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4.1.25)_영상만 되고 음성은 안되네요 ㅠㅠ



제목: 빛이 어둠에 비추다III

본문: 요 1:1-13


 * 성경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했을 때, 그 죄가 어떤 성격을 가진가진 죄인지에 대해서 설교함.



[녹음이 안되어 있으니, 설교 원고를 올립니다.]


본문: 요 1:1-13

제목: 빛이 ‘어두움’에 비추다III


I. 들어가는 말

 1. 지난 시간: 우리의 상태가 ‘어두움’이라고 말씀드림.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켜 내는 존재라는 말씀을 드림. 

 2. 이 어두움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더 깊은 어두움을 향한 경향성을 가지는 것.(신학적으로는 이것을 ‘오염’이라고 함)

 3. 성경이 이 세상과 우리 각 사람을 향해서 ‘죄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측면을 포함햐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적용]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사람이 모든 면에서, 영원히 완전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선한 의도는 언제든지 왜곡되고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성교제: 밀폐된 공간으로 따로 가는 것을 경계

  - 재정관리: 지출을 결의하는 사람과 지출하는 사람이 구분/ 또한 정기적인 제 3자의 감사가 필요.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빨리 발견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 

  -> 이런 제도들이 존재하게 된 것은 인간 안에 있는 죄성에 대한 인식을 경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시스템으로 인해서 서로간의 불필요한 의심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 할 수 있다. 

 

II. 본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죄의 성격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죄도 크게 둘로 구분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이해될만한 죄가 있을 수 있고,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둑질과 같은 경우. 명백히 죄다.

   (1) 생계형 범죄(실직, 초범, 우발적, 생계문제 때문에...)

   (2) 상습적, 향락을 위한 비용만련(술, 도박, 여자...)

  -> 같은 도둑질이지만 죄의 형량도 다르고, 죄에 대한 감정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살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 우발적 살인, 정당방위로서의 살인이 있다.(이해, 용납..)

   (2) 그러나 용납되지 않는 살인이 있다.


   예) 2015.1.13. 안산에서 발생한 인질극, 살인사건의 경우

   - 아내를 의심해서 전 남편을 죽이고, 의붓 딸도 성폭행 후 살해 / 죄책감도 없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


  [정리] 성경에서 지적하고 있는 인간의 죄란 바로 후자와 관련되어 있는 인간의 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은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고 까다로우셔서 그 분의 까다로움의 기준 때문에 우리가 죄인으로 정죄단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치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기준을 제시하는 분의 엄격함과 까다로움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그래서 순순히 인정하지 못하고 억울해 한다. 하나님이 그런것까지 이해를 못해주시고.. 나만 그런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다. 성경은 언제나 잘못한 사람의 죄를 우리들에게 ‘고발’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정말 누가 잘못한 것인지, 한 번 논쟁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마치 배심원 재판을 하듯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발합니다. 



1. 사 1:2-4 하나님의 울분과 분노의 근거(부모 자식의 비유)

  1) 이스라엘은 부모를 거슬르는 자식이다. 

  2) 이스라엘은 짐승만도 못한 자식이다. 

  3) 이스라엘은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다. 

  :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비유하고 있다. 그것은 그 시작 자체가 일방적인 은혜 관계로 시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늙으면 자식이 부모를 공양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전제로 해서 어린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부모도 그것을 담보로 해서 자녀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시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느끼듯이 그와같은 부모의 희생을 통해서 자라난 사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그것은 패륜아, 불효자라고 불리우고 사회적으로 인간이라 여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셨습니다.(낳으신 것입니다) 조건없이 낳으셨고, 길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냉담할 정도가 아니라 부모를 없신여기고 배신합니다. 

   - 그렇게 낳고 길렀던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에게로 가버린 것입니다. 왜요? 그가 더 좋은 것을 준다고 말입니다. 


  [적용] 그러니 내가 이스라엘에게 화내고 분노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하나님이 오히려 유다 백성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잘못이 아닙니다. 실수나 충동, 한 때의 반항이 아닙니다. 


 2. 호 2:2-5, 8절. (부부의 비유)

  1) 부정한 여인을 데려다가 아내를 맞으라

  2) 부정한 자식을 낳으라.(누구의 자식인지 알수 없는)

  3) 당당하다 못해 무지한 태도에 어이없음

  4) 남편을 버리고 떠남

  : 부부관계라는 언약관계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 언약의 당사자들이 공정한가? 그렇지 않다.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서 은혜로운 언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인 이스라엘은 ‘배은망덕’으로 행동함을 성경은 말한다. 


  [적용] 부부의 도의를 깨뜨린 것이다. 누가 들어도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먼저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대가를 바라거나, 거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은혜를 베푼 관계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3. 마 21:33-41 (사업의 관계)

  1) 주인: 포도농장, 울타리, 망대, 포도즙짜는 틀 / 임대

  2) 때가 되어 세를 받으려고 종을 보냄(3명)

  3) 더 많은 종을 보냄

  4) 아들을 보내면 어쩌지 못하겠지...

    : 아들을 보자 오히려 이를 죽이고 이 땅을 차지하자./죽임

   : 이 포도원 농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진멸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농부들에게 주어야 한다.(누가 읽어도 공감함) 이렇듯 성경은 우리 인간의 죄가 바로 이와같은 죄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지적하시고 있는 하나님의 죄인 것입니다. 이해되거나 용납될 수 있는 그런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행한 당사자가 들어도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을 행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판단하지 않을 수 있고, 정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4. 그런데 정말 더 심각한 상황은 본인이 그와 같은 ‘죄’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두운 우리의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심각한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 따라서 절대로 개선의 여지가 없는 상태가 바로 ‘우리 자신의 어두움’이라는 것입니다.(너무 큰 죄를 향하고 있는데, 본인이 그런 상황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할 때... 개선의 여지가 없음)


따라서 이 상태로 그대로 간다면,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죄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 3:23)는 말씀의 의미인 것입니다. 


  예) 종합건짐검사: 위암 초기라는 결과가 나옴

   - 암이 모든 경우 사망에 이르지는 않지만, 비유로 말하자면

   (1) 그 결과를 모르면: 모른 채로 진행되어 결국은 사망

   (2) 그 결과를 알지만 아무런 조취를 취하지 않으면.. 사망


 위암 초기야 별로 자각 증상이 없을테니 일반적인 생활에 문제가 없어서 평소처럼 문제의식없이 먹고, 마시고 살아간다면..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성경은 우리가 ‘깊은 죄’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별반 이상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영적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 모른다고 해서, 나는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5. 복음이 바로 여기에 개입되는 것입니다. 


  1) 자신의 위태로운 운명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찾아와 주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CT촬영을 통해서든 초음파를 통해서든 MRI를 통해서든 정확한 실체를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당신의 실제 상황입니다. 위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적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 

  - 요 1:10-11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각 증상은 아직없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실체적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알아 그 문제를 지적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오히려 복된 삶의 길로 인도되게 된다는 것.

  - 요 1:12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특권)를 주셨으니.

 

III. 결론


1. 다윗이 어떻게 빛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되었는가? 

   삼하 12:1-6. 나단이 지적하기 전까지 죄를 알지 못한 다윗

  1) 나단이 한 사건의 판결을 의뢰함 / 다윗이 분노. 사형선고

  2) 나단: 다윗은 더 나쁜 사람임을 직면시킴


 [정리] 없던 죄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어둠에 가려져있고, 변명과 핑계에 가려져있고, 무지와 무감각 속에 알아채지 못했던 죄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리로 나아왔던 것입니다. 거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32:1)


 2. 우리가 죄인인 것을 언제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마음으로 정죄하고 판단하고 있는 대상과 똑같은 패턴의 행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발견되시거든, 급히 그 자리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오시는 복을 얻으시길 축언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거나 깨닫게 해 주고 있다면,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을 비추고 있는 줄 알고 그 빛 가운데로 나아오시길 축언합니다. 


 롬 2:1-2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5.1.11)


제목: 빛이 어둠에 비추다II

본문: 요 1:1-13


 * 빛을 거부한 세상과 사람 안에 있는 어둠에 부분을 지적함. 어둠의 본질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전하고, 오늘은 그 어둠이 가져올 결과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복음'이 시작됨을 주로 다룸.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본문 정리]


[교회 안에서 판단해야 할 사람들]


1.고린도 교회 안에 음행한 자를 용납하는 문제가 있었다.(이 음행의 정도가 심했다.) 음행도 큰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교회가 음행한 자를 통한히 여겨 좇아내지 않고, 교만하여 이들에 대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것.


2. 이와 같은 자들은 가만히 두면 누룩처럼 퍼져감으로 제거해야 마땅하다. 이들을 제거함으로 교회는 살아나게 된다.(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받게 해야 한다. 5절) / 유월절에 누룩을 제거하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을 먹듯 이와 같은 자들은 교회에서 내어 보내야 한다.


3. 이전에 보낸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명령한 말씀의 의미.

  1)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려며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다. 


  2) 그 때의 의미는 형제라고 말하는 성도들 안에서 그와 같은 자와 사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도라고 말하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3)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문제이기 때문이다. 너는 성도 안에 있는 대상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죄인들에 대해서는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생각 정리]


1. 교회는 두 가지 차원에서 '죄'에 대해서 준비해야 한다. 


  1) '죄'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거룩하고 경건한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2) 그럼에도 '죄'가 발생했을 경우, 그 이후 '죄를 저지를 사람'을 처리하는 과정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면서도, 연약한 사람으로서 공동체의 지도에 신뢰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죄가 발생한 후'에 대한 공동체적인 후속작업이 일관성이 없거나 혹은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그 공동체는 '죄'가 잘 자라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꼴이 되고 만다. 


따라서 공동체는 두 가지를 잘 준비해야 한다. 죄가 자라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고, 드러난 죄에 대해서는 신속하지만, 지혜롭게 처리하는 준비를 잘 감당해야 한다.


2. 교회 성도들이 판단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교회 안 사람들인가 교회 밖 사람들인가?


  1) 바울은 일차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대해서보다는 '교회 안' 성도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엄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도라고 말하면서,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사기치는 사람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도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오히려 교회는 이들을 '판단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는 '죄'에 대해서는 세상보다 더 엄격한 공동체다. 


  2) 반면, 교회 밖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라고 말씀한다. 교회 밖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좀 더 관대해 질 것으로 말한다.(용서하거나 봐주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의 일부라는 측면에서 대하지 말고(일부라는 측면이라면, 병든 곳을 도려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을 대하듯 좀 더 관대해지도록 하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은 하나님께 맡기도록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 몸의 자정능력으로 신속히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도록 하고(아니면 의사에게 우리 몸의 병든 곳을 맡기든지), 우리 몸 밖에서 일어나는 일(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치려고 하지 말고, '경찰'에게 맡기라고 바울이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죄를 지적하지 말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직접 재판하지 말라는 의미일듯 하다. 



[적용]


1. 우리 몸의 문제는 '의사'에게 맡기고, 다른 사람의 문제는 '경찰'에게 맡기자.


2. 죄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적이니 노력과 개인적인 노력을 힘써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죄가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언제든 발생하게 되는 죄에 대해서 공동체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 세월호 사건을 단순화 하자면, 죄를 예방하기 위한 구조적인 정책은 존재했으나 그것을 따르고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도덕에 대해서는 검증하지 않았다. 검증이 오래도록 되지 않음으로 방치되었고 그곳에서 불법적인 관행이 생기게 되었다. 악이 구조화된 것이다. 구조화된 악은 권력과 밀착해있고, 그것을 고발해야 할 언론은 그들의 입을 닫았다. 최후의 경보까지 모두 구조적 악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세월호는 침몰했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가장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 중에 하나는 언론이라고 본다. 언론은 사회 감시라는 기본적인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지 못했다. 마지막 경보장치만 미리 울렸다면, 사태가 이렇게 가지 않았을 것이고 이 사건은 예방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본문]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해설]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하고 있는 권면은 개인적인 경건을 위한 권면은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성도 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권면이다. 6장 1절이 '한 사람의 범죄'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권면하고, 6장 2절에서는 성도 중 누가 자신의 짐을 지는 것이 힘겨워할 경우 그 짐을 서로 져주라는 권면을 하고 있다. 


교회는 지상의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여전히 '죄'가 있고, '연약함'이 있다. 죄의 문제를 다룰 때, 그 죄를 범한 자를 온유한 심정으로 바로 잡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서는 안된다. 그 죄가 드러나게 된 <공동체>의 문제도 개선되어야 한다. 죄는 그냥 발생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토양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란 것이다. 그와 같은 토양이 형성되도록 방치한 공동체도 문제가 없지는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교회 공동체 내에서 죄를 다루는 방식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연약한 지체>에 대한 교회 성도들의 태도다. 그들의 연약함에 대해서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 주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각자 개인의 짐을 개인에게만 두어서는 안된다. 기본적인 원칙은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각자 자기의 일을 돌아보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개인의 역량이 부족할 수도 있고, 개인의 주변 환경이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와 같을 때, 교회 공동체는 그 사람의 연약함을 보고(게으름이 아니다.) 남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짐을 함께 져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한 몸을 이룬 지체다. 지체가 지체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강한 지체가 약한 지체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것은 한 몸으로서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한 몸이라 말할 수 있고, 한 몸은 당연히 그렇게 한다.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자랑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면이다. 자랑할 만한 것이 있을 것 같을 때에라도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만 그렇다고 생각해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자랑할 만큼 스스로 높이지를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주님도 사람들에게 상석에 앉지 말고, 낮은 곳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높여서 자리를 옮겨주면 모르지만, 괜히 높은 곳에 먼저 앉다가 나중에 낮은 자리로 쫓겨나게 되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다. 


연약한 자의 짐을 많이 져주었다고 할찌라도 그것이 자랑이 되지 못하도록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강한 자일수록 자신의 일을 늘 살피어, 겸손해야 함을 바울은 권면하고 있다.


[묵상] 


1. 바울의 권면은 개인 경건의 권면이라기 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성도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2. 죄를 범한 자에게 대해서는 바로잡도록 하고, 공동체의 경계를 삼아야 한다. 


3. 연약한 자에 대해서는 서로 짐을 져주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남의 일처럼 여겨서는 안된다. 


4. 능력있어서 자신의 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까지 섬긴 자는 교만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교회 공동체는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있다. 모든 사람을 공평케 만드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약해도 절망할 필요가 없고, 강해도 자만할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 약한 자도 함께 존중받으며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강한 자의 능력은 섬기기 위한 능력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곳이 교회 공동체다. 

교회 공동체는 심지어 '죄'가 일어나는 곳이지만, 그 죄를 일으킨 사람을 '옳게 세우는 곳'이며 심지어 그 한 사람의 죄로 인해 교회 전체가 새롭게 갱신되는 곳이다. 교회를 이런 공동체여야 하는 것이다. 



지상의 교회 공동체에 죄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또한 지상의 교회를 세상의 어떤 공동체보자 강한 공동체로 만들려고하는 시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교회는 '죄'와 '연약함'을 부정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세상의 여느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죄'와 '연약함'으로 불완전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선'을 만들어 내는 공동체가 바로 이 땅의 교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한 사람의 죄를 통해 공동체의 자정능력을 키우고, 한 사람의 연약함이 공동체의 한 몸 됨을 드러냄으로 불완전하지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죄와 연약함을 부정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와 연약함을 거쳐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려 하는 것입니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4. 미가 7:1-6 죄악이 깊으면, 심판이 임한다.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인 처지를 말하고 있는 내용이다. 모든 과일 추수가 마치고 아무 열매도 남지 않은 것처럼 이 땅에 의로운 자 하나 없는 상황임을 말한다. 성실한 자도 정직한 자도 하나 없다. 사람마다 악을 행하고 공의를 행해야 할 재판관은 뇌물을 찾는다. 가족조차도 믿을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때가 되었다. 


절별 해설

7:1 <<좋아하는 무화과 열매 하나 없구나>> 1절 이후의 내용을 염두해 둔다면 여기서 말하는 무화과 열매란 의로운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도 있어야 할 최소한의 의인이 없어서 멸망에 이른 것처럼 이제 이 땅도 그와 같은 진노가 임하게 될 상황임을 말하는 것이다.


7:2 <<누구나 자기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 할 뿐이다>> 형제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라도 돕고자 하는 관계를 가진 대상이다. 그런데 그런 대상인 형제에게조차 자신의 득을 위해 속여 넘어뜨리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그 사회의 악함이 얼마나 팽배한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7:3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하며>> 재판관은 대상이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옳고 그른 기준으로 진실을 파악하여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다. 권력과 휘들리고, 뇌물에 진실을 외면해서도 안된다. 재판관을 통해서 사회는 공의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런 재판관이 뇌물로 그릇된 재판을 한다는 것은 사회에 만연한 불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7:4 <<그들 가운데서 가장 낫다고 하는 사람도 가시나무 같고>> 당시의 사회의 수준이 얼마나 낮아지게 되었는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가장 악한 자가 아니라, 가장 낫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가시나무과 같는 존재인 것이다 .


7:6 <<너희의 원수는 다름 아닌 너희의 식구가 될 것이다>>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 안에서조차 서로 믿지 못해 원수가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만큼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불의하고 패역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기도

주여, 이 시대의 죄악이 미가 선지자의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깨다는 성도가 되게 하시고 그 가운데 공의와 정의를 따라 사는 백성이 되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노아의 홍수 심판이 있기전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했다.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 6:5) 이라고 지적한다. 그와 같은 만연된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게 된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임했던 심판도 마찬가지다. 죄악이 가득했고 의인은 부재했다. 그 성 가득히 죄악이 넘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미가 선지자의 시대로 다르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유다 전역이 불의와 거짓으로 가득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도 없고, 그것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사람도 없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도 없었다. 이와 같은 죄악의 만연함은 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표징이 되었다. 마지막 날 주님의 재림도 마찬가지다. 죄악이 넓고 깊을 때, 주님의 임하심이 가까움을 알고 자신을 더욱 정결하게 준비해야 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3. 미가 6:9-16 죄와 죄의 영향력


찬송가: 장


여는 이야기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백성들끼리 하나님의 의를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주로 지적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이들이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고, 저울을 속여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이 악한 일을 하고 백성들은 거짓을 말한다. 이로 인해 이들이 얻고자 하는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시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절별 해설

6:9 <<지혜로운 사람은 주를 존경한다>> 심판의 막대기로 심판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거짓을 행하지 않고, 의를 행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존경이 그 분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6:10 <<남을 속이는 그들을 어찌 내가 잊겠느냐?>>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는 사람이 있음을 말한다. 남을 속여 그 훔친 것을 자신의 집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순간적 충동이었다면 돌려주었겠지만, 불의한 욕심으로 말미암은 악행에 대해서 하나님은 잊지 않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이다. 


6:12 <<성 안의 부자들이 아직도 못된 짓을 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이 생계와 관련하여 죄를 짓는 것도 율법은 허락하지 않지만, 생계형 범죄가 아니라 부자들의 욕심에 근거한 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히 지적하신다. 

<<백성은 아직도 거짓말을 하며>> 부자들이 욕심으로 죄를 범한다면, 백성들은 진실된 증언을 통해 공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지만, 백성들은 거짓 증언을 함으로 말미암아 진실은 더욱 왜곡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서도 심판을 말씀하신다. 


6:15 <<포도를 밟아도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은 탐욕과 거짓으로 많은 것을 얻어 부를 축적할 것 같지만, 오히려 쌓아둔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적인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게 할 것임을 말한다. 


6:16 <<너희가 오므리 왕의 못된 율법을 따르고>>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므리 왕조를 형성했다. 오므리 왕의 아들은 그 유명한 아합 왕이다. 아합의 아내는 악명 높은 이세벨이다. 오므리 왕조가 예후에 의해서 잔혹하게 심판을 받았듯이 오므리 왕조를 따라 악을 행하는 이 백성들에게 대해서 같은 잔혹함을 멸망시키실 것임을 말씀한다. 


기도

주여, 우리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공의를 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악인의 자리에 서지 않게 하시고 의를 행하는 자리에 서게 하소서. 죄는 작은 것에도 민감할 수 있게 하소서.


맺는 이야기

오므리 왕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고 북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이끌었던 왕이다. 성경에 자세한 언급이 나오지는 않지만, 주변 나라에게도 위협적일만큼 강력한 왕이었다. 또한 외교적으로 뛰어났던 것 같다.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은 자신의 아들 아합과 결혼시켰다. 그러나 오므리의 강력하고 뛰어난 통치는 북이스라엘을 외형적으로는 강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내면적으로는 급속한 타락으로 인도한 셈이 되고 만다. 오므리 왕조는 결국 예후에 의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지만, 남유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죄는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와서는 우리를 죄에게 종속시키고, 더 나아가 주변으로 죄를 확산시키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경각심을 늘 가져야 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여호와의 천사 앞과 사탄 앞에 선 여호수아의 모습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여호수아를 대적한다. 


  2) 여호와께서 이 상황 속에서 등장하시어 사탄을 책망하신다. 

   (1) 예루살렘은 내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더냐? (그 때,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있었다.)


   * 이것은 여호수아로 대변되는 모든 이스라엘이 죄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여 더러운 옷을 벗기라(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다.) 그리고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3)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혔다. 


  * 눅 15장에서 돌아온 탕자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며 신을 신기우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스가랴에서의 장면은 '죄를 씻어주심'을 강조하고, 누가복음에서는 '아들로서의 회복'을 강조한다. 



2.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와를 대신하여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다. 


  1)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고 내 뜰을 지킬 것이다. 또 내가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를 왕래하게 하리라. 

  2) 여호수아와 여호수아와 함께 있는 동료들에게 함께 말씀하심.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3)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고,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4)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에 그슬린 나무에 비유하셨다. 이스라엘은 불에 타던 중 건짐을 받은 나무와 같다. 겉은 새까맣게 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나무를 다시 꺼내셨다. 검게 그슬린 것은 이스라엘의 죄를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검게 탄 이스라엘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새 옷을 입히신다. 머리에 관을 씌우신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탕자를 다시 아들로 맞아주시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타는 장작 속에서 꺼내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타버리는 장장더미에서도 그의 백성을 끄집어 내신다. 그리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롭게 하신다.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하신다. 


2. 다시 새로운 언약을 맺으신다. 내용은 같다. 내 규례와 도를 지키고 따르면 이 곳을 다스리고 서로 왕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 앞에 있는 돌에 새기신다. 돌에 새기심으로 지워지지 않도록. 마치 10계명의 말씀을 돌판에 새겨졌던 것처럼 다시 선택하신 이스라엘과의 약속을 돌에 새기신다. 그리고 이 땅의 죄악은 하루에 제거하신다. 언약은 돌에 새기시고, 죄악은 하루만에 날려버리신다. 


3. 스가랴서는 하나님의 회복케하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다시 돌아오심으로 시작하다가 이제 그의 백성들을 새롭게 하심으로 전개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로 말미암아 떠나셨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돌아오신다.(그분의 섭리가운데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백성들의 죄의 문제들을 해결하신다.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새로운 옷을 입히신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하나님의 답변을 기다리는 하박국

  1) 내가 파수하는 곳에 서며 망루에 서서 나의 질문에 어떻게 답하실지를 기다림



2. 여호와의 답변


  1)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2)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더딜지라도 지체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 종말이 더디게 오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지체되는 것은 아니다. 예정된 대로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치면서 오는 것이다. 하나의 재판이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밝혀지는 것이) 상당히 긴 시간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며, 작은 미스라도 없도록 하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물론 인간의 법정에서는 그런 일이 적지 않지만)


  3) 악인들은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다.(4절) 그들은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넓히며(스올처럼) 족한 줄을 모르고 여러 민족들을 볼로로 잡으나 그것이 그들의 짐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결국 노략당한 자 중 남은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 그를 괴롭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강포를 행했기 때문이다.  


  4)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절)


  * 바벨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 방향은 이스라엘을 향하기도 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에서 너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는 듯 하다. 하박국은 그들의 악함을 지적하여 하나님께 항변하나, 점차 우리들의 악함이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하박국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여 심판을 요구하듯이, 하나님은 그들과 같은 죄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은근히 지적하신다. 마치 요 8장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처럼. 


----------

  5) 네가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높은 데 깃들이려고 하지만 헛되다. 자기 사욕을 위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고,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이 오히려 재앙을 부르게 되었다. 담의 돌들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한다.


  6)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7) 왜냐하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 악을 행하는 자들이 힘을 기르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데 거하며 성을 쌓을 찌라도 그들은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정의와 공의의 영광이 바다처럼 그 모든 악인들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

  8)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게 화가 돌아갈 것이다. 이웃을 술 취하게 하는 너에게 더 큰 수치가 임하게 될 것이다. 네가 레바논에 행한 강포를 행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 


  9) 새겨 만든 우상이 무슨 능력이 있느냐? 은과 금으로 입혔다고 한들, 도무지 생기가 없다. 

 

  10)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하라.


  * 우상은 은과 금으로 장식하고 뭔가 그럴듯 해보이지만, 우상에게는 아무런 생명이 없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다른다. 성전에 계셔서 우리의 일상과는 떨어져있고,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그는 살아계시고, 온 땅에 충만하기 때문이다. 



[묵상 한 모금]


1. 하박국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본격적인 답변을 하신다. 


하나님은 달려가면서도 볼 수 있도록 명백하게 새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논리가 없는 분이 아니시다. 그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논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누가보더라도 합리적인 논리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부터 하실 묵시의 내용을 명백하게 새기라고 말씀하신다. 


2.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보다 더디게 나타난다. 하나님이 일을 느리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고 엄밀하시게 하기 때문이다. 한 사건의 재판이 속전속결로 끝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시간을 가지고 정확한 사실여부를 파악해서 명확하게 선악을 판단해 주어야 좋은 재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좋은 판사처럼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한 절차들을 밟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느린것처럼 여긴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면 우리에게 유리하게 결정을 빨리 내려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편이시기 때문이다. 

헛된 시간은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을 하나씩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디지만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게 될 것이다. 


3. 바벨론의 악함으로 시작된 하박국의 고소는 너희 유다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것 같다. 


하박국의 첫 시작은 바벨론의 악함에 대한 고소로 시작된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악함에 대한 증거가 너무 충분하기 때문에 그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서 당당하게 힐난한다. 하나님의 조심스러운 답변이 있었지만, 하박국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몰아붙인다.


그러자 하나님은 작심하고 답변하신다. 그리고 그 답변은 하박국을 만족시켜 주는 답변이라기 보다는 하박국으로 하여금 부끄럽게 만들어 버리는 답변이다. 즉, 하박국에 대해서 심판할 것이지만, 너희 유대인들도 하박국과 같은 죄를 짓고 있지 않느냐? 말씀하고 있는 것 같다. 하박국을 당장 죽여야 한다면, 너희 유대인들도 지금 죽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왜 같은 죄를 짓고 있으니까! 너희라고 해서 그 심판을 피해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지 않겠니. 


하나님은 오히려 외부의 악인에 대한 심판을 뒤로 미루시고, 자기 자식들부터 손보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 사람들은 네 자식이나 잘 키우라고 말하면 이것만큼 부끄러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의인들은 믿음으로 기다리라(악인들의 심판을) 하나님의 영광은 세상에 가득하고, 하나님은 성전에 살아계시니 온 땅은 잠잠하라(토 달지 말고)...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열왕기상하도 했고, 예레미야라는 굵직한 본문도 다루었으니... 이제는 소선지서 중 미가를 시작해 볼까한다. 미가를 택한 것은 개인적인 이유로 미가서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ㅎ 함께 하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

 


[성경 한 장]


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모레넷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다. 


  * 시대적으로 아하스 시대에 유다는 앗수르의 제단과 종교 형식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왔다. 아하스가 북이스라엘과 아람 연합에 대한 위기를 극복하려고 앗수르의 원정을 요청했고 그로 인해 아람은 멸망했다. 그러나 앗수르를 향한 사대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아하스 왕으로 인해 유다는 매우 큰 이방 종교의 영향을 받게 된다. 


2.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다.


  * 유다뿐 아니라 사마리아(북이스라엘)에 대한 묵시의 말씀이다. 


3. 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셔서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다. 


  1) 그 때 산들이 녹고 골짜기는 갈라지게 되는 엄청난 재앙이 임할 것이다. 


  * 하나님의 위엄(심판하시기 위한)을 보여주며, 그 분의 등장과 그로 인해 이 땅에서 벌어지게 될 엄청난 재앙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4. 그런데 이와 같은 재앙은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고,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1) 야곱의 허물은 사마리아이다. 

  2) 유다의 산당은 예루살렘이다. 


  * 사마리아(이스라엘)가 행한 죄악은 야곱(이스라엘)에게서 나온 결과물이며, 예루살렘은 유다의 산당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음을 말한다. 죄로 말미암아 왜곡된 결과들이 나왔고, 거룩한 곳은 하찮은 곳이 되어 버렸다. 


5.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에 행하실 심판의 모습

 

  1) 땅을 황페하게 하고

  2)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게 한다. 

  3) 음행으로 벌어들인것(우상 숭배로 얻은 것으로 여겨지는 부와 재산)은 다 소멸될 것이다. 


  * 우상숭배와 죄악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이지만, 여전히 유다와 사마리아는 그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의 유익과 부를 얻었다고 생각하던 때인듯 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소멸시키심으로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


6. 이와 같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 미가 선지자는 애통하고 애곡한다.


  1) 왜냐하면 이 상처는 고칠 수 없는(회복할 때를 놓친 혹은 너무 큰 상처라 고칠 수 없는) 상황이고

  2) 그 상처가 유다와 예루살렘에도 미쳤기 때문이다.(핵심적인 심장부까지 치명적 영향을 주었다.)

  3)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4) ..... 여러가지 구체적인 지명과 인명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들이다.(10-16절)



[묵장 한모금]


1. 전체적인 내용의 배경은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를 배경으로 한다. 죄악의 상황을 보면 유다 왕 아하스 시대가 중심이지 않을까 싶다.


2. 내용은 하나님께서 하늘 처소에서 나오셔서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유다와 사마리아의 죄 때문인데, 구체적인 죄명은 우상 숭배다. 우상 숭배를 통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없이하실 것임을 밝히시고 있다. 이런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와 유다의 죄가 너무 크고, 심장부까지 손상시켰기 때문에 그렇다. 이 사실을 아는 미가 선지자는 애통하고 애곡한다.... 세상 곳곳에 그와 같은 징조(죄의 영향이 극심하다는 징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 심판하시기 위한 등장은 상처(죄)가 회복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다. 그것은 단순한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는 여러차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치료를 거절하여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하나님은 그의 죄와 죄를 다루는 태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 


4. 하나님은 두 가지가 충족될 때, 심판하신다. 하나는 죄에 대해서다. 다른 하나는 죄에 대한 악한 태도, 즉 돌이키지 않는 것이 모두 충족될 때 심판하신다. 모든 인류는 아담 이후로 죄 가운데 태어나지만, 그 죄를 돌이키는 자가 있고 그 죄를 돌이키지 않는 자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죄에서 돌이킨 자는 구원으로 인도되지만, 예수 그리스도 마져 거절한 자에게는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게 된다. 그래서 심판에 이른다.  


 - 끝 -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


[성경 한 장]


1. 애굽 땅에 사는 몯느 유다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1)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난을 보았느니라. 황무지가 되고 사람이 없다.

  2) 그것은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3)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너희엑 보내어서 가증한 일을 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다. 그래서 행하던 그들의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4) 그래서 나의 분과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사른 것이다. 

  5) 그래서 오늘날과 같이 폐허와 황무지가 되었다. 


  6)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그와 같이 행하는가? 오늘까지 겸손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가?


  * 하나님은 사람들이 지은 한 두가지의 죄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에서 돌이키라는 수 많은 경고를 거절한 그들에게 그 완악함을 물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될 죄명은 '간음' '살인' '도적질' '거짓, 사기'가 아니다. 바로 '완악함'이다. 죄인줄 알고도 돌이키지 않는 마음이 우리의 죄명이다. 



2. 하나님의 진노를 이제는 애굽으로 간 너희들에게 임하게 할 것이다 

 

  1) 애굽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라. 

  2) 그들은 칼과 기근으로 망하리라. 그래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3)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할 것이다. 

  4) 너희 중에 애굽에서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다시 유다로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 하나님의 진노는 집요하다. 유다를 피하여 간 자들을 애굽에까지 좇아가신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집요함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여 승복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그러기 전까지 진노의 화살은 우리를 추격한다.



3. 그러자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대답했다. 


  1) 우리가 유다 성읍과 에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족하여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했다.

  2)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을 폐한 후부터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당하였다.

  3) 여인들은 남편의 허락을 받아 그와 같이 하늘의 여왕에게 제사를 드렸다.


  * 그럼에도 이들은 돌이킬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그들의 무지 때문이다. 유다에서 풍족할 때는 '하늘의 여왕'에게 제사를 잘 드리던 때였고, 그것을 소홀히 한 후부터 결핍과 전쟁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영적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 판단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있다. 따라서 큰 죄중에 하나는 '무지'인데 결국 이 무지도 자기 생각의 완고함에 기인한다. 다른 가능성과 상황에 대해서 말해 주어도 그것을 받아들이 않기 때문에. 무지도 완고함에서 기인한다. 


4.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그들의 범죄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인해 재난이 일어날 것을 말함.


5. 예레미야가 다시 모든 백성과 모든 여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다. 


  1) 하나님이 맹세하신다. 내가 깨어서 그들에게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할 것이다. 

  2)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들이 나와서 유다 땅으로 돌아올 것인데, 그들은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알 것이다. 

  3)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긴 것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의 손에 넘겨줄 것이다. 

  4) 여호와의 말이니라. 


  * 결국 유다를 떠나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애굽으로 갔던 유다인들은 그곳에서 또 다시 바벨론 왕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의지했던 애굽이 결국은 바벨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애굽을 의지했던 유대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다. 


[묵상 한 모금]


1. 하나님은 사람들이 지은 한 두가지의 죄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에서 돌이키라는 수 많은 경고를 거절한 그들에게 그 완악함을 물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될 죄명은 '간음' '살인' '도적질' '거짓' '사기' '무지'가 아니다. 바로 '완악함'이다. 죄인줄 알고도, 그로 인해 하나님의 큰 진노가 있음을 알고도 돌이키지 않는 마음이 우리의 죄명이다. 


2. 결국 유다를 떠나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애굽으로 갔던 유다인들은 그곳에서 또 다시 바벨론 왕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의지했던 애굽이 결국은 바벨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애굽을 의지했던 유대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