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8-13> 10:55-11:07(정리) / 11:07-11:37(질문,묵상)

(정리하기) (질문하기) (묵상하기)

1. (설명)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너희가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다.(8절)

  -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9절)


(정리) 너희가 성경의 최고의 법, 이웃 사랑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범하는 것이다. 율법은 그와 같은 행위를 정죄한다.

(질문) 야고보는 최고의 법(사랑)과 '차별'을 대조적인 의미로 설명한다. 사랑의 좀 더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 

(묵상)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과 증오일 수도 있지만, 야고보는 여기서 '차별'이라고 봤다. 사랑은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차별은 자신의 몸과 대상의 몸을 차등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단순하 차이가 아니라 '차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차별'이다. 

사랑이란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기본적인 차이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인간적 대우를 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번한 자가 된다.(10절)

(예시)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살인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따라서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않았어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11절)


(정리) 여러가지 율법 중 하나만 어겨도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 간음하지 말라라는 율법을 만든 분이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도 함께 만드셨으니 그 중 하나만 어겨도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

(질문)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로 접근한다.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를 설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상식을 무시한 편견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닌가? 혹 교회가 '은혜'로 모든 것을 허용하거나 율법 폐기 논리를 주장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야고보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를 끄집어 올려 설득하고 있는듯 하다. 

(묵상) 신앙은 상식을 초월하기도 하지만, 신앙의 많은 부분은 상식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상식적인 선에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초월'이 '상식 밖'인 영역이지만, '윤리 밖'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권면) 너희는 말도하고 행하기도 하라.(12절)

-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설명)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 (그러나)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13절)


(정리) 권면의 내용은 간단하다. 말도 하면서 행하기도 하라는 것이다. 긍휼을 행하지 않는자는 긍휼없는 심판을 받는 것을 잊지 말고 긍휼을 태도를 가지라. 긍휼은 심판을 이긴다. 

(질문) <자유의 율법대로>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묵상) <자유의 율법대로>라는 말의 의미가 그 자체로 분명하지 않지만,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고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1) 말이 아닌 행한대로 갚는다는 원칙

2)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

3)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

행한대로 갚는다는 원리는 적용되면서, 부정적인 측면의 적용(하지 않으면 심판받는다)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적용(긍휼이 여기면 긍휼이 여김 받는다)을 통해 긍휼은 심판받지 아니함으로 심판으로 이기고, 죄가 아닌 선행으로서 '자랑'할 것이 있게 되는 것, 이것을 <자유의 율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성도는 율법에 매인 존재는 아니지만, 율법을 무시하는 자도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율법, 자유의 율법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최종정리]

1. 너희는 최고의 법인 이웃 사랑을 행하라. 

2. 그 사랑은 바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3. 만약 차별한다면 그것은 율법으로 정죄받게 된다. 

4. 너희는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12) 

5.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살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약 2:13)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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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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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1-7>

(정리하기) (질문하기) (묵상하기)

1. (권면)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1절)

        (이유) 너희가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니(1절)

        (예시) 만일 너희 회당에 사람이 들어오는데

한사람은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한사람은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2절)

너희가 아름다운 옷 입은자를 눈여겨보고, 좋은 자리에 앉게 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에 앉으라 하면(3절)

=>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 아니냐(4절)


(정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 부유한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쓰고 대우를 잘 해주면서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긴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 서로 차별하여 다른 존재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질문) 야고보는 왜 이런 주제를 다루는가? 그것은 공동체 안에 빈부의 차이로 인해 사람을 차별하는 문제가 공공연하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차별이 어느 정도는 당연하게 여졌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했고, 교회 안에서 이런 차별을 허용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야고보는 이 문제를 다룰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묵상) 이 권면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은혜를 경험했다고 해서 고장났던 사람이 갑자기 모든 면에서 교정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과 편견에 사로잡힌 판단을 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판단도 다르지 않다. 부한 자에게는 잘 대해주고, 가난한 자는 함부로 대하기 쉽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의 유무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를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야고보는 그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지적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명확하게 지적한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외모, 빈부의 차이)은 악한 생각이다. 예수를 믿고 인류 가운데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신분의 차이, 편견의 차이를 극복해 간 것이라고 볼 것이다. 사람의 외형적 조건으로 사람의 가치를 차별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한 것이다. 

왜 사람은 차별받아서는 안되는 것일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신적 기원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존귀한 존재임을 알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역시 존귀한 존재이다. 인간은 기원에 있어서 존귀하고, 구속받은 공동체 안에서 역시 존귀하며 평등하다. 


(설명)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5절)


(정리) 그리고 너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오히려 너희들이 하찮게 여긴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하시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것을 아는 너희가 어떻게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느냐?  

(질문)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택해서 믿음에 부요하게 한 경우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인 히브리인들을 택하사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하셨다. 나그네와 같은 아브라함을 택해서 믿음의 조상을 삼기도 했다. 애굽의 노예로 잡혀간 요셉을 통해 애굽의 기근을 이기기 했고 그 나라에 풍요를 더하게 했다. 하나님은 갈릴리의 어부를 택하사 주님의 제자를 삼았고 그들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높여 쓰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묵상)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세상은 부한 자, 강한 자를 존귀히 여기고 가난한 자, 약한 자를 업신 여긴다. 하나님의 나라를 그릇된 질서로 정리된 세상 나라의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질서, 온전한 질서를 부여하신다. 그러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 땅의 질서 속에 개입하셔서 가난한 자, 약한 자로 부유한 자,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일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이 땅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신 분이고, 그 질서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맛보아야 하는 것이다.(그러나 교회에서조차 세상의 그릇된 질서로 운영되는 것을 보자 야고보 사도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다.

부자들은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6절)

그들은 그 아름다운 이름(하나님)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7절)


(정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조차 성도들이 가난한 자를 업신 여겼다. 왜 이리 어리석은가? 너희들을 법정으로 끌고가는 자가 누구냐? 가난한 자냐? 부자가 아니더냐? 하나님의 이름을 대놓고 비방하는 자들이 누구냐? 부자들이 아니냐? 

(질문) 부자들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면을 경험적으로 모르지 않을텐데 왜 사람들은 부자들을 오히려 더 존귀히 여기고,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는 것일까? 

(묵상) 그것은 부자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강하고 경제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그들에 의해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가난한 자는 우리에게 그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부자를 가난한 자와 동일하게 대우해서 부자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우리는 피해를 볼 수 있다. 당장 헌금이 줄 수 있고 경제적 물리적 피해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두렵기 때문에 부자들이 원하는 대우를 해주게 된다. 이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똑같이 대우해주면 되지 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똑같이 대우할 때 받을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자에 휘둘려서는 안되고, 그들의 주머니를 의존해서는 안된다. 교회가 한 두 사람의 경제적인 힘 때문에 휘둘리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교회가 너무 많은 빚을 가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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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12-18>(정리하기)

1. (권면) 그러므로 빌립보 교인들아 너희 구원을 이루라.(12절)

  - 너희가 나 있을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정리]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서 현재적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권면한다. 구원의 현재성을 고려할 때 이는 구원을 바라는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늘 긴장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종말론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함을 말한다. 바울이 없을 때에라도(마치 주인이 잠시 떠났을 때 종의 태도가 그의 구원을 결정하듯) 성도는 늘 주인 앞에 있는 것처럼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복종하면서도, 두렵고 떨림의 상태. 모든 것을 행해도 최종 결정권 주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1) (원리설명)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정리] 한 마다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 성도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성도를 통해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종 우리는 믿지 못한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지?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일이 그르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바울은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요청한다. 

  2) (권면) (그러니)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정리]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구체적으로 권면하고 싶은 내용이다. 교회 안에서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원망은 투덜거리는 것이고 부당함에 대해서 원망하는 것을 말한다.(행 6:1, 벧전 4:9) 빌립보 교회는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일들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래서 원망이 나왔고, 지지받았을 테니까) 또 시기(논쟁거리)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의견이 나뉘었고, 견해차이로 인하 분파나 파당이 있었고 그로 인해 교회 안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던 것 같다. 

   (1)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2)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3) 생명의 말씀을 밝혀

   (4)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5)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정리] 그러나 빌립보 교회 안에서 발생한 원망과 시비가 잘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자 문제가 발생한다. 교회의 순수성과 성도의 순전성이 상실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은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이지만 교회는 그 세상 가운데 빛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교회도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와 같이 원망과 시비로 가득하다면)

그렇다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고 빌립보 교회를 세운 바울의 수고와 헌신은 모두 헛되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바울은 우려한다. 빌립보 교회가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바울의 수고도 헛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좀 있지 않겠는가 말하는 것이다.  


2. (바울의 소회)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정리] 만일 빌립보 교회를 위해 바울이 자신을 전제로 드릴지라도 자신은 후회되거나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기뻐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빌립보 교회의 가치가 바울에게는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하며, 자신의 생명이 드려져도 전혀 후회없음을 말한다.(교회를 위한 자신의 죽음조차)

  (권면)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정리] 그러니 너희들도 너희 교회(빌립보 교회)에 대한 가치를 알아서 교회를 기뻐하고 기뻐하라는 것이다. 교회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원망과 시비가 생기겠지만 그러나 교회의 가치를 잊지말고 교회 자체를 혐오하거나 교회를 훼손하는 방향으로까지는 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이 피흘려 세우신 것이고(우주적 교회), 바울이 목숨 걸고 세운 교회(지역교회)이기 때문이다.  


(질문하며 묵상하기)


1. 구절구절을 전체 맥락에서 이해하기 위해서 각 구절별로 [정리]를 해 놓았기 때문에 따로 질문하며 묵상하는 내용이 길 필요는 없을듯 하다. 

2.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원망'과 '시비'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교회의 한계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지상 교회의 불완전성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교회를 이끄는 사람들(리더십과 일반성도)의 불완전성에 있다. 따라서 지상 교회는 언제나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원망과 시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3. 따라서 '원망'과 '시비' 거리가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망'과 '시비'를 원천적으로 할 수 없는 교회가 지상에서는 위험한 교회가 되고 만다.(이단이나 폐쇄적인 공동체) 건강한 교회는 '원망'과 '시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교회를 세워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4. 교회가 원망과 시비를 극복하는 길은 '구원의 현재성'에 대한 강한 인식이다. 종말론적 긴장감이다. '원망'과 '시비'를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원망'과 '시비'를 정리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함을 말한다.(개인의 견해와 취향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옳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도 시점을 고려하는 지혜가 있어야한다) 

5. 아직까지는 본문의 내용이 더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정도에서만 묵상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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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9-11>(정리하기)

지금 본문을 살피기 전에 이전부터 전개되어 온 논리적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고 그 마음은 자기비움을 통한 낮아짐 곧 죽음에까지 낮아지는 태도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바로 그와 같은 낮아짐의 절정이 담긴 것임을 예로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2:1-8)

1. 이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를 지극히 높였다.(9절)

  1)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9절)

  2)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10절)

  3)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11절)


(질문하며 묵상하기)

1.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을 높이셨다는 이 말씀은 어떤 논리적 전개로 이어지는 것인가? 

  1)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끝이요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하나됨을 이루고, 교회의 하나됨(유대인과 이방인간의 담이 허물어짐)을 이루었듯이 교회 안의 성도들간의 갈등(시기와 투쟁)도 성도들 상호간의 낮아짐과 겸손을 통해서 하나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2) 그러나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희생한 사람들의 결말은 무엇인가? 아무도 그를 인정하거나 높임이 없이 잊혀지고 무시됨으로 역사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그것만큼 허무한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다는 논리를 말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오히려 지극히 높이셨던 것처럼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한 성도의 가치를 높이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바울도 복음 전하는 중에 '매임'을 당하고, 바울을 시기하는 자들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위임받은 사역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속에서 확대되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넘어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 속에서 담긴 '영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서는 허무한 자와 같지만 주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부활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죄를 구속하여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주를 의지해서 살아가고 사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종말론적인 소망의 근거가 되고 메시지가 된다. 

[묵상] 지금은 십자가의 시대다. 기독교적 상황이 우울하고 사역하는 사람들에게도 내적 소망이 없는 냉소적인 시대다. 이 시대를 견디고 극복하는 것은 적극적인 열심도 아니고, 낭만적인 희망도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보여주듯이 성도와 사역자들은 죽음과 절망임을 보면서도 십자가로 나아가면서 주님과 함께 수치를 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자리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갔던 자들을 높이사 하나님의 승리와 영광을 보이실 것이란 믿음을 견지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복음과 함께 수치를 당하고, 지금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 낮아지고 녹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죽고 그리스도와 교회가 살게 되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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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강화체_빌레몬05_몬1:15-18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문장요약]

1.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떠나게 된 것(도망친 것)은 오히려 빌레몬 곁에 오래도록 두기 위함이다.(바울이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를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이해하는듯 하다)

2.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받아들일 때 전처럼 종으로 대하지 말고, 종 이상의 관계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대해 줄 것으로 요청한다.(이미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와 같은 관계로 대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3. 바울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고자 하는데, 그를 맞아들일때 빌레몬이 바울을 영접하듯 환대해 줄 것으로 요청하고 있다.  

4.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재산의 피해를 준 것이 있다면 본인이 대산 갚아 주겠다고도 말한다. 

[내용정리]

1.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환대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종-> 종 이상, 형제로. 바울을 영접하듯 환대해 주라. 바울이 대신 빚을 갚겠다.)

 1. 바울이 오늘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권면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다.다만 바울이 빌레몬에게 요청하는 내용 속에서 오네시모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우리는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


2. 바울이 오네시모를 매우 존중히 여기고 있으면, 빌레몬으로 하여금 과거 잘못이 있는 사람이 변화되었을 때에 어떻게 그를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적인 지침을 준다.  

  1) 바울이 종에 불과한 오네시모의 회복을 위해서 매우 신중하게 말하고 요청하는 모습을 배울 수 있다.

  2) 신분사회라는 구조 속에서도 종을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 줄 것에 대해서, 어쩔 수 없는 용납이 아니라 환대할 것에 대해서, 바울이 대신 빚을 갚아주려고 하는 모습 속에서 예수의 삶을 볼 수 있고, 바울이 예수와 닮은 지경에 이른 것을 관찰하게 된다. 


4. 바울의 태도와 권면 속에서 복음적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바울이 빌레몬을 대하는 태도, 오네시모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어떤 것들이 느껴지는가? 

  - 바울은 빌레몬보다 권위자며, 나이도 많은 선생이나 명령하지 않고 간구함으로 접근했다. (14절을 보면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빌레몬의 승낙이 없이 진행하는 것은 절차에 맞지 않는 것이고, 선한 일이라도 억지 아닌 자의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바울의 가치관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 바울이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려는 노력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 속에서 보게 된다.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표현을 쓰는지 확인하게 되고 바울의 진심이 무엇인지 빌레몬에게 전해지도록 힘쓰는 모습을 본다. 

  - 성숙한 성도, 성숙한 리더가 가지는 태도와 가치관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2. 바울의 구체적인 권면 속에서 복음의 핵심적인 개념들이 드러난다. 

  - 16절. 종에서 사랑받는 형제로의 변화

  - 17절.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환대, 자격이 되지 않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18절. 대속(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 바울은 복음을 받은 자로만 사는 자도 아니고, 복음을 개념으로만 안 사람도 아니다. 그는 복음을 받은 자로 그 복음을 삶 속에 실천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음이 오늘 본문 속에 잘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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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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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강화체_빌레몬04_몬1:11-14

어렵지 않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기초적인 내용 파악(문자적 이해)을 중심으로 훈련하는 차원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문장요약]

1. 오네시모가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변화되었다)

2. 그러나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했다.  

3. 오네시모는 바울의 심복(심장) 같은 사람이 되었다.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은 오네시모의 섬김을 통해서 지금 매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4.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영적으로 낳았고, 유익한 자로 변화시켰으며 지금은 바울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 되었으나 오네시모를 자신의 곁에 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네시모는 원래 빌레몬의 종이었고, 빌레몬의 자의적인  허락이 없이 오네시모의 섬김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용정리]

1. 바울에게 오네시모는 지금 매우 유익한 사람이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내게 유익하다고 임의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2. 바울은 자신의 유익과 편의에 따라 행동하고 결정하지 않는다. 원칙과 절차를 따라 행동했다. 자신이 빌레몬과의 관계에서 그 원칙과 절차를 따르지 않아도 될 것같은 관계였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 바울이 오늘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권면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다.(~을 해라. ~을 하지 말라) 다만 바울이 빌레몬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우리는 성숙한 지도자(성도)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


2. 권위와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관계있더라도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는 방식은 성숙하지 못하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여준 모습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3. 사람은 복음 안에서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변할 수 있다.(11절)


4. 좋은 일, 바른 일이라고 하더라도 바울은 빌레몬이 억지로 하기를 원하지 않고 자의로 하길 원한 것처럼, 우리도 어떤 권면을 할 때 강압적인 태도보다는 자의로 할 수 있도록하는 인격적 권면이 필요하다. 


[적용]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정하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바른 고민을 하도록 돕는 것이 적절하다. 

1. 나는 내 편의와 유익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인가? 불편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따라  행동하는 사람인가? 

  - 내가 바울의 입장(리더의 입장, 갑의 입장)에서 빌레몬의 처지에 있는 대상에게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보자. 


2. 지도자로서 성숙한 권면은 '옳을 일'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임과 동시에 '자의'로 하도록 돕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 나는 설교하는 사람으로서 성경이 명하는 내용을 '당위'로서 요구하고 성도를 '평가'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설교는 '옳을 일'을 권면하면서도 그것이 '자의'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동기부여와 자각, 기다림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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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관찰해석적용샘플] 강화체_빌레몬03_몬1:8-10


전문적인 신학공부와 원어 공부를 하지 않으신 평신도들도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짧은 본문을 가지고 연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해석은 문자적(문법적, 문학적)해석을 중심으로 합니다. 온전한 해석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해석이 함께 되어야 하지만 성경을 해석하는 훈련차원에서 하는 것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문자적 해석을 하면서 역사적인 해석이 완전히 분리될 수 없기에 어느 정도는 본문에 따라 반영될 것입니다. 신학적 해석은 그 이후의 일이구요. 


 * 물론 평신도를 위한 훈련이기에 한글성경(개역개정)을 중심으로 하고, 번역된 성경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큰 틀에서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훈련하는 차원에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어렵지 않고, 복잡하지 않고,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훈련해 보는 것입니다.) 


[본문] 


본문 

관찰(1차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문장요약]

1. 바울은 이제 부탁하고하는 내용을 빌레몬에게 담대하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다.  

2.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에게 <간구>한다. 

3. 바울은 빌레몬에 비해서 나이도 많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는 중에 옥에 갇힌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옥중에 있으면서도 오네시모라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는 바울의 영적 자녀가 되었다. 

4. 바울은 지금 그 오네시모를 위해서 빌레몬에게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정리]

1. 바울의 빌레몬에게 권고하고 명령할 수 있는 나이, 위치, 영적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구>하고 있다. 

2.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낳은 영적 아들 오네시모를 위해서 이와 같은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다. 

 1. 바울이 오늘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권면하고 있는 내용은 아니다.(~을 해라. ~을 하지 말라) 


2. 다만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해서 간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빌레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바울은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빌레몬에게 <간구>하고 있다는 것은 바울의 인격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3. 바울의 이와같은 태도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 지도자로서 가지는 자질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1) 인격적인 태도

  2) 영적 권위와 나이로 명령하지 않고 정중하게 요청하는 바울

  3) 갑과 을에 대한 태도: 공적인 일에서 역할에 따라 상명하복의 구조일 수 있지만, 그런 구조 속에서도 인격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을을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용] 

적용은 관찰(1차 독자의 입장) -> 해석(우리시대의 보편적 독자입장) -> 적용(오늘, 나에게)라는 과정의 마지막 절차입니다. 묵상과 관련된 것이고 개인의 입장에서 해석된 말씀이 어떤 의미냐 하는 것이기에 주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주관적이라는 말은 임의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내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느냐? 의 문제이지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1. 바울은 왜 마땅한 일, 옳은 일을 요구하면서도 매우 신중하고 인격적인 요청을 했을까? 바울은 성도로서, 교회의 지도자로서  중요하게 여긴 가치관은 무엇일까? 

  - 바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자.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왜 그랬을까?


2. 내가 만약 빌레몬의 입장에서 바울의 편지(몬 1:8-10)를 읽고 있다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우리가 기대하는 영적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 바울의 문장 하나하나 속에 담겨진 배려의 태도에 감동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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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신학대학원 M.Div 졸업논문(2003년. 김수억)


평신도성경해석의문제점과대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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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12.25)


제목: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본문: 눅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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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12.18)


제목: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

본문: 눅 2: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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