_해부학적인 측면에서의 진화를 설명함. 

분자 생물학적 비교_토끼 항체를 통한 계통간의 거리, DNA 녹는 점을 통한 방식, 직접적인 서열 분석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계통간의 간격을 파악할 수 있다. 

자료: 힐리스 도표(437면) 생물의 계통수를 하나의 원으로 그려낸 것.


11장. 우리 몸에 쓰인 역사(흔적기관에 대한 이야기/지적이지 못한 설계)

영국에 과거 로마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처럼, 생물에는 과거 진화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두려울 때 털을 세우는 특징, 돌고래의 뇌가 포유류의 뇌처럼 주름이 있다는 것, 돌고래의 호흡기관, 돌고래도 포유류와 같이 자기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을 갖음. 지금 날지는 못하지만, 조류로서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타조,에뮤,레아,펭귄,..), 파리는 곤충중 두 날개만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두 날개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일개미들은 날개는 없는데 날개를 만드는 흔적을 가지고 있다. 여왕개미는 평생 한 번 날개를 쓰고는 없애 버린다.(몸 속의 흔적을 통해서 그가 어느 소속인지를 알게 된다. 돌고래가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라는 것을 알듯 / 개미로 위장한 딱정벌레가 있다는 것을 알듯)

동물의 신체 속에는 불완전한 지체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그 기능을 보강하는 것으로 진화했다고 본다.(따라서 지적 설계자들의 주장을 약화시킨다. 완벽한 설계가 아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기관을 몸이 보완해 가면서 진화해가는 형식이라고 본 것이다.(대표적으로 기린의 예를 든다.)

우리가 동물들을 겉에서 보면 그 훌륭한 구조에 압도되어 설계라는 망상에 빠지게 되지만, 내부를 들여다 보면 엉망진창이라는 인상을 받는다.(큰 동물의 경우) 지적 설계자의 설계라고 보기에는 민망하다. 다만, 자연선택은 선견지명을 통해 이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선택한 것일 뿐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손에 넣은 것을 조각조각 이은 것에 불과할 뿐..


12장. 무기경쟁과 진화적 신정론 _ 지적 설계에 반대적인 입장의 증거들 제시

숲에서 나무가 높이 자라는 것은 지적 설계자가 있다면, 전혀 경제적이지 못한 것이다. 자연선택이 그렇게 나무를 크게 만든 것이다. 무기 경쟁(치타는 더 빨라지려고 하고, 가젤은 더 잘 피하려고 할 것이다.)에서 신은 누구의 편인가? 신의 지적 설계라면 말이다. 진화론자들은 서로 상대를 능력하려고 하는 노력일 뿐이라고 본다. 자연적 진화(발달)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인데, 왜냐하면 필요한 부분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측면에서의 위험과 결핍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적정선에서 발달은 한계에 부딪힌다. 

지적 설계자를 믿는 자는 적정선에서 균형(포식자와 사냥감)을 이루도록 계획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진화론자들은 그런 계획은 없다고 본다. 그런 조정은 자연 스스로가 한다고 본다. 경제학을 따진다면 지적 설계자들은 탁월하게 계획하는 경제학자라고 볼 수 있지만, 진화론은 아담 스미스처럼 보이지 않는 손을 떠올리는 것이 옳다. 

고통의 문제에 있어서 저자는 말한다. 지적 설계자가 있다면, 이 땅의 생물 세계에서 보는 고통스러운 현상(자기 존재를 확대하기 위한 무의미한 행위)에 대해서까지 계획했다는 것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맵시벌은 희생자를 죽이지 않고 마비시키기만 해서 자신의 유충을 그 않에 낳는다. 그 유충은 그 희생자의 싱싱한 살을 먹으면서 성장하는데, 그 살을 먹은 순서도 매우 치밀하게 되어있다.)


13장.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 마지막 문단을 해설하는 것으로 이 책의 마무리를 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따라서 자연의 전쟁으로부터,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 즉 더욱 고등한 동물이 직접 생성되어 나온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있다. 최초에 소수의 형태 혹은 하나의 형태에 갖가지 능력을 지닌 생명의 숨결이 불어넣어졌다. 행성이 고정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영원히 돌고 도는 동안, 이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가 진화애 나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밑줄 그은 구절들에 대한 설명을 해나가면서 책의 마무리를 하고 있다. 저자는 생명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증거가 없다고 말하면서 단순한 단백질이나, DNA로는 설명이 안되나 RNA로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희미한 가능성만 밝힌다. 자연선택은 무작위적인 작업이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생명의 작은 변화들을 체계적으로 포착하여, 상상하기 어려운 긴 시간에 걸쳐 아주 조금씩 그것을 축적하여 결국 진화로 하여금 불가능과 다양성의 산을 오르게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너무나 아름다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무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직접적인 결과다. 그것은 마을 유일의 게임, 지상 최대의 쇼다.


[부록: 역사부인주의자들]


도킨스는 미국과 영국에서 진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퍼센테이지가 우려할 만큼 높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우주 역사를 1만년 이내로 보는 사람이 42%, 영국의 경우는 신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창조(젊은 지구, 오래된 지구 포함)를 믿는 사람이 39% 라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다. 

미국의 과학교사들이 진화를 가르치려고 하면, 그것을 거부하는 학생들이 있고 그것을 뒤에서 지도하는 교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한탄스럽다고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도킨스가 기독교인만을 대상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무슬림도 동일한 창조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한탄스럽게 말한다. 도킨스는 공격 대상은 셋이다. 1만년 이내의 우주 역사를 믿는 기독교인, 또 그렇게 믿는 이슬람 그리고 진화를 통해서 된 것이지만, 신의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지적 설계론자들이다. 도킨스는 이들을 대상을 계몽하고 싸운다.

또한 그가 계몽하는 대상 중에는 과학에 무지한 일반인들에 대한 것도 있다.(영국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한달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9%라고 한다. 도킨스는 그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 정리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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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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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8편] 하나님은 인생을 매우 존귀하게 지으셨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으며 그 발 아래 두셨다(5,6절)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 의미를 <인간이 마땅히 군림해야 한다>라는 의미로 쓰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자연과 다양한 생물에 비해 무력하고 무능한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인간에게 그와 같은 큰 책임을 맡기신 것에 대한 놀람과 경이의 태도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이 태도는 잃어버리고, 성경의 문구만 붙잡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왜 우리는 자연 앞에 겸손을 잃어 버렸는가? 이 겸손을 잃으니 하나님을 향한 경이도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아닌가!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기]


1. 시편 기자의 첫 고백(1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시편 기자가 경험한 것(2절)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 시편 기자는 천지에 대한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대부분 그와 같은 고백을 하지만, 그와 같은 감탄의 고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대적을 강한 자를 통해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 아이와 젖먹이를 세우셔서 그들을 잠잠하게 하신 것으로 인하여 한 고백이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는 것인가 놀라게 된다. 두가지에 대해서 놀랐다고 봐야 하는데, 첫번째는 하나님의 전능성이다. 또 하나는 자기 백성(인생)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이다. 도대체 인생이 무엇이길래... 이와 같은 일을 벌이시는가! 하는 것이다 .


3. 시편 기자의 탄성과 놀람(3-8절)

  내가 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 주께서 베풀어 주신 달과 별들.

  : 하나님은 그의 손가락을 하늘과 하늘의 달과 별들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 인생이 다른 피조물과 비교해서 무엇이 다른데(사실 다른 것이 없는데) 이렇게 인생을 생각하여 일을 진행하시니 놀랍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 자연의 거대함과 생명의 풍성함을 생각해보면 감히 인간이 그것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한데, 하나님은 무력한 인간(인생)들에게 그것을 맡기셨다. 인간이 마치 하나님보다 조금 정도만 못한 것처럼 만드셔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 별것 없는 인생에게 말이다. 시편 기자는 생각하면 할 수록 그 신비에 놀라게 된다. 


4. 시편 기자의 마지막 고백(9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여호와 하나님은 이 땅에 인간의 이름으로는 충분히 찬양을 받을 만 하시다. 



[정리2. 본문에서 주고 있는 메시지와 묵상들]


1. 시편 기자는 일상의 경험(대적을 이긴)을 통해서 우주와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경이를 가지게 된다.


2. 인생은 자연의 거대함에 비하면 젖먹이와 같은 무력한 자에 불과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생에게 과분한 존귀와 역할을 맡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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