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어머님께

어머님, 먼저 칠순을 맞으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또한 감사드려요.

어릴 적에 제 나이가 40이란 숫자를 훌쩍 넘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어머님의 연세가 70을 넘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제 마음 속 어머님은 언제나 마흔 아홉인데 말이지요.

제가 아이 둘을 키워보니 보람 있을 때도 많지만, 서운할 때도 엄청 많더라고요. 맛있는 음식 있을 때, 저희 부모에게 드시어 보라는 말도 없이 두 녀석이 다 먹어버리면 서운하고, 적어도 부모 생일이나 어버이날에는 좀 챙길 줄 알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거나 형식적으로 선물하는 것을 보면 또한 서운하더라고요.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본전 생각도 나구요. 애정이 큰 만큼 서운함도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로 아이들에게 크게 혼내고 훈계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가 저희 아이들만 했을 때, 죄송하게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챙겨드렸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참으로 혼자 무안해 했었습니다. 딸 하나 없는 아들 삼형제를 키우시면서 어머님은 여자로서 누려야 할 어떤 것도 저희 아들들에게 받지 못하셨던 것같습니다. 같이 옷을 사러 간적도 없고, 장을 보기 위해서 여유롭게 시장 구석구석을 함께 다녀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준비해드린 적도 없었구요. 그렇다고 살갑게 어머님을 안아드리거나 팔짱을 끼거나 하지 못 했던것 같습니다. 그저 바쁘시고 일상에 피곤하신 어머님을 위해서 저희가 했던 것은 설거지를 하고, 이불을 깔고, 간단한 청소 정도 형제들이 나누어서 했던 것 밖에는 기억이 없네요.

어릴 적 아버님과 어머님은 결혼기념일이 언제냐고 여쭈어 보시면, 잊어버리셨다고 하시곤 했지요. 저희 형제들은 그게 정말인지 알고 우리 자신이 결혼을 하기 전까지 한 번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챙겨드린 적이 없었지요. 저희 삼형제가 다 결혼하고 나서 생활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실 때, 결혼기념일이 언제라는 것을 알려주셨을 때에야 어릴 적 저희들에게 잊어버렸다고 하신 말씀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무심한 아들이었음을 이제 와서 깨닫고 자책하게 되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종종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엄마의 품을 찾아 갈 때, 저도 등촌동에 계신 어머님의 품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뿐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어쩌다 어머님을 위로해 드리고 기쁘게 해드리려고 찾아가면 기쁨을 얻는 것은 언제나 제 자신이었습니다. 저와 저희 가정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챙겨주시려고 한 아름 쌓아 놓은 것들과 더 줄 것을 잊었다고 몇 번이고 냉장고를 뒤지시는 어머님의 분주함 때문에 사실은 손 한번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돌아와 버리곤 합니다.

나이가 들어 제가 어른이 되면,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아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머님, 아버님의 은혜는 갈수록 커져만 가고 저와 저희들은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연세가 있으시니 종종 어머님 없는 세상, 아버님 없는 세상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워버리곤 합니다. 왜냐하면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흔을 넘어 오십을 향해 가는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기둥 같고 그늘 같은 아버님 어머님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두렵고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머님 아버님의 존재가 지금 우리 형제들과 자녀들에게 얼마나 큰지를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저희 형제들은 가까이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경험하지 못하고 컸기에 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지냈던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저희의 아들, 딸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어머님 아버님, 저와 저희 삼형제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자라가는 저희 손자 손녀를 위해서라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계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저희 자녀들에게 이것보다 더 큰 복과 기도제목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님, 저희 삼형제를 이렇게 반듯하게 건강하게 잘 키워 주신 거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편지를 접으려 하니, 두 가지 생각이 나네요. 하나는 제가 주일에 교회 예배에 빠질 수 없어서 고3 담임선생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 학교까지 찾아와 주셔서 제 편을 들어주신 거, 두고두고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 덕에 어린나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신앙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학사 장교가 되기 위해 경상북도 영천에서 훈련받을 때, 훈련 중에 가족들이 방문하여 면회하러 오는 날 장사하시는 거 때문에 오실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못 오는 마음을 편지로 대신 보내주신 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어머님께 신앙과 사랑의 큰 빚을 졌습니다.

2012년 5월22일

존경하는 어머님과 아버님께 둘째가 드립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