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 3년 중 2년은 교관으로 보냈다. 내가 맡았던 일은 신병과 예비 분대장을 교육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군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교안을 작성하는 것이고,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것이었으며 교장에 나가서 실습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종종 큰 훈련에 평가 담당관으로 나가기도 했고, 윗분들이 보는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일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잘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 익숙함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내가 대학시절 죠이선교회 활동을 하면서 제자훈련을 받고, 리더가 되어 제자훈련을 하면서 그룹원들을 훈련하고 가르치기 위해 해왔던 과정의 연장선과 같았기 때문이다. 교안을 작성하는 것, 소수이긴 했지만 그들 앞에서 성경을 가르쳤던 것, 매주 평가지를 주고 그룹원들의 삶을 점검했던 것 등등 이런 대학시절의 시간들이 나도 모르게 군 생활 중 교관으로서의 과정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과 윗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됨으로서 그 열매를 보게 된 것이다.


어제는 한 청년을 만났다. 미술을 전공하고 지금은 전국에 12-13개의 센터를 한 미술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입사한지 1년만에 센터장의 인정을 받고 승진하여 새로운 미술 선생님을 뽑고 가르치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다음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1년의 시간동안 그 센터가 있는 지역 어머니들에게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학원이었는데, 교회 유치부 교사를 10년 넘게 하면서 아이들을 대해왔던 것 또한 그 아이들의 부모님께 연락하고 상담했던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훈련이 되어 학원의 아이들과 부모들을 대했던 것이 부모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이고 성공적 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지역 어머니들 중에 상당히 괜찮은 '선생님'으로 소문이 났고, 그 소문이 센터장의 귀에 까지 들어가 센터장이 이 청년을 신뢰하고 빠른 승진과 더불어 묵직한 일들을 맡겨주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넘에 교회 유치부 교사로 섬기면서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지금의 일을 착실하게 준비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몸에 체득되도록 10년 넘게 준비한 사람을 누가 알아보지 못하고, 누가 인정해 주지 않겠는가!


우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훈련을 한다. 어떤 일은 미래를 위해 현지를 훈련하여 이룬다. 그러나 어떤 일은 현재를 살았는데, 그것이 자신도 모르게 미래를 준비한 일이 되기도 한다. 둘 다 중요하고 보람있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더 성경적인 삶에 가까운가라고 말한다면 나는 후자라고 말하겠다. 오늘을 사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목적지향적인 사람은 미래를 살기위해 오늘을 철저하게 준비한다. 그렇게 해서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보다 나아질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오늘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나 아닌 자의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오늘의 나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미래지향적인 삶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 하루의 진실함이 쌓여, 성품가 실력을 채워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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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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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동차에는 

브레이크가 있다.

차를 멈추기 위해.


모든 

인생에도 

브레이크가 있다. 

삶을 멈추기 위해.


모든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운전자가 밟는다.

안전을 위해.


모든 

인생의 브레이크는

누군가에 의해 밟힌다.

인생을 위해.


자동차는 멈추지만

인생은 멈춰지는 것


멈춘다는 것

멈춰진다는 것

그래서 고통스럽고

그래서 안전한


멈춰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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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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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사역을 시작한 사람은 아니다.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필요를 느끼고 신학을 했고 그러다 보니 목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목사이기 전에 사역자였고, 사역자 일때 한 때 '서리집사'였다. 어떻게 보면 일찌감치 목회로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신 분들과는 약간의 다른 과정을 거친 셈이다. 물론 뒤늦게 부름을 받아 직장 혹은 사업을 그만두고 신학을 하신 분들도 있긴 하지만 그 분들과도 약간은 다른 경로를 밟아 목사가 되었다. 


지금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부천 상동에 있는 '중동교회'다. 예장 합신 측 교회로 교단 안에서는 규모가 있는 교회다. 중동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목사직과 연관이 있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친구가 개척하여 목회하는 곳에 출석했다. 조금이라도 개척하는 친구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그 친구의 아들과 우리 두아이를 데리고 주일학교를 시작했으니 약간의 도움은 되었으리라. 물론 그 친구 목사로부터 내가 받은 도움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도우며 지내다가, 목사 고시를 보고, 면접을 보는데 노회 어른신들이 조건부 안수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지금 출석하는 교회가 합신 측 교회가 아니고, 현재 하고 있는 사역도 교회 사역인 아닌 선교단체 사역이기 때문이란다. 다음 봄 노회까지 우리 교단으로 옮기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목사 안수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옮기지 않아도 그것까지 따져 묻지는 않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장로교 목사가 되려고 하는 이상 기분이 내키지 않더라도 장로정치의 원리를 따라야 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고, 결국 지금 중동교회로 옮기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중동교회로 옮기기 위해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중동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처음 중동교회를 출석하게 된 것은 2006년 1월 1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목사이면서 새가족이 되었다. 사역을 위해서 교회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일에는 한가했다.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교회에서 먹고 좀 있다가 집으로 갔다. 오후 예배가 있었지만 집이 멀었기 때문에 가족들을 데리고 일찍 갔고, 아무도 협동목사인 나를 사역자로 알아보거나 눈치주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정말 중동교회의 새가족이 되어 조금씩 적응해 가야하는 성도였다.그 한해 동안 식사 후 교회 1층 로비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으면 찾아와 인사를 먼저 건네주신 분들이 있었다. '교회에 새로 오셨냐?'고 물으시면서. 그러면 우리는 그건 아니고 '협동목사'라고 하면 갑자기 당황스러워하며 무안해 하셨다. 교회에 협동목사로 내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아무도 그 이름의 얼굴이 누구인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을 것이기에. 내가 협동목사로 오기 전에 협동목사로 계시던 분은 이름만 있었지 실제로 교회에서 본적은 거의 없다. 다른 교회를 다니시거나 주일에 다른 사역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우리 교회에 적만 두셨던 것같다. 성도들에게도 협동목사는 이름만 있고, 얼굴은 없는 목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나와 가족은 그렇게 새가족으로 1년의 교회 생활을 했다. 한 번은 금요철야를 가겠다고 인천 집에서 출발했다가, 인천대공원 앞 도로에서 길이 막혀 교회에는 정작 다 끝날때 도착해서 얼굴만 비치고 돌아왔던 경험도 있었다. 집이 멀었기에 교회의 공예배를 충실히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성도로서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는 노력했다. 난, 목사이기 이전에 성도이니까 말이다. 


2006년 말 교회에서 '유치부'사역을 제안을 받고 2006년 12월부터 유치부 사역을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공식적인 사역하는 목사였다. 교회 주보에는 여전이 협동목사로 표시되었지만, 유치부를 하면서 유치부 교사들과 대면하고, 종종 주일 오후 혹은 저녁 예배 때 설교도 하면서 성도들은 내가 교역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지나고, 교회 청년부 설교자가 없을 때에는 청년부 설교도 하곤 했으니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인식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올 해까지 만 8년동안 중동교회의 부교역자로 사역했다. 물론 선교단체 사역을 하면서 해야 했기에 주말에만 사역했지만, 오랜 기간 사역했고, 4년 전에는 교회 주변으로 이사해서 동네 주민이 되었고 3년전부터는 주일 저녁 설교를 자주했으니 중동교회와는 긴밀하게 되었다. 게다가 1년에 한 번 정도 담임 목사님께서 선교지 사역을 다녀오실 때는 주일 낮설교까지하곤 했으니 교회 안에서 목사로서의 위치는 더욱 굳건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목사지만, 한 사람의 성도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성도됨을 잃어버린 목사는 권위와 특권 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고 여겨졌기에.


2014년 11월 말, 나는 만 8년동안 섬기던 유치부를 사임했다. 사역지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20년 가까지 사역하던 단체에서 중책을 맡게 되었고, 교회 부서 사역과 겸해서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교회의 허락을 받아 사임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서사역은 사임했지만, 교회를 옮겨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른 교회 사역지를 찾아봐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나는 다시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성도로 교회를 다닐 생각이었다. 교회를 옮겨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적어도 나와 우리 가족에게 '중동교회'만큼 좋은 교회는 없기 때문이다.(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교회를 소개할 때,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교회' 라고 소개한다.그만큼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우리의 진로를 묻는 성도님들에게 여러차례 이야기 했다. 유치부만 사임하고 중동교회는 계속 다닐 거라고. 우리는 할 만큼 많이 이야기 했지만, 성도님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으셨나 보다. 계속해서 재차 물으셨고,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렇지 않다고 웃으면서 말씀드렸지만, 11월 말까지 성도님들은 미더워하지 않으셨던것 같다. 


생각해보니, 성도님들의 경험 속에서 이런 교역자는 없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일로 교회를 사임하든, 교회에서 더 이상 일할수 없어서 다른 교회로 옮기든(사역지가 결정되든 그렇지 않든) 사임과 동시에 교회를 출석하지 않았을 것이 당연하다. 지금까지 성도님들이 경험했던 교역자들은 모두가 그랬던 것이다. 부교역자로 있다가 협동목사로 바뀌면 당연히 교회에 매이지 않고 사역이든 다른 교회든 다니셨기 때문에 그랬다. 성도님들의 경험하셨던 교역자들은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목사가 교회 안에서 아무 사역도 없이 성도의 한 사람으로 교회에 출석만 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묻고 또 묻고 다시 묻고 하셨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 이후 감사하게도 담임목사님께서 주일 저녁 설교를 제안해 주심으로 작은 역할이 생기기는 했다. 그러나 마음은 동일하다. 목사이기 전에 성도임을 말이다. 이 마음을 잘 간직해야겠다. 이 마음을 잊게 되면서부터 목사는 변질되고 왜곡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목사가 되는 과정이 귀하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해서, 중고등부 청년부를 거치고 결혼하고 서리집사를 한 후에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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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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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순간에 한 두 사람이 아니라, 10-20명이 아니라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는 것은 특별하다.


2. 그중 다수가 고등학교 2학년(자녀)이었다는 것이 특별하다. 만약 다수가 자녀가 아닌 어른이었다면 전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좀 달랐을 것이라고 본다. 단순히 많은 수가 아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다수 희생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3. 대형 여객선이고 먼 바다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희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단 한 명도 산채로 구조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국가는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 충격이 크다. 개인적인 죽음에 대한 충격도 충격이지만, 국가의 무력함을 보는 충격(보호막으로 생각했던 국가가 아무런 보호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인식)도 그에 못지 않은 충격이었다. 


4. 그 배의 선장은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고, 학생들은 그 소리에 순응했고 그래서 더 큰 피해를 일으켰다. 학생들을 배신한 어른을 보여준다.  또 한 배의 리더인 선장이 무지하여 순응적일 수 밖에 없는 승객을 속였다. 이것은 우리가 어른을 믿을 수 없고, 리더를 믿을 수 없는(전문가를 믿을 수 없는) 사회임을 보여준 것이다. 거기다 이 사태를 정리하고 조정해야 할 국가 지도자와 책임자들의 무능과 무책임함에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5. 우리는 언론의 무능을 봤다. 정부의 하수인이 되어 정부를 보호하고, 옹호하고자 하는 언론을 본 것이다. 그 오랜 시간동아 축적된 부패의 관행을 언론이 못 짚어낸 것도 문제다. 알지 못했는지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는지... 어떤 것도 문제가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를 감시하고, 사각지대를 비춰주어야 할 언론이 권력을 옹호하고 홍보하는 역할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6. 우리 나라는 마치 말기암 환자와 같은 상황이다. 암 덩어리가 커지고 커저서 진도 앞 바다에서 터졌다. 그러나 그곳은 드러난 것일 뿐, 실제는 온 몸에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다. 이 나라가 이러한 지경이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감기나 두통 배탈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근원적인 치료보다는 드러난 증상만 잡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는 과정 중에 병을 키운 것이다. 그 병은 크고 커서 '암'이 되었고, 암은 이 나라 구석 구석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7. 이제 암이 내부적으로만 자라기 않고 밖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나라는 진도 앞 바다에서 쓰러진 것이다. 응급실로 들어온 이 나라는 '암 말기'라는 것을 알았다. 전국민이 알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대로 두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나라가 죽는다. 먼저 '암'을 도려내야 한다. 최대한 눈에 보이는 모든 덩어리들은 제거해야 한다. 크든 작든 도려내야 한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는대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항암 치료는 암이 있는 부위만 치료하기 위한 약물이 아니다. 몸 전체에 퍼져있는 암세포를 치료하는 약물이다. 알듯이 암 세포도 제거하지만, 건강한 세포도 상하게 만드는 것이 항암치료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몸 전체가 몸살을 앓듯 고생해야 한다. 


8.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 소망이 있다. 누가 해야 할까? 주치의가 해야 한다. 사태의 위험함을 인식하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주치의가 해야 한다. 주치의가 누군가? 대통령이다. 지금은 실력과 상관없이 대통령이 주치의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이 세월호 사태의 심각함을 인식해야 한다. 감추고 숨기려고 하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고통스럽고 제 살을 깎는 고통이 있겠지만,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도려내야 한다. 그 작업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지금 현재로는 대통령 뿐이다. 


9. 이 나라의 주치의가 수술과 치료를 다 완성할 수 없다. 임기제니까. 그러나 자신이 역할을 맡는 만큼 시도해야 한다. 자꾸 덮으려고 하고 감추려고 하고, 암 덩어리 몇 개를 떼어내고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의 이 사태는 우리가 암 말기로 암 세포가 온 몸으로 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 참사를 계기로 이 나라의 고질적 질병을 고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되며, 어쩌면 다음에는 더 큰 희생을 치려야 할지도 모른다. 왜? 이와 같은 경고에도 우리는 완악하게 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변해야 한다. 죽기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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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글: 김수억



한 남자의 품에
왜소한 한여인이
안겨있다.

부끄러운듯
고개를 돌린채.

무심한 남자는
넓은 가슴을 
그녀에게 맡긴다.

부끄러움과
무심함이

이 시간, 이 공간에서
이렇게 어울리다니.

- 출근길 1호선 급행쟈철 안에서.


* 코레일 파업 때문인지, 출근피크 타임 때문인지 빈틈없는 1호선 지하철 출근길에서 제 앞에 있는 남녀의 어색한 포옹(?)을 보며, 잠시 글써 봅니다.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그런 자세로 있었다면 연인으로 오해 받았을 일이지만, 출근길 만원 지옥철 안에서는 당사자도 주변 사람도 어색해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그렇다고 외면하여 자세를 바꾸지도 않는다.(자세를 바꿀수도 없고) 그 시간 그 공간에서는 전혀 윤리와 도덕이 개입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의도적 성추행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ㅎ)


일상적 윤리와 상식의 껍데기가 벗겨지는 특수한 상황과 시간이 그 공간안에서 벌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특수하다기 보다는 일상적입니다. 남녀의 대상이 바뀌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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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해주는 삶, 용서 받는 삶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겸손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이 <겸손>하게 행동해서 <성숙>함을 보이라는 권면으로 들려질 수도 있고, <겸손>한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정말 <성숙>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할 때도 사용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겸손은 하나의 덕목이 된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겸손해야 하고,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성숙함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겸손한 척 행동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우리는 그것을 겸손과 착각하게 되기도 한다. 심지어 겸손한 척하는 자기 자신조차도 말이다.

 

겸손이라는 덕목을 <용서>라는 덕목으로 대체해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횟수를 용서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큰 잘 못을 용서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숙함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잘못에 대해서 화내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쿨하게 웃어 줌으로서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를 과시하기도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런 의도로 질문을 한 듯하다. 자기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면 되냐고? 일곱 번이면 되냐고 말이다. 그 말은 자신이 일곱 번 비슷하게 용서해 줄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사람 아니냐고 예수님께 확인 받고 싶어서 인 듯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그렇게 쉽게 칭찬해 주시지 않는다. 아니 칭찬해주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베드로의 생각이 전면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어떻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 말이다.

 

주님의 논지는 간단하다. 일곱 번의 용서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백 구십 번을 용서해야 만족스럽다는 말도 아니다. 핵심은 내가 얼마나 용서해 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가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고 기다려주지 않음으로서 그 사람 스스로가 자신이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것을 그 비유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몇 번이나 용서해 줄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성숙함을 드러내 주는 성적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숙함에 대한 진짜 성적표는 내가 얼마나 큰 용서를 얼마나 많은 횟수에 걸쳐서 받았는가!를 깨닫는 것으로 확인된다. ‘주는 것으로가 아니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 일게다. 다른 종교에서의 성숙함이란, 몇 번을 참되게 용서해 줄 수 있고 얼마나 겸손한가를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 그래서 도덕적인 종교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자기 의>를 이루는 종교다. 반면 기독교는 내가 얼마나 큰 은혜와 용서를 받은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깨달음으로서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사람들을 향해, 겸손과 용서를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행하는 것이 전혀 자기 자랑이 되지 못함을 강조한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었다고 칭찬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

 

바울의 이와 같은 권면은 모두 위에서 설명한 것들에 기초한 가르침에 의한 것이다.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참, 건강하다.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데, 불편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사랑받음에 대한 경험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훈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타인을 사랑하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세상으로 보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충분한 사랑과 용서 그리고 따듯함으로 수용된 경험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사랑과 용서의 의무를 지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용서하기도 하고 겸손한 듯한데,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건강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안타까워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벼는 익었기 때문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다. 내적 충실함이 겸손으로 나타는 것이다.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좀 더디더라도 건강한 사랑을 한다. 충분한 용서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 용납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성급한 행동을 요청하기 보다는 사랑과 용서가 우러나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좀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더디더라도 좀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을 건강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생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많은 인생이다. 부모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연으로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말이다. 이걸 좀 알아야 복음적인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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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기초로 해서 복음 이야기1_하나님의 복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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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바울에 의해 쓰여졌지만, 바울이 로마의 교회를 세운 것은 아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작성할 때까지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기를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의 서신을 보면 잘 나와있다.(롬 1:13, 15:22-24) 게다가 바울이 로마서를 작성했을 것으로 보이는 시기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에서 연보한 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 주기 위해서 가던 때로, 그 상황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20장에 잘 언급되어 있다. 사도행전 20장 후반부를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임을 바울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행 20:22-25)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 로마서를 작성한 것이다.(행 20:3) 


그렇게 본다면 사실 바울은 로마서를 작성할 때, 자신이 이전부터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로마교회를 살아서는 갈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인식 속에서 편지를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실제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음의 위협이 있었지만...죽지 않고 당분간 사역을 지속하지만 로마서를 작성할 때는 그와 같은 마음으로 썼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써내려가려고 했던 복음에 대한 바울의 설명을 볼 때, 우리는 바울이 선택한 단어 하나 하나에 좀 더 세심함을 가지고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복음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건강하게 세우기를 원했다.(1:11) 그렇게 시작한 로마서의 첫 구절에서 바울은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그것을 수식하는 말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하나님의 복음" 굉장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수식어 같지만, 복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연상되는 것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보통 복음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단어나 이미지는 예수님, 십자가, 보혈의 피, 은혜, 대속과 같은 것들이다. 어찌보면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단어와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표현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복음>  이것이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작정하고 복음에 대해서 쓰고자 한 편지의 첫 구절의 표현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우리가 복음에 대한 우리의 편향된 견해를 바로 잡아주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우리가 보통 복음을 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연상하게 되고 예수의 십자가는 그 분의 피와 그 피로 이루어지는 대속을 강조하게 되고, 대속은 쉽게 우리가 익숙한 중생과 칭의로 언급된다. 실제적으로 복음 안에 대속, 칭의, 중생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복음 안에는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정과 계시, 화목, 화해, 승리, 연합, 양자, 성화, 견인, 영화와 같은 모든 것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 안에 주어지고 있는 개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속과 칭의와 중생과 같은  한 시점에 일어나는 극적 변화만에 복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대속과 칭의와 중생이 되어서 천국에 가게 되었다는 것만을 복음이라고 단순화 시켜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라는 넓고 길고 풍성한 여정은 간과한채, 그 과정중에 있는 순간적이고 충격적인 한 두가지의 경험만이 복음의 전부인양 생각하게 만들어갔다. 그렇게 이해하게 된 데에는 우리가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만 집중하여 연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경험되어질 때 우리가 받은 충격과 영향력이 너무 커서 복음의 다른 모든 풍성한 주제들을 빨아들였다는 것이다. (마치 이석기 의원 사건이 국정원 개혁의 모든 여론을 빨아들인 것처럼)


십자가 대속과 보혈의 피를 복음 전체의 이미지로 강조하게 될 때, 우리는 자주 복음의 빈곤함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망망대해에 파선당해 죽음의 위협 가운데 있을 때, 생명을 구해준 배가 자신을 육지에 내려주지 않고 계속해서 생명을 살려준 것을 담보로 평생 그 배에서 고기잡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도록 요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죽지는 않을찌언정 그 삶은 매우 가난한고 궁핍한 생명이 될 것이다. 죽음에서 살았다는 것자체는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사건이지만, 살아가는 생애 전체를 생각해 보면 불행한 것처럼, 우리의 구원이 너무 가난한 것이 된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즉, 복음의 전체적인 개념을 충분히 알지 못한채, 구원을 얻었을 때의 경험과 그 감정만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는것 만큼 가난한 복음도 없는 것이다. 마치 결혼한 부부가 수 십년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결혼식과 신혼여행 때의 짜릿했던 경험만을 결혼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가난한 결혼생활을 없는 것이다. 풍성한 결혼 생활이란, 지금의 결혼 관계가 행복하기 때문에 결혼식과 신혼여행은 아련한 기억만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지 않는가! 복음은 그와 같은 것이라 믿는다. 십자가를 경험하고 그 이후에 누리는 것들이 더욱 풍성하고 많아, 날로 날로 더욱 충만해져가는 삶이 바로 복음이 우리에게 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본다면, 바울이 복음에 대한 수식어로 <예수>를 언급하는 것보다는 <하나님>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지만 교회 안에 들어오고 나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큰 계획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엡 1:3-14) 예수라는 문을 통해서 들어오지만, 결국 우리가 대면하게 되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의 주도아래 함께 협력하신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설명할 때,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이 이제 말하고자 하는 복음이 어떤 의미의 복음인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이 협소하다거나, 그릇된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오해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충격적 경험이 모든 논리와 설명을 다 빨아들이듯 우리는 종종, 아니 너무 자주 복음을 대속과 칭의와 중생과 같은 사건과만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이 가난해 지고, 구원의 여정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복음에 대한 이해가 매우 표피적이고 협소하여 원래 하나님이 베풀고자 하신 그 풍성함과 넓음과 깊음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복음과 관련된 첫번째 수식어는 <하나님>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선언했고, 그 이후 그 하나님의 복음이 얼마나 풍성하고 충만한가를 설명해 가고 있다.


다음에는 롬 1:16,17에 언급되고 있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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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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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면서,특히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되면서 나의 청소년 시절을 생각한다. 동시에 나의 부모님은 그 시절 나를 어떻게 키우셨는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막상 생각을 더듬어 가보면 일관된 양육방식이나 교육철학이랄 것을 건져 올리지 못한다. 선명한 방식보다는 흐릿한 느낌만이 한 두가지 남을 뿐이다. 


그 중 하나는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해라>는 잔소리를 거의 하신적이 없는 것 같다. 거의 없다고 했으나 사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것일수도 있으니, 거의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못하고 컸음을 의미한다. 내가 공부를 어느 정도 유지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내 동생에게도 <공부해라>는 말씀을 거의 하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물론 우리 삼형제들의 공부를 봐주신적도 거의 없다. 그도 그럴것이 두 분 모두 장사하시느라 여념이 없으셨고 또한 두 분다 초등학교만 졸업하셨기에 사춘기 자녀들의 공부를 봐 주실 능력도 없으셨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께서 우리 형제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거의 없으셨던 것 같다. 아침 일찍 나가셨다가 저녁늦게 들어오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점심과 저녁은 챙겨 먹어야 했고, 청소와 설겆이를 해야 한다는 것 정도다. 종종 가게 일이 바쁘면 도와 드리러 가야했고, 방학이면 가게 일을 봐야 한다는 것이 좀 그렇긴 했지만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생각은, 그렇게 바쁘고 여유없게 사시면서도 우리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충분히 못해주는 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시는 모습이었다. 못배우신 것이 자신의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못배우심 때문에 자식의 공부를 좀 더 살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셨고, 풍족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입히거나 먹이지 못하신 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셨다. 그래서 그러셨겠지만,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당신의 욕구를 챙기시기보다는 언제나 자식의 필요를 먼저 채우고자 하셨다. 그렇게 하시면서도 더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 주시는 것에 대해 미안해 하시는 눈치였다. 이것이 지금 내가 나의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며 머리 속에 남는 인상이다. 다른 것들은 세월의 풍화 속에서 기억 너머로 사라졌지만, 이 기억만큼은 머리에 각인된듯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그 이후로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종종 부모님댁을 찾아 갔다가 돌아올 때가 되면, 언제 준비해 놓으셨는지 이것 저것 한 아름 챙겨주신다. 그러고도 더 못 주셔서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을 지금도 본다. 자식에 대해서 늘 충분히 해주지 못해 미안해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짠하다. 


지금 나의 가정은 어떤가? 나와 나의 아내는 나쁘지 않은 4년제 대학을 나왔다. 부족하지 않게 공부했다는 말이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집에서 두 자녀와 화목하게 살고 있다. 아내가 맞벌이를 해야 해서 가정을 잘 챙겨보지 못하는 상황도 아니다. 일주일에 세번 오후에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실로 영어를 가르친다. 당연히 집에서 두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영어를 가르쳤다. 지금은 좀 어려워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작은 아이의 수학 정도는 봐줄 수 있는 상황도 되고 실력도 된다. 아내는 교육학을 전공했고, 나는 캠퍼스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사역했고, 교회에서는 목회자로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적지 않은 편이다. 나의 부모님에 비하면 나와 나의 아내는 매우 충분한 부모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나와 나의 아내에게 부모로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은 <미안해 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부모님들에게는 너무나 많았던 그 마음이 지금 우리 가정에는 얼마나 빈약한지 모른다. 우리 안에 가득한 것은 <못해준 것이 무엇인가>라는 마음이다. 

 

나와 아내는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이 <공부해라>고 하는지 모른다. 너무 많이 공부한다고 항변하는 자녀에게,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너무 공부량이 적다고 일축한다. 우리는 부모가 되어 자녀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고(충분한 양은 아니지만), 가정은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평온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자녀들의 지적인 부족을 채워줄 수 있을 만큼 우리는 부모로서 부족하지 않는데, 너는 왜 이리 부족한가?라고 우리는 늘 몰아붙인다.  


"내가 너희에게 못해 준게 뭐니? 너희들은 공부만 하면 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니?"


생각해 보면, 부모들의 미안해 하는 마음(필요를 충분히 채워줄 수 없었기에)을 먹고 자란 우리가, 부모들의 당당함을 먹고 자라는 우리의 자녀들보다 행복했다. 적어도 스트레스가 적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서로에게 <미안해 하는 삶>을 복음적인 삶이라고 규정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 마음이 복음적인 삶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해야 할 것을 다 했다고 주장하는 순간부터 화평은 깨지기 시작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자식이 해야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속에서의 인내와 용납은 사라지고 만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부족함에도 나와 결혼해준 배우자를 생각할 때, 가정은 화평하다. 지금도 여전히 기대하는 만큼의 충분한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곳에 지속적인 평화가 임하게 된다. 가정 안에서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회사 안에서 노사간의 관계도 같은 원리요, 국가와 국민간의 원리도 같다고 본다. 




요즘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나의 해야할 책임을 충분히 다했으니, 내가 누려야 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마땅하게 된 것이다. 일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만 남았고 세상은 온통 당당한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은 사라지고 치열한 권리주장만 남았다. 여기에 무슨 화평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부족함과 결핍을 찬양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서로에게 대한 <미안해 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찬양하고 싶다. 5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10리까지 못가준 것에 대한 미안함, 속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겉 옷까지 주지 못하는 미안함, 더 좋은 것으로 대접하지 못하는 미안함, 더 충성스럽게 섬겨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이런 미안함이 이 사회를 따듯하게 하고 긴장을 풀어 화평을 이루어 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였다."(창 2:25)


에덴은 부끄러울 것이 없었던 곳이라기 보다는 부끄러울 만한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았던 곳이다. 서로가 벌거벗었기에, 서로가 부족했기에 상대의 수치를 수치로 지적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고백하는 것에서, 우리는 화평을 누리고 복음적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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