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주일낮예배(2016.8.21)


제목: 예수 은혜의 지속성(중보)

본문: 히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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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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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주일낮예배(2016.8.14)


제목: 예수의 풍요성

본문: 요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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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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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한국 2016대회를 준비하며 나누고 싶은 개인적인 이야기3>



선교한국 대회 주관을 맡게 되어 준비하고 진행하면서도 정작 간과하기 쉬운 것은 선교한국 대회의 <가치>다. 등잔 밑이 어렵듯이 가장 근접에서 대회를 위해서 일하면 이 대회의 가치를 잊곤한다. 


선교한국 대회의 시작을 죠이가 했고, 지난 28년동안 선교한국 대회를 통해서 6만 여명이 참석했고,(평균 매 대회마다 4천여명씩 참석) 그 중 3만 5천여명은 어떤 형태로든지 선교에 헌신할 것에 대해서 결신한 대회다. 지난 28년간 한국 교회에 선교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저변을 확대한 대회라고 평가된다. 여러가지 평가와 수치로 선교한국 대회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고 참석하면서 개인의 경험을 통해 선교한국 대회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간략하게 나누고자 한다. 


조직위원장의 숙소는 감사하게도 세종대학교 근처 기숙사에다 잡아주었다. 아침 저녁으로 숙소를 오갔다. 그곳에는 일반 참가자와 외국인 참가자 중 일부의 숙소도 함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고 가면서 참석자들을 만나게 된다. 8월4일 목요일 저녁에도 집회를 마치고 기숙사로 향했고, 숙소(8층)로 올라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도중 한 형제를 만났다. 간단하게 인사하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형제는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참 멀리서 왔구나 생각하며 '설마 선교한국 대회에 참석하려고 한국에 온 것은 아니지요? '하고 웃으면서 물었다. 그러나 그 형제의 답은 생각 외였다. '아니요 선교한국 대회에 참석하려고 왔다.'고 대답했다. 잠시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열렸고 몇 마디 더 하긴했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물론 선교한국 대회만 참석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온 김에 한국에서 더 머물면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할 수도 있고,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 목적은 '선교한국 대회'를 참석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나오면 또 한 형제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형제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냐고? 그 형제는 '안양'에서 왔다고 했다. 미국과 비교하면 안양은 참으로 가까운 곳이라 생각했다. 나는 교회 청년들이랑 같이왔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형제의 답은 의외였다. 혼자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어떻게 혼자 올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형제의 답은 잘 아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선교한국 대회는 꼭 가봐야 한다고 적극 추천해줘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잠시 말 문이 닫혔다. 금요일 밤에 또 한 형제를 만났다. 그 형제는 '울산'에서 혼자왔다고 했다. 자기의 여자 친구와 아는 후배가 추천해서 선교한국 대회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어제부터 나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고 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 인사를 나눈 몇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선교한국 대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대외적으로 몇 명이 참석했고, 헌신자는 몇 명이 나왔으며 한국 교회에 어떤 역할로 기여했는가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선교한국은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에 와야 할 주요 목적이 될만큼, 잘 아는 후배에게 젊었을 때 선교한국 대회는 꼭 참석해 봐야 한다고 적극 추천해 줄만큼... 선교한국 대회는 누군가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가치를 가진 대회란 생각을 했다. 


물론 수 많은 사람들이 선교한국 대회를 참석하는 동기는 다양할 것이다. 내가 만난 몇 사람이 전체를 대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난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 시간 만난 형제들을 통해서 '내가 매우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 소중한 대회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지속되어야 함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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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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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한국 2016대회를 준비하며 나누고 싶은 개인적인 이야기2>

   * 생각났을 때 막쓰느라 오탈자가 많겠지만, 첫 느낌을 남기느라 우선 올립니다. 



많이 알고 있다시피 선교한국 대회는 죠이선교회 30주년(1988년) 선교대회를 한국 교회에 오픈하면서 시작된 대회다. 한 단체의 이름으로 하는 선교대회가 아니라 학생단체, 파송단체, 지역교회가 함께 하는 대회로 하자는 취지로 선교한국 88대회가 치뤄졌고, 그 이후 함께 했던 단체들의 동의 속에 2년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대회를 하자고 결정해서 그 이후로 90년(2회), 92년(3회), 94년(3회)... 2014년(14회)까지 이어졌다. 대회의 주관은 학생선교단체에서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고 14년을 주기로 단체별로 순번이 돌아왔다. 죠이는 1988년, 2002년 그리고 어김없이 14년 후인 2016년에 선교한국 대회를 주관하게 되었다. 


그런데 난 하필이면(?) 선교한국을 주관하던 해에 죠이의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 사실 2014년 하반기에 죠이 대표로 내정될 때, 가장 걱정되던 것 중에 하나가 선교한국 2016대회였다. 그냥하는 엄살이 아니라 요즘처럼 학원사역이 어렵고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에 직접적인 죠이 사역도 아닌 일에 간사와 학생들을 동원한다는 것은 리더로서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기에 그렇다. 내가 대표가 되어 결정한 일도 아니고, 이미 선교한국 2016대회를 주관하기로 (이전 정권에서ㅋ)결정된 것을 이어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처음부터 적극적이기는 어려웠다. 


2016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처음으로 선교한국 조직위원이 되어 2014대회 평가회에 참석했다. 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분위기만 살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선교한국 조직위원회도 상당히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난 알지 못했다. 그 때는. 마음의 부담은 않고 2015년 2월 선교한국 정기총회에서 선교한국 2016대회 조직위원장으로 세워지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 직책을 감당해야 했다. 


선교한국 조직위원들은 40여개의 해외파송단체 대표가 참석하고 오랫동안 조직위원으로 활동한 선교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선교한국 상임위원장과 사무국 간사들은 대부분 선교한국 대회를 많이 경험해본 베테랑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단체의 대표로서도 신임이요 선교한국 조직위원도 처음인 신참(?)에 불과했다. 그런 나에게 대회 조직위원장의 직책이 딸려온 것이다. 말씀은 안하셨겠지만, 많은 분들은 속으로 우려하셨을 것이다. 가장 우려한 사람은 바로 나다. 


그렇게 1년 반 이상을 지나면서 몇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일단 전보다 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많이 수월해졌다. 오랫동안 대회를 거치면서 연결된 전문가와 위원회 그리고 선교한국 사무국 간사들의 평시 업무를 많이 감당해 주기 때문에 주관단체로서의 부담은 전보다 확실히 줄었다. 물론 대회 기간 중 많은 스텝들이 동시에 투입되어야 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전에 준비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훨씬 덜 부담스러워졌다. 


상임위원장도 오랫동안 다양한 조직위원장을 거치다보니 나같은 초보 조직위원장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시켜 주어야 할지에 대한 안목이 있었다. 이전 조직위원장들과의 미팅을 마련해주고 그 분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조금씩 자신감도 갖도록 도와주었다. 사무국 간사님들도 조용히 조직위원장이 해야할 일에 대해서 적절히 상기시켜주셨다. 


조직위원장으로 섬기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체 대표분들의 태도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선교와 관련하여 파송단체대표들은 전문가들이다. 오랜 선교지의 현장 경험과 더불어 선교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시는 분들이다. 나이도 대부분 50대 중반에서 60대까지. 노련하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을 조직위원장이라는 직책만으로 회의를 이끌고 대회를 이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지난 1년 반동안 전혀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파송단체 대표들과 조직위원들은 부족한 자를 조직위원장으로 인정해 주셨고, 격려해 주셨다. 우려될만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해주시고 기다려 주셨다. 


선교한국 대회 조직위원장을 '초짜'도 할 수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선교한국 대회 조직위원회는 '초짜'조차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귀하고 성숙한 조직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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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2부 예배(2016.8.7)


제목: 예수의 유일성과 충족성

본문: 요 14:1-7


 * <우리의 소망 예수>에 대한 3번의 설교 중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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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한국 2016대회를 준비하면 개인적인 이야기>



선교한국 2016대회가 은혜 가운데 마쳤다.목표를 삼았던 숫자만큼 참석자가 오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판단되고 그 숫자 또한 적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참석한 사람, 울산에서 혼자 참석한 사람 심지어 미국에서 이 대회를 참석하기 위한 사람도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선교한국 대회의 가치를 확인하기에 부족하지 않았고, 실제로 지난 일주일간 풍성한 대회를 진행했다. 


개인적으로는 선교한국 대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이번 대회를 진행하기까지 적지 않은 어려움을 통과해야 했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대회를 치러낸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 이야기를 간략하게 나누고자 한다. 


우선 최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자. 아내는 7월 10-12일까지 병원에 입원해서 항암치료 6차를 받았다. 지난 3월에 재발한 암으로 인해 항암 치료를 3주간격으로 진행했고 7월 20일 6차 항암을 받았다. 만약 아내가 7차 항암을 받아야 했다면 그 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날은 7월 31일부터 8월2일까지 였을 것이다. 8월 1일 선교한국 2016대회 조직위원장으로 대회를 진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차 항암 치료 이후 CT검사는 비관적이었다. 6차례의 항암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암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고 계속해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최종 확인을 위해서 PET-CT를 찍어봐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항암을 지속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많이 낙심했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같이 낙심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아내는 7월 25일 다시 PET-CT를 촬영했고, 우리는 큰 기대없이 7월 27일 주치의를 만나러 갔다. 최종 결과를 보기 위해서.


의사의 답변은 의외였다. "결과가 좋습니다. 암 덩어리는 있는데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우선은 항암 치료를 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7차 항암을 준비하고 있었던 우리 부부는 의사에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됩니까?" 그렇게 극적인 반전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하나님은 그간 항암으로 지친 아내를 위로해 주셨다. 물론 언제 다시 재발할지 알지 못하지만, 그간 고생했다고 힘들었다고 '쉼'을 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8월 1일 선교한국 2016대회에 들어갔다. 아내가 만약 7차 항암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물론 몸을 회복해야 하는 아내를 집에 홀로 두고 가는 것이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허락하시는 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했다. 


첫날 점심을 먹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함께 탄 분들 중에서 나에게 인사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낯선 얼굴이었지만, 나도 인사했다. 그 분이 먼저 '아내'의 건강을 물으셨다. 그제서야 알았다. 이분들이 선교한국 중보기도단의 일원이시라는 것을. 함께 아내분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안부을 물어오셨다. 그제서야 '아, 그랬구나' 이 분들의 기도가 함께 있었던 것이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분들의 기도가 역사를 이루어냈던 것이구나 놀라게 되었다. 


그렇게 선교한국 2016대회의 첫날은 시작되었다.  선교한국 마지막날 저녁, 상임위원장이 전체 감사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곳에 모인 1500여명 앞에서 조직위원장인 나의 아내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간략한 상황을 알리는 바람에 아내의 투병은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말았다. (더 큰 기도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지난 2016년 8월 7일, 지난 한 주간 폭풍처럼 지나갔던 선교한국 대회를 돌아보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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