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 목사, 부천 중동교회 집회 중(2015.11.14)


사람은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은혜를 깨닫게 될 때 변하게 된다. 은혜를 깨닫는 것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 대상이 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김태원이 마약 중독으로부터 극복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마약 중독으로 매일 자신을 찾아오는 어머님의 고통을 느꼈을 때 마약을 끊을 수 있었고, 서경석이 재수하면서 함부로 살때, 그러 자신의 모습에 어머님이 고통 당하는 모습을 봤을 때 정신 차리게 된 것과 같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된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지적받음으로 하나님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변화를 경험하지만,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서 지적받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통받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에 변하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때 우리는 변화를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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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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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주례로 진행된 결혼식 참석.(2015.11.14)

신부의 아버님이신 장로님께서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이찬수 목사님께 하셨다는 말씀 "우리가 이제 옥한흠 목사님의 성적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신랑신부가 부모님의 부끄럽지 않은 성적표가 되어 달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누구의 성적표다. 내게 은혜를 베푼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적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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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순화 시켜서 정리해 본다면,

종교 개혁당시 로마 카톨릭은 성경의 권위를 넘어 교회의 전통에 선 기독교고, 
재세례파는 교회의 역사적 성취(전통)보다는 성경, 좀 더 엄밀하게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선 기독교라고 볼 수 있겠다.


개혁주의자들은 사실 이 둘 사이에 신학적인 둥지를 틀었다고 볼 수 있는데
가장 극단적인 두 입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편의대로 때로는 성경의 잣대를 가져다 쓰고, 때로는 전통의 잣대를 가져다 썼기에 이중 잣대를 자신의 입맛에 따라 쓴다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지금의 개혁주의에 두가지 큰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데


하나는 로마 카톨릭이나 재세례파(메노나이트)가 무리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한 잣대를 꾸준히 사용하면서 나름 그 '진정성'을 인정받아가는 것 같은데, 개혁주의 교회는 이중 잣대를 일관성이 아닌(자기 희생의 관점이 아닌) 자기의 편의대로 사용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줌으로 그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하나는 로마 카톨릭은 그 교황의 영향력(전통 해석의 결정권자?)이 크고, 재세례파(메노나이트)는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영향력이 크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혁신적인 행보(예수의 삶과 닮은)는 세속 세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향한 교황의 말과 행동이 삶의 현장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재세례파(메노나이트)의 가르침도 급진적이다. 삶에 있어서 예수의 가르침을 문자적을 실천하려는 결단이 진보적 진영에서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개혁주의들의 태도는 애매하다.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는 미온적이면서 이사람 저사람들을 판단하는데는 능숙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교리로 이 신앙, 저 신앙을 칼질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관념만 남고 실천과 삶에서는 격리된 기독교로 전락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는 지점이다.


나는 개혁주의 입장의 신학을 공부했고, 지금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개혁주의가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전통과 성경을 모두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이 가지는 이런 귀한 장점을 살려내지 못하고, 위에서 우려하는 바 이중 잣대를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양 진영과의 치열하게 싸워오면서 몸에 밴 '싸움꾼'적 기질을 극복하지 못하면 개혁주의의 칼은 망나니의 그것일뿐 요리사의 그것이 되지는 못한다.


_ 메노나이트 신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의 책(급진적 제자도, 죠이)을 읽다가 괜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급히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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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을 넘어


글: 김수억 대표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사건의 핵심은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려 내는 부활의 능 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독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함이 다. 11장에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을 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죽도 록 방치(?)하셨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사로가 위독 한 것을 알고도 ‘이틀’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의도적으로 흘려버리 셨기 때문이다(6절). 요한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통 해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4절). 이것이 죽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통해서 우리 가 깨닫게 되는 일차적인 메시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요한복음을 처음 대하는 1차 독자 입장에서 죽은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는 어떻게 읽혔을까? 생각해 보자. 요한복음은 1세기 말엽 대략 주후 90년경에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당시 교 회의 형편은 어땠을까? 교회는 로마의 직접적 박해와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성도는 ‘죽음의 위협’을 받 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당시 교인들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나사로와 같지 않았을 까? 지금 성도들은 로마의 박해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데, 곧 오실 것 같은 주님은 오시지 않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행하시 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나사로의 위독함을 듣고도 이 틀을 더 머무셨던 예수님처럼, 즉각적으로 성도들의 위협에 대처해 주지 않으시는 주님의 태도에 성도들은 불안해했을 것이고, 그중에 일부는 믿음까지 흔들렸을 것이다.


이런 형편에 있는 성도들에게, 요한은 죽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언급하면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25절)를 다시 한 번 의지하라 고 요청하고 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25-26절)라고 설교하고 있는 것 이다. 그리고 ‘이것을 네가 믿느냐?’(26절)라고 성도들의 믿음을 촉구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죽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읽는 1세기 말 의 성도들은 요한의 말씀 앞에서 다시 용기와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로마의 박해를 받지도 않고, 신앙 이 있다고 해서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박해나 한국전쟁 중에서 공산 당의 박해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 시대는 평안의 시대 요, 풍요의 시대요, 자유의 시대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 을 위협하는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안정감을 빼앗기는 것’이다. ‘안정감’은 이 시대의 ‘생명’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목적도, 좋은 직장을 다니려는 근거도 ‘안정감’에 있 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줄 수 있는 안정 감’이 우선이 된다. 따라서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은 ‘불안정감’이다. 안정감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 안정감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큰 불행 은 없다.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안정감’을 보장해 준다면 예 수는 성도의 ‘신’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도들의 안정감을 빼앗으 려 한다면 그 순간 예수는 더 이상 성도들의 신이 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거짓 ‘안정감’을 약속하는 ‘우상’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된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안정감’을 보장해 준 적이 없다. 오히려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안정감을 깨기 위해서 온 분이라고 자 신을 설명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 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다(마 10:34). 주님은 재 물이 많은 청년에게 재물을 버리고 나를 쫓으라고 요청하신다. 불안 정감의 세계로 초대한 것이다.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 나”(창 12:1)라고 말씀하신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 불안정한 나그네 로서의 삶으로 오라 하신다. 이 시대는 ‘안정감’이 없다면 죽을 것 같 은 시대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내용이 무엇인가? 주님이 빨리 오셔서 지금 불안정한 나의 상태를 안정케 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그런 우리를 향해서 주님은 ‘이틀’을 더 머무심으로 우리의 불안을 가중시키시고,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신다. 왜? 주님과 함께한 ‘불 안’ 속에 참된 신앙이 있기 때문이고, 예수님만이 세상이 주는 허망한 ‘안정감’을 넘어 참된 평안이시기 때문이다.


불안정이 엄습한 시대, 그래서 안정감이 우상이 된 시대. 우리는 다 시 한 번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그 러기 위해서는 ‘불안한 상태’를 견디고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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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에서 ‘표적’으로

글: 김수억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병이어 기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이 나온다. 예수님이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을 일으키신 사건이다. 그러나 요한은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만을 강조하려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오병이어 기적을 언급하기 전과 그 기적이 마친 이후의 묘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요한이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핵심은 오히려 여기에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오병이어 기적 이전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다고 언급하고 있다(요 6:2).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좇은 이유는 예수님이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적(miraculous signs)’을 봤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 표적이란 아마도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를 고친 것과 같은 치유의 기적일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많은 무리는 여전히 예수님을 찾는다(요 6:24).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표적(miraculous signs)’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26절) 그를 임금 삼으려는 마음에서였다(15절). 아쉽게도 예수님은 표적(miraculous signs, 요 6:2, 26)을 보이셨으나, 무리는 ‘기적(miracle)’을 보는 데 머물렀던 것이다. 육으로 난 자인 자연인이 가지는 한계가 바로 이것이다. 영적인 것(표적)을 보고도 육적인 해석(기적)밖에는 해낼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무리 지어 예수님을 좇았지만, 예수님은 이내 난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로 이들을 돌려보내셨다(요 6:66).


전도가 힘들어지는 현 시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뭔가 ‘화끈한 기적’을 보여 주시면 사람들이 여기에 굴복해서 교회로 찾아올 것이고 당연히 믿음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믿은 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때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내 곧 무능한 하나님, 변덕쟁이 하나님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고 ‘더 확실한 기적’을 제공하는 우상을 찾아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만으로는 무지한 인생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한다. 기적이 지향하는 바 곧 표적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비로소 빛을 보게 되고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죠이선교회 사역은 한국 교회와 사회 안에서 어떤 사역이 되어야 할까? ‘기적’을 자랑하는 단체가 아니라 ‘표적’으로서 “생명의 떡 되신 예수”를 드러내는 사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죠이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요구한다. 아니 내 안에서부터 큰 함성으로 외치는 소리가있다. 죠이선교회가 한국 교회 안에서 ‘기적’이 되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 되어야 한다. 기적은 육을 지향하고 표적은 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에 불과한 것이다. 죠이 스피릿에서 예수님을 첫째로 둔다는 것은 예수님을 가장 우선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죠이선교회의 모든 사역이 예수님을 지향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죠이를 통해서 배출되는 죠이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참된 죠이어란 예수님을 우선에 두는 죠이어이면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지향하는 죠이어를 말하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육의 생명을 거듭나게 하사 영의 나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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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 3년 중 2년은 교관으로 보냈다. 내가 맡았던 일은 신병과 예비 분대장을 교육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군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교안을 작성하는 것이고,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것이었으며 교장에 나가서 실습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종종 큰 훈련에 평가 담당관으로 나가기도 했고, 윗분들이 보는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일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잘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 익숙함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내가 대학시절 죠이선교회 활동을 하면서 제자훈련을 받고, 리더가 되어 제자훈련을 하면서 그룹원들을 훈련하고 가르치기 위해 해왔던 과정의 연장선과 같았기 때문이다. 교안을 작성하는 것, 소수이긴 했지만 그들 앞에서 성경을 가르쳤던 것, 매주 평가지를 주고 그룹원들의 삶을 점검했던 것 등등 이런 대학시절의 시간들이 나도 모르게 군 생활 중 교관으로서의 과정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과 윗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됨으로서 그 열매를 보게 된 것이다.


어제는 한 청년을 만났다. 미술을 전공하고 지금은 전국에 12-13개의 센터를 한 미술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입사한지 1년만에 센터장의 인정을 받고 승진하여 새로운 미술 선생님을 뽑고 가르치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다음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1년의 시간동안 그 센터가 있는 지역 어머니들에게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학원이었는데, 교회 유치부 교사를 10년 넘게 하면서 아이들을 대해왔던 것 또한 그 아이들의 부모님께 연락하고 상담했던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훈련이 되어 학원의 아이들과 부모들을 대했던 것이 부모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이고 성공적 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지역 어머니들 중에 상당히 괜찮은 '선생님'으로 소문이 났고, 그 소문이 센터장의 귀에 까지 들어가 센터장이 이 청년을 신뢰하고 빠른 승진과 더불어 묵직한 일들을 맡겨주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넘에 교회 유치부 교사로 섬기면서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지금의 일을 착실하게 준비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몸에 체득되도록 10년 넘게 준비한 사람을 누가 알아보지 못하고, 누가 인정해 주지 않겠는가!


우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훈련을 한다. 어떤 일은 미래를 위해 현지를 훈련하여 이룬다. 그러나 어떤 일은 현재를 살았는데, 그것이 자신도 모르게 미래를 준비한 일이 되기도 한다. 둘 다 중요하고 보람있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더 성경적인 삶에 가까운가라고 말한다면 나는 후자라고 말하겠다. 오늘을 사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목적지향적인 사람은 미래를 살기위해 오늘을 철저하게 준비한다. 그렇게 해서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보다 나아질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오늘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나 아닌 자의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오늘의 나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미래지향적인 삶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 하루의 진실함이 쌓여, 성품가 실력을 채워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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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슴이 철렁

 - 김수억 


이른 아침

스탠드 밝게 밝히고


나를 위해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마음 한켠 

또 다른 소리에

가슴이 철렁


'넌 너의 앞길 밝히는구나

난 나의 앞길 모르는데'




늦은 밤

밖으로 나가


나를 위해

운동이라도 할라치면


마음 한켠

또 다른 소리에

가슴이 철렁


'넌 너의 몸, 세우는구나

난 나의 몸, 허물어지는데'


가슴이 철렁

가슴이 철렁



불을 끄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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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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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동차에는 

브레이크가 있다.

차를 멈추기 위해.


모든 

인생에도 

브레이크가 있다. 

삶을 멈추기 위해.


모든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운전자가 밟는다.

안전을 위해.


모든 

인생의 브레이크는

누군가에 의해 밟힌다.

인생을 위해.


자동차는 멈추지만

인생은 멈춰지는 것


멈춘다는 것

멈춰진다는 것

그래서 고통스럽고

그래서 안전한


멈춰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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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설교 갈라디아서 / 화종부 목사 / 죠이선교회(270-271쪽)


갈 4: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이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육체적인 부족함을 안고 있는 바울을 귀히 여겨 받아준 갈라디아 교회에 대한 설명을 하시면서 주신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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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회를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높이고, 너무 쉽게 무자비하게 짓밟습니다. 중직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귀하게 여기고 사모해서 돈도 받지 않고 많은 시간과 수고를 하면서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데, 성도들은 그들의 모습이 자신들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너무 쉽게 중직자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목회자를 비난하는 것은 이제 거의 습관적입니다. 참으로 마음 아픈 시대가 되었습니다. 


목사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죄송합니다. 하지만 혹시나 제가 여러분을 실망시키거나 상처를 주면 절대로 욕하고 돌아서지 마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 정말 미련한 자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신 줄 알고, 제가 말씀을 왜곡하지 않도록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이 닫히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갈라디아 성도들처럼 덮고 가려서 하나님의 천사를 대하는 것처럼, 주께 대하는 것처럼 대해 주세요. 물론, 섬기는 연장선에서 하는 일인 줄 알고 허물을 덮어 주고 아껴 주십시오. 그것이 교회요, 성도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얼마나 차가운지 모릅니다. 교회 안과 밖이 너무 차갑고 날카롭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씨가 다르게 태어나서 목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실수로 대학 졸업 두 달 남겨 놓고, 하나님께서 "너도 한 번 목회를 해 봐라"해서 목사가 되었을 뿐입니다. 목사가 되려고 소원한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주님이 잘못 선택하셨다고 수도 없이 말씀드렸는데도 포기하지 않은 그분 때문에 어떤 면에서 억지로 이 길을 울면서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높은 수준을 요구합니다. 목사니까, 장로니까, 권사니까라고 말이죠. 그러나 완전한 목회자가 이 땅 어디에 있습니까? 이상적인 교회가 이 땅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사람으로 빚어 가고, 그런 교회로 함께 수고하며 빚어 갈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목사나 교회가 당연히 완전해야 한다고 여기면서 뭔가 거듭거듭 요구만 할 뿐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도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니까 바울이 가진 수 많은 허물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침을 뱉어 경멸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며 눈이라도 뽑아서 주고 싶어하던 성도들이 점점 사라집니다. 


이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 목회자들을 깊이 존중해 주십시오. 그들의 자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영혼이 살찌기 때문입니다. 중직자의 수고와 땀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들도 일상적인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애쓰고 수고하는 가운데 직분을 귀하게 여기고 수고하는 분들입니다. 그들의 허물이 드러날 때, 덮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대할 수 있는 절회의 기회인 줄 알고 비난이나 나뿐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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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사역을 시작한 사람은 아니다.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필요를 느끼고 신학을 했고 그러다 보니 목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목사이기 전에 사역자였고, 사역자 일때 한 때 '서리집사'였다. 어떻게 보면 일찌감치 목회로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신 분들과는 약간의 다른 과정을 거친 셈이다. 물론 뒤늦게 부름을 받아 직장 혹은 사업을 그만두고 신학을 하신 분들도 있긴 하지만 그 분들과도 약간은 다른 경로를 밟아 목사가 되었다. 


지금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부천 상동에 있는 '중동교회'다. 예장 합신 측 교회로 교단 안에서는 규모가 있는 교회다. 중동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목사직과 연관이 있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친구가 개척하여 목회하는 곳에 출석했다. 조금이라도 개척하는 친구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그 친구의 아들과 우리 두아이를 데리고 주일학교를 시작했으니 약간의 도움은 되었으리라. 물론 그 친구 목사로부터 내가 받은 도움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도우며 지내다가, 목사 고시를 보고, 면접을 보는데 노회 어른신들이 조건부 안수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지금 출석하는 교회가 합신 측 교회가 아니고, 현재 하고 있는 사역도 교회 사역인 아닌 선교단체 사역이기 때문이란다. 다음 봄 노회까지 우리 교단으로 옮기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목사 안수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옮기지 않아도 그것까지 따져 묻지는 않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장로교 목사가 되려고 하는 이상 기분이 내키지 않더라도 장로정치의 원리를 따라야 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고, 결국 지금 중동교회로 옮기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중동교회로 옮기기 위해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중동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처음 중동교회를 출석하게 된 것은 2006년 1월 1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목사이면서 새가족이 되었다. 사역을 위해서 교회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일에는 한가했다.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교회에서 먹고 좀 있다가 집으로 갔다. 오후 예배가 있었지만 집이 멀었기 때문에 가족들을 데리고 일찍 갔고, 아무도 협동목사인 나를 사역자로 알아보거나 눈치주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정말 중동교회의 새가족이 되어 조금씩 적응해 가야하는 성도였다.그 한해 동안 식사 후 교회 1층 로비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으면 찾아와 인사를 먼저 건네주신 분들이 있었다. '교회에 새로 오셨냐?'고 물으시면서. 그러면 우리는 그건 아니고 '협동목사'라고 하면 갑자기 당황스러워하며 무안해 하셨다. 교회에 협동목사로 내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아무도 그 이름의 얼굴이 누구인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을 것이기에. 내가 협동목사로 오기 전에 협동목사로 계시던 분은 이름만 있었지 실제로 교회에서 본적은 거의 없다. 다른 교회를 다니시거나 주일에 다른 사역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우리 교회에 적만 두셨던 것같다. 성도들에게도 협동목사는 이름만 있고, 얼굴은 없는 목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나와 가족은 그렇게 새가족으로 1년의 교회 생활을 했다. 한 번은 금요철야를 가겠다고 인천 집에서 출발했다가, 인천대공원 앞 도로에서 길이 막혀 교회에는 정작 다 끝날때 도착해서 얼굴만 비치고 돌아왔던 경험도 있었다. 집이 멀었기에 교회의 공예배를 충실히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성도로서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는 노력했다. 난, 목사이기 이전에 성도이니까 말이다. 


2006년 말 교회에서 '유치부'사역을 제안을 받고 2006년 12월부터 유치부 사역을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공식적인 사역하는 목사였다. 교회 주보에는 여전이 협동목사로 표시되었지만, 유치부를 하면서 유치부 교사들과 대면하고, 종종 주일 오후 혹은 저녁 예배 때 설교도 하면서 성도들은 내가 교역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지나고, 교회 청년부 설교자가 없을 때에는 청년부 설교도 하곤 했으니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인식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올 해까지 만 8년동안 중동교회의 부교역자로 사역했다. 물론 선교단체 사역을 하면서 해야 했기에 주말에만 사역했지만, 오랜 기간 사역했고, 4년 전에는 교회 주변으로 이사해서 동네 주민이 되었고 3년전부터는 주일 저녁 설교를 자주했으니 중동교회와는 긴밀하게 되었다. 게다가 1년에 한 번 정도 담임 목사님께서 선교지 사역을 다녀오실 때는 주일 낮설교까지하곤 했으니 교회 안에서 목사로서의 위치는 더욱 굳건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목사지만, 한 사람의 성도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성도됨을 잃어버린 목사는 권위와 특권 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고 여겨졌기에.


2014년 11월 말, 나는 만 8년동안 섬기던 유치부를 사임했다. 사역지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20년 가까지 사역하던 단체에서 중책을 맡게 되었고, 교회 부서 사역과 겸해서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교회의 허락을 받아 사임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서사역은 사임했지만, 교회를 옮겨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른 교회 사역지를 찾아봐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나는 다시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성도로 교회를 다닐 생각이었다. 교회를 옮겨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적어도 나와 우리 가족에게 '중동교회'만큼 좋은 교회는 없기 때문이다.(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교회를 소개할 때,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교회' 라고 소개한다.그만큼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우리의 진로를 묻는 성도님들에게 여러차례 이야기 했다. 유치부만 사임하고 중동교회는 계속 다닐 거라고. 우리는 할 만큼 많이 이야기 했지만, 성도님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으셨나 보다. 계속해서 재차 물으셨고,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렇지 않다고 웃으면서 말씀드렸지만, 11월 말까지 성도님들은 미더워하지 않으셨던것 같다. 


생각해보니, 성도님들의 경험 속에서 이런 교역자는 없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일로 교회를 사임하든, 교회에서 더 이상 일할수 없어서 다른 교회로 옮기든(사역지가 결정되든 그렇지 않든) 사임과 동시에 교회를 출석하지 않았을 것이 당연하다. 지금까지 성도님들이 경험했던 교역자들은 모두가 그랬던 것이다. 부교역자로 있다가 협동목사로 바뀌면 당연히 교회에 매이지 않고 사역이든 다른 교회든 다니셨기 때문에 그랬다. 성도님들의 경험하셨던 교역자들은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목사가 교회 안에서 아무 사역도 없이 성도의 한 사람으로 교회에 출석만 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묻고 또 묻고 다시 묻고 하셨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 이후 감사하게도 담임목사님께서 주일 저녁 설교를 제안해 주심으로 작은 역할이 생기기는 했다. 그러나 마음은 동일하다. 목사이기 전에 성도임을 말이다. 이 마음을 잘 간직해야겠다. 이 마음을 잊게 되면서부터 목사는 변질되고 왜곡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목사가 되는 과정이 귀하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해서, 중고등부 청년부를 거치고 결혼하고 서리집사를 한 후에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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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mill

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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