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13-18>

(정리하기) (질문하기) (묵상하기)

1. (권면)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있다면)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행함을 보이라.(13절)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너는)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14절)


(원리)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임(15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16절)


(원리)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1.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17절)

2.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18절)


(정리하기)

1. 정말 지혜와 총명이 있다면 그것을 행함으로 보이라. 지혜와 총명이 가득한 자에게서는 성결과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다.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 이것이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들이 행함으로 보여주어야 할 태도다. 이 지혜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다. 

2. 반면 이 땅의 지혜는 정욕적인 것이고 귀신의 것이다. 이 땅의 지혜에는 시기와 다툼이 있다. 너희 안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그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말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귀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3. 따라서 너희는 하늘로부터 온 지혜를 따라 성경, 화평, 관용, 양순, 긍휼을 행함으로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시기와 다툼, 편견과 거짓은 버려야 한다. 그것은 땅으로 부터 온 지혜요 마귀적이기 때문이다. 


(질문하기) 

1. 야고보는 '이러한 지혜는'(15절)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지혜라고 해서 모두 선한 것이 아니다. 지혜라고 불리고 인식되고 있지만 어떤 지혜는 땅에서 나온 것이고 마귀적인 것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를 두 가지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인지? 땅에서 나온 지혜인지 구분해야 한다. 

2. 본문에서 다루는 핵심 내용은, 행함(선행, 13절), 자랑하지 말라(말, 14절), 화평을 심으라.(18절)이다. 

약 3:1-12은 '말'에 대한 주제로 권면하고 있다. 약 1:19-27 말보다 행함을 강조한다. 약 2:14-26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야고보는 앞에 언급한 주제를 다시 정리하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말의 유의함과 행함의 강조가 시기와 다툼의 방향으로 가서는 안되고 오히려 화평의 방향으로 가야 함을 오늘 본문에서는 구체화하고 있다. 


(묵상하기) 

1. 그리스도인은 말보다 행함으로,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사람임을 말한다.(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다른 일반적인 종교도 마찬가지고, 도덕적인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2. 그러나 우리는 '지혜'라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도 지혜를 말하면서 시기와 다툼을 만들어 낸다.(물론 자신과 자신이 속한 그룹을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하늘로부터 온 지혜는 '시기와 다툼'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 땅에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성공하고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맺는다. '성결, 화평, 관용, 양순,긍휼'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이다. 

3. 화평을 추구해야 한다. 화평을 추구해야 한다. 서로 견해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화평을 추구할 것인가? 싸우지 못하도록 말을 통제할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속마음을 여과없이 다 쏟아내도록 해야 할 것인가? 그것도 아닐 것이다. 

대의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죠이 공동체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 수준을 고려해야한다. 그런 이해없이 완전한 미래만 고집해서도 안되고, 과거의 전통에만 매여서도 안된다. 현재 우리 수준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도록 서로 완급을 조정하고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래야 화평을 이룰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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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8> (정리하기)

1. [권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5절)

  (이유)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2. [권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6절)

   (이유)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같으니

   (결과) 이런 사람은(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7절)

   (원리)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8절)


(질문하고 묵상하기)

1. 구절간에 논리적 상호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병렬식 주제 나열인가? 

  1) 2-4절은 시험과 인내와 성숙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고 서로 인과관계가 있었다. 

  2) 5절의 주제는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으로 앞의 주제과 큰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3) 6-8절의 주제는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는 것으로 의심하는 것에 문제에 대한 설명이 이어짐으로 인과관계가 있고 앞의 주제와는 '기도'라는 측면에서 이어진다 할 수 있다. 즉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구하라(5절. 기도의 내용),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하라(6-8절. 기도의 태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2. 큰 틀에서는 '기도'라는 것으로 주제를 잡을 수 있으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시험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성도들은 지혜가 필요한데 그 지혜를 '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 안에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으셨다. 큰 원리에 대한 내용과 특수한 상황 속에서의 케이스를 언급하신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기초로하여 이 땅에서 새로운 상황에 대한 지침 즉 지혜를 얻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에서 시험을 극복하며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할 필요가 있고, 하나님은 그렇게 구하는 간절한 기도에 대해서 '지혜'로서 답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혜를 구하라는 권면은 2-4절에서 언급한 '시험'이란 주제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3.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하라고 권면한다. 이 세상의 구체적인 지침까지 모두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현상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왜 그런지, 여기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으며 지혜를 구한다. 그 구체적인 '지혜'를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구하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험'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하여 숨거나 도망치지 말고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되, '믿음으로'구하라는 요청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신념이 흔들린다면 우리는 시험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갈 용기도 얻지 못할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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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6.2.21)


본문: 전 12:13-14

제목: 애완견인가 도사견인가?


 * 지혜문학으로서 잠언과 욥기 그리고 전도서에 대한 지혜의 의미에 대해서 설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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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정리]


1. 내가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너희들이 선호하는 방식(지혜로운 말)으로 가지 않고 <진리선포>(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목박히신 것)로 나아갔기에 나는 두렵고 떨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지혜로운 말이 아니라, 진리 선포에 있다. 


2. 그러나 바울이 지혜를 무시하는 것(반지성주의)이 아니다. 다만 너희들이 말하는 세상 지혜와 지혜의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세상이 모르는 것인데(만세전부터 감추어져있었던 것임, 그들이 예수를 죽였을 만큼 이 지혜를 몰랐고 무지했다.) 왜냐하면 이 지혜는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지 세상의 영을 가진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진리이다. 


3.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어리석게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 진리에 이를 수 없기 때문. 



[해설]


우선 바울의 이 세상의 지혜를 무시하는 것과 같은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왜냐하면 이 본문을 근거로해서 인간의 지성 자체를 경계하는 경향이 나올 수도 있고, 또 어떤 광신적인 사람들은 '신비적 지혜'를 말하면서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어처구니 없는 논지의 근거를 이 본문에서 끌어오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인용하여 쓸 수 있는 구절들이 다수 나온다.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의 지혜도 아니요

고전 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면, 과연 바울은 인간의 지혜(그 동안 인류가 축적해온 지혜와 지식들)를 부정하고 있는 것인가?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 있었던 기간 중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전에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고린도 지역에서 1년 반 동안 사역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본다.(행 18장) 따라서 그곳이 복음 사역과 관련하여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르기 전에 베뢰아를 떠나 도착한 곳은 '아덴'이었다.(행 17:13-15) 베뢰아에서 유대인들을 피신하여 도망치듯 온 '아덴'에서 바울이 봤던 것은 <우상이 가득한 것>이었다.(행 17:16) 이것을 본 바울은 마음에 격분이 일어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날마다 변론하게 된다.(행 17:17)


(행 17:18-21)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그 지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말과 지식에 대한 자랑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히 보여주는 구절이라 하겠다. 고린도 지역이라고 해서 상황이 많이 다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유대인들과 전부터 계속 싸워야 했지만, 인간의 지혜(헬라철학)를 말로 풀어내고 더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인 이 지역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 것인지를 몸소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리석게 들렸을 것이다. 신이 육체를 입었다는 것도 이해될 수 없을 것이고, 신이 죽었다는 것오 믿지 못할 일이다. 게다가 신이 부활하여 다시 육체를 입었다는 것은 그들의 지혜로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복음>은 <능력>으로 나타났고 회심자가 생겼으며 교회는 세워졌던 것이다. 도저히 인간적인 지혜로는 설명하거나 설득할 수 없는 내용인데, 그 중에 일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지혜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바울은 이것을 체험적으로 안다.) 그런데도 이들 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설득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하늘의 지혜'(이 땅의 지혜로는 이해 불가능한 내용)를 얻은 것이고, 이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사람의 노력과 탐구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음. 고전 2:12)를 통해서 된 것임을 바울은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2장의 '세상의 지혜'에 대한 말은 이런 맥락 속에서 된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 지혜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바울이 말하는 무용론은 '세상의 지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복음을 알수 없다'란 측면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2장의 내용을 근거로하여 '인간의 지성의 무용론'과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신령한 지식'이 주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솔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본문 말고도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성적인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과 그 지성을 통해서 사고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감추신 분이 아니라 드러내시는 분이고, 그것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고자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묵상]


1. 우리는 인간의 지성주의는 경계하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서 축적해온 지혜를 존중히 여긴다.


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이신 구원의 지혜는 소수의 제한된 자들에게만 밝히 보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온 천하에 하나님의 지혜를 밝히 드러내신 것이다. 자신들의 교회만이 그 지혜가 있고, 그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3.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을 믿게 되는 것은 신비로운 것이지만, 신비주의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4. 우리는 우리의 합리성을 넘어서는 사실과 실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지성주의로 흐르지도, 초월주의로 흐르지도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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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바쁜 일로 작성하지 못하던 것을 오늘 다시 시작합니다. 예레미야 묵상은 45장까지만 할까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내용을 다루는 부분은 여기까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 한 장]


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 역사적으로는 갈그미스 전투가 있었던 주전 605년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사적인 큰 변화가 있던  때임을 말한다. 



2.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였다. 


  * 예레미야서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 누구를 통해서 작성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3.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다. 


  1) 전에 예레미야가 말한 바,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 하셨으니 나는 피곤하여 안식을 찾지 못하는도다. 

  2) 이것을 말하라. 여호와께서 직접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 지금 이스라엘에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이전에 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셨듯이 이제는 헐고 뽑으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3)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 하나님이 하신 일을(재앙을) 돌이키겠다고 애쓰지 말라. 회복을 위해서 갱신을 위해서 너무 힘쓰지 말라. 네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런 때가 있고, 이런 시대가 있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의 헌신과 수고 심지어는 순교로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하시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 때는 잠시 숨을 고르고 활동적이기 보다는 비를 피하는 심정으로 때를 기다려야 한다.


  4)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5)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이 하리라.


   * 시대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사람 한 개인에게 주시는 복과 은혜는 여전히 임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는 생명을 노략물 주듯이 한다고 말씀한다. 시대가 어둡다고 개인까지 어두우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여전히 은혜와 복이 임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주 안에서 하나님의 뜻가운데 머물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고 내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힘쓰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그와 같은 5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자기관리를 잘 해야 한다. 큰 상처를 무릅쓰고 싸워야 할지... 아니면 자신을 키우면서 때를 기다려야 할지 우리는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



[묵상 한 모금]


1. 때로는 마땅한 명분일찌라도 행동보다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하고 있는 이 땅의 재앙을 돌이키겠다고 애쓰지 말라고 하신다. 네가 열심히만 하면, 생명을 걸고 하기만 하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때가 있고, 이런 시대가 있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의 헌신과 수고 심지어는 순교로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하시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 때는 잠시 숨을 고르고 활동적이기 보다는 비를 피하는 심정으로 때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이 목숨을 거는 열정보다 더 힘들수 있고, 어떤 활동가보다 더 큰 역사적 힘을 가지기도 한다.


2. 시대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한 개인에게 주시는 복과 은혜는 그 시대에도 여전히 임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는 생명을 노략물 주듯이 한다고 말씀한다. 시대가 어둡다고 개인까지 어두우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여전히 은혜와 복이 임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주 안에서 하나님의 뜻가운데 머물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고 내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기를 힘쓰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그와 같은 5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자기관리를 잘 해야 한다. 큰 상처를 무릅쓰고 싸워야 할지... 아니면 자신의 내공을 키우면서 때를 기다려야 할지 우리는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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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여호수아 8장] 아이 성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승리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약속과 전략이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여호수아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최대한의 지혜를 발휘하여 지휘하는 모습이 같이 있다. 하나님은 승리와 전략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안주하게 하거나 느슨하게 해서는 안된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을 공격하여 취하라고 말씀하신다.
  1) 아이 성에 올라가라. 내가 너에게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 땅을 주었다. 
  2) 여리고와 그 왕에게 한 것처럼 행하되 탈취한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3) 너는 아이성 뒤에 복병을 두어라.

2. 여호수아가 군대를 뽑고 전략을 짜고 전투를 지휘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다. 
  1) 군대 3만을 뽑고 그들에게 전쟁의 전략을 이야기 한다. 
  2) 본대와 매복부대로 나누어 본대가 지는척하여 도망하면 매복 부대가 아이 성으로 들어가서 성을 불태운다. 
  3) 여호수아는 간밤에 약 오 천명 가량을 아이 성 서쪽에 매복시켰다. 그리고 본인은 본대와 함께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아이로 올라갔다. 
  4) 여호수는 밤에 골짜기로 들어가서 공격하는 것처럼 취하자, 아이 왕은 아침 일찍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 성에서 나온다.(아이 왕은 전혀 복병이 있는 줄을 몰랐다.)
  5) 이스라엘은 도망치고, 아이는 전군이 쫓아오는데 문을 열어놓고 좇아올 정도였다.(그 만큼 이스라엘의 전략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6) 여호수아가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복병들은 그 신호에 따라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들어가서 성읍에 불을 지른다. 
  7) 성읍에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당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이성 군대는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복병들도 성을 불태우고는 나와서 아이 군대를 공격함으로 아이 군은 패한다. 
  8) 아이 주민들은 완전히 진멸될 때까지 여호수아는 단창을 잡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9) 성에서 노략한 가축과 노략물들은 여호수아의 명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다. 
  10) 아이 왕은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아 해 질때에 그의 시체를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다. 그것이 오늘까지 있었다. 

3.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제단을 쌓고 거기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을 낭독하다.
  1) 여호수아가 에발 산에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만들어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다. 
  2)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였다. 
  3) 그러자 이스라엘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절반은 그리심 산에, 절반은 에발산에 섯다.
  4) 이는 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한 것이다. 
  5) 그 후에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 모세의 명대로 온 회중과 여자와 아이와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되었다.


[정리2.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을 다시 풀어서 쓰기]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심판하시고 나자 아이 성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아이 성을 주셨음을 확인시켜 주시면서 두 가지 추가적인 말씀을 하신다. 하나는 아이 성에서는 여리고와 달리 달취한 물건과 가축은 가지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 성을 공격하기 위한 전략(매복)에 대해서도 지시하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시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해야 할 일들을 행한다. 병력을 삼만 명으로 확대한다. 그리고 그 중에 매복할 병사들을 구별하여 오천명을 매복시킨다. 아이 성에서는 철저하게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매복을 시킨다.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여호수아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무리 가운데서 잠을 잤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병력을 배치시켰다. 그리고 아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 맨 앞에서 지휘하면 나아갔다. 여호수아의 지휘 앞에 다가오는 이스라엘의 병력이 전부인줄 알았던 아이 성의 왕과 병사들은 온 힘을 다해 이스라엘 대항했고, 전쟁을 좀 하는 듯 하다가 여호수아는 병력을 철수시키고 퇴각했다. 아이 왕과 병사들은 이번에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인줄 알고, 성 문을 열어놓은 채 이스라엘 좇아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이 때 숨어있던 복병들이 아이성을 공격하고 불태웠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아이 왕과 병사들은 이스라엘에 의해서 완전히 섬멸되고 만다. 아이 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아이 성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제단을 쌓고 모세의 율법을 그 제단 돌에 새긴다. 회중은 에발산과 그리신 산에 반반씩 서고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책에 있는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을 모든 회중(여자, 아이, 거류민) 앞에서 낭독하였다.  


[정리3.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메시지와 묵상들]

1. 하나님은 승리와 함께 전략도 알려주신다.

궁극적 결과 뿐 아니라 지혜도 주신다. 매복병을 두어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을 하나님이 지시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궁극적인 승리 뿐 아니라 그 승리를 위해서 가야할 전략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할 때 일이 순적하게 된다. 인간적인 욕심과 방법만을 의지할 경우, 오히려 일이 꼬이는 경우도 있게 된다. 

목적을 주시고 목표를 주셨다면, 어떻게 그 일을 이루어 가야할지에 대한 지혜도 구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뛰어난 전략가이시기도 하시다. 

2.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성실하게 전쟁을 지휘했다.

무리와 함께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 났으며, 아이 성을 완전히 멸망시키기 전까지 단검을 든손을 내려 놓지 않았다.

하나님이 승리도 확증해 주셨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전략도 알려주셨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 승리가 오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가 이 전략이 실수 없이 진행되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전쟁을 치르기 전날 밤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백성 가운데서 여호수아는 잠자리에 들었다.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들을 점호했다. 그리고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갔다. 매복할 5천명은 적이 알지 못하게 성읍 서쪽에 주둔시킨다. 그리고 주 군대는 북쪽에 있었는데 밤에 여호수아가 골짜기 사이로 들어가는 것을 아이 성에서 보도록 했다. 그래서 아이 성에서는 여호수아가 급습을 할 줄로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다가 아침이 되자 마자 역으로 급습하도록 유인한 것이다. 적을 유인하는 것까지 여호수아는 치밀하게 행동했다. 

아이 성에서 방심하고 나온 것을 알고 적절하게 유인한 후 여호수아의 신호(단검을 들고 아이 성을 향하도록)에 따라 복병이 일어나 아이 성을 공격하게 했다.(18절) 여호수아는 완전한 승리를 확신할 때까지 단검을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26절) 이 장면은 출 17:8-16에 이스라엘과 아말렉 전투에서 모세가 보여주었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모세가 손을 들면 전쟁에서 이기고, 손을 내리면 전쟁에서 진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들어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 때 전쟁을 이끌고 나갔던 장수가 누군가? 바로 여호수아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든 손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지도자(인도자)의 긴장과 성실이다.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가정의 지도자다. 믿음의 지도자다. 하나님의 언약이 있으니 우리의 자손들을 붙잡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혜가 성취될 수 있는 부모의 성실한 노력과 긴장감이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고, 번득이는 지혜를 주셨다고 안주해서는 안될 일이다. 어떤 영적 지도자도 긴장감을 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3. 아이 성은 저주와 축복을 보여주는 케이스다.

아이 성 승리 후 에발산에서 축복과 저주의 율법을 읽었다. 아이 성 전투는 패배와 승리를 동시에 보여주는 성이다. 아이성에서 저주도 경험하고 축복도 경험했다. 아이성은 양면성을 가진 성이다. 이 성에서 승리하고 저주와 축복의 율법을 낭독하는 것은 매우 적실하며 여호수아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 성을 통해 저주받은 아간과 그 가정과 집을 보았다. 동시에 아이성을 통해서 신명나게 승리하는 백성의 모습도 보았다.(여리고를 이길 때와는 다른 느낌의 승리다.) 이스라엘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고, 그것에 따른 전리품도 얻을 수 있는 전투였던 것이다. 

우리 앞에는 저주와 축복이 늘 놓여있고, 저주와 축복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한 발차이에 불과하다. 내가 선 자리에서 한 발만 움직이면 저주의 자리가 되는 것이고 역으로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발만 움직이면 축복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거룩함과 정결함으로 한 발자국만 움직인다면 저주에서 축복으로 우리는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자리로의 이동이 있기를 축복한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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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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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0장은 솔로몬 시대의 가장 번성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충분했고, 단순히 학자처럼 해박했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가를 통치하고 다르리는 모든 영역에서 그의 특별함이 드러났음을 보여준다. 최고의 무기(애굽의 말과 병기)를 가져다 국력을 강화했고, 심지어 주변 국들에게 그 무기를 교역하는 역할도 감당했다. 이스라엘 왕국은 다윗 왕 때에 기초하여 강건해지고, 솔로몬 시대를 통해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것이다.

[정리1. 내용 정리_구체적이지만 간략하게]

1.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오다.

  1)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어려운 문제로 솔로몬을 시험하고자 찾아왔다.

  2) 많은 수행원과 많은 향품,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고 왔다.

  3)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물으매, 솔로몬은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4)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 뿐 아니라, 건축한 왕국과 음식과 신하들의 좌석과 시립한 것과 관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성전을 올라가는 계단을 보고도 크게 감동을 먹었다.

  5) 스바의 여왕은 소문으로 들은 것 보다 훌륭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음.

  6) 가지고 온 많은 예물을 솔로몬 왕에게 드림. 역대 최고의 예물을 스바의 여왕이 가져옴.

  7) 솔로몬은 돌아가는 스바 여왕에게 왕의 규례대로 예물을 주고 그가 원하는 것을 또 줌.

  8) 당시 솔로몬은 오빌에서 히람의 배를 통해 다량의 백단목과 보석을 교역하고 있었다.

2. 솔로몬의 재산과 지혜

  1) 솔로몬이 세금으로 걷는 수입이 금 666달란트.

  2) 그 외에 상인, 무역하는 객상, 아라비아의 모든 왕들, 나라의 고관들에게서도 수입이 있음.

  3) 솔로몬이 금으로 만든 방패: 큰 방패 200개, 작은 방패 300개.

  4)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다.

  5) 왕의 보좌 좌우편에 6개의 사자가 있는데, 이같이 만든 것이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6) 당시 금이 너무 많아, 은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였다.

  7)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삼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다.

 8) 솔로몬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어느 왕보다 컸다.

  9) 온 세상 사람들이 솔로몬의 마음에 있는 지혜를 들으며, 얼굴 보기를 원해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다.

  10)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았다.(병거 1400대, 마병이 12000명) 애굽에서 왕의 상인들이 말들을 사고 병거를 샀다. 병거는 한 대에 은 600세겔, 말은 한 필에 150세겔이었다. 왕은 이 말과 병거들을 헷사람의 모든 왕과 아람 왕들에게 되팔기도 했다.(무기상을 함)

 

[정리2. 내용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재구성함]

솔로몬 왕의 시대가 가장 번성하고 아름다웠으며 부강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솔로몬이 있다. 스바 여왕도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서 찾아왔고, 그가 가지고 온 많은 어려운 문제와 심지어 난해한 문제에까지 솔로몬은 막힘없이 답변을 했다. 스바 여왕이 본 것은 솔로몬의 지혜만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와는 차별성 있는 건축과 음식과 제도를 보고는 솔로몬이 멀리만 좋은 왕이 아닌, 실제로 통치에 있어서도 그것이 반영되는 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감탄하고 놀라게 된다. 그는 그가 가지고 왔던 많은 예물을 아낌없이 솔로몬에게 바친다. 역대 최대의 예물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솔로몬은 많은 세금(국민, 주변 나라)을 거두어 드렸고, 금이 많아 금으로 방패를 만들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의 보좌는 상아로 만들고 금으로 입혔으면, 그 좌우에는 여섯 개의 사장 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시 은은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금이 풍성한 시대였고, 많은 무역을 통해서 지중해를 통해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 공작들을 삼년에 한 번씩 실어왔다.

솔로몬은 애굽에서 말과 병거를 구입해서 병력을 강화했고, 때로는 주변 나라에 말과 병거를 팔기도 했다. 무기 교역도 한 것이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꽃을 피웠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과 나라에 대한 언약이 천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솔로몬 시대에 가서 성취 되어지는 것 같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아브라함과 사라) 한 민족을 이루고, 약속한 땅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그 나라에 여호와의 성전을 지음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가시화 한다. 또한 한 나라로서의 위상은 주변 국들을 통해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이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가 솔로몬 왕국에서 완성된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솔로몬의 왕국이 과연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인 것인가? 하는 기대를 사람들은 가졌을 것이고, 솔로몬도 그리 생각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2. 참된 리더는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그 공동체와 조직에 반영해야 한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해박한 지식에 놀랐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그의 통치에 반영하였다는 것이다. 음식 뿐 아니라 행정 조직에 있어서까지 그의 지혜가 나타난다. 건축에 있어서, 그의 보좌에 있어서도 그의 지혜가 모두 반영되는 것이다.

  참된 지식인, 참된 리더는 그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실현해 내는 사람이다. 따라서 공상만 가진 자를 리더로 세워서는 안된다. 말을 그럴듯하지만 그것을 실현해 낼 의지가 없는 사람도 안된다. 그것을 실현할 능력이 없는 사람도 참 리더가 될 수는 없다.

지혜와 지식과 함께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 나라의 구석 구석에 녹여낼 수 있는 자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 세계 속에서 그리 큰 나라가 아니었을테지만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은 무시할 수 없는 나라였던 것은 확실하다. 우리나라가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대국이 된다는 것은 몽상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대국이라는 미국이나 중국이 무시하지 못하는 나라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솔로몬과 같은 지도자를 만난다면 말이다.

남한과 북한이 어떻게든 마음을 합하고 힘을 규합할 수 있다면, 우리 한민족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될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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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15호, 태풍 14호가 지나간 오늘은 화창하고 덥네요. 중부지방에는 큰 피해가 없다지만, 제주와 남부, 충청권에는 피해가 적지 않네요. 몇 일간 참 마음 조리며 시간을 보냈는데...자연의 힘이란... 또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힘이란 도대체 어떻게 가늠할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연과 절대자 앞에 겸비하는 것이 인간의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해서 다루는 본문이네요.

 

[정리1. 본문 내용을 이해하기 좋게 정리하기]

1.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한다.(1절)
  1)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 왕궁이 완성되기를 기다림.
   : 솔로몬은 아도니야와 요압과 아비아달과 같은 정적들을 제거하고, 나라를 내부적으로 견고하게 했다. 그 뒤를 이어 주변 국 중 강대국과 정략결혼을 통해 외부적 안정을 꾀한 것 같다.

2.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는 솔로몬의 기도제목과 응답
  1) 성전을 건축하기 전이라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솔로몬도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2) 한 번은 왕이 기브온 산당(좀 큰 산당인데)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던 중 꿈을 꾸게 됨
  3)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소원을 묻자, 솔로몬은 장수도, 부도, 원수의 제거도 구하지 않고 오직 지혜로 백성을 판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자 하나님께서 이것을 좋게 보시고 지혜를 주실 것을 약속함. 더불어 다윗처럼 하나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날이 길 것을 약속하는 꿈.
  4) 솔로몬은 꿈에서 깨어 기도의 응답으로 보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번제를 드리고는 잔치함.

3.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 사례
  1) 창기인 두 여인이 비슷한 시기에 낳은 아들 중 살아 있는 아들이 서로 자기의 아들이라고 우기는 재판을 하게 됨
  2) 솔로몬은 그 살아있는 아이를 칼로 쪼개어 나누어 주라고 하자 친모는 그 아이를 가질 것을 포기했지만, 거짓모는 둘로 쪼개자고 함
  3) 두 여인의 반응을 통해서 친모를 찾아준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의 예를 보여 줌.

[정리2. 본문 내용의 재구성]

솔로몬은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정적들을 제거하고 내부적으로 나라를 견고히 했다.(2장) 더불어 솔로몬은 대외적으로는 당시의 강대국 애굽의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함으로 대외적인 안정을 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솔로몬이 하려고 했던 것은 왕으로 많은 백성을 다스릴만한 능력을 겸비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는 기브온 산당에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 그의 간절한 소원을 아뢰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으셔서 그의 소원대로 백성들을 다스릴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한다. 꿈에서 깨어난 솔로몬은 기도의 응답으로 알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번제를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푼다. 왕으로서 중요한 통치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게 된다.

그 이후 솔로몬의 지혜를 입증할만한 결정적인 재판이 열린다. 갓난아이의 생모를 판별하는 재판이다. 솔로몬은 이 재판을 지혜롭게 행하므로 그의 지혜가 탁월함을 확인하게 된다.  

 

[정리3. 묵상과 적용] 

1. 왕의 능력은 백성의 일을 지혜롭게 판단해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솔로몬은 정적을 제거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었다.(2장) 또한 국제 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 고 있었다.(3:1) 솔로몬은 이 두가지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 솔로몬인 일천번제를 드리면서까지 간절히 얻기를 원했던 것은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리해주고 판별해 주는 일을 현명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오늘날의 통치라는 것이 경제와 외교, 정치적 안정 모두 중요한 것이지만, 백성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 아닌가 싶다. 힘과 권력을 가졌다고 보호받고(불의한 것까지도) 힘없고 가난하다고 보호받지 못하는(오히려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사표현까지도 법으로 처벌하는 방식) 불의한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불의한 것을 바로 잡고(부패 척결),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를 풀어주어(양극화를 조장하지 말고)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면 생활이 보장되는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을 이루기 위해 복잡한 변수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겠으나...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기본능력을 바로 이 것을 실현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2. 참과 거짓은 무엇으로 구분하는가? 살리는 자인가 죽이는 자인가?

참이란 무엇인가? 옳은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다. 옳은 것이 참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참인 것이다. 거짓이란 무엇인가? 틀린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다. 틀린 것은 거짓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다.

참이란 도그마가 아닐게다. 그것은 자신의 갓난아이를 살리고자 포기하기로 결단한 어머니의 마음이다. 어머니의 마음이 참이고, 그것이 진리인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가 진리인 까닥은 도그마에 있지 않고, 예수를 통해 우리를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어머니 마음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예수를 통해 누군가를 죽이는것이란 참이 아니요 거짓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살리는 사람인가 죽이는 사람인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살리기 위해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가짐으로 살아 나다면 우리는 가져야 한다. 그러나 내가 가짐으로 죽는다면 우리는 포기해야 한다. 내가 포기함으로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포기해야 한다. 내가 중심이 아니다. 생명이 우선이다.

(성경 본문의 의도와 달리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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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장은 적어도 4가지 주제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듯 합니다.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할 때, 사람들이 구하는 방식으로 구하면 거기에는 다툼과 시기 더 나아가 살인까지 일어납니다. 심지어 그런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도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성도의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과 같은 이야기로 야고보서 4장은 시작됩니다.

 

1. 지혜: 간구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사람에게 구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가지려고 하다보니 다툼도 나고 싸움도 나게 된다. 사람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으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께 구하라. 정말 필요한 것이고, 순수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에게 적극적으로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주실 것이다.

[정리]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방식. 구하는 것을 주시지만, 혹 주시지 않을 때 그것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음... 어쩌면 그것은 내 욕심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이라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싸우며 긴장하며 시기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2. 세상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결과가 생긴다. 마치 세상과 하나님은 천칭의 양 끝과 같아서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내려오게 된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게 될 때, 다른 한 편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내려갈 수 있다는 긴장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벗어나 살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하다보면 어느덧 하나님은 멀어져 간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우리가 아는 바다.

[정리] 여기서 세상이란 세상 정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우리가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세상의 것(기술,문명,문화,스포츠,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애착이 커지면 커질 수록 하나님에 대한 애착이 약화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적당히 좋아하자. 세상의 것들은...

 

3. 우리는 재판관이 아니라 준행자

판단하고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만 지키고 행하는 자다. 판단은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영역이다.

[정리] 오해하지 말자. 형사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끼어들어 왈가왈부하는 것이 우낀 것이 될 수 있듯이 누군가에 대해서 최종적인 판단자가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하자. 어느 정도 간섭하고 평가하다가 안되면 하나님께 맡기자.

 

4.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우리에게 내일은 보장된 것이 없다. 괜한 말로 내일 내일 약속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때,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하는 것이지 미루면 그것은 죄가 된다.

[정리] 신앙의 표현은 현재다. 우리가 안개같은 인생이기에 그렇다. 나중에... 라는 공수표는 남발하지 말자. 정치인들의 이 무분별한 공약이 얼마나 정치에 대한 진정성을 훼손시켰는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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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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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는 신약의 잠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3장의 말씀을 보면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불신자나 타종교인들이 봐도)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면서 자신의 삶으로 그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에도 부담을 갖지 않을 만큼 보편적인 지혜와 통찰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혀)에 대한 야고보의 가르침과 지혜와 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보편적인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물론 이전까지의 기독교적인 독특한 가르침의 배경 속에서 연속적인 지침을 주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공감이 될만한 내용이기에 거부감이 없으리라 본다.

야고보서 2장에서 보여주었던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한 논리도, 기독교의 구원론적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부딪힘이 있는 것 같지만, 일반 상직적인 논리로 보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는 것에서도 야고보서가 일반인들에 매우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와 공감이 되는 본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적 이신칭의의 교리와의 긴장감 때문에, 강단에서 잘 다루어지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불신자들 혹은 타교인들을 염두한 설교라면 매우 적절한 본문이 아닌가 싶다.)

그 내용을 보면  

[말의 중요성과 위험성]

오늘 본문은 말을 소재로 하는 권면이다. 특히 선생 된 자로서 말은 매우 중요한데, 말을 그 크기에 비해서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도록 해주는 혀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사물의 모든 것이 통제가 되어 길들일 수 있지만, 혀 만큼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혀를 통해 말을 해야 하는 일로서 선생의 일을 사모해야 할 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맡겨지기 때문에> 해야 하며 더불어 맡겨져서 그 일을 하더라도 혀를 잘 제어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혀는 온 몸을 더럽힐 수 있으며,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자랑이나 명예와 같은 생각 속에서 남 앞에서 선생이 되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히려 큰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말 잘한다는 이유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이유로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목회자는 어떤 면에서 철저하게 <청빙>에 의해서, 하나님의 부르심 혹은 교회의 부르심을 통해서,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서 설교하는 자리에 서도록 해야 한다. 설교는 매우 소극적인 측면(내가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해야 할 말이 채워지고, 그것이 들려지기를 요청되는 지점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측면에서)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혜, 땅의 지혜 하늘의 지혜]

더불어 시기와 질투를 기초로 하여 자기 자랑이나 타인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그런 지혜는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고, 땅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로서 온 지혜는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 긍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들이다.

시기와 질투를 기초론 한 자기 자랑과 거짓말은 세속적이고 악마적인 것임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내 안에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자는 다른 사람 앞에 서지 말아야 하며, 어떤 말을 하는 것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지혜롭다. 말을 삼가해야 한다.

내 안에 하늘로부터 온 지혜가 가득할 때, 이 때는 우리 안에 성결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과 긍휼과 같은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 상태로서 그런 때에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 지혜롭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건, 어떤 상황 속에서 이 마음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말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된다. 묵묵부답이 정답이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온 지혜가 가득해 지면 조심히 입을 열어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하면 과묵한것이 실수를 덜 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이 너무 많으면 제 살을 깎아먹게 된다. 아니 말할 수 없 수 없을 때 조금만 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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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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