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복] 10장. 가볍지 않은 예배의 현대화


복음주의적인 <예배 형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룬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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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에서 정한 특별한 형식은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마음에 드는 결론입니다.ㅎ)


다만, 현대의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에게 경고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전통만 고집하거나, 실험이나 오락으로 돌진하는 것은 예배를 하찮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예배를 하찮게 만드는 것은 현대성이 아니라 무절제한 실험과 오락이다.



[생각한 지점] 보수적이 교회가 예배 형식이 매우 보수적으로 고집할듯 한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매우 자유롭고 가볍게 한다.(열린예배 도입) 보수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지만, 예배에 있어서 급진적으로 자유롭게 변하는 것은 '전도'와 '선교'라는 더 큰 사명을 앞세우기 때문이라 본다. 

그렇다면 신학적 보수주의도 결국은 실용(사명으로 포장된 교회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앞에서는 고집을 꺽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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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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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복] 8장. 사회주의가 아닌 부의 재분배

1. 미국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복지제도에 대해서 사회주의라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드러낸다.(사실 이들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정확한 개념을 모른채 혼돈하여 사용하고 있다.)
- 교회의 어른 격인 '존슨 씨'는 어떤 형태든 복지와 구제를 '사회주의'라고 부르며 반대했다.(155쪽)

2. 그들은 정부는 복지제도에 관여하지 말고, 비영리단체와 종교단체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자유 시장 제도이며, 자유 시장 제도는 성경적이라고까지 믿는다.

3.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노동과 투자의 동기에 있어서도 '수정된 민주적 자본주의'가 낫다고 저자는 믿는다. (사회주의를 옹호할 생각도, 자본주의를 무조건 비판할 생각도 없다.)

4. 극단적 자본주의는 사회적 다윈주의를 옹호한다. 즉,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가난한 자의 생존을 돕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이것이 적자생존이다.

5. 성경은 명백하게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약탈한다고 말한다. 성경은 자본주의를 지지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커져만 가는 빈부의 격차를 맹비난한다.(희년 제도는 빈부의 격차를 줄여주는 사회적 제도였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배려해야 함을 성경은 요구한다)

6.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입으로는 가난한 사람을 돌본다고 하지만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옹호함으로 모든 형태에 반대한다.(미국)
- 한국도 그렇게 함으로 복지와 구제를 개인과 자율의 영역에만 두려고 하고 교회는 복지제도를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색깔을 입힘으로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집단처럼 보여지게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모순인줄을 한국 교회는 인식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구제하는 사역을 하고 있으니까...(개인적 생각)

7. 경제에 관해서는 복음주의가 보수주의를 버릴 때 더 복음주의자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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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와 사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 교회 밖의 세상 문화를 맡겨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문화를 장악하라는 명령이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유일한 명령은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개인으로서 또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_ 보자복(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 153쪽. (죠이선교회)

문화변혁을 사명으로 알고,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기독교적 문화와 가치를 입법화하려고 함(역으로 반 기독교적인 문화와 가치에 대해서는 반대함)이 오늘날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의 성향인듯 한데... 문화변혁의 사명을 논리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는 움직임이 옳은가? 묻게 된다. 오히려 이 책은 정치적 영향력으로 도덕을 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정도에서 우리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물론 세상과 격리된 상태가 아니라 세상에 머물면서) 

이런 입장에 대해서 기존의 개혁주의적 세계관보다는 로저 올슨의 입장(침례교, 복음주의자)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싶다. 현재 한국 사회를 생각해 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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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로저 올슨은 미국 상황에서 <복음주의>가 <보수주의>의 다른 이름이 된 것에 대해서 문제 의식을 가진다. 이는 <근본주의>가 자신을 <복음주의>로 소개하고, 미디어는 그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 옮겨 전함으로, 금본주의가 가진 보수주의적 경향이 <복음주의>에도 입혀져 버렸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저자는 <보수주의>와 <복음주의> 를 구분한다. 그래서 책의 원제도 How to Be Evangelical without Being Conservative 인듯하다.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말하고, 탈보수주의를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저 올슨은 성경과 복음에는 매우 보수적임을 밝힌다. 그는 복음주의 역사 신하자 마크 놀(mark Noll)이 말하는 네가지(성서주의, 회심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활동주의) 복음주의의 특징을 인정하면서도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그것은 <기독교 교리의 위대한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다.

저가가 이 책에서 거부하는 보수주의는 전통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하고 옛 황금시대만 숭앙하는 마음의 습성이다.

이런 측면에서 로저 올슨은 다양한 신앙의 주제를 보수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살핀다.(1-12장) 양극화로 치닫는 한국 교회의 신앙인들에게 더 높은 제 3의 안목을 제공해 주리라 기대되는 책이다.



TistoryM에서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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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 로저 올슨, 죠이선교회

7장. 지배가 아닌 문화 변혁

전통적인 입장(내 입자에서는 장로교회)에서 보면 낯선 개념의 설명을 한다. 문화변혁자로서의 그리스도인(칼빈주의)에 대한 개념이 신약성경에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유일한 문화변혁의 모델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신약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문화 변혁의 개념은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개인 혹은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저자는 재세례파의 급진적 방법이 복음주의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재세례파 신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가 말했듯이, 그들은 자발적으로 세상 권력에 복종했으나 세상 권력이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요구할 때는 비폭력 불복종으로 맞섰던 자들이라고 재세례파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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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난 장로교회에 속해 있고, 문화 변혁이라는 측면에서 세상을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변혁해야 한다는 의식,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정치나 사회, 문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변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극우 보수 신앙을 가진 분들이라고 비판하던 분들이 하려던 일이 그런 일들이다. 정치적 권력을 어떻게 든 확보해서 교회 옹호적이고 기독교 윤리에 입각한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신학적 입장에서는 장로교회를 선호하지만, 교회와 정치 그리고 사회 변혁의 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재세례파의 견해가 기독교적 가치관과 더 부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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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43면.

교회와 교단을 비롯한 모든 복음주의 기관은 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정통 신앙을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복음주의자의 자세다. 이런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전통과 신조에 변함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더라도, '전통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을 새롭게 보고 나서 그런 결론을 내린다. 복음주의자는 개혁자로서 늘 개혁해야 한다.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보수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재점검하지 않는 전통주의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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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신앙인을 <구도자>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끊임없이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파악해 가는 과정에 선 사람들. 구원의 시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가는 <구도자>적인 태도가 우리 신앙에 부족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전 선조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하면서도 그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금 이 시대에 적실한 답을 찾아 가는 <구도자>적인 삶이 전통주의에 매이지 않으면서도 매일 매일을 성경으로 살피는 삶이라 여겨진다.

그렇다고 저자가 전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를 무시하거나 전통을 버리는 사람은 실수를 반복하고 시간을 낭비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45면)

아주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믿으면서도 믿는 바를 의심하자".(45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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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자유를 넘어 21세기 복음주의로, 로저올슨 저, 죠이선교회,p 17.

내용을 제가 이해한 용어로 옮긴다면 이정도 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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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그리고 복음주의가 잘 구분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국 근본주의의 대표 주자가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말하고, 언론과 미디어는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를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서 진짜 복음 주의자들로 하여금 <복음 주의자>라는 표현 쓰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복음 주의>라는 집에 이미 <근본주의자>들이 들어와서 자기 집처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복음 주의>라는 푯말을 붙인 집에 살고 있는 근본주의자들을 보면서 저들이 복음주의자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근본주의와 복음 주의를 같은 것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진정한 복음주의자들이 설 곳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자유주의>라는 집에 머물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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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상황이 복음주의자들의 불편한 진실이다. 자기 집을 빼앗겼고, 근본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라는 행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참된 복음 주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자유주의자란 이름을 빌려 쓸수는 없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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