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순전한 기독교_4-9 대가를 계산하기]


1. 너희도 온전하라

  -> 네가 온전해지지 않으면 도와 주지 않겠다?(틀림)

  -> 내가 유일하게 도울 일은 너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는 그 이하를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이하에 만족하지 않겠다.(바름)


2. 우리는 통증만 제거해 주길 원하지만, 치과의사는 문제 있을 다른 치아까지 손보길 원하신다. 

일단 그분을 끌어들인 이상, 완전하게 치료받지 않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가를 계산하라'는 주님 말씀의 의미다. 

   : 우리가 첫 걸음을 뗄 때, 기뻐하지 않을 아버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만족할 아버지도 없다. 


3. 우리는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작고 낡은 오두막집을 수리해 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작은 오두막집을 부수고 궁전을 지으시길 원하신다. 

성경은 우리를 '신'이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요 10:34)



[32 순전한 기독교_4-10 호감 주는 사람이냐, 새 사람이냐]


질문1. 기독교가 진리라면 왜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든 비그리스도인보다 더 호감을 주지 못하는 것인가?


 1. 맞는 측면: 체온계의 눈금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한 아무리 환자의 기분이 좋아졌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2. 틀린 측면: 그리스도인 A와 비그리스도인 B를 비교해 볼 때, A보다 B가 더 호감이 간다고 할 경우

  1) A가 처음부터 환경적으로 불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B는 더 나았을 수 있다. 이것은 환경을 바꾸어 보면 서로 달라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2) B가 A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은 조금의 차이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같은 것이다. 게가다 B가 호감 주는 성품을 가진것은 하나님이 B에게 주신 선물이지, B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 아니다. 

  3) 호감주는 성품이 자기 자신에게서 왔다고 생각하는 한, 그 성품은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한다. 자기의 것으로 붙잡는 한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한다.(많은 경우 호감주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찾는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4)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없고, 병든 자라에게야 쓸데 있다.


[적용]

  1) 호감을 주는 유형이라면, 조심하라!

      여러분이 받는 좋은 것들이 여러분을 더 쉽게 부패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2) 여러분이 가난한 피조물이라면, 절망하지 마십시오.

 고장한 기계를 가지고라도 열심히 돌려 보려고 힘쓰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새 기계로 만들어 주실 것이고, 우리는 그 고된 학업을 받는 과정에서 새 기계 돌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정리1. 호감을 주는 성품은 좋은 것이고, 모든 것을 동원해서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호감을 가진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의 영혼까지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리2. 개선이 곧 구속은 아니다.(주님은 우리를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

  

경고: 괜히 어리석은 그리스도인 한 명을 희생삼아, 그리스도과 그리스도인을 무시할 생각은 하지도 마라.(변명할 생각마라)


[33 순전한 기독교_4-11 새 사람]


1. 새 사람은 개선이 아니라 변형이다.(말을 더 높이 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날개하는 것이다.)


2. 루이스는 변형이라는 기독교적 개념을 '진화'와 연결하여 설명한다.(진화라는 개념으로 비유하여 설명)

  1) 거대한 몸집과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동물의 등장 -> 더 단단한 껍질과 힘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생각함.

  2)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다. 물리적 힘이 아닌 '두뇌'를 쓰는 힘으로의 진화.

  3) 진화라는 것은 그것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기대대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일대 전환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 

  4)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다음 단계를 더 두뇌가 커지고,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커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참다운 변형이 아니다. 약간의 개선이다. 그러나 인간은 변형될 것이고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될 것이다. 


3. 기독교에서 말하는 관점은 '다음 단계가 이미 나타났다는 것'이다. 

  더 좋은 머리를 가지게 되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로 바뀌는 변화다. 


4. 진화는 과거를 연구하다가 나온 결과이지만, 새 단계는 자연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1) 새 단계는 성적 재생산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2) 진화는 그들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나 새 단계, 즉 피조물이 아들로 바뀌는 이 단계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우리가 고집을 피우며 새 인류의 출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

  (3) 그리스도는 새 사람의 '최초 사례'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다. 한 종의 표본, 즉 한 새 사람이 아니라 그 새 사람(그로부터 그 종이 퍼져나가는)이다. 그는 모든 새 사람의 기원이며 중심이자 생명이다. 

  (4) 새 단계의 진행 속도는 이전 단계들의 속도에 비하면 번개처럼 급속히 퍼졌다고 할만하다. 우주 역사에 비하면 2천년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초대교회다. 

  (5) 우리는 자궁 안에서 출산의 날을 선택하는 아이와 같다.(실제로는 출산되어지는 것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의 자궁 안이 가장 안전하게 보이겠지만, 나오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5.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그들은 여러분을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지만, 그 누구보다 덜 필요로 한다.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잃어버린다는 의미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고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모두 똑같아 지는 것을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소금의 맛이 같지만 음식마다(재료마다) 소금의 맛을 내면서도 자신의 재료 맛을 드러내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분께 자신을 드리면 드릴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진정으로 자기다워집니다. 

   예1) 자연 상태 그대로의 나는 내가 믿고 싶어하는 것만큼 주체적인 개인이 못 된다.(본인은 주체적인 정치적 이상으로 여기는 것 역시 사실은 정치적 선전에 놀아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2) 자기 자신을 포기할 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이다.(자기를 의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 스럽지 못하게 된다.)


[도전] 자기 생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발견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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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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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은 개선이 아니라 변형이다.(말을 더 높이 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날개하는 것이다.)


루이스는 변형이라는 기독교적 개념을 '진화'와 연결하여 설명한다.(진화라는 개념으로 비유하여 설명)

  1) 거대한 몸집과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동물의 등장 -> 더 단단한 껍질과 힘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생각함.

  2)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다. 물리적 힘이 아닌 '두뇌'를 쓰는 힘으로의 진화.

  3) 진화라는 것은 그것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기대대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일대 전환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 

  4)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다음 단계를 더 두뇌가 커지고,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커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참다운 변형이 아니다. 약간의 개선이다. 그러나 인간은 변형될 것이고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될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관점은 '다음 단계가 이미 나타났다는 것'이다. 

더 좋은 머리를 가지게 되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로 바뀌는 변화다. 


진화는 과거를 연구하다가 나온 결과이지만, 새 단계는 자연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1) 새 단계는 성적 재생산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2) 진화는 그들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나 새 단계, 즉 피조물이 아들로 바뀌는 이 단계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우리가 고집을 피우며 새 인류의 출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

  (3) 그리스도는 새 사람의 '최초 사례'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다. 한 종의 표본, 즉 한 새 사람이 아니라 그 새 사람(그로부터 그 종이 퍼져나가는)이다. 그는 모든 새 사람의 기원이며 중심이자 생명이다. 

  (4) 새 단계의 진행 속도는 이전 단계들의 속도에 비하면 번개처럼 급속히 퍼졌다고 할만하다. 우주 역사에 비하면 2천년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초대교회다. 

  (5) 우리는 자궁 안에서 출산의 날을 선택하는 아이와 같다.(실제로는 출산되어지는 것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의 자궁 안이 가장 안전하게 보이겠지만, 나오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그들은 여러분을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지만, 그 누구보다 덜 필요로한다.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잃어버린다는 의미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고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모두 똑같아 지는 것을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소금의 맛이 같지만 음식마다(재료마다) 소금의 맛을 내면서도 자신의 재료맛을 드러내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분께 자신을 드리면 드릴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진정으로 자기다워집니다. 


자연 상태 그대로의 나는 내가 믿고 싶어하는 것만큼 주체적인 개인이 못 된다.(본인은 주체적인 정치적 이상으로 여기는 것 역시 사실은 정치적 선전에 놀아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포기할 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이다.(자기를 의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 스럽지 못하게 된다.)

자기 생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발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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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 기독교가 진리라면 왜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든 비그리스도인보다 더 호감을 주지 못하는 것인가?


맞는 측면: 체온계의 눈금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한 아무리 환자의 기분이 좋아졌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틀린 측면: 그리스도인 에이와 비그리스도인 비가 비교해 볼 때, 에이보다 비가 더 호감이 간다고 할 경우

  1) 에이가 처음부터 환경적으로 불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는 더 나았을 수 있다. 이것은 환경을 바꾸어 보면 서로 달라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2) 비가 에이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은 조금의 차이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같은 것이다. 게가다 비가 호감 주는 성품을 가진것ㅇㄴ 하나님이 비에게 주신 선물이지, 비가 하나님게 드리는 선물이 아니다. 

  3) 호감주는 성품이 자기 자신에게서 왔다고 생각하는 한, 그 성품은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한다. 자기의 것으로 붙잡는 한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한다.(많은 경우 호감주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찾는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4)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없고, 병든 자라에게야 쓸데 있다.


적용

  1) 호감을 주는 유형이라면, 조심하라!

      여러분이 받는 좋은 것들이 여러분을 더 쉽게 부패하게 만들것이기 때문이다. 


  2) 여러분이 가난한 피조물이라면, 절망하지 마십시오.

 고장한 기계를 가지고라도 열심히 돌려 보려고 힘쓰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새 기계로 만들어 주실 것이고, 우리는 그 고된 학업을 받는 과정에서 새 기계 돌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호감을 주는 성품은 좋은 것이고, 모든 것을 동원해서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호감을 가진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의 영혼까지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선이 곧 구속은 아니다.(주님은 우리를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


괜히 어리석은 그리스도인 한 명을 희생삼아, 그리스도과 그리스도인을 무시할 생각은 하지도 마라.(변명할 생각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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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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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온전하라

  -> 네가 온전해지지 않으면 도와 주지 않겠다?(틀림)

  -> 내가 유일하게 도울 일은 너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다. 너는 그 이하를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이하에 만족하지 않겠다.(바름)


우리는 통증만 제거해 주길 원하지만, 치과의사는 문제있을 다른 치아까지 손보길 원하신다. 

일단 그분을 끌어들인 이상, 완전하게 치료받지 않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가를 계산하라'는 주님 말씀의 의미다. 


우리가 첫 걸음을 뗄때, 기뻐하지 않을 아버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만족할 아버지도 없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 한 두가지를 해결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해결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을 겸손이라고까지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생각과 기대는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기대가 크고 높다. 결코 중간에 만족하실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작고 낡은 오두막집을 수리해 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작은 오두막집을 부수고 궁전을 지으시길 원하신다. 

성경은 우리를 '신'이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요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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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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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고집 센 장난감 병정들]


1. 자연적인 생명인 바이오스(Bios)와 영적인 생명은 조에(Zoe)는 처음부터 달랐다.

2.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창조된 자연적인 생명은 창조되지 않은 영적인 생명으로 이끌려 올라갔을 것이다.(예측)

3. 우리의 자연적 생명은 본성적으로 영적 생명을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열등하기 때문에 종속될 수 있다고 생각함)

 예) 양철 장난감이 생명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양철이 살로 바뀌어야 하는데, 장난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을 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4. 그런데, 하나님이신 성자가 완전히 인간으로 오셔서 창조 된 생명이, 태어난 생명으로 완전히 변화된 한 인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조에의 생명을 가진) 우리는 진정한 인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5. 그리고 이 생명의 변화가 한 개인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각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지를 무성하게 뻗은 나무처럼 서로 선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변화로부터 모든 인류(그리스도 이전의 사람들에게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마치 나무의 한 가지에서 일어난 변화가 전체와 연관되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컵 속에 잉크 하나가 전체로 퍼지듯) 그 효력은 전 인류를 향해 간다.


6. 그리스도께서 인류 전체에 끼친 효과

 (1)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일, 창조 된 존재에서 태어난 존재로 변화되는 일

 (2) 일시적인 생물학적 생명에서 시간을 초월한 <영적> 생명으로 바뀌는 일


7. 그 효과가 우리에게 어떻게 올 수 있는가?

 (1) 이미 인류를 위해 하나님은 구원을 행하셨다. 그 생명은 이미 인류에게 내려왔다.

 (2) 그 생명이 충만하게 차있다.

 (3)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우리는 그 생명이 옮아 오게 된다.(좋은 전염)

 (4) 다른 식의 표현: 그리스도가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 성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하셨다....

8. C.S. 루이스는 영원한 생명의 필요성과 그 효과가 어떻게 모든 인류와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되었는가를 말한다.



[4-6. 두 가지 부연 설명]


지난 장에 대한 설명에 대해, 오해를 피하기 위해 두 가지 부연 설명을 하고자 한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1. 하나님이 병정들이 아니라, 아들을 원하셨다면 처음부터 아들을 많이 낳으면 되지 왜 굳이 장난감 병정을 만드셔서 그토록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생명을 주느냐?

 1) 쉬운 답변: 만약 인류가 오래전에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피조물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되는 과정이 이토록 어렵거나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반역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인형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주신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가 없는 자동 인형은 참된 사랑과 행복을 알 수 가 없다.


 2) 어려운 답볍:

  (1) 성부가 영원 전에 여러 아들을 낳는다는 개념은 처음부터 문제점이 있다.

     여럿이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개념은 두 물체가 공간과 함유하고 있는 원자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아들들(같은 본질을 가진 다른 개체의 개념은 실제적으로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먼저 선재하고 있을 때 가능한 개념이다.)이 여럿일 수 있다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 우리가 서로 같은 것이 여러 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같은 동전이 여러 개가 있다.) 공간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2. 인류 전체가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단일체라는 개념을, 개인적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거나 계급이니 종족 같은 집단이 더 중요하다는 사상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1) 같은 유기체에 속하면서도 서로 다른 것이 있고, 같은 유기체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비슷할 수 있다.

  예) 동전은 별개이면서도 매우 비슷하다. 반면 <폐>와 <코>는 둘 다 몸의 일부이면서 매우 다르다.


 2)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은 존재로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무시하고 모든 사람을 획일화시키고자 할 때, 전체주의자가 된다.


 3) 나와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같은 유기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서로가 하나의 유기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잊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하며 무관심하다면 그 사람은 개인주의자가 된다.


 [정리] 그리스도인은 전체주의자가 되어서도 안되고 개인주의자가 되어서도 안된다. 악마는 이 둘중 무엇이 더 나쁜지 생각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도록 부추기고, 그렇게 해서는 다른 반대편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두 생각 사이에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야 한다.



[4-7. 가장 합시다]


이제 논의를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무슨 일을 하셨는가에서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1.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런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아들 노릇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 같을 수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처럼 분장을 했다는 의미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그와 같을 수 없다. 자기 중심적인 두려움과 소원, 욕심, 질투, 자만 등을 꾸러미로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더러 그리스도로 분장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왜 이런 요청을 하시는 것일까요?


2. 가장의 두가지 측면

 1) 나쁜 가장: 진짜를 밀어내는 가장

 2) 좋은 가장: 진짜로 나아가는 가장(어린이들은 흉내를 통해서 자신의 근육을 키워간다)


 우리가 지금 나는 그리스도로 분장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가장이 가장에서는 가장 멀어지고 현실에는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순간임을 알게 된다.(겸손하면서도 거룩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이 된다.)


 여러분은 좋은 의미에서 한 인격체에게 전염되려고 애쓰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일보다 초상화를 그리는 일에 더 가깝다.


3. 우리가 그렇게 살려고 할 때,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을 돕는다.

4.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성경의 다양한 표현의 의미

 다시 태어나는 일, 그리스도로 옷 입는 일,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일...(이런 표현은 단순히 그 분의 사상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는 의미 이상이다.)


 1) 나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는 나 자신의 직접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으로 결코 일으킬 수 없는 변화다.(293쪽)

 2) 그리스도인으로서 처음 몇 단계의 삶을 거쳐 보면, 우리 영혼에 정말 필요한 일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5. 진정으로 가장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일지 모른다.

"이 자들을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라고 생각하자. 그리스도가 안간이 되었으니, 이 자들도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그와 비슷하다. 영적으로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자.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런 척하자. 이 가장이 현실이 되도록 그렇게 하자."


 어머니는 아기가 진짜 말을 배우기 전인데도 마치 말할 줄 아는 아기를 대하듯이 함으로써 말을 가르친다.(295쪽)

 우리는 개를 거의 사람 취급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개가 정말 <거의 사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순전한 기독교_4-8 기독교는 쉬울까 어려울까?]


1.  기독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우리의 자연적 자아, 전부를 넘겨 달라고 한다. 그것의 일부를 고치고 다듬어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죽이고자 하신다. 그리고 새 자아를 주신다. 그러면 내 뜻이 곧 네 뜻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 그래서 기독교는 매우 어렵기도 하고 매우 쉽기도 하다.

 1) 주님도 그리스도의 삶을  아주 어려운 것으로 설명할 때도 있고, 아주 쉬운 것으로 설명할 때도 있다.

 2) 마치 똑똑한 학생은 기하학을 공부할 때, 처음에는 이해하기 위해 힘들게 공부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수월하게 즐기면서 그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3) 우리의 자아(소원과 경계심 모두) 전부를 그리스도께 넘겨 드리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일 뿐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다.

우리는 생각과 마음은 제멋대로 굴게 두면서, 동시에 정직하고 순결하며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3. 우리가 해야할 일

 1) 아침에 눈을 뜨자 말자 우리를 공격하는 세상의 욕심을 물리치는 것이다.

 2)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어야 한다.

 3) 처음에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지만, 점점 스며들게 될 것이다.

 4) 기독교의 목적 전부는 이것이다.

: 오직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 작은 그리스도로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 건물도, 성직자도, 선교도, 설교도, 심지어 성경 자체도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5)우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혹 우주에 다른 생명이 살고 있더라도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를 위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6)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려 들어갈 때, 자연 속에 있는 많은 것들 역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낯설지만 흥분되는 암시가 많다. 마침내 악몽은 끝나고, 아침이 밝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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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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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기독교_좋은 전염]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논리적으로는 선후를 가지지만(그래서 성부와 성자라는 표현이 생긴다.) 실재적으로는 하나가 다른 하나의 기원이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루이스식 설명. 




1. 책 상 위에 두 권의 책이 있다. 위에 있는 책은 B, 아래 있는 책은 A라고 하자.

2. 이 두 책은 원래부터 있었다고 생각하고, A의 위치는 B의 위치에 원인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비의 위치는 언제나 에이의 위치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그러나 비가 이런 위치가 되기 위해서 에이가 먼저 이런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원인이 먼저 있고, 결과가 다음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4.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정육면체가 하나의 입체인 동시에 6개의 정사각형이란 것과 유사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삼위가 서로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마치 선후 관계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다.

5. 첫째 위를 성부, 둘째 위를 성자라고 부른다. 첫째 위가 둘 째 위를 낳는다.(만드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 위가 생산하는 것이 그 자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부라는 말로 성경은 쓰고 있는 것이다. 

6. 그러나 이 말은 성자보다 성부가 먼저 존재했다고 생각하기 쉽게 한다.(자식보다 부모가 먼저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부와 성자 사이에는 선후 관계가 없다. 어떻게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그 원인이나 기원이 될 수 있는가?(성부가 있기 때문에 성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성자를 낳기 전 성부가 계셨던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다.)

7. 처음 두 책에 대한 상상을 해보라고 했다. 상상하는 행위는 원이이고, 머리 속 그림은 결과이다. 그렇다고 상상하는 행위가 먼저 있었고, 그림이 나중에 그려진 것이 아니다. 상상하는 순간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상상과 그림은 같이 시작해서 같이 끝나게 마련이다.)

  추가적인 설명) 등불에서 빛이 남, 난로에서 열이남, 전신에서 생각이 흘러나옴, 성부의 자기표현이 성자인데, 성부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_ 이 비유도 한계가 있다.(두 존재를 연상시킨다.)

8.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인데, 이는 처음부터 함께하는 인격체를 전제하지 않아면 안된다. 성부와 성자는 서로 기뻐하고 공경한다. 이 인격적인 관계는 역동하며 약동하는 활동, 생명, 일종의 드라마에 가까운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9. 셋째 위인 성령에 대해서 살펴보자. 성부가 여러분 앞 '저기'에 계시는 분이고, 성자가 여러분 옆에서 기도를 도우시며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바꾸시는 분이라면, 성령은 여러분 안 또는 뒤에 계시는 분이다. 성령은 가족이나 클럽, 노동조합과 같은 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공동 인격>과 같은 것이다.(좀 더 선명한 이해가 필요함)


10. 이와 같은 것이 왜 중요한가?

 이 삼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생명이 우리 안에서도 재현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이 영원히 살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이 어떻게 시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연합하며, 어떻게 삼위 하나님의 생명 속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기독교가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뜻대로 하시도록 자신을 그분께 맡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가진 이 생명을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적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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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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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삼위이신 하나님


  1. 지난 장에서 살핀 것 
  1.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낳으시지만, 사람은 만드신다.
  2. 성부 하나님이 낳으신 존재는 그와 똑같은 종류의 존재, 즉 하나님이다.


  1.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
  1.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 모든 것의 배후에 신비스러운 존재는 인격 이상의 존재여야 한다는 생각. 기독교만이 이런 존재를 설명함. 

  1. 어떤 이들은 인간의 영혼이 이생을 거친 후 하나님께 흡수된다고 생각한다. 

  : 물 한 방울이 바다로 흡수되듯이, 인간의 운명도 그렇게 된다고 생각함. 


  1.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
  1. 1차원에서는 선만을 그릴 수 있고, 2차원에서는 도형을 그릴 수 있다. 3차원에서는 입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차원이 높을 수록 실제와 더 가까워진다. 
  2. 1차원에서는 선 밖에는 그릴 수 없지만, 2차원이 되면 선과 더불어 면도 그릴 수 있게된다. 높은 차원으로 간다고 해서 이전것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3. 정육면체는 6개의 정사각형이 모여서 이루어 진다. 
  4.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의 설명도 이와 같다.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한 인격은 한 존재이다. 두 인격은 두 존재이다. 그러나 신적인 차원에서도 인격체들이 있다. 이 인격체들은 그 차원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정육면체가 하나의 정육면체인 동시에 여섯 개의 정사각형인 것처럼 말이다. 
  5. 세 인격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존재인 하나님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6. 삼위일체로 존재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는 기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기도를 돕는 자이며 기도의 주체, 즉 원동력이기도 하시다. 
  7.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침실 안에서 하나님의 영적인 생명(조에) 속으로 들어 올려지고 있다. 하나님 안에 이끌려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있다. 
  8. 신학이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신학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실제로 경험된 것을 정리하여 정의한 것이다.
  9.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바위를 연구하고, 동물을 연구하고, 사람을 연구하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이다. 주도권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다. 
  10. 만약 기독교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기독교는 사실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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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격을 넘어서, 또는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

  1. 만드는 것과 낳는 것


  1. 이제부터 신학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경험한 사람에게 교리라는 것은 한낱 시시하고 현학적인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2. 마치 대서양을 경험한 사람에게 교리는 지도에 그려진 대서양의 그림 같겠지만, 기억할 것은 대서양의 지도는 대서양을 경험한 수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그려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해변을 걷기 원하는 사람에게는 지도가 불필요해 보이지만, 해변을 건너 가려면 지도가 필요하다. 
  4. 교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다만 지도에 불과하다. 더 멀리 가려면 반드시 지도를 봐야 한다. 
  5. 신학에 귀 기울이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그것은 오히려 잘못된 개념(여러가지가 뒤섞인)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 오늘날 유행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옛날에 폐기된 이야기들에 불과하다. 기독교를 하나의 고귀한 권고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무 영향력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1. 성경에서 말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


  1.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2.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3.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원했다. 
  4. 우리가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이것은 또한 무슨의미인가? 


  1.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신 것이 아니라, 나셨다.
  1. 개념 정리: 낳다는 것은 아버지가 된 다는 것이고, 그것은 같은 종류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창조한다는 것은 다른 종류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을 낳는다. 사람이 사람을 낳듯이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3.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은 조각한 상이나 초상화에 가깝다.)
  4.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닮은 속성이 있지만, 하나님과 같지는 않다. 그 중에서 가장 하나님과 닮은 존재가 있다면 바로 사람이다. 그럼에도 차이가 있는데 결정적인 차이 중 하나는 영적인 생명이다. 
  1. 자연적인 생명은 바이오스(Bios)
  2. 영원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는 영적인 생명, 자연 세계를 만들어 낸 생명은 조에(Zoe)
  3. 따라서 사람이 바이오스를 가졌다가, 조에를 갖게 된다는 것은 석상이 진짜 사람으로 변하는 것만큼이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4. 기독교는 이 세상이 조각가의 작업실이고, 우리는 그 조각가가 만든 조상이다. 그런데 이 작업실에서 우리 중 일부가 언젠가 생명을 얻으리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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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1) 


1.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믿음의 두가지 의미

  1) 단순한 신념(Belief): 기독교 교리를 사실로 여기거나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루이스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기 전에 충격을 받은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하나의 덕목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증거가 충분하면 믿는 것이고 증거가 충분하지 못하면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충분한 증거에도 믿지 못한다면 명석하지 못다하는 것이고, 증거가 충분하지 못한데도 믿는 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하면 되는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믿음과 이성은 하나가 되어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과 상상이 반대편이 되어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는 것이다. 

  예) 거짓말을 하는 이쁜 아가씨에게 속지 말아야지.... 사람은 물에 뜨니까 수영 선생님의 손을 놔도 괜찬지...


기독교가 충분히 믿음만한 증거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더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거나, 이런 저런 공격을 받고 기독교를 믿는 것이 손해보는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충분한 증거에 의해 생긴 믿음이 흔들리게 되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아무리 기분이 바뀌어도 한번 받아들인 것은 끝까지 고수하는 기술입니다. 기분은 이성과 상관없이 변하는 법이다. 따라서 믿음의 습관을 훈련해야 한다. 


   믿음의 습관을 훈련하는 

첫 단계는 사람의 기분은 바뀌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다음 단계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상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어 그 주요 교리들을 찬찬히 정신에 새겨 나가는 것이다.(매일 기도하며, 성경과 경건서적을 읽고 교회에 나가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수적인 이유) 신념은 계속 북돋워 주어야 한다.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의 대부분이 분명한 논증을 거쳐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어쩌다가 믿음을 잃어 버리는 것이 대부분 아닌가? 



두번째 믿음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이해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1) 선을 행하기 위해 한 주간이 아니라 6주간 정도를 살아보도록 하자.(이 정도면 충분히 자신에게 실망할테니...)

   (2) 선을 행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 깨닫지 못하는 법이다. 

     - 누워서는 바람의 세기를 알수 없다. 바람을 거슬러 본사람만이 바람의 세기를 안다. 따라서 정작 악한 사람들은 악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 왜? 늘 악게 굴복해서 살아왔기 때문에. 악과 진짜 싸워보기 전에는 악의 힘을 알 수 없다. 

   (3) 이 상황이 되었을 때(하나님은 이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신다.)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가진 모든 기능, 즉 생각하는 능력이나 순간 순간 팔다리를 움직이는 능력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 것이 사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임을 알게 된다. 

    예) 아빠, 아빠 선물사게 6펜스만 주세요.


믿음(2) 


두번째 믿음은, 기독교 도덕을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한 후에야, 또 설사 실천에 성공했다 해도 그것은 원래 하나님의 것을 돌려드린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대두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지킬려고 힘껏 노력해 본 다음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자신의 한계 때문에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고, 다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데까지 인도해 주시리라고 믿는 믿음이 두번째 믿음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겼다고 해서 노력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신뢰하는 사람의 충고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전만큼 안달하지 않으면서 노력하게 됩니다. 행위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국을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자연히 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구원에 있어서 행위에 대한 조건을 제기하고, 어떤 사람은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둘다 틀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도덕적인 노력을 기울여 봐야 항복할 수 있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 절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한 구절로 표현하고 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선행을 강조)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하나님의 역할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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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세상의 도덕과 가장 날카로운 차이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 나누려 한다.  이 악은 누구에게나 있으면서도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그와 같은 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누구에게라도 그와 같은 악이 나타나면 한치의 용서를 베풀지 않는다. 


그 악이란 바로 교만(Pride)과 자만(Self-Conceit)이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적인 덕목은 <겸손>이다.


1. 겸손은 기독교가 말하는 도덕의 중심이다. 

  성적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 같은 것들은 교만이라는 악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악마는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된 것이다. 교만은 다른 악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하나님과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 상태다. 


  교만은 본성상 경쟁적이다. 교만은 단순히 무언가를 가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옆사람보다 더 가져야만 만족한다.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은 남과의 비교다.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2. 교만한 행동들

  1) 두 남자와 한 여자와의 관계: 교만이란 그 여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더 나은 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남이 좋아하는 여자를 빼앗아 간다. 

  2) 어떤 물건이 충분하지 못할 때: 탐욕이 경쟁으로 몰아갈수도 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을 얻었을 때에도 단지 자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 

  3) 돈에 대한 탐욕과 교만은 차이가 난다. 탐욕은 더 좋은 집, 더 좋은 휴가, 더 좋은 먹을 거리를 위해 돈을 갖고 싶어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만 그렇다. 어느 정도 이상되면 더 많이 쓰기 위해서 더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때부터는 다른 부자보다 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이것의 극대화가 권력욕이다. 권력은 교만한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꼭두각시처럼 좌지우지하는 것만큼 우월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없다. 

  4) 예쁜 여자가 가는곳마다 남자들의 마음을 빼앗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는 성적 충동 때문은 아니다. 교만이다. 

  5) 교만은 세상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경쟁자로 여기고 적으로 여긴다. 이것이 교만의 특성이다. 


3. 교만은 본질적으로 관계를 깨뜨리고 상호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 


4. 교만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주 신앙적으로 행세하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1) 이들은 상상속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2) 하나님이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우리도 그렇지 않은지 테스트 해 볼 수 있다.

    : 내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특히 다른 사람보다 낫게 느껴질 때)는 확실히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를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5. 인간의 다른 죄는 동물적 본성에서 나온다. 그러나 교만은 동물적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옥에서 곧장 나온다. 교만은 순전히 영적인 악입니다. 그래서 다른 악들에 비해 훨씬 더 교묘하고 치명적이다. 그래서 종종 교만이 선한 일에 효과적인것 처럼 보여질 때가 있다. 자신의 체면과 수준 혹은 품격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요청할 때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상을 치료하는 정도일 뿐, 실은 더 큰 병, 암을 유발하는 원재료가 되는 것이다. 


6. 이야기를 마치기 전 있을 법한 오해를 풀어주는게 좋을 듯 하다. 

  1) 칭찬받고 즐거워하는 것은 교만이 아니다. 

    나로 인해 칭찬해 주는 그 사람이 즐거워하고 좋아 하니까 기쁜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내가 그런 칭찬을 받고 상태를 즐겁게 해주다니 나는 대단해! 로 가면 문제가 된다. 자기 자신으로 빠지면 최악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2) 허영심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교만에 비한 그래도 인간적이다. 왜냐하면 허영심이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고 이것은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만은 다른 사람을 얕본 나머지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된다. 


  3)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이 교만인가요? 루이스는 만약 그 의미가 '애정어린 마음으로 어떤 것에 경탄을 느낀다'는 의미라면 죄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야 그것이 유명하기 때문에 자랑스러워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보다는 좀 나은 편이다. 완전한 영적 파멸로부터는 좀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4) 하나님이 교만을 싫어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교만하셔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과 우리는 교만의 상대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뒤집어 쓴 가면을 벗겨주길 원하시는 것이다. 


  5) 정말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겸손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잊는 것에서 부터 겸손이 시작된다. 


[결론] 겸손의 첫 걸음은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다. 자신은 우쭐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사실 아주 우쭐대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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