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5.11.29)


본문: 시편 84:1-12

제목: 천 날 보다 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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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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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용기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 인푸루엔셜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한 설명이 다소 충격적인 것은 사실이다. 프로이드의 심리학과 매우 상반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인듯 하고 그만큼 우리는 프로이드의 심리학에 깊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과거와 원인에 치중한 프로이드의 심리학은 지금 내 문제의 원인을 설명해 내는 것에 유익하지만, 변명거리를 만들어내고 핑계를 만들어 지금을 직면하고 변화하는데는 약하다. 그러나 아들러의 심리학은 과거와 단절된 현재를 직면할 용기를 갖으라고 한다. 변명거리를 제거해 버린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환경과 구조를 바꾸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개인 내면의 생각을 개조하는 것을 중시하기에 이 시대의 보수진영 사람들에게 상당히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공할 것이라고 보인다.

_ 간략한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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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40년은 성경 내용을 축적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내용도 충실하고, 전달하는 것도 효과적이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준비한다. 티블로그는 창고면서, 공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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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 목사, 부천 중동교회 집회 중(2015.11.14)


사람은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은혜를 깨닫게 될 때 변하게 된다. 은혜를 깨닫는 것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 대상이 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김태원이 마약 중독으로부터 극복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마약 중독으로 매일 자신을 찾아오는 어머님의 고통을 느꼈을 때 마약을 끊을 수 있었고, 서경석이 재수하면서 함부로 살때, 그러 자신의 모습에 어머님이 고통 당하는 모습을 봤을 때 정신 차리게 된 것과 같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된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지적받음으로 하나님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변화를 경험하지만,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서 지적받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통받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에 변하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때 우리는 변화를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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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주례로 진행된 결혼식 참석.(2015.11.14)

신부의 아버님이신 장로님께서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이찬수 목사님께 하셨다는 말씀 "우리가 이제 옥한흠 목사님의 성적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신랑신부가 부모님의 부끄럽지 않은 성적표가 되어 달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누구의 성적표다. 내게 은혜를 베푼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적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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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45장. 

 

 대성약결: 최고의 완성은 마치 미완성인 듯하다.

 대영약출 기용불궁: 가득 차 있지만 마치 비어 있는 것 같아서 떠내어 사용하더라도 다함이 없다. 

 대직약굴: 최고의 곧음은 마치 굽은 것 같다. / 사물에 따라서 곧기 때문에 굽은 듯이 보이기도 한다. 

  - 따라서 지조의 근본을 지키는 사람은 소절(작은 꺾임)에 구애받지 않는다. 때로는 약굴, 마치 소신을 굽히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자연은 하나의 가치 일정한 형식이 없다. 


 대교약졸: 최고의 기교는 마치 졸렬한 것과 같다. 

 대변약눌: 최고의 언변은 마치 말을 더듬는 듯하다.


노자가 강물을 최고의 선이라고 한 세가지 이유


1. 수선리만물: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이 곧 생명이다. 

2. 유수부쟁선: 다투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산이 가로막으면 돌아가고 큰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지나간다.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난 다음 뒤물을 기다려 앞으로 나아간다.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다. 

3. 처중인지소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기 때문에 상선이다. 싫어하는 곳이란 낮은 곳 소외된 곳이다. 물은 높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흐른다. 


 -> 유능제강: 이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물이 강한 것을 이긴다. 노자는 제왕을 이긴다는 민초의 정치학이다. 민초에게 희망을 선포함. 물은 궁극적으로는 '바다'가 된다. 바다는 가장 큰 물이다. 어떠한 것도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 위력을 지내고 있다. 그 위력은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시내를 다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이 '바다'이다. 물은 '하방연대'의 교훈이다. (134쪽)


신영복 교수가 본 사람의 두 부류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과 

반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지만, 약한 사람한테 관용적인 사람은 없다. 원칙없이 좌충우돌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연대는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추종이고, 영합일 뿐이다. 연대는 물처럼 낮은 곳과 하는 것이다. 잠들지 않는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는 것이다. 바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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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 곡속장의 '이양역지' 양과 소를 바꾼 이야기(106-107쪽)


맹자가 인자하기로 소문난 제나라 선왕의 찾아가서 소문을 확인한다. 소문은 이런 것이다. 선왕이 소를 끌고 가는 신하에게 '그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묻자 '흔종'(종을 새로 주조하면 소를 죽여 목에서 나온 피를 바르는 의식)하러 갑니다.'라고 답했다. 선왕은 소가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이 불쌍해서 '소를 놓아주라'고 한다. 신하가 '그러면 흔종을 폐지할까요?'하자 그럴수는 없다고 하면서 '양으로 바꾸라고(이양역지)' 지시했다는 소문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자 선왕은 그런 일이 있다고 했다. 맹자는 왜 바꾸라고 했는지 물었다. 선왕은 벌벌 떨면서 사지로 끌려가는 소가 불쌍해서 바꾸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자 맹자가 물었다. 양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양도 불쌍하기는 만찬가지다.

그리고 백성들은 험담처럼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바꾼 것은 인색함 때문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맹자는 선왕 자신도 모르고 있는 이유를 이야기 해 준다. 


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맹자의 해석이었다. 우리가 '맹자'의 이 대목에서 생각하는 것은 '본 것'과 '못 본 것'의 엄청난 차이에 관한 것이다. 생사가 갈리는 차이이다. 본다는 것은 만남이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아는 이를 테면 '관계'가 있는 것과 관계 없는 것의 엄청난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한다. 옛 선비들은 푸줏간을 멀리했는데, 그 비명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생선 횟집에 들어가면서 수조 속의 고기를 지적하여 주문하는 사람도 많다.


* 맹자가 강조하는 '인의예지'(관계성 속에 윤리가 형성된다.)


인은 측은지심(불쌍히 여기는 마음), 의는 수오지심(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인데 이런 감정은 만남이 지속적일 때 생기는 것이다. 짧은 만남 속에서는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예) 지하철에서 자신의 앞자리에 대한 '연고권'을 불법적으로 빼앗긴(?) 이야기


자본주의의 인간관계는 '상품교환 관계'이다. 얼굴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가 상품교환이라는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이다. 그런 인간관계가 결집되어 나타나는 곳이 바로 '도시'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는 얼마든지 '유해' 식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서로 만나서 '선'이 되지 못하고 있는 외딴 '점'이다. 더구나 '장'을 이루지 못함은 물론이다. 


*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한다.(관어해자난위수)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작은 것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뜻 / 맹자의 인간적 기품과 크기를 읽을 수 있음.



* 맹자는 사람이 처해있는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 이해가 깊었다.(119쪽)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그 화살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할까봐 근심한다. 그러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하는 일이 그래서 그렇지 사람 자체가 어찌 불인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무당(의사)와 관(장의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무당은 사람이 죽을까봐 걱정하고 관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죽지 않을까봐 걱정한다. 


맹자는 이것을 인간성 과는 관계없는 사회적 조건으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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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時제制 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계측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옛것과 새로운 것>


.. 해가 뜨고 지는 것마저도 변화가 아니라 반복이다.

아프리카의 오지에 1년을 365개의 숫자로 나눈 캘린더는 없다. 시간은 실재의 변화가 걸치는 옷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탕이 아름다움입니다.>


* 품성이란 바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도야되는 것이며 인간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것입니다. 


* 미인은 대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일익을 담당하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소위 꽃으로 '존재'하려는 경향이 우세합니다. 미인이라는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일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존재론과 관계론의 차이입니다. 

  - 존재로 증명된다고 생각하는 자의 태도와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자의 태도가 다를 수 밖에 없을 지적한 글이라 본다. 


*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이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 그러나 세상은 모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대체되었다. 이 시대의 미학이란 새로움이며 알아차리기 전에 다시 새로워짐으로서 실제를 감추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아니라 모름다움이 미의 본령이 되어버리는 꺼꾸로 된 의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공존과 평화>


* 논어의  '동론(和同論)'은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와 동은 철저하게 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 격동기에 도처에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나는 극좌와 극우가 다 같이 '동'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라는 극우 논리와 프로레타리아 독재라는 극좌 논리는 둘 다 '강철의 논리'이며 '존재론적 구조'이며 결국 '동의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


변혁기의 수많은 실천가들이 한결같이 경구로 삼았던 금언이 있습니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는 것이었습니다. 운동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중과의 접촉 국면을 확대하는 것, 그 과정을 민주적으로 이끌어가는 것 그리고 주민과의 정치 목적에 대한 합의를 모든 실천의 바탕으로 삼는 것, 이러한 것들이 모두 덕불고 필유린의 원리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


진 나라 재상으로 신상필벌이라는 엄격한 법가적 개혁의 선구자로 알려진 상앙 에게는 '이목지신'이란 유명한 일화가 있다. 상앙이 진나라의 재상으로 부임하면서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는 원인은 바로 나라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궐 남문 앞에 나무를 세워고 방문을 붙였다. '이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는 백금을 하사한다.' 그러나 옮기는 사람이 없자, 상금을 천금으로 인상하였다. 그래도 없어서 만금으로 인상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상금은 기대하지도 않고 밑질 것도 없다고 생각해 장난삼아 나무를 옮겼다. 그랬더니 방문에 적힌 대로 만금을 하사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라의 정책이 백성들의 신뢰를 받게 되고 진나라가 부국강병에 성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물론 지어낸 이야기다.)


무신불립,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수 없다는 것.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결집이라는 사실이다. 


<참된 지知는 사람을 아는 것>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애정 없는 타자와 관계없는 대상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의미의  지知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인식의 혼란을 가져오는 엄청난 정보의 야적은 단지 인식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폄하하게 할 뿐입니다. 


(모든 것이 상품 가치와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참된 지知를 얻기란 어렵다.) 이러한 체제에서 추구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한 점의 인연도 없습니다. 지知는 지인이라는 의미를 칼같이 읽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한 사회입니다. 무지막지한 사회일뿐입니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


"학 하되 사 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 하되 학 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학: 배움. 이론(객관성,일반성)

사: 경험. 실천(실천성, 현장성)

배움이 있고 실천이 없으면 어둡게 되고, 경험이 있으나 일반성이 없으면 폐쇄적이 된다.


학 이란 협소한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학이란 하나의 사물이나 하나의 현상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에 갇혀서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읽지 못할 때 완고해 지는 것입니다. 

크게 생각하면 공부란 것이 바로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임을  깨닫는 것이 학이고 배움이고 교육이다.  우리는 그 작은 것의 시공적 관계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책상에서는 한 가지이지만 실제로 일해보면 열 가지도 넘는다."

 - 교실보다는 현실이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세상에 부적응자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알 고 있다는 의식>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의식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겸허해야 한다. 


<광고 카피의 약속>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를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짧은 만남 그리고 한 점에서의 만남입니다. 만남이라고 하기 어려운 만남입니다. 부딪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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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교회 한가족예배(2015.11.08)


본문: 시편 146:1-10(146-150편)

제목: 어른들, 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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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102쪽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집에 눌립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 조금 작은 듯한 집이 좋다고 하지요.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이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잘못된 사람이 차지하고 앉아서 나라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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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주공을 그리워하는 복고주의자, 노예제 옹호론자로 비판됩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당시에는 진보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경험한 것 중에서 보다 나은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진보 개념도 다르지 않습니다. 중세의 신학과 계몽주의 관념에서 가져온 것 입니다. 


 * 92쪽. 공자의 제자 자공이 정치를 물었다. 정치란 '식'과 '병'과 '신'의 세 가지라고 했다. 자공은 물었다. 이 세가지 중 부득이해서 없앤다면 뭘 없애야 하는가? '병'을 없애라. 또 한 개를 없애야 한다면? '식'을 없애라.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무無신信불不립立'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국경 개념이 없어서 이동이 자유롭다. 임금이 신망이 있으면 몰려온다. 


공자는 인이란 '근자近者 원遠' 라고 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인이라고 했다. 


* 공자의 논어는 인간에 대한 주목이었고, 인간관계의 발견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구간이 불탔는데 공자가 돌아와서 사람이 다치지 않았느냐고 묻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습니다. 이 일화를 두고 '공자가 인간적이다' 또는 '생명 관념이 편협하다'고 찬반이 엇갈리지만 당시에는 말 한 마리 값이 노비 세 사람 값이었습니다. 비싼 말은 묻지 않고 값싼 사람을 물었습니다. '논어'는 인간의 발견이었습니다.(97쪽)


 * 내용과 형식에 대한 담론 : 질이 문보다 승하면 야하고(질승문즉야), 문이 질보다 승하면 사하다(문승질즉사)

'질'은 내용을 말하고, '문'은 그것을 드러내는 형식을 말한다. 내용의 정당성만 강조하고, 그것의 수사에 무심한 경우에는 야(거칠다)하다. 그러나 형식만 있고 내용이 약하면 그것은 사치스럽다. 

문질빈빈 연후군자. 문과 질이 빈빈(잘 조화되어야야)해야 가히 군자라 할 수 있다. 


 * 나카지마 아쓰시의 중편 '제자'라는 소설. '공구'라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가 되는 과정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신하가 없으면 임금은 올바름을 잃게 되고, 선비에게 배움의 벗이 없으면 선비는 들을 귀를 잃게 된다네. 나무도 새끼줄을 매어 둠으로써 비로소 곧게 자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에는 채찍이, 활에는 도지개가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도 방자한 성격을 바로잡기 위한 가르침이 꼭 필요한 것이라네. 틀을 바로 잡고 갈고 딲으면 그제야 비로소 유용한 재목이 되는 법이라네."


공구의 말. " 그렇지만.... 남산의 대나무는 쉽게 휘어지지 않고 저절로 곧게 자라서, 이를 잘라 사용했더니 무소의 가죽을 꿰뚫었다고 들었고. 천성이 뛰어난 사람에게 무슨 배움이 필요하겠소?"


공자의 답 "그대가 말하는 그 남산의 대나무에 살깃과 살촉을 달고 그것을 잘 갈고 닦으면 단지 무소 가죽을 꿰뚫을 뿐만이 아니라네."


  - 사람은 배움을 통해서 방자한 성격을 바로 잡으면 매우 유익한 자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침.


*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자로라는 제자는 노하여 묻는 것에 대해 공자는 의외로 조용하게 답한다.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 '소인은 궁하면 흐트러지는 법이지'. 공자의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압축한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공자의 제자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함께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102쪽)


 * "용사의 괴력이나 지자의 신기에 비하면 공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가장 상식적인 완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지정의 의 하나하나에서부터 육체적인 여러 가지 능력에 이르기까지 실로 평범하고 구김살 없이 발달한 완전함이었다. 하나하나 능력의 뛰어남이 전혀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균형이 잘 잡힌 넉넉함은 자로로서는 실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100쪽, 공자의 면목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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