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27-30>(정리하기)

1. [권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1)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을 기대함(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함께 하고 있을 때나, 떠나 있을 때에라도)(27절)

 2) 바울은 무슨 일에든지 빌립보 교회가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음에 대해서 듣기를 원한다.(28절)

  (1) 빌립보 교회의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2) 빌립보 교회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 빌립보 교회가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않음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확인되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를 대적하는 자니 그들은 멸망의 증거가 된다. 


2. (설명) 그리스도를 위해서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29절)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다.(30절)  

  1) 따라서 주를 믿는 과정에서 고난이 함께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바울이 매임을 당한 것도 그런 맥락 속에 있으며 바울은 그것에 대해서 대적자에 의한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 이제 이런 문제는 바울에게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당황해 하지 말고 담대하게 흔들리지 않고 해결해가야 할 것을 요구할듯 하다. 


[질문하며 묵상하기]

1. 27절에서 바울은 직접적으로 빌립보 교회에게 권면한다. 바울이 앞서 이야기 한 것, 그리고 뒤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 있지만 분명하게 빌립보 교회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이다. 

  1)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들이 있는데, 대적자들이다. 대적자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대적자들을 대하는 빌립보 교회의 태도에 있는 것이다.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이런 대적자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랄 필요도 없다. 

 2) 대적자가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우리들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옳은 일을 하는데 있어서 대적자가 있다는 것은 빌립보 교회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된다.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다. 

 3)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이다. 


2.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무엇인가? 빌 1:12-26까지 바울이 대적자들에 의해서 매임을 당하고, 매임 중에 시기와 분쟁으로 바울의 마음을 어렵게 하려고 했던 자들의 노력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로 삼았는가에 대한 간증을 통해서 우리는 간파해야 한다. 

 1) 대적자가 있어도, 그래서 내가 매임에 처해도 하나님의 일은 멈추지 않는다.

 2) 바울 개인에 대한 내부(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 계파가 다른 사역자)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주님과 함께 육체에서 떠나있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죽음도 유익하다) / 내부이 시기와 투기(15절)에서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바울의 매임) 그로 인해 긴장감이 없지 않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자신의 긴장감조차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3)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자신은 감추어지는 상황에 기꺼이 자신을 맡기는 생활이다. 자신의 헌신과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또 시기와 분쟁의 마음으로 자신의 순수함을 폄훼하는 무리들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음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온전히 드러나게 된다면 기꺼이 자신이 사라지는(무의미한 존재처럼 여겨지는) 자리에도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는 생활이다. 

  -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간의 시기와 긴장 안에서 복음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이라는 온전한 목적 속에서도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할 수 있음을 바울은 보여주고 있다. 

  - 바울은 자신이 사라지고,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을 기뻐한 자로, 삶의 주권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진 사역자임을 알게 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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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1:12-18>[정리하기]

1. 바울이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다. 

 1) 바울이 매임을 당했다는 것이 시위대 안밖에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13절)

 2) 형제 중 다수는 바울의 매임이 오히려 용기를 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4절)

 3) 또 어떤 이는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15절)

  (1) 바울이 매임을 당한 후에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해 세움받은 줄 알고 하는 것이고(그 일이 계속되도록)(16절)

  (2)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전파) 하는 자들이다.(17절)

 4) 소결론: 바울은 오히려 참 기쁘고 기쁘다.(18절)

  (1) 무슨 방도이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2) 그것이 겉치레로 하는 것이든, 참으로 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질문하고 묵상하기]

1. 바울이 당한 일(매임)이 개인에게 있어서나 사역적으로 있어서나 안좋은 일인 것은 분명한데 왜 바울은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바울이 매임을 당한 일은 세 가지 측면에서 안좋은 일로 보인다.

  (1) 개인적인 자유의 속박을 받으므로

  (2)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역에 지장을 받고 

  (3) 문맥적 상황을 살펴보면, 바울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무리가 있었던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이들에게 그 영향력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또 바울을 따르는 자들이 위축되게 되는 우려가 있다. 

 2)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생각지 못한 현상을 보게 된다. 

  (1) 바울을 따르던 자들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를 내서 담대하게 바울을 대신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더라.(14절)

  (2) 바울을 시기하던 세력들은 바울이 매임을 당한 시기에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려고(시기와 분쟁, 순수하지 못한 다툼으로)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파하더라.(15절, 17절,18절)

 3) 소결론: 나의 매임이라는 개인적인 불편함만 제외하고 본다면 오히려 바울 자신이 매여있게 된 것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는 더 효과적인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바울은 매임 중에 깨닫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고 있자니 바울은 매임 중에 절로 감탄하게 되고, 웃게되고 기뻐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 나는 무엇이 불편하고 억울한가?

 1) 내가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그 일이 막히고 나의 경쟁자들은 그 때에 승승장구 하는 것 때문에 나는 불편하고 억울한가? 

  - 이런 생각은 처음 주님의 제자가 되고 사역자가 되었을 때 이미 포기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왜 내가 잘 되어야 하고 왜 내가 형통해야 하는가? 그것과 하나님의 나라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2)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울과 같은 안목이 아닌가? 

   - 내가 불편하고 내가 억울한 상황 때문에 화가 나는게 아니라, 나는 매임을 당하고 나는 억울하고 나는 불편해도 그 결과로 인해서 내가 하려고 했던 사역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나는 감사할 수 있는가?

   - 왜 하나님의 사역이 나를 통해서만 일어나야 하고, 나의 성공을 통해서만 확인되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역조차도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자아)이 살아있기에 가능한 논리가 아닌가!


3. 바울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

 1)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이 아니다. 

 2) 고통에 대한 무감각 때문도 아니다. 

 3) 사역의 성취에 대한 주권도 오직 하나님께 내려놓을 수 있었던 그의 신앙에 있었던 것이다. 

  - 바울이 매임을 당할 당시 자신의 매임과 함께 제약받게 될 그리스도의 전파를 우려했으나, 일이 되어지는 상황을 보니 자신의 우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역이 확대되는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놀라게 되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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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4편] 하나님은 어떻게 증거되는가? 고양이가 개가 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고양이가 개 앞에서 여유롭고 넉넉한 태도를 가지고 아량을 베풀어 주는 삶을 통해서다. 하나님의 위대함은 고양이를 개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개보다 더 위대한 고양이를 만드심으로 증명된다. 고양이들이여, 개의 인생을 두려워하지 말라.


[정리1.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기]


1. 서언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본론


<시편기자가 인생들을 향해서 주는 경고>


  1)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2)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을 너희가 알지어다.

   (1) 내가(시편 기자와 그의 백성) 그를(여호와 하나님)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3) 너희는 

   (1)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2)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지어다.

   (3)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3. 결론: 여러 사람들이 주의 백성에게 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우리 안의 확신


  1)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 누구뇨 하오니

   (1)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2)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3)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정리2. 본문의 정황과 시편기자의 심중으로 들어가기]


시편 기자는 현재 하나님을 부르고 찾는 중에 있다. 그리고 주의 얼굴을 들어 자신에게 비추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것은 시편 기자의 상황이 문제가 해결된 상황이 아닌, 현재 문제가 지속되는 상황이며, 가시적인 해결의 실마리고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여러 사람들(인생들, 너희들)은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가 누가 있느냐? 하면서 거들먹 거리고 있다. 그들이 득세하는 것 같고, 하나님의 백성인 시편 기자는 아무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증명해 낼 만한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당연 위축되어 있어야 할 이 사람이, 그들을 향해서 당당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떨며 두려워하라고, 그 앞에서 잠잠하라고, 빨리 의의 제사를 드려 여호와를 의지하는 백성이 되라고 말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들의 입장에서보면 적반하장인 상황인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인생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보다 더 풍성하고 여유있는 태도를 가진다.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여호와께서 마침내 그의 얼굴을 우리 자신에게 비추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노래하고 찬양한 시다. 


[정리3. 본문에서 시편기자가 전해 주고 싶었던 메시지]


1.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셔서 찬양을 받지 않으신다 


시편 기자의 소원은 인생들을 향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는 이방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보란듯이 자신을 증명해 주시길 바랬을 것이다. 힘으로 그들을 정복하고,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을 일으켜 세워서 보란듯이 그들의 교만을 누르시는 방식으로 일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조롱은 더욱 컸고,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에 흔들림은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지금은 아니었지만, 반드시 자신의 손을 들어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확신하고 나니, 그와 같은 하나님을 시편 기자는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찬양이 결과(긍정적)에 대한 찬양이었다는 것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찬양이며, 이방인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자가 믿음이 적은 자도 자연스럽게 하는 찬양이다. 그러나 참된 찬양은 신학적인 확신과 믿음 속에서 나오는 찬양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눈물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찬양이 참된 깊이 있는 찬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백성)의 승리를 믿는 자는 불리한 중에도 여유와 평안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백성들은 지금 패배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기쁨이 충만(7절)하고 평안이 눕고 자기도 한다(8절) 오히려 자신보다 유리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당당하게 권면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의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우리는 전도를 하려고 해도 내가 잘되고, 내가 성공해야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며 살아계신 전능한 하나님이심이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면, 풍부하지 못하면 간증도 전도도 불가능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증명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시지 않는다. 또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옳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가 보여주는 여유과 평온함이 그들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불안정한 기반 속에서도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는 자의 그 삶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방식이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그렇게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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