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성경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사용해야 하나?


성경 영감설에 대한 재 정립이 필요하지 않는가 제안함. 


1. 이전까지 성경을 비성육신적인 관점에서만 다루었다.(정확, 무오, 권위, 계시, 영감)

 

그러나 기록됨으로써 육화된 말씀인 성경도, 그리스도를 우리가 다 이해할 수없듯이 완벽하게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특정한 역사와 문화적 순간을 사는 인간들이라면 우리의 모든 신학적 작업은 시간 제한적이며 잠정적이고 더 나아가 타락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에서 문화적 문맥을 모두 벗기고 본질적인 것만을 뽑아서 절대적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문화적 문맥을 벗어 던지는 것

우리의 문화에 노예가 되는 것

이 양 극단을 지양해야 한다. 


2. 성육신 유비는 하나인 동시에 여러가지 측면을 가진 하나님의 복음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그러나 신학적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대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이끈다. 


4. 우리가 성경을 믿는 것은 성경에 어떤 다양성도 없어서가 아니라, 성경을 주신 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다양성을 틀림이 아닌 다른 방식(역동성)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5. 성경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세칙을 주는 책이 아니다. 교회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에 대한 큰 궤적을 그려주는 책이다. 


6.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목적으로 해서 읽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읽어야 한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우리의 임무는 하나의 불변하는 복음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다. 즉, 다른 문맥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복음의 메시지를 존중하고 나아가 그런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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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화는 계속 된다: 들으며 배우기


1. 고대 근동의 증거와 성경 교리 사이의 대화가 많이 부족하다. 시도는 있었지만 보통 파괴적이었다. 


2. 복음 주의자들은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다. 새로운 견해와 증거로 인해 무너지는 분이 아니다. 


3. 덕목

  1) 겸손: 다른 견해에 대해서 열린 마음

  2) 사랑: 다른 것보다 같은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자. 최대한 좋게 생각해 주자.

  3) 인내 어떤 전통도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급한 결론은 내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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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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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신약저자들의 구약인용_우리도 사도들처럼 구약성경을 해석해도 되는가?


사도들의 해석학을 따르게 된다면 구약 성경은 해석학적 상식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다루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사도들의 해석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든지 아니면 그들은 영감된 사도이니 그들만 예외로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1. 사도들의 해석은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 당시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을 따른 것이다. 


[배제해야 할 입장]

1. 사도들의 해석학은 오늘날 교회의 해석적 작업과는 관계없는 것이므로 무시한다.

2. 사도들의 해석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말한 구약해석은 그대로 하고,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침묵한다.)


[우리에게 남겨진 두 가지 입장]

1.  제2 성전기 유대교의 잘못된 해석학을 활용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사도들을 변호하고, 신약성경의 구약성경인용은 문법적_역사적 주해와 근본적으로 조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 사도적 해석학의 제2성전기의 배경을 인정하나 오늘날 따라야 할 것과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을 주의 깊게 분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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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들의 지배적인 대답은 1번 이겠지만, 이것은 제2성전기의 배경과 분리시키는 것이고 신약성경에 인용된 구약 성경의 구절이 구약성경의 본래 문맥과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는 것이 된다. 


피터 엔즈의 입장은 2번이다. 

피터 엔즈는 해석학적 방법으로 기준을 삼기 보다, 해석학적 목적으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피터 엔즈의 방법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내가 구약성경의 이 부분을 읽을 때 어떤 영향을 주는' 물으면서 읽는 것이다. 부활 이후에 살고 있는 우리의 특권적 입장이 우리의 구약성경 독해에 반드시 반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차 읽기: 구약성경을 본래적 문맥에서만 읽는 것

2차 읽기: 그리스도 목적적 읽기(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구약성경과 연결시키는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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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사도들의 해석학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1. 계시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문맥을 전제한다. 

2. 하나님은 인간역사와 무관하게 자신을 계시하려 하지 않는다.

3. 성경 저자들의 역사적 문맥이 하나님의 계시의 형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4.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역사적인 문맥도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시를 주는 방식과 받을 때의 방식에 모두 변화가 있다

5. 따라서 성경 해석에 엄밀한 과학의 측면만큼 예술적 측면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6. 구약 성경은 다층의 의미들을 가질 수 있다. 


  * 성경해석을 그리스도와 교회를 목적적으로 해 나가는 기계적인 한 방법이라기 보다는 겸손하게 현재의 상황(역사의 결과물로서)을 위한 성경해석을 하는 것이 피터엔즈가 제안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즉, 피터 엔즈는 문법적-역사적 해석이라는 기존의 틀에만 매여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면, 신약의 사도들은 잘못된 해석을 한 것이 된다고 보고, 구약이든 신약이든 구약 성경을 해석할 때 당시에 처한 상황에 따라 해석의 방법이 바뀌었던 것처럼(모범적인 해석방법을 파괴하는 방식으로까지 현격하게) 성경을 받는 시대와 받는 사람들의 상황에 따라 좀 폭 넓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겠는가 제안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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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신약저자들의 구약인용_어떤 점에서 사도들의 해석학이 독특한가?


[결론] 

1. 구약성경은 그리스도 목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2. 구약성경은 교회 목적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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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약 성경의 해석방법이 제 2성전기의 해석방법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물론 사도들은 보다 많은 절제와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살이지만, 둘 사이의 해석학적 방법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 피터 엔즈는 신약성경의 저자도 그 당시의 문화 일원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의 해석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종말론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그들의 확신에 있다. 이런 확신은 구약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를 절정으로 하여 해석하도록 하였다. 즉, 구약 성경을 냉철하게 읽음으로써 그리스도가 주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진리로 확신하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기초로 구약 성경을 새롭게 읽은 것이다. 


4. 이런 관점은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성경관에 따르면, 그런 신약 저자들의 해석법은 올바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곡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들의 구약해석을 본래의 문맥에서 이탈시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다. 


5. 그들은 구약성경을 하나의 문맥에서 이탈시켜, 다른 하나의 문맥, 즉 이스라엘의 역사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목표를 반영하는 그런 문맥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6. 신약의 기자가 구약 기자의 언급에 대한 해석을 한 것이다. 이 결과를 보니, 과거 당신의 이야기가 이런 지향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해주는 것이다.(호세아의 말을 마태가 결과를 보고나서 당신의 말이 이런 의미를 가졌던 것임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호세아의 말을 호세아에게서 듣는 것이 아니라, 호세아의 말을 마태에게 들을 때 그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 된다는 말이다.)


7. 이와 같은 해석 방법을 그리스도 목적적(christotelic)이라고 규정함. 기독론적,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용어보다 <그리스도 목적적>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그리스도 목적적이란 말은, 그리스도가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 즉 이야기의 종착점이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구약성경을 읽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로 대치 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강조하는 것 같다.)


8. 구약 성경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

  1) 문자적 역사적 해석을 하여 읽는다.

  2) 종말론적인 읽기, 그리스도 목적적 읽기이다.(신약의 사도들의 우리에게 보여준 성경해석의 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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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구약성경의 이야기는 그리스도 안에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새 백성 공동체 안에서도 성취되었다.


10. 사도들의 해석학에는 그리스도 목적적 차원뿐 아니라, 교회 목적적(ecclesiatelic) 차원도 있는 것이다. 사도들이 구약 성경을 다룰 때, 그리스도의 개인에게만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즉 그의 백성, 교회에게도 초점을 두었다. 


11.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먼저 성취(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씨다. 갈 3:16)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교회 안에서 그 텔로스(목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 견해] 구약성경이 그리스도 목적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데,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서 권면하고 있으므로 교회 목적적으로 더불어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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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신약저자들의 구약인용_제2성전기 현상으로서의 사도들의 해석학: 해석의 전통


이 시기의 성경전통들이 옳은 성경해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위해서 그렇게 해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도 그렇게 해석했고, 그것이 그 당시 성경 해석에 관한 담론에서 상식의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성육신 유비에 비추어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특정 문화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1. 얀네와 얌브레(딤후 3:8)

   1) 구약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지만, 제2성전기의 해석 전통에서는 찾을 수 있다. 

   2) 얀네라는 이름은 다마스커스의 언약으로 알려진 쿰란 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타르굼 위요나단의 출 1:15 언급됨)_이것은 바울이 속한 시대의 성경 상식에 속한다. / 실제 인물이라는 말이 아니라, 바울이 <해석된 성경>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3) 얀네와 얌브레에 대한 기록은 그 당시 그 사건에 대해서 해설된 것이 성경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2. 노아, 의를 전파하는 자

   1) 노아가 의를 전파했다는 것은 구약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2) 제 2성전기의 해석전통: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를 포함한 몇몇 고대 문서에서 노아는 동시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를 로마인 독자를 위해 구약성경을 보강한 재서술이다.)

   3) 베드로는 구약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는지만, 다른 고대 문서에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해석 전통을 사용해 노아를 묘사하였다.(이와 같은 해석이 이미 그 당시에는 널리 받아들여 졌다고 봐야 한다.)


 3. 모세의 시체를 둘러싼 쟁탈전

   1) 모세의 시체를 둘러싼 쟁탈전은 구약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는 것이 없는데, 유다서에 기록되고 있다. 

   2) 모세의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듯 자연스럽게 가지고 오고, 그런 필요가 있는 논지 속에서 끌어온다. 

   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크와 오리겐과 같은 3세기 교부들은 모세의 시체에 관한 일화가 <모세의 승천서>에 나와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4. 유다서와 에녹1서 

   1) 유다서 14-15절에 에녹이 말했다고 여겨지는 예언의 일부에 대해서 언급된다. 

   2) 이 예언은 구약성경에서가 아니라 에녹1서라는 외경에서 발견된다. 

   3) 유다는 당시 외경인 에녹1서의 언급된 에녹의 예언을 그대로 가져와서 성경에 포함시켰다.

   4) 이것은 그 당시 에녹1서의 내용들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5. 모세의 애굽에서의 교육(행 7:21-22)

   1) 스데반의 연설중에 있는 내용인데, 구약성경에는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이 없다.

   2) 스데반은 왜 연설 중 모세의 교육에 대한 내용을 구지 언급했을까? 꼭 필요한 내용도 아니었는데....단순한 창작이아니다.

   3) 모세의 교육에 대해서는 언급된 고대의 두 문서가 있다. 첫째, 필로의 <모세의 생애>를 보면, 모세가 아직 유아였을 때 천재성을 보였다는 것과 둘째, <비극 작가 에스겔>에 의해 쓰여진 한 고대 희곡 <엑사고게>에도 모세의 교육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당시 이스라엘 인들은 자신들의 전통 속에서도 아리스도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가 있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지도자였던 모세를 매우 잘 교육받은 인물로 보이게 한 것이아닐까 싶다. 


 6. 천사들을 통해 중보된 율법

   .....(211-212쪽 참조)


 7. 바울의 움직이는 우물(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쳤으매)

   1) 바울은 출애굽기 17장과 신명기 20장의 내용을 기초로 음료를 공급했던 바위에 대해서 언급한다.

   2) 제2성전기의 문서들을 보면 광야 생활 중 이스라엘을 따라다녔던 <움직이는 물의 원천>을 언급하는 것들이 있다. 

   3) 바울은 그 문헌들을 근거로, 고전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르는 바위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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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것 중에서 당시 궁금했었던 것들에 대한 해설들이 제2성전기의 문서들에 나타나고 있고, 그 중의 일부를 신약성경의 기자들이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 신약성경에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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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 2성전기 현상으로서의 사도들의 해석학: 해석의 방법]


1. 예수님이 출 3:6의 말씀을 문법적-역사적 주해를 하지 않아 오늘날 우리는 당황스럽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해석에 감명을 받았다.(눅 20:39-40) 그것은 예수님이 다름 아닌 바로 제2 성전기의 해석 방법을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2. 신약의 저자들이 변증적인 목적으로 구약을 인용했다는 주장(목적 지향적 해석)은 그 당시의 해석 방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들의 성경해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3. 예를 살펴보자.

  1) 마 2:15과 호 11:1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1) 1차 문제: 호세아서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마태는 예수가 애굽으로 가는 상황(올것을 염두하고 쓴 것이라 볼 수 있다.)

   (2) 2차 문제: 호세아에서의 내 아들은 이스라엘로, 예언적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경험을 말함. 그렇다면 예언적 표현으로 인용하고있는 마태의 인용은 역사적-문자적 해석은 아니다. 

첫째 안: 그 당시의 해석 방법으로는 자연적인 것이다.

둘째 안: 믿음의 해석이다. 구약의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지향한다는 믿음을 전제한 해석

호세아 서에의 <아들>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이었지만, 마태가 말하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참 이스라엘이요, 참 아들임을 강조하는 방식의 해석으로 볼 수 있다.(저자의 추측)


  2) 고후 6:2과 이사야 49:8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1) 이사야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것으로 이 내용을 썼다. 

   (2) 바울의 말하는 지금은 단순한 현재가 아니라, 종말론적인 지금을 말한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찾아온 종말론적인 지금이 바로 그와 같은 때라는 것을 말한다. 

    (3) 바울이 하려고 했던 것은 현대 과학적인 주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이야기의 궁극적인 성취라는 확신에 근거한 성경해석이라는 것이다. 


  3) 갈라디아서 3:16,29과 아브라함의 자손 '자손들이라고 하지 않고, 자손이라고 했다는 것'

   (1) 바울이 인용한 구약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창세기 13:14-17 인듯 하다. 여기에 '자손'이라 표현

   (2) 자손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제라>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복수 혹은 단수로 사용 가능함.

   (3) 그러나 문맥 상으로 본다면, 복수로 보는 것이 맞다.(문자적, 문맥적 해석을 통해 본다면)

   (4) 바울은 갈 3:29에서 <자손>을 복수의 개념으로 사용했다.(복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있다.)

   (5) 저자의 결론: 바울은 제2성전 시대의 해석 관행에 따라 해석하고 있는 것인데, 단어의 문법적 모호성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에 대한 심도 있는 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유일한 참된 자손(단수)이며, 동시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복수)임을 말한다.)

      : 이런 해석은 그 당시의 자손신학의 입장에서의 해석으로 봐야 한다. 


  4) 로마서 11:26-27절과 이사야 59:20

      이사야 59:20 구속자가 시온에(로 향햐, 을 위하여)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로마서 11:26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1) 구원자의 개념의 변형: 여호와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2) 시온을 위한 구원자 -> 시온에서 나온 구원자(예수 그리스도도 유대인이라는 측면을 증명)


   : 이런 방식으로 구약의 내용을 신약 기자는 의도적으로 변형하여 인용하고 있다는 것(당시 해석방식)


  5) 히브리서 3:7-11과 시편 95:9-10

    책 참조(198-201쪽)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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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저자들의 구약성경 해석_제2 성전기의 성경해석]


 * 신약성경 저자들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를 흔히 제2성전기라고 부른다.(주전 516- 주후 70): 신구약 중간기


 *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쓰여진 역사적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문법적-역사적 방법)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그 당시 성경이 어떻게 해석되었는가에 대한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고대 문서를 이해하는데, 문법적_역사적 배경이 중요하듯이 고대의 해석학을 이해하는 데에는 해석학사적 문맥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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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 내적인 해석: 구약 성경에 의한 구약 성경의 해석

  1) 역대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1) 역대서의 수많은 예들이 이미 사무엘-열왕기서와 같은 특정한 문서를 참고하여 쓰여졌다.

   (2) 대하 35:13 유월절 법에 대한 것으로 고기를 불에 굽고 삶는 것으로의 해석을 가미함.


  2) 다니엘 9장

   (1) 예레미야가 예언한(렘 25:11, 29:10) 바벨론 유수의 기간인 70년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이 나온다. 

   (2) 실제로 바벨론 포로기간은 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주전 587년~ 538년, 50년)

   (3) 문제해결

- 바벨론 포로생활을 최초의 유배로부터 산정하면, 주전 605년. 70년에 근사한 수치를 얻을 수 있다. 

- 제2 성전이 완공된 해인 주전 516년을 진정한 포로 귀환의 해로 본다면, 70년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 [저자 강조] 다니엘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이라는 것을 가브리엘 천사가 주는 지혜와 총명을 통해서 새롭게 해석하게 된다. 70년 이라는 세월은 <일곱이레>로 해석되었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예레미야가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 센수스 플레니오(충만한 의미)


  3) 예수님의 해석,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하늘로부터 지혜를 주실 때 열리게 되는 해석(눅 24:13-35)

      예수님의 고난, 죽음, 부활을 문자적으로 예언해 주는 것이 구약의 전부라고 봐야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 성경을 객관적으로 읽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기독교인>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성경읽기.


2. 제 2성전기의 성경해석


  1) 고대근동 세계정세의 변화: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로마

  2) 이 시대에 쓰여진 이스라엘인들의 문헌들: 외경, 위경 중 일부, 사해문서, 필로와 요세푸스의 저작 등(상당한 분량)

  3) 이 중에서 제 2성전기의 문서 중 신약성경이 쓰여진 해석학적 배경에 대한 분명한 힌트를 줄 수 있는 두가지 예를 살펴보겠다. 


 [외경: 솔로몬의 지혜서]

  (1) 솔로몬의 지혜서는 성경의 지혜 문서와 유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 솔로몬의 지혜서는 주전 1세기 후반에서 주후 1세기 초반 사이에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3) 솔로몬의 지혜서를 쓴사람이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적 결론을 받았는가를 살펴보자.  

     - 목적: 로마의 심한 박해에서 그의 독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것

     - 내용: 구약의 여러 인물들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해주고 있다. 

     - 이것을 통해서 유대인 전통 해석을 알수 있고, 그 당시의 성경 해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 그들은 이미 당시에 일반적으로 해석된(그러나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예를 들면 동방박사의 이름이나 숫자가 나와있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내용의 성경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4) 아담, 가인, 아브라함,롯, 야곱, 애굽 군사들을 토해 냄, 군사들을 약탈함, 아이들의 입으로부터...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전통적인 성경과 맞지 않는 내용들이 들어가 있는데, 이런 해석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성경에 대한 선이해라고 볼 수 있다.(173-181쪽) 


 [사해문서: 1QpHab]

  (1) 1947년 유대의 한 동굴에서 처음 발견된 사해문서는 오늘날 성서학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대 사본이다. 

  (2) 여기에서도 구약 성경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독특함이 나타난다.(합 1:5)


3. 제 2성전기 문서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 사해문서의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에 성경 본문의 해석을 맞추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목적에 맞추기 위해 본문을 조작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것이 그 당시 전형적인 성경해석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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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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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저자들은 구약성경을 오용한 것인가?]


1. 창 31:22 "삼일 만에 야곱의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연결지어 해석하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런 해석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옳은 것이다. 


2. 그런데 신약 저자들의 구약 성경 인용방식에 비슷한 경향들이 성경에 나타나고 있다.(구약 성경의 문맥과 저자의 의도를 존종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누가? 신약 저자들이...)


  예) 눅 20:27-40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두개인의 질문.

    예수님의 답변: 출 3:6을 인용하여 부활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하시는데, 어떻게 부활이 증거되는지 알수 없음

    지금 우리가 해석할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인용인듯 한데, 예수님 시대의 청중들은 납득이 되었던 것 같다.(서기관 중 어떤 사람은 선생이여 말씀이 옳습니다 라고 반응하고 있다. 눅 20:39-40)


  즉, 예수님의 구약 성경 해석 방법이 그 당시의 관습과 일치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3. 신약 성경 저자들의 구약인용 방식의 문제점을 다루는 접근 3가지(복음주의 진영에서 많이 받아들여지는 것)

  1)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그렇게 해석했다면, 사실 구약 성경 안에서도 그와 같은 맥락의 내용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신약 성경의 저자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임의적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구약 성경을 원래의 문맥대로 인용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3)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구약 성경을 원래의 의미대로 인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약의 저자는 사도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변형된 의미로 인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이 할 수는 없다. 


  * 저자는 이 세가지 접근 방법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어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4. 저자가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1)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구약 성경의 본래의 문맥과 본 저자의 의도와 일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구약 성경을 해석한 것은 아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텍스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구약 성경을 단순히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3) 신약 저자들이 보여준 해석학적 태도는 오늘날의 교회가 수용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신약 저자들이 보여준 해석학적 태도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그리스도의 초림에 비추어서 구약성경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눅 20장에 드러난 성경해석 방법은 신약 성경의 저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의 다른 해석가들도 그렇게 해석하였다.)


  *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살았던 해석학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 않고, 신약성경에만 접근했기 때문에 복음주의자들은 위의 3가지 견해밖에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구약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시대의 구약 성경 해석에 대한 배경적 지식을 선재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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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대서에 나타난 다양성]


1. 역대서가 난해한 책이 된 것은 그것이 사무엘-열왕기서에 소개된 역사와 좀 다르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2. 사무엘-열왕기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왜 우리가 포로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역대기는 포로 귀환 후의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독자들에게 쓴 것이다 따라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다른 해석을 내래고 있다. 역대기는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언약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3. 사무엘-열왕기 역사 서술: 신명기적 사관

  1) 한 중앙 성소의 강조


  2) 유월절 규정도 가족별로 하는 것(출 12:2-4)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켜져야 했다.(신 16:5-6)


  3) 왜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었는가에 대한 답으로, 이스라엘과 그 왕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참 하나님 대신 거짓 신들을 섬겼다. 


  4) 역대서는 바벨론 귀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기술한다. 어떻게 유배 생활로 전락했는가가 아니라,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아직도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받아주실 것인가? 등에 대한 절실한 답이었다. 


   (1) 역대서는 다윗의 죄를 크게 줄여 묘사한다.  오히려 다윗을 메시야적 인물로 묘사한다. 

   (2) 역대서는 하나님 백성의 하나됨을 강조한다. 솔로몬이 왕이 되는 과정을 절대적 지지를 얻은 것으로 설명

   (3) 역대서는 성전과 성전건축에 대한 솔로몬의 역할을 강조한다. / 올바른 예배의 중요성과 왕의 역할 확립

   (4) 역대기는 당대의 인과응보를 좋아한다. 


4.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두 서술

  1) 이 둘은 모두 이스라엘 역사에 상당한 신학적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2) 이 둘은 모두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들의 서술 목적이 다르므로 그 두 역사서술은 중요한 차이점을 나타낸다. 

  3) 이런 긴장이 성경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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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구약성경과 신학적 다양성_지혜문학에 나타난 다양성]


1. 잠언서

 

  1) 잠언서를 인생 지침서로 오해하기 쉬우나 잠언의 다양성을 보면 단순한 인생 지침서는 아니다. 

   

     잠언 26:4 / 26 대조


  2) 잠언을 읽고 외운다고 지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지혜, 즉 어떤 잠언이 어떤 상황에 적절한 것인가를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마땅히 행할 길이라는 것은 매우 다양한 요소가 반영됨)


잠언 26:4,5 부자에 대한 말씀이 서로 다른 듯 하다. 


  3) 상황에 따라 둘 다 맞는 말이다. 따라서 옳고 그른가의 여부가 아니라, 언제 옳은가 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른 지혜) 

  4) 이런 잠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잠언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면, 잠언서 자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2. 전도서.


  1) 전도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양성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전도서 자체 내의 다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전도서의 가르침과 주류 구약신학 사이의 다양성이다. 

  2) 전도서 내적인 모순 구절(전도서 7:3 과 8:15)

  3) 전도서 외적인 갈등 구절(전도서 2:10 과 민 15:39)

  4) 최근 많은 주석가들은 내부적 갈등을 저자의 의도라고 주장한다. 모순들을 통해서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인생에도 똑같은 모순들이 존재함을 보게 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5) 전도서의 저작 의도는 모순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 전도자(코헬렛)는 지혜자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지혜자는 아니다. 그는 잠언서의 지혜를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한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모든 인간의 실존적 문제 앞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지혜는 어리석음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이기는 하나,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라고 전도자는 말한다. 이 또한 지혜인 것이다. 

  6) 이와 같이 다른 관점을 가진 전도서와 잠언서가 모두 구약성경 안에 나란히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잠언서와 전도서가 구약성경에 나란히 있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의 다양성이 단순히 해소되어야 할 문제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양성은 구약성경 문학 안에 면면이 엮어진 핵심요소이다. 

  7) 이 다양성이 혼돈이나 오류를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인간의 드라마가 다양하므로 성경이 그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성육신의 유비로 본다면)


3. 욥기


  1) 욥기는 신명기에 나온 인과응보의 원리와는 다른 논리의 가르침을 준다.

  2) 죄없는 자가 당하는 저주

  3) 욥기는 독자들에게 인과응보의 문제에 또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4)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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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나타난 신학적 다양성의 문제]


 화두: 

유대인들에게는 성경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기독교인에게는 성경이 선포될 메시지다.(유대인 학자)


1. 유대인의 성경해석 역사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수세기 전부터 시작됨.(근거: 외경,위경,사해문서 등)


2. 구약 성경 자체도 후대의 성경 저자들이 그 이전의 저자들을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 내적인 해석)


3. 현상: 히브리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호성(의미가 불분명하다), 내부에 존재하는 갈등이나 모순의 존재


4. 그런데 이런 내적 문제를 해결하는 유대인들의 해석방법은 문제를 깔끔하게 일소시켜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성경과 대화하는 것> 그리고 그런 대화를 장려하는 공동체 자체가 유대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구약성경 해석의 역사의 한 면이다.)


5. 반면, 기독교 복음주의적 성경해석의 역사를 보면, 성경 내의 갈등과 모호성에 대한 강한 불안감을 찾아 볼 수 있다. 성경 내에 어떤 갈등도 내포되어 있어서는 안된다는 확신이다.(모호성을 해결하기 위해 너무 기발안 생각을 해내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회피해 버린다.) 그래서 복음주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통일된 메시지였다. 한 명의 저자에 의한 책이라면 갈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6. 유대교와 기독교는 성경의 다양성(통일성과 대조되는 개념의 다양성)에 대해서 입장 차이가 있다. 


  1) 비평적 성경학자들: 성경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한가지 방법은 구약성경을 모순으로 가득차 있는, 서로 상충하는 인간의 의견으로 가득 찬 요상한 기록으로 보는 것.(기독교적 사고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2) 이에 대한 복음주의적 응수: 

   (1)  그런 다양성은 성경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2) 그런 다양성은 존재한다 하더라도 사소한 부분에 국한된다. 

   (3) 그런 다양성이 앞으로 조만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다양성이라는 혐의로부터 변호하려 함. 


  [문제] 이런 접근 방법은 오히려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고, 성경의 다양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피해가는 듯한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 


[저자의 접근]

성경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비평적 성경학자들이나 복음주의자들이나 마찬가지다. 성경의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저자는 인식한다. 성경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그 다양성은 오히려 성경의 역동성으로 나타난다. 이제부터는 그 예들의 일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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